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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벗어보니.

안경을 벗어보니. 2013.6.26.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주위에 있는 도림천을 걸었다. 고시촌에서 시작하는 산책로는 신림역을 지나 신대방역까지 이어지지만, 오늘 아침의 산책 혹은 운동은 신림역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는 것으로 정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약 20분이 소요되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도림천 내(內)의 이름 모를 물고기들을 구경하면서 걸으면 약 35분 정도가 걸리는 그리 길지 않은 거리다. 


하루 온종일을 앉아만 있다보니, '걷기'라는 행위의 욕구가 생겨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사뿐사뿐 걸어다니기를 즐기는 본인이지만, 평소와 다르게 오늘 아침 느낀바가 있어 글로 남긴다. 


본인은 시력이 좋지 않다. 시력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기준이 '병역'이기에 간단히 설명코자 한다. 20살이 되던해, 해군병에 지원해서 해군 기초군사학교에 들어갔다. 해군은 1주일의 가입교 기간 동안 다시 신체검사를 받는다.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해군에 들어가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은, 시력이 상당히 나빠 군대 자체를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입교 후 5일이 지난 후 다시 사회로 나왔고, 신체검사를 다시 받으니 '양안난시'로 인해 4급 판정을 받았다. 간단히 설명한다고 했지만, 설명이 좀 길었다. 결국, 군대를 갈 수 없을 만큼 눈이 매우 나쁘다는 것이다. 


눈이 나쁘니, 안경을 벗으면 사물의 분간이 쉽지 않다. 형체는 제대로 알아볼 수 있어도 글자를 읽거나 숫자를 분간하거나, 신호등을 인식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항상 안경을 쓰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별 계기없이 안경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산책을 하는 것이었으니 속도를 낼 것도 아니었으므로 안경을 벗어도 무방하겠다 싶었다. 안경을 벗어도 길과 건물, 사람의 형체는 보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는 키나 체형을 보고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사람이 남자인줄은 알겠으나 어떤 얼굴을 가졌는지를 알기 어렵고, 연령대를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여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새벽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으므로 젊은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그때 생각했다. 


아, 사람이 사람으로 보인다. 몇 살이든 얼굴이 예쁘든 못생기든 잘생기든 관계 없이 사람이 사람으로 보인다. 내가 지금까지 사람을 구분지었던 방법이었던 연령이나 성별, 그리고 최근 부각되고 있는 '능력'이라 여겨지는 외모에 대한 생각들은 소용이 없다. 어떤 얼굴을 가졌든, 키가 얼마든, 옷을 어떻게 입었든 관계 없이 모두 다 사람인 것이다. 심지어 부끄럽게도 내가 젊은 남자로서 가졌던 여성의 외모에 대한 편견이, 내가 안경을 벗는 것만으로 사라졌다. 결국 나는 안경을 쓰고 있었을때, 모든 것을 명확히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오히려 내가 제대로 보아야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내 인식 속에 안개만 덧씌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보니 그랬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관계 없이, 나와 부딪히지 않으려면 피해야하는 사람이었고, 나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걸어오는 여자가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든 사람이든 예쁜 사람이든 예쁘지 않은 사람이든 관계가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었다.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 썼던 안경이 오히려 내 인식을 흐리게 만들었고, 사물에 대한 분간이 쉽지 않아지자 오히려 더 명확히 그 본질이 보였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무조건 옳고 이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놓치게 되는 부분은,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라는 것과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 역시 나와 또 다른 사람이라는 것, 그 사람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든, 키가 크던 작던, 돈이 많건 적건을 떠나서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리라. 


러시아의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 안톤 체호프의 소설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자신의 부인과 함께 자신이 예전에 살던 집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곳에는 예전 어머니가 보시던 거울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 거울에만 빠져서 평생을 미쳐 사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여 그 거울 없이는 단 하루도 사실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거울을 우연히 본 자신의 부인 역시도 어머니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거울에 집착했다. 사실 그 거울은 평평하지도 않고 더러워보이는 거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소설에서 안톤 체호프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결국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는 것, 그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편한 것만을 찾아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이 결코 진실이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의 내용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못 옮긴 부분이 있으면 추후에 수정을 하겠다.)


나도 오늘 안경을 벗고, 내가 만나고 싶어하던 '예쁘고 젋은 여자'(다시 한번 부끄럽지만, 쑥스럽지는 않다)가 아닌, 남녀를 떠나고, 노소(老少)를 떠나고 미추(美醜)를 떠나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는, 내가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 혹은, 볼 수 있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살았던 삶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