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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와 강신주

싸이와 강신주 2014.2.11. 


뜬금없다. 싸이와 강신주?  


그렇다. 싸이와 강신주. 


싸이가 '월드스타'가 되자마자 일어났던 현상이 다시 '강신주'라는 철학박사가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하자 드러나고 있다. 


그 현상이란, 바로 '저 사람은 나만의 사람이었어' 라는 현상이다. 


'저 사람은 나만의 사람이었어'


이 표현은, 싸이가 월드스타가 되기 이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 싸이 팬이야'라고 말을 하면 '너는 왜 그런 가수를 좋아하니?'라는 핀잔을 감수해가며 꾹꾹 자신의 '팬심'을 잘 관리해오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싸이가 '월드스타'가 되고 누구나 싸이를 좋아한다고 하니, 느끼게 되는 감정 표현이다. 


싸이는 싸이만의 음악적 색깔을 잘 형성했고 누가 들어도 '싸이 노래'라고 알 수 있을 정도의 리듬과 가사를 정착시켜왔다. 하지만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를 들고 나와, 세계적인 호평을 받다니. '이럴수는 없다'는 팬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짓밟기나 하듯 뉴스에도 싸이가 나오고, 유투부 조회수를 마치 경매 가격인 것처럼 실시간으로 보여주니 원래 팬들 마음이 오죽 슬펐겠나.


그러던 와중에, 싸이는 다시 세계를 '공략'하겠다는 마음으로 '젠틀맨'이라는 노래를 들고 나오지만, 결국 외국의 욕을 한국에 '전파'하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잃어버리는 듯 보이게 되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이러니 기존 싸이 팬들은 상실감을 느끼게 될 수 밖에


"내가 싸이를 좋아했던 것은 그가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과 가사, 리듬에 공감했기 떄문이다. 하지만 싸이는 이제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리게 되었어. 내가 가지지 못한다면 너도 가지지 못하게 하겠어." 라는 생각. 이 생각이 상실감을 대체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싸이를 비판하는 음악평론가들이 그들에게 비난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주었고, B급 문화는 결국 B급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며 힐난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이 강신주 박사에게도 유사하게 일어나고 있다. 


강신주 박사는 연세대에서 장자에 대한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로 정식 강단에 섰다고 되어 있는 경우는 경희대에 출강한다는 것 하나와 홍대입구의 상상마당에서 지속적인 강연을 한다는 것을 제외하곤 '떠돌이 철학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20권 이상의 책을 썼고, 그의 말에 따르면 약 3년이라는 기간동안 하루 2개 이상의 강연을 하고 다닌다고 하니 꽤나 '집핍'이나 '강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판단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반짝  스타가 아니라는 말이다. 


싸이 역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작곡가이면서 가수라는 경력을 쌓아왔고 강신주 박사 역시 그렇다. 


꾸준히 노력한 끝에 나름의 성취와 평판을 얻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테지만, 여전히 이런 표현들은 데뷔 초기부터나 '월드스타'가 되기 전의 싸이 팬들에겐, 또 강신주의 책을 읽으며 '이런 어려운 개념을 이렇게 쉽게 설명하는 철학자가 있다니, 이런 고민까지 해결해 주는 철학자가 있다니' 하며 강신주 박사의 글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싸이나 강신주 박사의 '상업화'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던진다. 


싸이는 자신이 상업가수라는 것을 이전부터 밝혀 왔다. 노래는 듣기 좋아야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들어줘야 하는 것이라며 듣기 좋고 흥얼거리기 좋은 노래들을 만들어온 싸이가 '상업화' 되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싸이의 '상업화'는 마치 동네형이 알고 보니 슈퍼 히어로였다는 것을 깨닫고 그가 마치 하나의 '아이콘'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 상업화이다. 


강신주 박사의 경우에는,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운영하는 '벙커1'에서 '무려 철학박사'라는 별명으로 불려지고 또 라디오 방송에서 '철학' 관련 방송을 해왔음에도 유명세를 떨치지 못하다가 '힐링'이라는 코드의 힘 입어(물론 강신주 박사는 힐링이라는 말을 킬링killing 하고자 한다) 새로운 형태의 힐링 멘토로서 상업화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강신주 박사 역시도 자신은 '철학'이라는 학문이 사람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일상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는 학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에릭 호퍼'와 같은 '길 위의 철학자'라는 명칭을 그가 거부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강신주 박사의 글이 힘이 빠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강신주 박사의 글에 대한 정량 평가를 통해 '힘'이든 '글빨'이든 그 어떤 것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 평가, 즉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읽으니 더 이상 나만의 사람, 나만의 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평가의 지표로 삼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나만의 사람이었어'


세상에 이런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서 사랑받거나 존경을 받고 있던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런 사랑과 존경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보내주고 존경해 준다면 더욱 장기적으로 '그' 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데도, 단지 얄팍한 상실감으로 인해 자신의 생각을 형성했던 글이나 즐거움을 줬던 가수에게 매몰찬 '눈흘김'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싸이와 강신주, 아마도 또 다른 누군가는 앞으로도 이런 고통을 느낄 것이다. 



'변했다. 달라졌다. 뜨더니 건방져졌다. 유명해지니 사람 우습게 보더라' 따위가 아니라 


'그건 그 사람이 이전까지 쌓아두었던 것이 드러난 것 뿐이야. 임계치를 넘은 사람에게 임계치 밑으로 내려가라고 할 수는 없어. 우리는 그의 성장을 함께 기뻐하고 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음을 느껴야 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저 사람은 우리 모두가 알 수 있고 알면 좋은 사람이야.' 라는 생각. 이런 생각들이 더욱 많은 싸이와 강신주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