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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분 사회

"양분(兩分) 사회"  2014.10.01.

담배값이 인상된다는 소식을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원하지 않은 정보라도 내 귀와 내 눈에 들어오는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그 출처를 구한다는 것은 호수에 빠진 도끼를 구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쨋든 담배값이 내년부터 오른단다.


담배를 피고 있는 본인은 담배값 인상에 매우 민감하지 않게 받아들였다. '오르라면 오르라지.'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일본에 있을 때 담배값은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약 한 값을 4500원에 사보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2009년 당시의 나의 경제생활을 비교하면 하나도 나아진 것은 없었지만 담배는 여전히 피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꽤나 나의 편한 친구가 된 듯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담배값 인상'에 대해서 한 가지 거부감이 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앞서 적었다 시피 나는 담배를 몸에는 별로 좋지 않지만 정신 건강에는 꽤나 좋은 영향을 주는 '친구'로 생각한다. 실제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도 '돈이 든다'는 것은 담배와 유사하다. 밥을 한 끼를 먹든, 커피를 한 잔을 마시든 아니면 그냥 시간을 보내든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돈이 든다. 맨큐의 경제학에 나오지 않던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쨌든 친구와의 우정을 유지하는 목적으로 담배를 피는 나에게 '담배값 인상'을 통해 흡연율을 줄이겠다 라는 이야기는 '그 친구와 헤어져'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질이 나쁜 친구이니 사귀지 말라는 이야기는 여전히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유행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본인이 어릴 때 하던 이야기와는 다른게 지금은 친구의 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질이 중요해졌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사귀지 말아야 할 친구'는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사귀지 말아야 할 친구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담배값 인상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그 의견을 직접 물어보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여러 연구 조사 결과와 용역 결과를 통해 담배가 얼마나 나쁜 기호식품이며 담배값 인상을 하게 되면 몇 퍼센트의 사람이 담배를 끊을 것인가 하는 것이 정부의 '주된' 발표였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시켜버렸다.


나는 내가 사귀고 싶은 친구를 계속 사귈 것이다. 그것에 비용이 얼마나 들든 말이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내가 사귀고 싶은 친구를 누군가, 단지 내게 나쁠 수 있다, 아니 실제로 나쁘다고 해서 헤어질 것을 종용한다면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절교 아니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다. 담배 역시 그렇다. 담배를 끊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사실 '증세'의 수단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그 목적을 뻔뻔히도 숨기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증세야 어떻든.


나는 정부 관계자라는 사람이 담배를 피는 사람을 마치 '어린 아이'를 대하듯, 또는 '미성숙자'를 대하듯 하는 태도 자체가 싫다. 너희는 담배 끊을 의지가 없어보이니, 내가 가격을 높여 너희들을 담배로부터 해방시켜주겠다니.. 담배를 피든 피지 않든 이것은 엄연히 개인의 자유에 포함된다. 자유의 범위에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도 담배값 인상을 통한 흡연자의 금연 유도 이것은 '어른(꼰대)-아이(미성숙자)'의 프레임에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듯 하다.


'양분의 사회'라고 제목을 적은 것은, 담배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자기와 다른 사람은 '틀린' 것이라 생각하게 만들고 훈육해야 하고, 또 '선동' 당했기에 교화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분의 사회. 끊임없이 양분하다 보면 마치 마술사가 신체 분리 마술을 시전하는 것처럼 자기 중심을 잡지 못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자신의 몸이 흩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리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자유가 죽어가는 사회에서 양분의 사회는 자유에게 비웃음을 짓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