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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한시_18 ‪#‎오늘한시‬ _18오늘 버림 당했다 그대는 나를 찾아 하루 종일 헤메었다 나와 함께 있던 곳을 찾아다니며 나를 본 적 없는지 많은 사람에게 물었다 대답을 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대의 그 허망한 눈빛이 보기 싫다 그대가 나와 함께 있던 그 때 그 만족하던 눈빛만을 기억하고 싶다 헤어지고 싶어 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버림 당했다나 역시 오늘 버림 당했다 때론 괘씸하기도 하다 소중하다 말할 때는 언제고 나를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잊어버리기도 하고 또 아껴달라는 말 직접 내뱉진 못해도 뉘앙스 풍겼을텐데 그 말 듣지 못한 그대가 원망스럽기도 하다나는 버림 당한 것들과 함께 있다 많은 것들이 모여 앉아 있다 열쇠, 지갑, 카드, 주민등록증 때로는 양말까지 어느 하나 그대를 원망하지 않는.. 더보기
오늘한시_17 ‪#‎오늘한시‬ _17어제의 속도는 오늘의 속도와 다르다 늦어지는 것은 어제보다 오늘의 내가 나이듦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기 때문이고 오늘과 내일 도달할 그곳이 지금만큼 잘 분간되기 때문이다 몇 발자국을 걸었든 속도는 개의치 말아라 얼마를 뛰었든 관여치 말아라 멈추고 싶을 때 멈추지 못하면 네가 도달하고 싶은 그곳 지나쳐 버리면 잊혀진 무언가 떠올리게 된다 그곳은 누구나 어디든 하나씩 갖고 있는 깜, 아상 그리고 행뵥 다른 이가 틀렸다 말해도 나 가고자 하는 곳 그곳이라면 그때 멈출 수 있게 속도는 그리 개의치 말아라- 거북이가 말한다, 속도는 개의치 말아라. 제한속도. 더보기
오늘한시_16 #‎오늘한시‬ _16시의 바람이 스친다 스치긴 하지만 담을 수 없다 손에 든 것이 종이와 펜이 아니라 담배 한 줄이 내는 죽음의 향인 탓은 아니다바람이 스치면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읽어 내려가는 시 한 편에 담긴 것은 수만 가지의 감정, 그만큼의 삶이다시의 바람이 스치면 눈은 꿈뻑이지도 않은채 흐르는 눈물로 순간을 기억한다 무엇이 보이느냐 묻는 질문에 지금, 이라 대답한다지금의 삶이 느끼는 몇 줄의 시가 단 몇 초를 지배해도 그 지배 당한 점령지 나는 광복을 부르짖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영원한 식민지가 있다면 그것은 감정이자 문학이자 또 그 하나인 시이고 싶다.바람이 스쳐 불어 흔들리는 것 받아들여 헤메이는 글자 위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많이 분 오늘, 그것이 시의 바람이라 할지라도 더보기
오늘한시_15 #‎오늘한시‬ _15 오른손을 펴 보아라 무엇이 들었느냐아무것도 없습니다왼손을 펴 보아라 무엇이 들었느냐아무것도 없습니다입을 열어 보아라 무엇이 들었느냐아무것도 없습니다진정 그것들 안에 아무것도 없느냐그렇습니다헌데 넌 왜 그것들로 다른 이의 마음에 못을 박고 돌을 던져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내는 것이냐설사 무엇을 들었다 할지라도 설사 너의 입을 쳐다보는 이 많다 할지라도 그것들을 결코 다른 이에게 해를 가하는 것으로 놀려선 안 될 것이다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니 그러한 것 중 가장 무서운 것이 타인에 대한 악의 그것이다.- 악의는 품지도 마라 더보기
현우의500자_118 ‪#‎현우의500자‬ _118 얼마 전 한 단어가 들어와 박혔다. '적독(積讀)', 책을 쌓아만 둔 채 읽지 않는 하나의 독서법. 중학교 당시 처음으로 책을 읽겠다는 의지를 갖고 읽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이후 종종 독서를, 시간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택해왔지만 최근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책 하나를 다 읽고 나면, 왜 좀 더 빨리 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지금 나에게 다가오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내 방 책장에는 읽지 않은 책들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 제목들을 하나씩 흞어보며 그들이 들려줄 이야기를 기다린다. 그러면서 꿈꾸며 읽어가고 있다. 당장 읽지 않아도 될 때도 있다.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며 그 책의 존재.. 더보기
