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봉사활동 후기

성신의 해외봉사단 봉사 후기 - 8

마지막 일정을 보낸 호텔인 만큼 정이 간 것도 사실인데, 시설이 너무 좋아서 정이 더더욱 들게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배정 된 방은 205호였는데, 공교롭게도 방이 호텔 전체에서 가장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서, 우리가 입구를 찾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렸고, 아마 아침에 우리를 누군가 깨우러 꽤 고생을 할 것을 상상하며, 피식 웃었다. 바닷가로 향한 방이 아니었고, 입구 쪽은 호텔 뒤를 흐르는 작은 하천이 있었고, 야자수들이 높게 서 있었다. 그리고 철조망이 쳐져 있어, 감옥이라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하였다.

객실 내부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 필요 없을 정도로 좋았다. 널찍널찍한 침대 두 개와 넓은 창,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된 방은, 오전과 오후에 일을 하고 돌아와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여기서 자는 것 만으로도 발리에 온 의미가 있다.”

이날 저녁은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낸 뒤, 호텔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고, 화요일의 공연을 위한 연습을 했다. 이날은 내가 다소 피곤했었는지, 힘이 그다지 나지 않아 연습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는데, 처음으로 태권도 부분에서 혼자 품세를 하게 된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을 처음으로 단원들에게 보여주었다. 품세라는 것이 흐느적흐느적대는 것이 품세가 아니고, 온 몸에 힘을 주고, 그 각을 살려 가면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리라 생각했다. 앞서 서술했지만, 몸의 상태가 썩 좋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있는 힘껏이라는 표현에 어울리게 품세를 보여주었다. 다른 단원들의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품세를 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봐 주었고, 품세가 마치고 난 뒤, 박수를 보내주어 한편으로는 쑥스러우면서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몇 마디 말 중에 손지혜 양이 나에게 , 태권도 품세는 원래 그렇게 하는 거에요?’라고 물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연습을 마치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 잠시 쉰 뒤, 다시 모여서 술을 마시기로 했었던 듯 한데 나와 정기연 군은 방에서 들어가서 아침까지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 정기연 군이 가지고 있는 카메라에 관련된 지식을 나는 배우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이 때를 기준으로 본인이 생각할 때는 사진을 찍는 것이 조금 변했다고 생각이 되는데, 정기연 군이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도 그것을 활용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 무섭기까지 했다.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고,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 채, ‘구색 맞추기위해 들고 다니는 것은 자신의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좋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유는 일반 디지털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자신의 감정을 담기 위해서이며, 남과는 다른 시각을 표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정기연 군의 가르침으로부터 알게 되었고, 무엇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에 따라서 사진은 큰 차이를 낸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비단 사진기만이 이런 이야기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차를 타면서, 그 차를 왜 타냐고 물어보면, ‘남들이 타길래라던지 외관이 예뻐서라는 대답도 대답의 선택항에 들어 갈 수는 있으나, ‘자동차라는 특성을 대표하는 대답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국가라는 정체(政體)를 가지고 있는 여러 국가들에게, ‘당신은 왜 민주주의를 정치 제도로 채택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다른 나라가 민주주의를 하길래라던지 민주주의라는 것이 주는 대외적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라는 대답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DSLR이라는 좋은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그 안에 들어가는 메모리 카드도 좋은 것을 써야 하고, 렌즈도 좋은 것을 장착해야 하고, 또 가장 중요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그것의 기능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이 되어야만 그 가치가 발휘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주의라는 좋은 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면 이 제도를 최상의 조건으로 만들기 위해, 좋은 선거제도를 구축해야 하고, 또 그에 맞는 정당제도 역시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인데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국민들이 그것을 백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배우고, 그것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그것을 개선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퇴화하고 말 것이다. 카메라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서 더 발전하는데, 삶을 결정 짓는 민주주의가 카메라의 발전 속도와 비교해도 늦은 속도로 발전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까.

