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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봉사활동 후기

성신의 해외봉사단 봉사 후기 - 2

아침식사 시간이 되어 아침식사를 하러 갔고, 생각보다 부실한 아침에, 매일 아침이 이 정도의 식사라면 어떻게 일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커피 가루 가득한 커피를 한잔 했다. 다시 플로라 호텔에서 잘 수 있는 시간은 없기 때문에 짐을 다시 싸고 발리의 햇살을 듬뿍 받으며 시내로 이동했다.

간밤의 환전을 하지 못한 탓에 느꼈던 배고픔 때문이었을까, 환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우리는 우선적인 일정을 환전으로 잡았다. 그다지 큰 은행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은행에서 달러를 루피아로 바꿨고, 나는 50달러를 45만 루피아로 환전했다. 우리나라 돈과의 비율로 따져보면 1.32의 비율로 바꾸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의 단위도 꽤 크지만, 물가도 생각보다 싸지는 않았다. 세계적인 관광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물가는 싼 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가보았던 라오스와 비교해 보았을 때 보다는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비싼 물가의 인도네시아 발리였다. 

이제는 우리는 우리가 일을 할 곳, 북부의 싱아라자로 이동을 하기 위해 다시 차에 몸을 실었다. 3시간 동안 좁은 차에 타 이동을 할 것을 생각하니 꽤 지루한 시간이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3시간 동안 지루함을 느낄 겨를 없이, 사실은 발리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현지 운전 기사님이 중앙선을 경적을 울리며 자주 넘나들었던 것이 잠을 푹 자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었기는 하지만, 즐겁게 이동할 수 있었다. 높은 산을 꽤 지나왔는데, 산이 생각보다 높아서 차를 타고 올라가고 있노라면 고산지대에 들어온 마냥 귀에 압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가는 길에 한국어로 적혀 있는 간판들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한국 관광객이 꽤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1시간 반 가량이 흘렀을까. 산의 언덕에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왜 사람들이 주차를 하고 있을까 하고 그들이 향하는 곳을 보았더니 그 곳에는 가드 레일에 앉아서 사람들이 준 바나나를 맛있게 먹고 있는 원숭이들이 있었다. 공격적으로 보이지도, 온순해 보이지도 않는 원숭이들이 사람들-인종에 관계 없이-이 사진을 찍든 말든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들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에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원숭이를 보는 것이, 동물원에서 보았던 적이 있던 없든, 다윈에 처음으로 갈라파고스 섬에서 핀치 새를 보면서 진화론을 떠올렸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했다. 그토록 가까이서 원숭이를 본 적은 없었지만 우리들은 아무런 경계심을 품지 않고, 원숭이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손을 잡거나 하였다. 원숭이들은 우리가 자신들과는 다른 동물이라는 사실을 알까.

다시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우리가 3일 동안을 자게 될 발리 타만호텔에 도착했다. 우리가 발리에서 머물렀던 호텔의 대부분은 바닷가에 접해 있었고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건물의 층수가 2층 이상을 넘지 않았다. 발리 타만도 그런 호텔 중의 하나였고, 전날의 플로라호텔과 비교했을 때, 넓이나 시설면에서 결코 뒤떨어지는 호텔이 아니었다.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랬다.’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릴 만큼의 시설을 가지고 있었다. 플로라 호텔에서 하룻밤을 머무를 때에도 이 정도 시설의 호텔에서 계속 지내게 된다면,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발리 타만에 와서 더 나음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묵었던 퓨리 살롱에서 최고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발리 타만 호텔은 바닷가에 접하고 있었지만, 바닷가에 가까이 다가가있는 모양을 갖고 있지는 않았고, 파도소리는 들을 만 했지만 바닷가의 수질이나 해변의 모래들은 그다지 깨끗한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부의 시설은 참으로 좋았다.

 나는 단원 중 최고령자인 김영한 군과 지내게 되었는데, 우연히도 총 3단계의 방 중에서 그랜드 스위트 룸의 아래인 스위트 룸에서 지내게 되었다. 2인을 위한 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넓고 가까운 식당, 그리고 수영장 그리고 언제나 하늘로 눈을 향하면 밝게 빛나고 있는 하늘이 인상적인 호텔이었다. 호텔에서 간단히 짐을 풀고, 오후에 처음 일을 하는 장소에 가서 첫 일을 하려 했던 일정을 바꿔서 오후에는 호텔 근처에 있는 사원과 천연 온천에 가는 것으로 그날 하루를 보냈다.

