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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를 준비는 되어있다.

누를 준비는 되어있다. 2013.6.23.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꽤 시간이 걸렸다. 어떤 감정이 있는데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성의 발자국인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더욱 쉬운일이 아니다. 생각을 생각으로 덮어내고, 다시 배치하고 또 풀어냈다가 다시 조립하기를 반복하고 난 뒤, 내가 잡은 제목은 '누를 준비는 되어있다' 이다. 



사회적 연결망이라고도 하고 SNS라고도 하는 여러가지 서비들이 인터넷의 발달의 영향인지, 인간 존재의 처절한 외로움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으나 유행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전혀 SNS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일부 있을지 모르겠으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SNS에 계정을 가지고 있거나 그것에 매우 열렬한 참여를 하고 있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런 SNS를 가만히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어 글로 남긴다. 


자신과의 친분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혹은 자신이 존경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도록 하고 있는 페이스북(facebook)과 같은 경우에는 '좋아요'라는 특이한 기능이 있다. '좋아요' 자체가 가지는 금전적 보상이나 사회관계의 돈독함이 담보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른다. 그리고 그 좋아요를 누르면서 자신과의 관계와 자신이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과의 관계를 매번 확인하는 듯 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모든 사람에게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은 없을터이고, 생각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기반해 좋아요를 누른다고 하더라도 그 심정의 저 밑바닥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설정이 밑바탕에 되는 것이리라. 



이런 상황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때는, 같은 내용이나 같은 사진을 올려도 좋아요의 수가 다르거나, 반응이 다르다는데 있다. 자신과 관계 맺은 사람이 다르니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동시에 친구가 맺어져 있는 사람 중에 자신의 사진이나 포스팅에는 무반응을 보이다가 다른 사람의 포스팅에는 좋아요를 누르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으니, 이 참 신기한 일이다. 



좋아요 하나에 일희일비하거나, 왜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는지를 걱정하는 것은 매우 소심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좋아요라는 것이 자신의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로서 이용되는 SNS 라면 그것이 상징하는 동학(動學)은 있기 마련이다. 



이런 동학에는 몇 가지 진단이 나올 수 있다. 첫번째,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올렸기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단다는 사람이 있다. 공감이 인간이 가진 특징이라고 한다면 그런 진단은 옳다고 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올린 글에 지속적으로 공감을 하지 않기도 어려운 법이고 또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이 지속적인 공감을 보이기도 어려운 법이다.  두 경우 모두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임에도 실제 활용에 있어서는 계속 나타나고 있으니 이 진단은 옳은 진단이라고 볼 수는 없다. 



두 번째 진단으로는, 결국 오프라인에서의 친밀도가 SNS 상에서의 친밀도로 확장되어, 그 결과로서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단다는 진단이 있다. 사회적 연결망이라고는 하나,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과 나와의 관계에서 그들과 친밀도를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 한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수 있기에 글이나 사진으로 표현되는 모습마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SNS 상의 표현들에 있어서도 좋아요를 누르는 것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친밀함을 유지하려고 하고, 또 일종의 '우정 확인'을 좋아요나 댓글들을 통해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두번째 진단이 옳은 진단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오프라인에서의 친밀도를 온라인으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하면,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에게 좋아요나 댓글을 남기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쳇말로 '페북스타'라고 불리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 실제로 만나지도 못한 사람임에도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르고 칭찬을 하고 댓글을 단다. 마지막으로 연예인이나 페북스타의 경우가 아닌, 실제로 오프라인에서 친밀함을 느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포스팅에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여러 이유들을 통해서 결국 현실 세계의 친밀도와 SNS 상의 친밀도를 동치해두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세 번째 진단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이다. 자신이 지금 이 글을 왜 올리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고,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는데 있어서도 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아는 사람이 글이나 사진을 올렸으니 댓글 하나 달아주지 뭐, 좋아요 하나 눌러주지 뭐, 하는 정도의 생각만으로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본인 생각에는 아마도 이 세번째의 진단이 그나마 가장 좋은 진단이지 않을까 하지만, 사실 꼭 그렇지도 않다. 페이스북이든 트위터든 사람들이 올린 글에 의해서 아주 조금씩이라도 친밀도를 확인하기도 하고, 또 재미를 알기도 하지만 그런 일상 생활의 부분을 떠나서 정치적인 견해나 사회 현상에 대한 나름이 진단 등은, 적는 사람도 많은 생각을 하고 적은 것이고, 댓글이나 좋아요 역시도 그런 행위를 하는데 있어 그 책임을 스스로가 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 많은 생각의 결과라도 해야할 것이다. 일상적인 댓글이나 좋아요는 단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할지 모르지만, 지금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는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또 자신이 겪은 폭압이나 억압에 대해서 고발하는 내용이 담긴 포스팅 역시도, 많은 비중은 아니라도 지속적으로 올라오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번 째 진단 역시 큰 호응은 얻지 못할 것이다. 



