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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노인저금통

"젊은이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어서 숨으세요." 


 태산이 용섭 노인에게 소리쳤다. 

 태산의 직업은 대장장이. 지금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태산의 방식으로 칼이나 낫을 만들지 않는다. 모든 철제 농기구나 조리 도구들은 3D 프린터로 만들어 사람은 그저 그것이 제대로 만들어지는지 지켜만 볼 뿐인 사회이다. 지켜볼 필요도 없지만, 심심한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멍하니 지켜만 보는 것으로도 월급을 받아갔다. 

 태산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선택 받은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금속활자를 주조하고, 그것을 조판하는 일을 지켜온 사람이었지만, 자신에 일에 대한 유전적 정보를 모두 팔아버린 뒤 자신의 아들에게는 대장장이가 되도록 해 경험을 유전자에 남겨 팔도록 하려했다. 지금 남아있지 않은 경험을 한 사람의 유전정보는 비싸게 팔렸기 때문이다. 금속활자나 대장장이와 같은 직업적인 유전정보 말고도 솔직한 사람의 심성이나 도둑질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들의 유전정보도 비싸게 팔렸다. 태산의 아버지의 큰 그림과는 다르게 태산의 아버지는 태산이 유전정보를 팔기 전에 실수로 금속활자의 뒷모서리에 찔려 파상풍으로 숨을 거뒀다. 이후 태산은 대장장이 일에 소질과 풍미를 느껴, 그것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킬 필요를 느껴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용섭 노인은, 이제 갓 60이 넘은 노인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2025년에는 60살이면 청년이라 여겨졌다. 실제로 그들은 청년다웠다. 좋게 말하면 건강했고,나쁘게 말하면 천방지축이었다. 60살만 그런 것이 아니라 70살, 80살도 그랬다. 심지어 죽기 직전의 사람도 청년답게 청년시절 독재의 지배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지지하고 확산시키려 했던 사람들도 다수였다. 

그런 천방지축의 어른들이 늘어나자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더이상 노인, 늙은이, 어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오로지 욕망만을 좇는 노인, 타인의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편함만을 추구하는 늙은이, 삶의 즐거움이 타인에 대한 비난이나 젊은이에 대한 힐난으로만 차 있는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큰 짐이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짐이었는데, 자신들이 국가 경제에 정확히 어떤 부분에 대한 기여를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현재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만으로 젊은이들의 돈을 빼앗아갔다. 

그러던 어느 2055년, 한 청년이 `또` 노인을 때려죽였다. 우발적인 사건이었지만 2055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노인을 때려죽인 청년이 받은 최종 형량은 징역 6개월. 사람을 죽였는데, 고작 징역 6개월이 말이 되는가 하는 질문을 하던 시절이 있었겠지만, 2055년은 그렇지 않았다. 사회에서는 젊은이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다. 6개월을 선고 받아도 실제로 복역하는 기간은 1개월을 간신히 넘겼다. 일이 이렇게 되자, 60세를 넘긴 노인들이 부지기수로 죽어나갔다. 청년들은 스트레스를 노인을 죽이는 것으로 풀었다. 2010년대 이전에는 가정에서의 여자와 아동에 대한 폭력이 노인에 대한 폭력으로 바뀐 것이다. 노인을 죽이는 것이 마치 하나의 게임과 같아졌다. 나이가 59세인 장관들의 정부는 방관했고, 청년들은 살인자가 되었지만, 모두 정신적으로 건강해졌다. 

 청년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항변했다. 우리는 어른다운 어른을 만난 적이 없다, 고.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동등하게 여기는 노인, 단지 시간적으로 먼저 알게 된 것과 나중 알게 된 것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어른을 만난 적이 없다, 열린 태도까지는 아니라도 무조건 자신들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 노인을 만난 적이 없다, 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들 역시도 그런 것을 알 필요가, 알아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 말했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60세가 되면 맞아 죽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그리고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노라 라고 말하며, 혹시 세상 물정 모르고 지나다니는 노인이 있는지, 빠른 눈으로 주위를 먹이를 찾듯 힐끔거릴 뿐이었다. 

 용섭 노인, 그는 올해 61살이 되었다. 작년에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그는 1년을 더 살았다. 사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몇몇의 노인 역시 살아있었다. 그들은 태산에게 대장장이 기술을 가르쳐주었고, 태산의 아버지에게 금속활자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몰래 지하에 모여 살며 자신들이 저질렀던 젊은 시절의 실수와 후회 그리고 순수한 노력으로 얻은 것들에 대해 글로 말로, 파일로, 유전정보로 남기고 있었다. 이런 정보들은 이들의 경륜과 `어른다운` 모습에 감명 받은 젊은 사람들이 관리하고 또 현재의 시점에 맞게 각색하여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어른다운 어른이 남긴 말들이 담겨 있는 책과 파일, 유전칩은 불티나게 팔렸다. 마치 역사를 공부하듯이 말이다. 

 그러던 중 용섭 노인이 지상으로 한 번 나가보고 싶다는 말을 태산에게 건넸고, 태산은 자신의 대장간에 데려온 날이 오늘이었다. 용섭 노인의 표정은 온화했고, 태산의 표정은 주위를 경계하느라 굳은 표정이었다. 그때 갑자기 일군의 젊은이들이 태산의 대장간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태산은 소리쳤다. 


"젊은이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어서 숨으세요."


용섭 노인은 말했다. 


"난 이제 이것으로 되었네. 더이상 자네들에게 짐이 되긴 싫네. 마지막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들을 막지 말게."


태산은 용섭 노인의 말을 받아들였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태산의 대장간에 들어왔다. 그 중 한 명의 청년이 말한다. 


"행복하셨습니까, 용섭 어르신.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용섭 노인의 모습은 사라졌다. 청년들의 손에는 동전같은 칩만이 남았다.  그 칩에는 용섭이라는 이름만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 칩은 인간저금통에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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