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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와 포경수술

할례와 포경수술 2013.10.8. 


몇몇 아프리카 국가에서 '자행'되고 있는 여성 할례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이 심하다. 여성에게 있어 할례라는 것은, 여성의 음부에 위치한 '클리토리스'를 잘라내는 수술이자 시술이다. 할례를 받은 여성들 중 상당수가 과다 출혈이나 감염 등으로 인해 사망에 이른다고 하니, 이것은 '의식'의 수준을 벗어난 사회문화적 살인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여성 할례에 대한 속설들은 여러가지가 있다. 신에게 자신의 피를 바침으로써, 복종의 의미를 담아낸다고 하는 학설이 있는 반면 여성이 성적 쾌락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남성주의적 사고의 결과라는 학설 또한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성적 쾌락'의 차단에 그 힘을 실어주고 싶다. 왜냐하면 '피를 통한 복종'의 의례로서 여성 할례 말고도 치아를 뽑거나 문신을 하는 등의 의식 역시 존재하는 것을 보면 '굳이' 할례까지 해야했었나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있어 '정조' 관념이나 '정숙'의 관점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서 증명할 수 있다. 이런 사례는, 할례 뿐만 아니라 남편이 전쟁을 떠나거나 집을 비울 때 으레히 부인들에게 차게 했던 유럽의 '정조대' 역사를 보아서도 그렇고, 중국에서는 여자들이 집 밖으로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도록 어릴 때부터 발을 꽉 묶어 작은 발을 유지하게 했던 '전족'의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정작 유교 문화의 정수라고 일컫어지는 한국에서는 여성의 정조 관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집단적 의식이라는 것이 남편이 죽고 난 뒤에도 재가하지 않은 여성들을 위해 세워주는 '열녀문' 정도가 고작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발전된 사회인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이뤄지고 있는 여성 할례는 역사의 발전 과정과는 전혀 상반된 형태로 이뤄지고 있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성의 권리나 인권이 신장되는 것이 '서구 선진국'이나 '동구 선진국' 즉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에게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인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이슬람 국가나 고대 종교를 믿고 있는 아프리카 몇몇 국가들에서는 여전히 여성은 '성적 억압'의 대상으로 밖에 취급받고 있지 못하다. 


본인은 여성이 아니므로, '클리토리스'가 주는 쾌락의 수준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신체의 일부로서 '직접적인 쾌락'을 담당하는, 즉 건들기만 해도 몸이 짜릿짜릿해지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그것이라면, 그것은 마치 신이 인간에게 준 '행복'의 스위치와 같을 것이다. 행복에 대한 논의는 다양할 수 있겠으나, 인간의 3대 욕구가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면 성욕을 통해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함은 당연한 것으로 본다. 이런 행복의 주체가 되는 것을 잘라 버림으로서 여성은 '무감각'해질 것이고, 결국 성관계라는 것은 자녀 출산이라는 매우 기능적이고 또 마치 자신의 몸을 통해서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억압의 한 틀인 사회구조의 도구로 밖에 사용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국제사회에서는 여성 할례에 대해서 많은 비판을 가하고 있다. 단지 여성에게도 성적 쾌락의 자유를 주라는 정도의 '쾌락주의자'의 항변이 아닌, 목숨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종교적 의례 혹은 그것을 가장한 여성성의 압박 혹은 남성성의 발현을 '인권'의 척도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다양성이라는 척도는,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살상적 위협까지 포괄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국제사회는 천명하고 있으나 그 진척은 더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여성 할례는 멈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남성 할례는 어떤가. 이것이 오늘 다루고자 하는 주제이다. 


남성 할례를 알기 쉽게 우리말로 바꾸면 '포경 수술'이다. 쉽게 이야기해 음경에 있는 표피를 제거하는 수술인데, 이 수술은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남성들이 받고 있고, 이 수술을 받지 않으면 웃음거리가 되거나 놀림거리가 되곤 한다. 당연히 해야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마치 받지 않으면 한국의 남성이 아닌 듯한 이 수술이 바로 남성의 할례이다. 


유대인들의 종교적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할례 역시,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여성 할례와 같은 학설들이다. 하지만 한국은 전통적으로 유교 문화와 불교 문화를 바탕으로 발전되어 온 역사를 가지고 있고, 서양의 기독교와 개신교의 유입은 1900년대를 전후해서 들어온 것으로 보면 유대교식 할례는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없다. 일부에서는 한국 전쟁 당시의 미군들이 실시했던 남성 할례가 한국 사회에 고착되어서 그것이 일종의 '통과 의례'처럼 굳어졌다는 의견도 있다. 불분명한 정보이긴 하지만, 유대인의 영향을 받을 길이 전무했던 한국 사회에서 할례가 지금처럼 고착된 것에 있어서 하나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이라는 것은, 몇 가지가 있지만, 첫 번째 미국인들이 하는 수술이라는 것이다. 미군들이 했다는 수술이 한국 사회에 급속도로 확산된 것에 대해서는, 자료를 찾아보면 미군 기지가 있었던 지역으로부터 마치 전염병처럼 남성 할례가 확산되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할례마저도 따라하는 한국인이라는 비난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후진국이었던 한국에 선진국이었던 미국 사람들이 자신의 살을 째고 다시 꿰메는 과정을 본 당시의 한국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선진국으로 가는 하나의 단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사례들은 많이 남아있다. 미국이나 서구의 국가들을 따라하는 한국인들의 면면은 길거리를 나가보면, 여성은 마치 할례인 양 자신의 쌍커풀을 째고 있고 코를 높이고 있으며 얼굴 형을 바꾸고 있다. 남성들은 비싼 이탈리아 정장을 입고 영국 신사와 같은 구두를 신고 유럽산 차를 타면 유럽인이 된 듯한 기분까지 만끽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유럽이나 미국을 닮아가려하는 모습인가. 