1:9:90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인터넷이나 사회적 연결망 서비스가 개발되고 발달하기 전에도 그랬겠지만, 이 법칙은 인터넷 & SNS의 등장으로 그 적실성이 더욱 드러났다고 본다. 이 '1:9:90 법칙'이란, 전체를 100퍼센트라고 두고 보면 그 중 1퍼센트는 정보나 콘텐츠를 생산하고, 9퍼센트는 그 정보나 콘텐츠를 유통하고, 나머지 90 퍼센트는 그것들을 수용하는데 그친다는 법칙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생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보나 콘텐츠는 사실상, 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경우이며, 나머지 대부분은 유통이나 수용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법칙은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좋아요를 누르든, 댓글을 다는 행위 등은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해서 인정하고 묵인하고 확인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선 세 가지 진단이 모두 포함될 수 있는 결론이다.  누군가 적은 이야기에 공감을 하거나, 또는 그 사람과의 친밀도를 확인하고 싶거나, 그것도 아니면 별 생각 없이 그 정보나 내용을 수용하고, 그 수용의 결과로 좋아요를 누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 가지 진단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느 것도 한 사람의 행위를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그 어느 것도 틀린 설명은 아닌 것이다. 



과거 아래와 같은 표를 그린 적이 있다.


 사회적 파장/ 

                발화 정도 

                 발화 정도 낮음

                  발화 정도 높음

 사회적 파장 적음 

 

    일상적 내용의 포스팅 

    예 : 여행, 식사, 독서, 연애 등 



   사회적 인지도가 낮은 사람의 정치- 

  경제 분석 혹은 사회 비판 

   예: 정부 시책 비판, 

        국제금융위기에 대한 분석 등  

사회적 파장 큼 

   사회적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적는

   일상적 내용의 포스팅 

   예 : 유명 연예인의 셀프카메라, 

         정치인의 넋두리 등

  사회적 인지도가 높은 사람의 정치-

  경제 분석 혹은 사회 비판 

   예 : 야-여당 간 정책 비판, 

         외국 수반에 대한 분석 등  



위의 표는 SNS 상 내에서의 위상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 네 가지 범주를 나타낸다. 왼쪽 위의 상자는 사회적 파장이 적음과 동시에 발화 정도가 낮은 포스팅을 뜻한다. 표에 적혀 있는대로, 일반의 사람들이 일상적인 내용들을 적는데 있어, 그것은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도 그것을 통해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을 뿐더러 그 결과 역시도 사회적 파장의 정도가 거의 없거나 낮은 것들이다. 그 오른쪽에는 발화의 정도는 높으나 사회적 파장이 낮은 것들이다. 예를 들면 정치학을 배우는 학생이 자신의 의견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린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그 글을 적거나 사진을 올리는데 있어 많은 생각과 나름의 분석틀을 기용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적 파장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이다. 왼쪽 아래의 경우는, 사회 내에서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 올린 일상적 포스팅이다. 자신이 사회적 인지도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일상생활 등을 별 의도 없이 올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터넷 신문이나 공중파 뉴스에까지 나올 정도의 사회적 파장은 가지는 것들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아래의 내용들은, 올리는 사람도 그것의 영향력이 있기를 바라면서, 올리는 사람 역시도 사회적인 인지도가 있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최근에 기자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직접적으로 인터뷰를 한 효과까지 낳고 있다. 



