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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30. 09:37 내 생각

국제시장과 천 만 관객 2015.1.30.


얼마 전 영화 '국제시장'을 보았다.

천 만 관객을 넘었다고 해서 본 것은 아니다.

직접 보니 딱히 '문제적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문제적 영화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많았다.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에 대한 리뷰를 적으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한국 영화 시장에서 '천 만'이라는, 일종의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것에 대해서는 다소나마 비판할 점이 없지 않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천 만 관객을 넘었지만 '국제시장'과 같은 어리둥절함을 느끼게 한 영화가 몇 편 있다.

대표적으로 '7번 방의 선물'이 그것이다. '7번 방의 선물'은 '국제시장'과는 다르게 판타지적 요소(열기구를 타고 담장을 넘는다는 설정 등)이 들어가 있었다는 점만이 차별성을 가지고 있을 뿐, 전체적인 느낌은 '노골적'이다 라는 인상이었다.

억울하게 성폭행 및 살인죄를 뒤집어 쓴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제시장'에서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소재를 통해 흥남 철수 떄 헤어진 여동생을 찾는 장면은 영화라는 형태가 아니어도 누구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소재였다.

국제시장도 마찬가지고, 7번 방의 선물도 마찬가지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매우 있을 법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그 내용에서 감정을 자극할 만한 소재를 적나라하게 넣어 놓고 있다.

7번 방의 선물에서 드러나는 경찰 권력으로부터의 피해자 프레임은, 마지막 장면인 모의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일종의 해소감을 준다. 하지만 국제시장은 그런 해소감은 전혀 없이, 당신 옆에 그런 사람이 살아있다 라는 인상을 남기며, 윗 세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질 것을 넌지시 밀어넣고 있다. 이러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7번 방이나 국제시장은, 야한 장면 하나 없이 너무 야하다.

야하다는 표현은,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에서 인용한 표현이다. 쉽게 말해 드러내는 것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드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누드는 야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젊은 남녀의 육체는 야하다.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이, 순간적인 판단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누드보다 비키니, 비키니보다 스키니진이나 밀착하는 드레스를 일상 곁에 두고 살고 있다. 그런 것들이 야하지 않기에 가까이 두고 서도 배척하지 않는 것은, 분명 야하지만 자신의 상상 및 개입 여지가 남아 있다는 인상이 남아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7번방의 선물과 국제시장은, '울어라'라고 하는 솔직한 감정에 너무나 노골적으로 그리고 야하게 다가왔다. 그런 장면들이 넘쳐나는 것이 한국 영화 산업에 어떤 발전을 가져오고 또 앞으로의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지만, 결국 한국 영화의 문법은 '야하거나 혹은 노골적'이어야 한다는 흥행 문법을 완성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안 감독의 '색, 계'를 보면 한국 영화에서는 매우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남자주인공의 고환이나 여자주인공의 음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러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 조정래식의 '야하다'는 느낌이 들기보다, 그 두 사람의 감정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하고 있다. 배우들의 몸에 집중하기 보다 성행위를 하고 있는 배우들의 표정과 배경 음악 그리고 긴장감을 잘 녹여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색, 계'의 베드신은 야하다기 보다 창의적이라 할 수 있다.

영화 평론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본인은, 전문적인 비평보다는 이러한 몇몇 장면에서 드러나는 한국 영화의 특징에 대해서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영화들에 드러나는 '야함'이 사람의 감정이 가지는 복합성을 훼손하는 것은 분명하다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마 앞으로도 수많은 한국 영화들은, 사람의 감정 중 그것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장면들로 가득 채워 질 것이다. 이런 영화들이 넘쳐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카타르시스(배설)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천 만 관객'이라는 표현이 가지는 위상이 바람 부는 날 떨어져 발에 밟히는 낙엽처럼 흔하디 흔한 표현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좋은 영화를 즐겨보는 본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크린 쿼터 폐지에 찬성하는 쪽으로 무게감이 실리는 것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에, 되도록 이면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여 주었으면 하는 일개 관객의 간절한 바람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p.s 영화가 시작하자마자부터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혀를 '쯧쯧쯧쯧쯧쯧쯧쯧' 차시던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은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모른다.'고 크게 말씀하시기도 하고, '어머!' 하시며 이산가족 상봉 장면에서 박수를 혼자 크게 치시던 할머니가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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