가까이 있었던 사원은 이름을 물어보지 않아, 정확한 명칭을 적을 수 없다. 지금 생각하면 크게 후회하는 것 중의 하나인데,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적는 것을 습관으로 여긴지가 5년이 넘어가는데, 발리에서는 수첩조차 들고 가지 않고, 심지어 호텔에 돌아와서도 일기를 적지 않았다는 것이 매우 큰 후회로 남는다. 궁금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물어보지 않았고,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 머리 속에는 한 장의 사진처럼, 그 모습만 남아 있는 것이다. 여행지에 가기 전에 그 곳에 대한 조사를 확실히 하지 않는다면 보아도 보는 것이 아니고, 느낄 수도, 혹 느끼더라도 그 감흥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속되지 않는 것을 아는 본인이었지만, 왜 발리에서는 그러지 못했는가 하는 생각을. ‘휴양지 신드롬이라는 이름으로 남기려 한다. ‘놀러 갔으니까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버리는 좋지 않은 신드롬이다. 글을 적거나 생각을 하는 것은 노는 것에 대한 상반된 의미를 가진 것이라는, 제대로 놀 줄도 모르고 공부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의 가진 증후군이랄까. 설명이 길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첫날은 휴양지 신드롬에 취해서 내 눈으로 보기 보다 사진기의 렌즈로 보기를 갈망했고, 그 결과 나는 지금 한국에 돌아와서 그 당시의 장면들을 사진으로 밖에 추억할 수 밖에 없다. 사원을 나온 뒤, 학생복지처 이미숙 장학주임 선생님(이하 선생님)께서 음료수를 한 캔씩 사줄 테니 마시라고 하셨고, 한국에서도 마실 수 있는 포카리 스웨트나 코카 콜라를 선택하는 다른 단원들을 지켜보면서, 한국에서도 마실 수 있는 것은 내 입에는 익숙해서 마시기 편하겠지만, 인도네시아 발리에 온 만큼 여기서만 마실 수 있는 것을 마시자 라는 생각에 코끼리가 그려져 있고, 인도네시아어 이지만 대부부분의 인도네시아인이 글자로 쓰고 있지 않은 인도네시어아가 적혀 있는 핑크색의 음료를 마셨다. 딸기맛이 나는 물이랄까 그런 느낌의 음료수였다. 인도네시아에 갔으니, 인도네시아의 음식이나 음료를 반드시 마셔야 한다는 것이 여행자의 의무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움에 도전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라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는 요즘 세상에서, 간단한 음료수 한 잔에서부터 도전하는 용기, 우리와 다른,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마시는 것을 공유할 것이라는 의지를 가지는 것은 10년 뒤, 20년 뒤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지는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사원을 나온 뒤, 호텔로 돌아오기 전에 노천 온천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노천 온천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상상했던 모습을 깔끔한 풍경에 잘 정리 되어 있는 입구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온천의 이미지를 생각했지만, 밴을 타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알자 마자, 그리고 나무들의 밀도가 크게 변하지 않고, 개울에서 흐르는 물이 썩 맑지 않다는 것을 보고 나서,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라는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황토 빛을 띄고 있는 물 안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수영을 하거나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런 물을 보고 들어가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땀이 많이 나 있는 상태였고 옷을 갈아입고 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밖에 앉아서 다른 단원들 사진을 찍어주었다. 옷을 갈아 입은 단원들은 하나 둘씩 그 온천으로 들어갔고, 그들의 몸은 물 속에 들어가지 않은 부분만 보였다. 물의 농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실히 알려주었다. 남자 단원들은 수영복 바지만을 입은 채 자유롭게 수영을 하고 있었고, 여자 단원들은 자신들의 몸을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몸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무엇인가를 두르고 있거나 입고 있었고, 그리고 또 뭉쳐 있었다. 비키니를 입고도 당당히 걸어 다니는, 노천 온천의 유럽풍의 외모를 가진 여자들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그 때의 단상이지만, 한국의 여성은 유교적인 사고 관념의 잔영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육체에 대한 자신감의 기준을 다른 여성의 육체와 비교하는 과정에서 선정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한국 남자도 그렇지만, ‘한국 사회라는 것이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 구조로 이뤄져 있는 탓에 남자보다는 여자가 훨씬 비교를 통한 자신감 확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하다.

   온천에 들어가기 전의 기대와는 다르게, 온천의 물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던지 들어갔던 단원들의 몇몇은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들어가지 않았던 선택이 현명한 선택이라 하였지만, 건강에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또 그 곳에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과 들어가 본 사람 간의 차이는 꽤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글을 빌어서,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줬던, 노천 온천에 들어갔던 사람에게 박수를.