발리 일정 중에 가장 평범한 날이었고, 그와 동시에 무엇인가를 끝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월요일이 되었다. 특별한 것 전혀 없이, 아침은 늦게 일어나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일어나보니 7 45분이었던 지라 서둘러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지금 아침을 먹고 다시 방에 돌아와 옷을 갈아 입으면 집합 시간인 8시 반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와 정기연 군은 옷을 다 갈아입고 완전한 복장을 갖추고 아침을 먹으로 갔다. 그리고 아침을 여유롭게 먹고, 마치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시간에 맞춰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 양, 어슬렁어슬렁 호텔 로비로 갔다. 조금 늦게 로비에 갔지만, 늦잠을 잤으니 많이 잘 수 있었고, 아침을 여유롭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내일도라며 서로에게 눈 신호를 보냈다.

오전 오후, 모두 일을 하는 날은 월요일이 마지막이었으므로,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오늘만은 놀지 말자라는 눈빛을 보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건물을 짓는 곳의 옆에 있는 밭과 같아 보이는(밭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곳의 흙을 건물의 토대를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옮기는 것이 일이었다. 월요일 이전까지는, 팀을 나눠서 일을 한다는 개념이 전혀 없었던 우리들이 이날은, 우연히 일을 하는 팀이 나눠져 한 팀이 일을 하고 있으면, 다른 팀은 쉬고 있고, 다른 팀이 일을 하면 우리가 쉬었다. 워낙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강했고, 쉬지 않고 일을 한다면 누군가는 무리를 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이었다고 생각 된다. , 팀을 나눠 놓으니 미묘한 경쟁 관계가 형성 되어서, 서로 일을 한 양이 눈에 바로바로 보이니, 노력을 하지 않을래야 안 할 수 없고, 사투리로 농땡이를 부릴래야 부릴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물론, 팀 간의 전력(戰力)차이는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일을 재미있게 만들었던 요소는 아닐까 한다.

앞서 벽돌을 쌓는 법에 대해서, 살짝 흥분해 길게 적었던 기억이 난다. 다 적고 나서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는 하였지만, 지금은 또 곡괭이질에 대해서 길게 적을 생각을 하니, 후회했었다는 그 말은 거짓말이었나 보다. 곡괭이는 다들 상상하는 그대로 굳어 있는 흙을 날카로운 부분으로 내리 찍어 흙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하는 연장이다. 옆에서 본 모습을 그림을 그리면 우산처럼 보이기도 하는 곡괭이는, 무겁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요령이 없는 사람이 들면 꽤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한 연장이다. 태어나서 곡괭이라는 것을 처음 들어보는 여자 단원들이 곡괭이 질을 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웠다. . 왠지 이 바로 앞 문장 적었던 기억이 난다. 설마 곡괭이 질을 하는 것도 적었을까? 적지 않았다고 믿고 계속 적어 나가보자. 곡괭이는 긴 나무 자루를 잡고 그것을 높이 들어 아래로 내리 찍으면서 그 용도를 다한다. 곡괭이의 머리 부분 자체가 쇠로 만들어져 있어서 방향만 제대로 잡고 내리기만 해도 꽤 땅에 박히는 힘이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작업이 큰 진척을 보이지 않는다. 땅 속에 곡괭이 날을 깊게 박히게 하고, 그 힘으로 흙을 많이 파 내기 위해서는 자루를 쥘 때 오른손은 자루 밑을 잡고, 왼손은 머리 부분 가까이에서 번쩍 들어 내릴 때 힘을 실어서 손을 모아 주어야, ‘있는 힘껏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힘이 들어가게 된다.