현우의500자_117 ‪#‎현우의500자‬ _117 저녁 즈음 다시 돌아온 도서관, 과제 준비를 하기 위해 책들을 펼쳐놓은 채다. 교환학생 신분이 익숙해지기 시작한 4월의 어느날이었다. 검은 건 칠판이요, 하얀 건 교수가 적어놓은 글씨라는 것 정도는 이해했다. 나이 든 교수의 판서는 일본인 친구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한다. 생면부지 친구들의 노트를 복사하는 것도 모자라 매 수업 시간마다 녹음을 한 뒤 복습하는 하루가 계속됐다. 과제도 피할 수는 없었다. 도서관에서 과제 준비를 이러저러쿵하고 있는데 갑자기 도서관에 불이 꺼진다. 당황하는 학생들. 하지만 학교 노트북의 불빛이 그대로인 것을 보니 정전은 아닌 듯 했다. 이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지구의 날입니다. 지구를 위해 10분 간 소등하도록 하겠습니다. 10분 동안 .. 더보기
현우의500자_116 ‪#‎현우의500자‬ _116 소풍날이다. 머리맡에 잠들기 전 싸놓은 가방에는 과자가 가득했고, 음료수는 시원하도록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온 뒤 부엌으로 향했다. 가게 뒷편에 집이 있었고 겉보기에는 현대식 빌딩이었음에도 부엌은 묘하게 재래식 부엌의 느낌을 풍겼다. 어두운 부엌 조명 아래서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일어났나. 어머니께서는 김밥을 싸고 계신다. 눈을 부비며 김밥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마주 앉는다. 대발에 김과 조미된 밥을 놓고 고명이 들어가자 어느새 김밥이 되어 나온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슥슥 썰어 나의 입에 하나를 쏙 넣어주신다. 어머니께서는 김밥의 꼭다리를 드시며, 큰 일 할 사람은 이런 거 먹으면 안된다 하신다. 김밥은.. 더보기
현우의500자_115 ‪#‎현우의500자‬ _115 화려하게 꾸며진 꽃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꽃꽂이에는 꽃 뿐만 아니라 뭉털이실이 흐느트러져 있다.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전의 오전, 나는 합장을 한 채 마을 사람들을 기다린다. 라오스의 수도 위앙짠 근교의 한적한 마을의 학교 운동장이다. 마을 어른들께서 모두 모이자 바시 의식은 시작된다. 마을 이장 쯤 되시는 분이 의식을 진행한다. 나는 가만히 엄숙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시간을 흘리듯이 손에 담고 있다. 그리고 꽃에서 이어진 실의 끝을 잡은 채다. 의식이 끝나자 현지 어른들께서 실을 내 왼쪽 손목에 묶어주신다. 적은 금액이지만 지폐와 함께 묶는다. 헐거우면서도 끊지 않는 이상 풀리지 않게 실을 묶어 주시며 눈을 마주친 뒤, 다른 사람에게 옮겨간다. 나도 여러 사람들에게 .. 더보기
현우의500자_114 ‪#‎현우의500자‬ _114 10시 반 퇴근을 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시계에는 아침과 저녁 뿐이다. 오전오후의 태엽은 누군가 잘못 감은 듯 빠르게 돌아갔다. 여러 은행을 다녔고 한 군데의 등기소에 다녀왔다. 하는 일이야 단순 반복 업무이지만 반복되는 것에도 절차가 있고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처음부터 다시 모든 업무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생각을 하며 일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 깨닫는다. 어제 했던 일이 익숙해지면 불편함이 보인다. 불편의 개선은 나만의 과제다. 하지만 나는 그 과정이 퍽 기분 좋다. 나는 스스로 다짐한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자. 아주 작은 성장이라도 내가 다시 잠자리에 들었을 때, 더 필요한 사람, 더 가치 있는 사람 그리.. 더보기
현우의500자_113 ‪#‎현우의500자‬ _113 한 신문사 소속의 출판사에서 주최한 북콘서트를 다녀온 적이 있다. 중년의 심리학을 다룬 책이었음에도 젊은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취미도 없이 먹고 사는데에 삶을 바쳐야 했던 수많은 중년들이 겪는 여러 심리적 고충들은 부모님 세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북콘서트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저자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나는 그 줄에 서지 않기로 했다. 대신 책의 맨 뒷 장에 작게 적힌 출판사의 직원들을 찾아갔다. 사인 좀 해주세요. 사인을 해달라는 나의 요구에 출판사 직원들은 난색을 비춘다. 손사레를 치다 계속된 나의 요청에 머뭇거리며 자신의 이름을 평소 글씨체로 조심스레 하나둘 책의 뒷면에 줄지어 적는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 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