 

 

다시 호텔로 돌아 온 뒤, 싱아라자에 온 김에 호텔 식사를 하기 보다 주변에 있는 해산물 요리집을 가는 것으로 이야기 되어 다시 차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계속차를 타고 이동했다는 내용을 적을 수 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리에 우리의 숙소가 있었고, 심지어 집을 지으러 가는 곳에 가기 위해서도 차를 타고 이동하는 수고를 보태야 했다. 2009 1월에 내가 몸 담았던 Youth CLIP이라는 국제교류시민단체에서 봉사단을 꾸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근교의 한 마을에 초등학교의 도서관 건설과 아동 대상 교육봉사를 하기 위해 갔다 온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우리 단원들이 함께 잠자고 식사하였다. ‘홈 스테이라는 이름 하에서 이뤄진 것이었지만, 잠시 머무르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 우리들을 위해서 매일 많은 양의 밥을 하고, 같이 새벽에 일어나 모닥불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셔주었던 주인집 내외를 잊을 수 없다. ‘는 그 마을에 들어올 때 한번 타고, 그 마을을 나갈 때 다시 한번, 이 두 번이 라오스에서의 차를 탄 기억의 전부였지만, 발리에서는 를 빼놓고는 이동 자체가 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다녔다. 봉사의 성격이 달랐고, 주최하는 측이 대학생 단체냐 학교 법인이냐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1년이 훨씬 지나 2년이라는 시간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라오스라는 나라가 나의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그들과 실제로 지냈던 시간과 그들과의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 역시 매우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은 아닐까. 발리에서의 숙소에 대해서 비판할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각자의 방에 갈라져 일하는 곳과 멀어진 숙소, 그리고 밤 마다 외쳐대던 맥도날드슈퍼는 진정한 거리를 찾는 데는 걸림돌이지 않을까.

차를 타고, 해산물 요리 레스토랑으로 갔다. 해산물 요리라고는 했지만 발리에서 자주 먹게 되는 뷔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실망하는 기색이 돌았고, 식당의 주인인 듯한 여자는 우리에게 음식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었다. 큰 기대를 하고 왔었던 것일까. 조용히 자신들이 시킨 음료수를 마시고, 먹고 마시고, 양이 부족한 사람들은 더 가져다 먹고를 반복하던 중,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렸다. 중년의 남자 한 명은 전자 키보드를 치고 있었고, 내 또래 즈음 되었을까 하얀색 원피스에 꽃이 그려져 있는 옷을 입은 여자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음식은 그저 그랬지만 노래가 아주 마음에 들어 신나게 노래를 듣고 실컷 박수는 쳐주었지만 팁은 주지 못하고 와버렸다. 팁을 주지 못한 것이 호텔에 돌아오고 나서야 생각이 난 것은 나도 술 한 잔에 잠시 이성을 놓쳤던 듯싶다. 노래를 부르면서 치마를 왼손으로 잡고 살랑살랑거리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노래 부르던 위치가 화장실 바로 옆이라, 왼쪽에서 키보드를 치고 있는 남자의 왼쪽에 ‘TOILET’라고 적힌 팻말이 보여서 화장실에서 나는 암모니아 향을 마시면 집중력에 좋다는데, 그래서 노래를 잘할까 생각하면서 혼자서 키득거렸다. 원래 음식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나였기에, 음식은 입에 맞지는 않아도 먹을 만 했고, ‘이라는 뜻을 가진 인도네시아 맥주 빈탕을 큰 병으로 한잔 거나하게 마셨기 때문에 매우 기분 좋게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와서 수영장이 우리에게 자신의 원하지 않는 평온을 깨 달라고 이야기 해 우리는 샤워조차 하지 않고, 옷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빠졌다. 깊은 곳은 내가 서도 머리 위로 20센티 정도가 남아 있을 정도였고 얕은 곳은 내 가슴까지의 깊이였다. 첫날 플로라 호텔에서는 물에서 소독약 냄새가 꽤 심하게 났는데, 발리 타만 호텔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좋았고, 물도 맑았다. 수영은 정식으로 배워 본 적이 없었기에 정확한 자세를 취할 수는 나였지만, 그래도 중학교 시절 스킨스쿠바를 했던 기억에 힘 입어 즐겁게 수영을 하면서 놀았다. 여자 단원들에게 물맛을 알게 하느라, 다소 악역이 되었던 것이 나만 즐거웠던 것은 아닌가 하는, 지금에 와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미안.

수영을 마치고 난 뒤에도 우리들의 술자리는 계속 되었지만, 남자들끼리만 즐겁게 즐겁게 아주 즐겁게 마셨기 때문에 그렇게 적을 거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