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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뿔테 안경을 벗어버리는 순간” - 권현우 2012.02.01.

  뿔테 안경을 벗어버리는 순간 우리 여자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교복을 입고 뿔테 안경을 끼고 공부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좋았다. 뿔테 안경을 끼면 나도 여자 연예인들이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안경을 끼는 것처럼 내 초췌한 모습을 가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뿔테 안경을 쓰고서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 뿔테 안경과 함께 아무런 색깔도 들어가 있지 않은 검은 생머리. 


나는 내가 사춘기를 지나 여자가 되면 머리에는 자연스럽게 컬이 생기고 얼굴에는 윤기가 흐르고, 눈에는 빛이 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항상 내 머리는 아래로만 뻗어 내려 갔고, 앞머리는 내 눈썹 위에서 미용사의 손에 의해서 잘려나갔으며, 내 얼굴에는 내 얼굴의 반을 가리는 검은 뿔테 안경이 있었다. 아, 뿔테는 다른 색의 뿔테도 아닌, 항상 검은 색의 뿔테였다. 바로 하루 동안 길을 걷거나 지하철을 타게 되면 수십 번을 보게 되는 그 검은 뿔테 안경.
 

  뿔테 안경을 벗어버리는 순간이 나에게도 올 줄 알았다. 영화에서처럼 내가 뿔테 안경을 벗어버리고 옷을 화사하게 입고 화장을 하고 나간다면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멍하니 있거나 내가 길을 지나가면 내 뒷모습에게까지 그들이 눈길을 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가 뿔테 안경을 벗어버린 모습이 '아름답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내가 뿔테 안경을 벗고 내 스스로를 꾸밀 수 있는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했고, 나는 언제나 그 뿔테 안경을 끼고 있는 모습이 익숙하고 또 편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뿔테 안경을 벗어버리는 순간은 내가 나답지 않은,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상징을 스스로 벗어버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뿔테 안경을 벗어버리는 순간, 나는 그 순간이 올 줄 알았지만 그 순간은 오지 않았다. 나는 해야 할 공부가 너무나 많았고, 나는 나의 외모를 꾸미기보다 내 머리 속과 마음을 키우기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내 공부를 마치게 되는 순간이 오면 나도 뿔테 안경을 벗고 당당히 내 얼굴을 드러내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부터 쓴 것이 뿔테 안경이 아닌 한에서야 내가 이 안경을 벗어버리는 것이 어려운 일은 전혀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뿔테 안경을 끼고 있는 모습에 안정감을 느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에 들어왔건만, 그리고 사회에 나갔건만 내 얼굴의 뿔테 안경은 벗어버리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뿔테 안경을 벗어버리는 순간이 내 스스로를 더 사랑하는 순간이리라. 눈이 좋지 않아 쓰는 안경이라면 내 얼굴을 가리는 안경이 아니라 내가 더 예뻐 보일 수 있는 안경을 써 보리라. 나는 그 검은 사각의 틀에서 내 모습을 숨김으로 인해 안정감을 얻을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모습을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하리라. 나는 나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리라.


  그 검은 틀 안에서 내 모습을 감추지는 않으리라. 그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내 아름다운 눈을 더욱 드러내는 방법이리라.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