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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7. 02:39 카테고리 없음

호놀룰루 랄라릴리 2013.8.27.  단편소설


버스가 지나갔다. 타야만 하는 버스였다. 언제 다시 오려나 길 먼발치를 목 빼어 보아도 버스는 올 기미가 없다. 그리고 내가 타야만 했던 버스는 저어기 멀리 나아가고 있다. 버스를 놓치기 위해 무엇인가 노력한 것 같았다. 버스를 타야한다는 의지보다는 버스가 다시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젖어 나는 버스를 놓칠 준비를 했다. 버스가 내 눈앞에서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리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버스는 떠나기 위한 어떤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버스는 올 것이다. 나는 다시 그 버스를 놓치지는 않을 것이다. 버스는 한 번 놓치는 것이지 두 번 놓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버스 번호가 5515번이다. 왜 이런 버스 번호가 붙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른 버스 번호들 중에 5514번은 없었지만 5516번은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는 시간을 표현한 것일까.1번 버스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른 버스의 일부가 되었을까. 아니면 우리를 죽이는 총알 하나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버스 번호를 한참 생각하니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해졌다. 오천오백십오번이라고 읽는 것일까, 오오일오라고 읽는 것일까. 이런 것은 어디에 가면 배울 수 있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하다보니 버스 번호를 부르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종의 신호였다. 내가 저 버스를 타면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약속이 담긴 신호였다. 버스를 타게 되면 내가 몇 번의 버스에 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어디에 내려야만 하는지를 생각하다보면 결국 버스 번호는, 아무렇게나 읽어도 되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저런 사소한 것이라도 가르쳐주는 곳이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반찬을 먹을 때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하는지, 옷 단추는 어디서부터 잠그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물을 마실 때는 어느 정도를 한 모금으로 마셔야하는지 같은 사소한 것들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의 기억에 남는 방법도 알려주면 좋겠다. 결국 우리는 버스를 타고 사람을 만난다. 버스 기사부터 버스 안의 승객들까지. 나는 가끔 버스에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버스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운명의 공동체가 된 듯한 느낌. 비행기는 자주타지 않을 뿐더러, 사고가 나더라도 자주 일어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 도로 위에, 버스 기사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이렇게 좁은 공간에 우리가 같이 있다니. 섬칫 놀랍기까지 한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천하태평이다. 버스가 마치 자신들의 또 다른 발인 듯 하다. 1050원이라는 돈을 내고 탔으니, 내가 걸어서 갈 수 없는 곳까지 나를 데려다 줘, 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듯 하다. 나는 그런 그들마저도 포용하는 이 버스와 그리고 버스 기사가 대단해보이기 까지 했다. 누구나 버스를 타지만 버스를 타지 않을 정도의 여유가 있으면 언제나 버스를 잊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술에 취해 택시를 타더라도 버스를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버스는 무엇인가 떠나는 것에 익숙한 그런 공간이자 물건 같았다. 사람들이 타고 내릴 때, 다른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기억이나 할까. 그래서일까 버스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가 그지 없다.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정류장에서 버스에 타는 사람이 아는 사람일 경우, 한참을 내가 아는 사람인지 생각까지 해야한다. 닮은 사람이었다가 아는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에는, 표정이 환하다. 여기서 만나뵙네요.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참 신기하네요. 서로 몇 마디 나누다가 버스가 실어다 주는 어떤 곳으로 우리는 가게되고, 또 내리게 된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겠지만 그 신기함은 잊을 수 없다. 버스는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게도 했다가, 또 헤어지게도 하는 그런 것 같다. 근데 만약에 누군가 내가 아는 사람을 버스에서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나를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알아보았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한 그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일까 모르는 사람일까. 이 길다랗고 좁은 공간에서 내가 당신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 것일까 알리지 말아야하는 것일까. 지하철이나 기차라면 너무나 길어서 같은 기차에 타고 있다 할지라도 모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버스는 그다지 길지도 않고 또 조금이라도 주의력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얼굴이나 내가 당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시선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지만,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자신의 1050원어치 주의력을 보이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일까 모르는 사람일까. 결국 버스는 우리가 어딘가에서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그 어떤 것인가 보다. 버스 기사의 이름을 단 한번도 제대로 외운 적도 없고 버스 번호를 어떻게 읽는지 조차 모르면서 버스에게 '운명의 공동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말을 배운 뒤 행했던 첫 번째 실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버스는, 그 수많은 사람을 싣고도 이리저리 잘도 다닌다. 



