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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하이, 중국.

샹하이, 샹하이 2014.8.21. 


중국에 온 지 4일쨰가 되는 늦은 밤이다. 18일 오전에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가 채 되기도 전에 나를 중국에 실어다 주었다. 비행기는 2011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그 육중한 날개에 올랐던 기억에서 멈추어 있었으니 3년 만이다. 


매일 중국에서의 내용들을 글로 남기고자 하였으나, 이렇게 늦어지게 된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지금 내가 적고 있는 것은 기록이 아니라 기억이다. 사람이 가진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이라, 기록이라는 형태를 빌어 기억을 보충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늦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피로'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순간에도 피로는, 중국을 흐르는 두 강의 강물을 그 어떤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황해처럼, 나에게 밀려들고 있다. 


어떻게 써야할까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여행이 아닌 탓에 여행기라 이름 붙일 수도 없고 정식 비즈니스 트립도 아니기에 으레 적기 마련인 보고서 형식이 될 수도 없다. 고민을 하여도 내 글이 쉬이 목적에 맞게 바뀔 것같지는 않으니, 내가 느낀 감정이나 생각 등을 간략히 적어 내려가는 것으로 이 하얗고 넓은 여백에 흔적이라도 남기고 한다. 



역시 오늘도 무리일까


현지 시간으로 1시 반, 한국 시간으로는 2시 반이 지나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연희동 내 방 책장에 쌓이는 먼지처럼 나를 괴롭힌다. 그래도 이렇게 자리에 앉은 만큼 강하게 남아 있는 세 가지 생각은 우선 적어놓아야겠다. 


첫 번째, 여기 사람이 있다. 

중국에, 그리고 샹하이에 사람이 있다. 사람이 있다는 정도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있다. 세계 인구의 4분 1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중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하루에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손가락 발가락을 다 동원해서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가족이 있고, 자신의 꿈이 있고 삶이 있다. 사람으로 시작하지만 각자가 다른 모습을 갖고 있는 가족과 그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가 있다. 어미의 품에 꼭 안긴 아기도 있고, 젊은 신혼부부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나이가 들어 자신이 곧 돌아가게 될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노인도 있고 자신보다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도 그 건물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기에 더욱 큰 꿈을 품을 수 있는 청년도 있다. 환한 웃음을 품고 있는 사람도 있고, 수심에 가득찬 모습으로 독해 보이는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고뇌를 희석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운동화를 털어주는 사람도 있고 번듯한 차에 앉아 막힌 도로 위에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도 있다. 


둘째, 매력. 

익숙하지 않은 언어이기도 하거니와 그 말의 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한 중국어를 듣고, 기름에 푹 담겨 있는 야채와 고기가 잔뜩 들어간 중국 음식을 먹고, 세상의 모든 물건을 다 모아 놓은 듯 해보이는 시장에 가서 중국의 공산품을 사서 보니 여기 매력 있다. 굳이 다른 표현을 쓰자면, 중국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뉴스로 접하거나 책으로 접한 중국과는 다른 느낌이다. 마치 고전을 읽는 느낌이다. 100페이지가 넘어가기 전까지 결코 자신이 재밌는 책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 고전과 같다. 중국은 나라 밖에서 보기에는 덩치가 크고 욕심 많은 나라처럼 보였지만 중국에 와서 보니 여기, 꽤 재밌어 보인다. 그리고 찾아보면 더 재밌는 일들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중국의 한 도시이지만, 중국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고 민족이 있고 문화가 있다. 그것들이 궁금해진다. 같은 중국이라 할지라도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곳이 있다고 하니, 그곳은 또 어떨까. 그곳에서는 또 어떤 사람들이 살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고 있을까. 아마도 이 '중국'이라는 고전은 한 권은 아닌 듯 하다. 중국이라는 책'들'을 하나씩 더 읽어내려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셋째, 공장 아닌 시장, 시장 아닌 공장

중국의 과거 명성은, 세계의 공장이었다. 값싼 인건비와 대규모 설비투자가 가능한 지리적 조건 등에 힘 입어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그 지위를 굳혀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공장임과 동시에 시장이다. 시장과 공장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서구 국가들의 위기를 타개해보려는 일종의 중국 소비 진작 전략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중국이 가진 구매력이 어디 까지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구매력과 생산력이 균형을 이루었을 때 그것이 발생시키는 시너지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경제학에서는 생산과 소비를 나누어 설명한다. 생산자의 역할을 기업이 하고 소비자의 역할을 가계가 맡아 담당한다. 하지만 이것이 미시를 넘어 거시, 아니 거시와 미시 경제학의 기준을 나누지 않고 단지 국가 내 생산과 구매의 접접을 구하고자 하는 시도를 한다면 그 대상은 반드시 중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생산력의 하락과 구매력의 상승이 맞물리는 시점 이후 발생하는 특이점과 문제점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중국, 여기가 답이다. 

빈부격차가 심해 여전히 누군가는 생산자로, 아니 오히려 하층계급 노동자로 남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능력 덕인지 부모의 능력 덕인지 태어나 단 한 번도 '생산적'인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동시에 살고 있는 중국. 하지만 노동자가 노동의 가치를 통해 자신의 구매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나라. 여기가 중국이 아닐까. 




공식적인 일정을 시작한 지 3일이 지난 시점이지만, 하루하루 일정 소화와 사람들과의 만남 등으로 하루가 일주일 아니 한달과 같이 느껴지는 매일이다. 그러는 사이에서도 중국은 나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매력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내가 어떤 것을 여기서 얻어 갈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내가 어떤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지 또한 얼핏얼핏 슬쩍슬쩍 보여주기도 한다. 


앞으로의 일정이 다시 궁금해진다. 그리고 사람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