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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도 늙을까

목소리도 늙을까 2013.7.1


날짜를 적으려고 보니 벌써 7월이다. 2013년을 시작하는 마음가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고, 추운 겨울을 잊은 채 더운 여름의 한복판에서 '덥다'를 연신 주억거리고 있다. 계절의 변화만큼 사람이 변한다면, 사람은 그 형체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2013년의 반을 보낸 지금으로서 앞으로 남은 반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 스스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글 주제와 상관 없는 이야기를 몇 줄 적었다. 하지만 전혀 상관이 없지는 않다.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 즉 우리가 나이가 듦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배경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라는 표현을 누가 처음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오묘한 표현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책임져야하는 부분들이 많아지므로 '나이를 짊어진다'라거나, 이 생에서 쓸 수 있는 시간들이 점점 줄어드니 '나이를 흘려보냈다'가 아니라 나이를 먹는다라. 아마도 처음 이 말을 사용한 사람은 나이가 듦에 있어서, 또 사람이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 '먹음'에 관해서 강조를 했을 것이다.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욕을 먹기도 하고, 사랑을 먹기도 한다. 사람은 먹음으로서 혹은 마심으로서 사람의 존재를 형성하고 있기에 나이 역시 먹는 것으로 표현했지 않았나 싶다. 


나이가 드는 이유가, 세포의 노화 때문이라는 것은 생물학의 설명이다. 사실 사람의 세포는 일정 기간을 주기로 새롭게 태어나고 또 죽어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지속적으로 모습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눈에는 보지이 않지만 수많은 세포들이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탄생과 죽음 사이에 노화가 간섭을 한다. 태어나자 마자 세포는 자신이 몇 번 정도 태어나고 죽으면 더이상 다시 태어날 수 없는지를 알고 있다. 정확한 기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또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세포는 새롭게 태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자멸한다. 이런 원리로 우리는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세포가 늙어가는 것이면, 사람의 목소리는 세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에도 늙는 것일까? 


목소리가 늙었다는 말은 어폐가 있긴 하다. 목소리는 나이를 메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소리는 분명 늙는다. 어린이의 목소리와 변성기 즈음의 목소리는 다르고, 또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면 또 목소리가 달라진다. 미묘한 차이겠지만 어제의 목소리와 오늘의 목소리는 다르다. 목소리가 바뀌는 것은 성대의 세포가 늙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성대가 노화되니, 목소리가 늙는다' 라는 결론을 내리기는 싫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목소리가 늙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 늙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 늙기 시작하면 목소리가 늙는다. 어떤 사람은 젊은 시절의 목소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목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연령을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리고 목소리만을 듣고도 사람의 성격이나 살아온 과정을 알 수 있기도 하다. 그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하여 어떤 이야기를 했고,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척도이다. 생각이 늙는다는 것은, 지식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과 관계된 주변 상황에 대한 애정, 관심 혹은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변 사람이나 사회에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가족에게도 애정이 없는 사람의 목소리는, 딱 그 정도로 매말라 있다. 목소리를 들려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목소리에서 관심이 생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주위 사람이나 가족, 사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고, 또 잘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좋은 목소리가 유지될 수 밖에 없다.


목소리가 좋다 나쁘다의 기준은, 사람들이 듣기 좋은 목소리라는 것이 기준이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목소리일 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기준은 존재한다. 그리고 아무리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매일 욕설이나 타인에 대한 비방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좋은 기술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에게 그 가치를 인정해 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좋은 목소리는 결국, 자신이 사람 혹은 사회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그 사람이 목소리를 가지고 주위 사람에 좋은 영향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의 증거이다. 


나는 목소리가 좋은가. 좋지 않다. 저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나는 내 목소리를 가지고 사람들에게나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기에 좋은 목소리라고는 할 수 없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에게 좋은 목소리라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들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에 그들에게 내 목소리로 하는 이야기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목소리도 늙을까. 


늙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의 목소리는 이미 늙었거나 늙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늙음'은 나이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밝혀두고자 한다. 10대 청소년도, 20대 청년들 사이에도 목소리가 늙은 사람이 있다. 분명히 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반대로 목소리가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다. 몇몇 아이돌 출신 가수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린 아이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목소리가 어린 이유는, 자신의 생활 반경 내에서 변화가 없이 주위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고도 살 수 있기에, 딱 어린 시절 그때 그대로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가 늙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린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도 자신의 주위에 대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신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리는지를 잘 생각해보자. 목소리가 좋다는 것이, 자신의 도구가 좋다는 이야기가 아닌 여러분이 하는 이야기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판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생물학적인 나이를 떠나, 배려-공감-애정을 기준으로 하는 목소리를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목소리에 대해서 내 생각을 적은 것이다. 선천적으로 특이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을 논외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특이하기에 또 소수이기에 무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