곡괭이의 쇠머리를 땅 속에 박아 넣고 나서도, 그것을 그냥 들면 안되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서 몸의 바깥 쪽, 그러니까 몸의 반대로 밀어주어야 흙이 많이 들리게 된다. 그렇게 어려운 요령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런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그래서 우리에게, 그들의 일은 힘들었지만, 외부 효과로 우리에게는 즐거움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왜 곡괭이 질에 흥분해서 이렇게 길게 적었는지, , 다음에 혹시 해비타트나 땅을 파는 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생길지 모르니, 정보 제공의 의미에서 적었다. .. 라고 하면 거짓말처럼 보일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분량 늘리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팀으로 일을 돌렸던 탓에, 꽤 빠른 속도로 일은 진행되었다. 흙은 분명히 사라져 가고 있었는데, 건물 바닥은 왜 그렇게 차지 않는 것인지. 월요일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흙 파는데 보냈다. 오후에는 아마, 벽돌을 조금 던졌던 것 같은데, 벽돌 던지기의 드림팀 오승식, 권현우, 박규병이 있었기에 딱히 힘들었던 기억으로는 남아있지 않다.

일을 마치고, 돌아 왔다. 씻기가 무섭게 수영장에풍덩!’ 약 한 시간을 물 속에서 놀고, 나와서 사진을 조금 찍고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이동했다. 이날의 저녁 메뉴는 돼지 통구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돼지가 구워져서 떡 하니 누워 있고, 그 것을 우리가 잘라 먹는 것은 아니었고, 돼지의 각 부위가 요리 되어 있었고, 그것을 뷔페처럼 가져다 먹는 가게였다. ‘바비 굴링이 그 조리된 돼지들의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맛있었다. 메뉴는 말 그대로 돼지 고기가 전부였고, 돼지 고기를 배부르게 먹지 못했던 단원들은 처음의 식사 속도는 꽤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찌나 우리나라의 김치가 생각이 나던지. 우리의 수육과 비슷하게 조리된 음식이 있었는데, 그 음식을 바라보면서 했던 생각은 김치그리고 막걸리였다. 어찌나 어찌나 김치가 먹고 싶던지. 입맛을 돋구어 주는 야채 요리가 없다는 것이 그렇게 슬프기는 처음이었다.

몇몇 단원은, 식사를 하고 야시장을 갔고, 나는 피곤해서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온 뒤, 방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마지막 연습을 하기 위해 로비의 2층에 있었던 홀로 향했다. 마지막 연습이어서 단원 중 어느 누구도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날 변경된 것이 있었는데, 응원 중에 음악은 흐르고 있었지만, 우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이때,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라는 의견이 나왔고, 원래는 그 시간에 인간 탑을 쌓는다는 것을 강민혜 양이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한번 해보자라는 의견을 내가 내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밑에 깔리는 사람이 될 것인 것을 알았다. 역시 그랬다. 하지만 허리를 완전히 굽혀서 하는 인간 탑이 아니라, 여자 단원이 남자 단원의 허벅지를 밟고 올라가는 형태의 인간 탑이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응원의 다른 부분은 거의 마무리 되었던 시점이라, 인간 탑의 연습만을 열심히 한 결과 다음날,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멋진 응원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왕,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가 어떤 공연을 현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는지를 적어 보자. 우선 공연 연습에 대해서 조금 적으면, 발리에 가기 전, 한 달 전부터 연습은 시작되었다. 내가 알기론 발리에 가기 전까지 모든 단원이 모여서 연습을 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721일부터 30일까지의 기간 동안은 장학금 연수입네, 귀향입네 등의 이유로 연습에 빠졌었다. 이 지면을 빌어서 연습에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술회한다. 크게 나누면, 태권도, 남자 댄스, 여자 댄스, 응원 그리고 합창을 했다. 남자 댄스는 남자 댄스그룹인 2PM이라는 가수 그룹의 노래 Heart Beat를 연습하였고, 여자 댄스는 여자 댄스 그룹인 원더걸스의 노래 Two Different tears를 전성아 양의 애교 섞인지도 아래 연습하여서 어린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응원은 가수 무한궤도의 그대에게그리고 건대 출신 가수인 홍서범의 불놀이야를 이용해 연습 했다. 태권도는 내가 담당이었는데, 여자 단원, 남자 단원들이 다같이 하는 태극 4, 남자 단원만의 태극 7, 그리고 나는 3단의 품세였던 태백을 공연했다.

