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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봉의 사회학

 '셀카봉의 사회학' 2014.9.11.

'셀카봉'이라는 신기하게 생긴 'IT(?)' 제품이 인기란다. 내 기억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어느 중국인 관광객이 자신의 휴대전화인지 디카인지를 기다란 봉에 테이프나 줄로 얼기설기 묶어 자신의 모습을 찍던 사진을 조롱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셀카봉이 없었던 것이 틀림이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셀카봉이 '발명'되었고 사람들은 셀카봉의 등장에 신기함과 편리함으로 열광했다. 다행히 이름은 우리나라에서 '셀카봉'으로 통용되고 있는 듯 하다. '셀피바(selfie bar)'가 아닌 것이 이만저만 다행이 아니다. 


가만히 보고 생각해 보고 이리저리 비꼬아 보니 셀카봉의 등장은 다른 의미로 새롭게 다가온다. EBS 였던가 사람의 심리에 대한 다큐멘터리 중에서 한 가지 실험이 전개된다. 서구 문화권에 사는 사람과 동양 문화권에 사는 사람에게 관광지에서 누군가의 사진을 찍으라고 했을 때, 어떤 구도로 사람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실험이었다. 통계적인 의미를 갖는 수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서구 문화권의 사람들은 피사체인 사람이 중심이긴 하지만 그 배경을 되도록 많이 담고자 했고 동양문화권의 사람들은 피사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도록 사진을 찍었다. 이때 내가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내린 해석은 이랬다. '서구 문화권은 사람과 그 사람을 둘러싼 주변을 같이 해석하려 하는구나.' 단편적 생각이었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불고 있는 셀카봉의 의미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 우리나라는 '일단 잘먹고 잘살자'가 거의 모든 집안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가훈이자 정책 방향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결국 중요해지는 것은 '나'와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조직 즉, 가족이 중심이 된다. 상황이 변한다 해도 나와 가족은 변치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해돋이를 보러 가도, 휴가를 가도 배경은 사소한 의미를 지니고 나와 가족들이 항상 사진의 중심에 서 있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어느 정도 잘먹고 잘사니 좀 주변도 둘러보자'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혼자 잘 먹고 잘살기 보다 가능하면 내 주변의 사람들이 같이 잘먹고 잘살았으면 싶은 생각이 든다. 기부를 하기도 하고 '사회활동'도 꾸준히 할 수 있게 된다. 이때는 사진을 찍더라도 (여전히 나와 가족이 중심이긴 하지만) 주변 환경에 조금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게 된다. 다시 말해, 내 얼굴만 대빵 크게 나오는 셀카가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과 넓은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셀카봉이 등장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의 사회 변화에 따른 '셀카봉의 사회학'이 한 가설이라면, 이런 가설도 가능하다. (조금 슬프지만) 혼자 (해외) 여행을 가거나 등산 등을 가게 되면 자신의 전신 사진을 찍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누군가가 찍어주지 않으면 온통 자신의 얼굴이 사진의 반이상을 차지하는 '셀카'가 여행지 사진의 대부분이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신은 등장하지 않는 건물과 풍경 사진만이 남는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감히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자신의 소중한(!) 카메라나 휴대전화를 맡기며 말을 걸어야 한다. "사진 좀 찍어주시겠습니까?" 좀도둑이 많지 않은 나라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에 가면 함부러 카메라를 맡겼다간 그대로 소유권이 이전되는 수가 있어 불안하기 짝이없다. 찍어주니 고맙기도 하지만 카메라나 폰을 다시 돌려받을 때 훔쳐가주지 않아 고마울 때도 있다. 셀카봉은 이런 불안함과 수고스러움을 단번에 해소시켜준다. 길쭉한 팔을 뻗어 내가 나를 찍으면 된다. 셀카봉을 가리는 수고는 필요하겠지만 그쯤이야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근데, 사실 이거 좀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여행은 자신이 만나지 못한 세계나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하기 위해 떠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셀카봉의 등장은 결국 자신에게 다시 집중하도록 만듦으로써 매우 지나치게 '독립적'인 인간을 양산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는 수고로움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사라졌다. 결국 이 가설은, 우리 시대가 가진 '이기주의'의 또 다른 양상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한다.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주변을 둘러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는 '만인이기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두 가설이 전혀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나는 사회를 둘러보고자 하는 사람의 욕구의 반영이라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이기주의 표현의 또 다른 형태라는 것. 아마 둘 중 하나이거나 또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셀카봉을 가만히 보면서 느끼는 것은,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은 단지 필요에 의해서 만든다기 보다 그 사회의 변화에 맞게 '반영-수용'의 반복은 아닐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