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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4. 10:41 카테고리 없음

패스트 데스(Fast Death) 2013.9.14. 


죽음은 항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지금도 지구상 어느 곳에서는 누군가 죽고 있거나 죽음을 기다리고 있거나, 혹은 죽음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하지만 죽음은 반드시 육체적 죽음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빠른 죽음, 즉 패스트 데스. 


패스트 데스는 자신의 꿈꾸는 바를 잃어버린 상태를 뜻한다. 스스로 꿈을 포기한 것인 경우가 일부 있고, 거의 대부분은 꿈을 포기하도록 하는 사회적-심리적 압박에 못이겨 비자발적으로 선택한 꿈의 포기가 '패스트 데스'이다. 


꿈을 포기한 것을 '죽음'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의는 있을 수 있겠으나, 인간을 '이상'이나 '꿈'을 좇는 존재이고, 존재여야만 한다고 여긴다면, 꿈의 상실을 죽음으로 표현해도 스트라이크 존을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리라.


패스트 데스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열정의 상실일 수 있겠다.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잃은 동물은 먹는 것, 자는 것 나아가 쉬는 것까지도 자신신의 결정권으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한 결과는 '일상'이다. 일상 속에서 이뤄내는 것이라고는, 반어적으로 매우 숭고한 일이다. 가족을 위해서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 생명의 유지를 위해서 삼시 세끼를 먹는 것, 가족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가족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이러한 숭고하고도 또 인류를 지탱하는 이러한 일들이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지만, 그것은 사실 '일상'이 아닌 '일탈'이다. 


그 이유는, 일상에서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 매번 흥분을 가져오거나 성취를 가져오는 일은 아닐지 몰라도, 일상의 행위 중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흥분'이나 '감동' 따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인류 궤도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열정을 잃게 되었나. 


왜, 우리는 패스트 데스를 하루 하루 반복하면서 살게 되었나 를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그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붓 터치를 했고,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관찰할 줄 알았으며 그것을 단지 인식의 수준을 넘어 표현의 수준에 이른 사람이 있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의 직업은 '화가'가 가장 어울릴 수 있겠으나, 그의 직업은 '자동차 정비공'이다. 자동차 정비를 하면서 자신만의 표현법을 드러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자동차라는 기계 구조는, 독창성이 요구되는 것이 아닌 '정확성'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인생 속 어떤 시점에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전혀 상반된 직업을 구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정지울 수는 없어도, 어느 시점에선가 이 사람은 자신의 꿈을 유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가정 경제의 불운함일 수도 있으며 사고를 당해 예전 만큼의 실력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여러가지 이유와 시점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꿈의 열정을 잃는 패스트 데스가 온 결정적 원인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주위 사람의 권유라고 하겠다. 


주변 사람들은 선의로 말했을 것이다.


 '화가가 되는 것은 먹고 살기 힘든 직업이다.' '그림은 취미로도 그릴 수 있다.' '니가 화가로 성공하려면 많은 돈이 든다.' '너보다 그림을 잘그리는 사람은 세상에 넘친다.' '니가 가진 재능이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누구나 그 정도 재능은 가지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그 재능을 살려가며 살지는 않는다.' '화가가 가진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너는 미술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으니, 또 그런 교육을 받았다 할지라도 니가 나온 대학이나 과정이 그다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지 않냐' 등등등. 


진심으로 화가의 꿈을 포기하고, 자동차 정비공이 된 사람을 걱정해서 위와 같은 이야기들을 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인간다운 삶'은 결국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이라는 것을 전제로 했기에, 아니 전제되어 있다고 믿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기에 주변의 사람들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화가가 되고 싶었던 이 사람은, 열정의 포기, 즉 패스트 데스를 겪으면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자신의 선택에 있어 후회는 있을지 모르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길에서 다시 인정을 받고자 하는 삶. 이것이 자동차 정비공이 제 2의 삶을 살고 있는, 패스트 데스 이후의 삶이다. 


'사회' '현실' '생계' '가족' '미래' 


이런 단어들은 패스트 데스를 발생시키는 육혈포 속에 들어있는 총알과 같은 것이다. 그 어느 하나도 패스트 데스를 일으키는데는 충분한 파괴력과 살상력을 지닌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현실적으로 인정받는, 생계를 유지하는, 가족을 책임지는,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되리라고는, 아마도 인류 초기의 조상들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누구이든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왜 우리 주변에 '멋진 사진'으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모습들을 알려주는 직업으로서의 사진작가는 없을까. 

왜 우리 주변에 '멋진 시'로 마음 속의 가야금을 울리는 시인은 없을까. 

왜 우리 주변에는 '화성을 가겠어'라는 의지를 가지고 우주선 개발이나 우주 탐사에 인생을 건 과학자는 없을까. 

왜 우리 주변에는 멋진 교향악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음악의 장대함과 악기로 표현되는 감성을 전달하려는 작곡가는 없을까. 

왜 우리 주변에는 '멋진 글'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글'이 주는 즐거움을 주는 작가는 없을까. 


왜 우리 주변에는, 패스트 데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을 사람들에게 알리지는 않더라도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가는 사람은 없을까. 


내가 언급한 위 사람들, 사진작가, 시인, 과학자, 작곡가, 작가들은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 중에서는. 


우리는 다른 사람의 열정을 죽일 권리는 없다. 이것은 열정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삶의 문제다. 삶의 문제를 결정짓는 데 필요한 것은 '선의'가 아니다. 선의를 행사할 시간에 다른 사람의 관심사와 열정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악의는 가끔 선의로 포장되기도 한다.  


'왜 내말을 듣지 않니'가 아니라 '왜 너의 재능을 나에게 보여주지 못하니'라는 것이 비난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은 친구들이나 가족, 혹은 주변사람이나 애인에게 '선의'를 가장한 '육혈포'를 관자놀이에다가 대고 얼른 그딴 '열정'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당신의 주위에 무덤의 비석들이 걸어다니는지, 아니면 살아 숨쉬는 것들이 걸어다니는지는 당신 역시 모를 것이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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