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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의 단상들

10월 16일의 단상들 2014.10.16,


오랜만에 돌아온 # 시리즈 


# 1

요즘 부쩍 노래를 들을 일이 많아져서 최신곡들 위주로 귀를 빌려주고 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현상이랄까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작곡의 신지평인지도 모르겠으나 전혀 성격이 달라보이는 노래 혹은 느낌이 다른 노래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붙여 놓는다. 코드 진행 상 어색하지 않은지는 모르겠으나 '기승전결' 따위는 무하고 A-B-A-B 따위의 반복에 후크까지 얹어 놓으니 마치 경음악 듣는 듯 하다. 이런 것도 문화 현상일까? 


# 2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은 사형집행인 밖에 없다. 아니, 오히려 타인의 존재가 완전히 긍정되어야만 사형집행인은 월급을 받고 살지 모르겠다.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사형집행인도 아니면서 타인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려는 이상한 부류의 사람들이 종종 눈에 들어온단 말이지. 이런 사람에게 한 가지 당부해 주고 싶은 마음은, 누군가 타인의 존재를 부정할 때 존재를 부정당한 사람은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으니 조심하시길. 지렁이가 꿈틀하면 용이 될지 모르잖아요. 


# 3

코감기가 심해져 신촌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갔다. 환자는 나를 포함해 세 명이 있었고 그 중 한 명은 처방전을 받고 나가려던 참이다. 내가 처음 왔다는 걸 알리자, 흰 종이에 형광팬칠한 부분을 적으란다. 카운터에 서서 하나 하나 적어 내려가다 보니 카운터 밑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연인이 싸우는 목소리다. 티비 소리인가 해서 보니 티비는 내 뒤, 즉 입구 위쪽에 무음으로 켜져 있다. 그럼 이 소리는? 귀신의 소리? 그럴리 없었다. 간호사가 휴대전화로 재생해놓은 동영상. 다른 간호사가 묻기에 친절히 제목까지 말해준다.'연애의 발견'. 재밌나 보다. 근무시간에 폰으로 볼만큼 재밌나 보다. 연애의 발견하기 전에 직업적 사명감의 발견이나, 성실함의 발견을 먼저 했으면 좋겠다. 근데, 연애라는 것 발견할 수는 있는건가? 


# 4 

다시 한 번 길게 적을 일이 있었으면 정말 좋을 듯 한 생각 하나. 유럽에 갔을 때 특히 독일에 갔을 때 살짝쿵 충격을 받은 것은 사람들이 횡단보도 신호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정지 신호를  잘 지키는 반면, 사람은 횡단보도의 신호를 지키기도 하고 지키지 않기도 하고 아주 '자율'적으로 길을 건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운전자들은 크게 반응이 없다. 알아서 멈춘다. 길을 걷다보면 종종 무단횡단 장면을 발견하고 어느 샌가 나 역시도 독일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에 가서도 심심찮게 무단횡단을 했지만 죄책감은 크게 들지 않았다. 횡단보도의 존재는 그곳에서 건너라는 약속일 수 있다. '여기서 건너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다'라는 말은 다르게 이야기 하면 '다른 곳에서 건너면 위험하다.'는 것일 터인데,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운전자들은 그다지 나에게 위험을 가할 것 같지 않았다. 횡단보도가 있지만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안전하게 운전하고 자동차와 보행자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한국처럼 횡단보도가 있어도 신호를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사고가 언제나 사망률 1위에 랭크되는 영광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좋을 일인지 궁금해졌다. 쉽게 이야기해서 제도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논의랄까. 


# 5

작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책을 다 읽었다. 2004년에 나온 책을 2014년에 읽었다. 20살 때 나온 책을 30살에 읽었다. 10년 사이에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추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라고 적으면 김연수 작가에게 좀 미안할 듯 하고 그렇다고 '나도 김연수 정도는 적을 수 있겠다', 라고 적는다면 오만방자의 바벨탑을 짓는 듯 하니. 그냥 읽었다 이정도로. 하지만 읽으면서 작가 김연수의 감성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고, 소설가든 시인이든 디테일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결국은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 기억력은 사실을 단편적으로 외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의미를 사물과 시간과 사람에 담는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자연스레 기억되는 것, 그것이 필요한 직업은 작가 그리고 정치인일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 느낌은 안타까움인데, 나는 어릴 적부터 이상하게 '시'와 거리가 멀다. 왜 시와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을까. 집의 책장에 수둑하게 꽂혀 있는 시집에는 손이 가지 않았고 두껍고 무거운 책들에게만 관심이 갔던 것은 내 몸무게의 탓이었을까. 시를 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반성과 함께 해보았던 계기가 된다. 


# 6

또 뭐 적으려고 했는데 한참 적다보니 기억이 안난다. 아, 아마도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생각만 했던 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만큼 재미있고, 쓰다보면 또 그내용이 첨가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곰돌이 푸우가 공룡이 되고 공룡이 도다리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남겨볼 일이다. 요즘처럼 '글감'이 밀린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