두번째로, 한국 사회에 도입된 왜곡된 개신교 문화이다. 연희전문학교를 세웠거나 이화 학당, 배재학당을 세웠던 외국인 선교사들은 미국에서도 보수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남부 감리 신학 출신들이다. 예수님의 고행을 자신들의 고행이라 생각하는 것을 넘어, 자유로운 성관계나 음주, 혹은 흡연에 있어서 매우 보수적인 색채를 띄는 개신교계가 한국 선교의 중심 학파가 됨으로 인해서 그 영향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 역시도 감리교 신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 그가 꿈꿨던 대한민국이 초기 미국과 같은 개신교 국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고 하니 이론은 없을 것이다.  왜곡된 개신교 혹은 강성 개신교가 한국 사회에 들어오고 난 뒤에, 한국 여성의 정조 관념에 대해서는 유교의 영향과 지난 36년이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치고 온 뒤, 외간 남자와 잠자리를 하거나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민족적 - 감정적 적대감이 있었으니 그것의 단속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이후와 식민지 시대를 겪고 난 이후, 더욱 자유분방해지고 또 시간이 있을 때 마다 자손을 남기려는 일종의 동물적 '번식' 본능에 의해서 성에 대한 개방적 의식이 활개를 쳤던 바, 이를 가만히 두고 넘어갈 미국 선교사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남성의 성감대 중 가장 큰 부분은 성기의 표피를 제거함으로써 남성이 느낄 수 있는 성적 쾌락을 반감시키고자 했던 노력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일제 시대의 영향이다 라는 것 또한 하나의 의견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포경수술률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약 7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것도 많이 잡은 것이다. 약 97퍼센트의 한국인이 포경수술을 한다는 발표가 있지만, 일본은 많이 잡아야 1퍼센트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 시대의 영향, 즉 한국인에게 강요한 일제의 습성이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나쁜 습성은 다 일제의 영향이라고 보는 관습적 사고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기 까지 하는 이런 습관들은 크게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이냐. 


남성 할례를 하지 말라는 것이냐, 아니면 남성 할례가 이렇게 문제가 있으니 앞으로는 그 연유라도 알고 할례를 하자는 것이냐. 둘 다 아니다. 남성 할례가 필요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 염증이나 건강상 문제가 생기면 하면 될 것이고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 나머지는 자연적으로 귀두와 음경 사이의 표피는 벗겨지니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아프리카 몇몇 부족에서의 여성 할례가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마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왜 국제 사회에서는 그 난리를 치는가에 대한 인식과 반응이 우리 사회에도 "왜"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묻고 싶다. 남성의 할례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에서는 그에 대한 반성이나 사회적 합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로, 옆의 사람도 하고 아버지도 하고, 동생도 할 것이기에 나 역시 남성 할례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인식은 너무나도 만연해 있고, 또 여성들 역시도 남성 할례에 대한 비판적 의식은 눈씻고 찾아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여성 할례에 대한 비판의 초점이 '인권'이라면, 그 인권 내에는 목숨을 잃을 위험이 포함되긴 하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성적 쾌락을 느낄 자유를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신체적 자유에 대한 보장이 그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은 어떤가. 본인도 어린 나이에 남성 할례를 받은 입장에서 그 이전의 성적 쾌락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지만, 여성의 클리토리스와 유사한 남성의 성기 특히 귀두 부분에 대한 보호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 수술에 대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남은 생애동안 성적 쾌락의 격감을 확인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고 또 다음의 누군가에게는 그런 가학적 폭력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남자든 여자든 성적인 쾌락을 느끼고자 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감정이다. 


남성 할례는 위험하지 않으니 괜찮은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에 대해서는 위험성의 문제를 떠나서 감각이나 부자유한 자극에 대한 인간적 연민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여성 할례도 위험하지 않다면 할 수 있다는 논리와 부딪혔을 때 어떻게 반박할지 우선 생각해볼 필요가, '위험성'에 대한 반박을 하시는 쪽에서는 필요할 것이다. 


'남성 할례는 한국적인 것이다. 세계의 추세와는 또 다른 한국 고유의 습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근거가 궁금하다. 한국 남자들은 성적 쾌락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관습법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너무 많은 쾌락을 한국 남성에게 허락할 경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견 교환이 필요할 것이라 본다. 물론 이 의견교환이라는 것도 남성 할례에 대한 부적절함을 알리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할례와 포경수술, 여성 할례와 남성 할례 사이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지구 상 위 일부의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공통점은 있으나 그것이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남성 할례와 인권의 문제로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여성 할레 사이에서, 그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은 너무나도 필요하고 또 사회전체적인 '행복' 추구의 관점에 있어서도 중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