이런 분석은 우리가 발화 정도나 사회적 파장의 크기에 있어서 어느 정도가 다른지에 대해서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유용성은 이런 분석에서 그치지 않고, 저 경계들을 무너뜨리는 경우에 더욱 큰 효과가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발화 정도가 낮은 글을 올렸음에도 발화 정도가 크다고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거나, 또는 사회적 인지도가 없는 사람이 올린 글이 영향력을 갖고 반향을 일으키는 경우들이다. 이런 경우에, 예를 들면 이집트의 민주화를 촉발했던 트위터의 내용처럼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나갈 수 있고, 반대로 제작년 아무런 의미 없이 올린 한 여자 아나운서의 트위터 내용이 결국 왜곡된 사람들의 인식을 통해 자살로까지 이어진 경우는 부정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결국 자신이 정한 발화정도와 다르고 사회적 파장의 크기에 대한 충분한 인식 없이 올린 글들이 긍/부의 효과를 낳는 경우인 것이다. 



그러하다면, 이런 분석이 왜 SNS 상에서 필요한 것인가. 그리고 '좋아요'와 '댓글' 등이 갖는 사회적 함의는 어떤 것인가. 



글을 적거나 사진을 올리는 행위 자체는 개인의 자유에서 비롯된 행위이다. 그리고 그 자유는 보장되어야 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책임은 그것을 올린 사람이 지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그리고 더욱이 SNS 상에서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엉뚱하게도 사람들의 호응이나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호응, 비난이 표시되는 것이 댓글이나 좋아요다. 



SNS를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왜 이런 글을 올렸는지에 대해서 한 번 심도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전에 그 글을 올리는 사람 역시도 자신의 사회적 인지도에 맞는 내용을 적는 것 역시도 필요하나, 그것이 자기 규제의 형태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위의 표에 맞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적절히 표시하는 노력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아요나 댓글과 같은 경우에서는, 자신과의 친밀도나 공감의 정도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진실성이 담보되는지에 대한 인식 또한 필요할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적은 글이라도 할지라도,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그 글을 적은 사람이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거나 또는, 앞으로 글을 적지 말아야지 하는 정도의 자신감이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SNS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 여러 인터넷 사이트 상에서 이뤄지고 있는 댓글이나 공감 표시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수많은 연예인들의 사례들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적는 댓글이나 공감 표시(좋아요 등)이 다른 사람의 심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자신이 감정이 중요한 것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감정 역시도 중요한 것이다.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다는 패턴들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해서, SNS 상에 사람들이 올리는 글에 대해서 이 글은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가지는 사회적 함의 또한 분석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글을 적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글을 적거나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익명성'이 보장되건 보장되지 않건 관계 없이 막말을 쏟아내거나 악플을 달기도 하고, 또 자신들만의 친목도모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우정을 배제하기도 한다. 



올바른 인터넷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은 쉽지 않은 일일테지만, 우리가 수단으로 사용하는 인터넷 및 SNS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책임성 있게 글을 적고, 사진을 올리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필요하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제목으로 정한 '누를 준비는 되어 있다.'에 대한 설명을 하겠다. 이는 그 내용과 관계 없이 자신과 친한 사람이나 자신이 어떠한 의미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의 글이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제목이다. 긍정적인 영향이라는 것은, 관계를 호전시키거나 유지하거나를 넘어 자신의 생각이 글을 적은 사람의 생각과 공통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그리고 내가 당신글에 좋아요를 눌렀으니 당신도 나의 글에 좋아요를 눌러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등이 포함된다고 하겠다.



지금 이 글의 링크를 나의 페이스북에 올리겠지만, '좋아요'를 누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좋아요 그림 출처 : http://www.etnews.com/news/international/2507109_14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