춤을 연습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춤을 배우는 것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다. ‘하나의 도전이라고 하니까, 뭔가 멋진 책의 제목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큰 의미는 없이, ‘움직이지 않는 몸, 움직이기정도의 도전이었던 듯 하다. 춤을 연습하면서 느낀 것이, 팀워크나 처음에는 맞춰지지 않았지만, 다들 열심히 연습한 결과 동작들이 맞아 떨어지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데, 물론 전혀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 내가 진정으로 느낀 것은 댄스 가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지 않고, 성공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조그만 연습을 해도 땀이 뻘뻘 나는 춤 연습을 매일 해야 하는 댄스 가수들이 존경스럽게 까지 느껴졌다. 그래서 댄스 가수들이 뚱뚱한 사람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자 단원과 남자 단원 몇몇은 여자 댄스그룹 원더걸스의 노래에 맞춰서 연습을 했고, 그 연습 하는 것을 보고 있기만 하는 것이 심심해, 나도 뒤에서 같이 연습했었다. 아이들에게 보여줄 때,여자 단원들 댄스의 뒷부분에 몰래 들어가, 같이 연습했던 것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같이 춤을 추었다. 응원은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모습으로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아 힘들었지만, 상체와 하체를 따로 연습을 해서 같이 붙여 나가는 순서로 연습을 하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워낙 동작들 하나하나를 크게 그리고 박력 있게 해야만 해서 체력 소모가 꽤 격심했다.

땀을 비 오듯흘리고 나면 아이들에게 보여줄 하나의 공연이 마무리 되었다. 합창은 다같이 연습할 때 참여를 하지 않아,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실제 공연에 가서는 다들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뒤에서 박수를 치고만 있었다. ‘으쌰 으쌰

공연 날의 이야기를 적기도 전에, 너무 많은 내용을 적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슬쩍 해본다. 마지막 연습을 마치고, 서로서로에 격려를 하면서, 내일 좋은 공연을 하자는 하나 된 말을 하였다. 수영을 하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던 듯 한데, 그래도 수영을 잠시 했었다. 땀을 흘리고 수영을 하면, 그 상쾌함이 배가 되는 듯 하였다. 수영을 마치고 바로 옆방이었던 206호에서 간단히 맥주를 한잔 했다. 일찍 잠을 자고자 마음 먹었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일찍 잤다. 지금 이 글을 적는데, 잠이 와서 그런지 이라는 단어에 지금 내 몸이 반응하고 있는 듯 하다. . 잠 온다.(이건 뭐 기행문도 아니고 일기도 아니고..)

다시 아침이 되었다. 발리 덴파사 공항에 온 것이, 오늘 새벽 같은데 벌써 공식적인 일정의 마지막인, 공연과 오후의 마지막 노동 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공연과 함께 풍선 아트, 단체 줄넘기, 공기 놀이 등을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준비를 해 갔었다. 나는 풍선 아트를 담당으로 하였다. 긴 풍선을 이리 저리 꼬아서 다양한 모양을 만드는 것이 풍선 아트이다. 내가 실력이 없었던 지라, 다양한 것을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모양이 변해가는 풍선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곤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웃고 있어도 좋고, 울고 있어도 좋고, 까불어도 좋고, 점잖아도 좋다. 내 어릴 적의 모습이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항상 사고를 치고 다녔다고 했다. 어른들이 현우가 어떻게 크게 될지 궁금하다라고 하실 정도로, 장난꾸러기에다가 위아래도 없는 어린이였다고 하니,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랬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아이들이 장난을 치면서 놀아도, 그냥 귀엽게 보이는 것이다. 작년의 라오스에서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시간이 많았는데, ‘순수한 웃음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오스의 어린 아이들은, 눈물이 날 정도의 웃음을 짓게 했다. 발리의 어린이들 역시 그랬다. 어린이는 언제나 내게 웃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