5515번이 왔다. 아직도 무어라고 읽어야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무엇이지만 무엇인지 모르는 저 길다란 물체가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리고 다시는 놓치지 않으리라는 의지를 가지고 버스 앞에 선다. 버스 문이 열리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어디선가 들은 듯 하기도 하고 또 다시 생각해보면 여기서 그런 소리가 날 이유는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없다. 하지만 명확하게 어떤 소리가 들려 자세히 들어본다. "호.. 놀.. 루..루.. 라리.. 랄..라.." 바람 소리 같기도 하면서 어디선가 금속들이 부딛혀 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자세히 들어보려고 하면 저 멀리서 나는 소리 같고 또 무시하고 가만히 있으려니 내 귀에서 어떤 음정을 가지고 계속 반복해서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려 버스 안 이리 저리를 둘러보아도 소리는 나지 않고, 오히려 두리번 거리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더욱 이상하다. 소리를 찾아보려는 시도는 그만두고, 가만히 그 소리를 들어보기로 한다. '호놀..루..루.. 랄라..리..리.." 이상하다. 이런 소리가 날 이유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다들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다. 너무나 표정이 없게 앉아있기에 짐짓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이 듣는 음악소리가 나는 것일까. 아니다. 아무도 음악을 듣고 있진 않다. 음악소리가 나는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음악이 아닌 것을 듣고 있다. 음악을 듣고 있다고 하기에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그 어떤 안도감도, 그 어떤 흥분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얼른 이 버스를 내리고 싶다는 그런 생각만 지금의 가장 중대한 사건인 양 사람들은 앉아있었다. 다시 한번 소리를 들어보았다. 이제 명확히 들리는 듯 했다. "호놀룰루 랄라릴리" 응? 호놀룰루 랄라릴리라고? 이런 조합의 가사나 음악이나 단어를 들어본 적은 없다. 호놀룰루는 하와이의 도시 이름인 것은 알고 있었다. 호놀룰루라는 이름 만으로 그것이 도시라는 것을 상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즐거운 느낌을 주는 춤의 이름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고, 누군가를 놀리기 위해서 적당한 표현이 없다면 '호놀룰루'라고 부르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닌 뜻이 하와이어로 '보호받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내가 함부러 불러서는 안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호놀룰루는 아주 건조한 느낌으로 내 인상에 남아 있었다. 그런 도시 이름이 지금 내 귀에 생동감 넘치게 다시 들리고 있다. '호놀룰루 랄라릴리'. 그럼 랄라릴리는 무엇인가. 밝은 느낌이 드는 이 단어는 사람이름 같기도 하고, 혓바닥으로 낼 수 있는 가장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본 뜬 단어인 듯 하기도 하다. 랄라릴리, 랄라릴리, 랄라릴리.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지명(地名)이나 뜻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호놀룰루라는 도시 이름과 함께 들린다니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분명히 들리는 이 '호놀룰루 랄라릴리'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호놀룰루는 '보호받는 곳'이라는 의미라니까, 랄라릴리는 '보호받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 하와이어를 하나도 모르지만 '룰루'가 왠지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의미인 듯 하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그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사람을 안심시키는 것인데, 룰루라고 이야기 해주면 뭔가 안심이 되고, 다시 웃음을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니 '랄라릴리'는 '룰루'를 받는 사람으로 해석해 보고 싶다. 해석해야 한다가 아니라 이렇게 이름 붙이고 싶은, 순전히 내 마음의 발상일 뿐이다. 그러니 '호놀룰루 랄라릴리'를 다같이 생각해보면, '보호 받는 곳에서 보호 받는 사람' 정도가 될 것이다.  보호 받아 마땅할 곳에서 보호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라면 왜 이게 내 귀에만 들리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버스의 적막과 주변 환경의 변화에 태연히도, 너무나 태연히도 적응해가고 있었다. 버스 기사도 자신이 이 버스의 기사인지, 아니면 버스가 자신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게끔 하는 것인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버스에 타자마자부터, 그리고 버스에 타고 난 이후에도 계속 이 소리를 듣고 있다. "호놀룰루 랄라릴리". 나는 내가 놓칠 준비가 되어있었던 버스를 한 대 놓쳤고, 그리고선 버스 번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한참 고민하다 이 버스를 탔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는 내가 누군지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 역시도 생면부지의 얼굴을 익숙한 듯, 태연한 듯 쳐다보아야만 했다. 버스 기사는 안전벨트도 제대로 메지 않은 채, 버스와 하나가 된 듯 하다. 아, 나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버스가 알려주는 것이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버스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 버스에서 너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너 역시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 하지만 너는 누군가가 너를 알아보았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어. 그 사람은 너와 지금 같은 버스에 있고, 몇 분간이라도 너와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데도 말이야. 그렇지만 너는 내리고 나서도 모르겠지. 아마 그 사람도 너를 다시 잊을지 몰라. 그래도 이건 알아둬. 너와 다른 사람들, 기사와 승객들이 잠시나마 한 공간에 있으면서 '운명의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잊지는 마" 아, 버스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나만이 들을 수 있게 '호놀룰루 랄라릴리'라는 음악과도 같고, 계시와도 같은 이런 단어들로 내게 지금의 시간이 너만의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호놀룰루 랄라릴리", 보호 받는 곳에서 보호 받는 사람은, 사실 어디에서나 있고 들을 수 있는 말인지도 몰랐다. 미쳐 알지 못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는 버스에서 내려, 더이상 들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호놀룰루 랄라릴리'를 내 입으로 중얼거리며 또 다른 교통수단을 향해, 또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어디론가 향해가고 있었다. 


"호놀룰루 랄라릴리..."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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