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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2.16 “2005년 산 포도주”
  2. 2016.04.11 아픈 이유
2016. 12. 16. 01:41 내 생각

“2005년 산 포도주

 

10시가 넘은 시각,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글자를 보내주는 친구들에게 푸념하고 있을 때, 마침 같이 사는 친구가 집으로 돌아왔다. 부스스한 머리, 추위가 잔뜩 묻어 있는 어두운 색의 롱코트 그리고 손에 든 한 병의 포도주. 송년회를 하였다며 먹다 남은 포도주를 들고 왔다 한다. 포도주의 라벨에는 이 포도주가 2005년 산()이라는 표식이 있었다. 2005년이면,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이다. 그리고 이 포도주의 고향은 프랑스다.

 

집에 있는 몇 개의 안주거리를 꺼냈다. 먹다 남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전과 몇 조각의 치킨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냉장고의 냉기를 덜어냈다. 포도주 잔을 두 개 꺼내고 접시를 꺼내 가벼운 포도주 술상이 차려졌다. 포도주는 병의 3분의 1 정도가 남아 있었다. 작은 포도주 잔을 꺼냈기에 망정이지 큰 것을 꺼냈으면 한 명이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을 양이다. 포도주 잔에 조금씩 포도주를 따른 뒤, 쨍 하는 소리의 건배를 했다. 친구는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며 안주를 덜어 들고 가서 포도주를 마셨다. 나는 식탁에 그대로 앉은 채로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친구들에게 밀린 답장을 한다. 고마워. 다시 쓸 수 있게 되면 써서 보낼게.

 

비워진 포도주 잔을 다시 몇 번 적게 채워 넣으며 마시고 난 뒤, 포도주는 바닥을 보였다. 치킨이 두 조각 남았지만, 저녁을 일찍 먹은 탓에 다소 허기졌던 내가 먹어 치웠다. 안주를 모두 다 먹은 뒤, 젓가락과 접시를 탑 쌓듯 포개어 싱크대에 넣어 놓고 포도주 병을 재활용 분리수거 상자에 넣으려 일어났다. 그리고 혼잣말을 공기에 툭 던졌다.

 

“2005년 산이라.”

 

내 말을 들었는지 친구가 한 마디 거든다.

 

그거 한 병에 30만원 짜리다.”

 

순간 멈칫, 했다. 이 포도주 한 병이 30만원이란 말인가. 포도주를 마시기 위한 건배를 하기 전, 2005년 산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 이건 어느 정도의 가격일까 궁금했다. 친구는 그 때는 별 말 하지 않고 단지 좋은 거라고만 말했다. 그리고 2005년 산이면 꽤 오래된 것이라 했다. 나는, ‘2005년이면 우리가 21살 때인데, 그 사이 11년이 벌써 흘렀네. 11년이면 포도주한테는 긴 시간일 수 있겠네.’ 라 하며 가볍게 넘겼다. 포도주의 가치를 알았다고 해도 또 몰랐다고 해도 나에게는 그저 하룻밤의 마무리를 기분 좋게 도와주는 정도였다. 가치와 가격과는 관계 없이, 마셔서 기분 좋은 것으로 감정이 정리되는 어떤 것. 그럼에도 이것의 가격을 안 뒤, 순간 생각에 잠겼다.

 

나는 2005년 이후 지금까지 얼마나 더 숙성되었나. 얼마나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나. 사람을 물건처럼 가격으로 따진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내가 일을 하며 받았던 돈으로 비교는 가능하리라. 20, 2004 12월 당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받았던 시급이 2800원이었다. 이 시급도 원래 2700원이었던 것을 한 달 간의 근무성과를 강하게 사장님께 피력한 결과 100원의 인상을 얻어내었던 사소한 승리였다. 한 시간 2800원을 받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한다면 어떤가. 가장 최근에 돈을 번 것이 일본어 통역을 하였을 때인데, 2주 정도의 일정을 소화하고 적지 않은 돈을 받았다. 하루로 따지면 15만 원 남짓. 단지 금액으로만 따지면 악화되었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큰 성과를 내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신하지는 못한다.

 

10년이란 얼마나 긴 시간일까. 포도와 설탕이 원목으로 만들어진 통에 들어가서 10년을 담겨 있던 기간과 나의 20대는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두 번의 대학교 입학과 한 번의 대학원 입학, 군대 입대 실패와 아동양육시설에서의 공익근무 그리고 1년 간의 일본 생활과 2년 간의 고시생 생활 등 넓게 펼쳐졌던 삶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늘의 포도주는 나에게 조용히 이야기 한 잔을 권했던 것은 아닐까.

 

흔들리지 않는 통에 들어 앉아 생각했다. 사람들은 내가 여기 가만히 오래 있을수록 나의 가치를 높게 쳐 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흔들리며 넘어지고 일어나서 다시 넘어지며 그 가치를 높여나가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이란 사람들이 자신만의 길을 열고 아픔을 겪으며 그 사이 얻을 수 있는 성취들을 이뤄나가는 중, 그들에게 잠시 기쁨을 주는 것. 아무리 내가 비싸진들 나를 마시는 어느 누구보다도 결코 그 가치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나를 마신 그대여. 자신이 만든 통 안에 갇히지 마라. 어지럽게 흔들리고 넘어졌다 일어나고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며 울다가 웃어라. 그러다 가끔 힘이 들 때 나를 한 잔 들이켜 다오.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자유로운 그대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될 것이다.

 

2005년 산 포도주 한 잔 마시며, 산미(酸味)와 생미(生味, 살아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맛)을 생각한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어떤 것들이라도 그것이 나의 가치를 낮게 할 것이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져야겠다. 20살 이후 지난 10여 년 간의 기간을 지내오며, 쉽게 손에 잡히지 못했던 생각을, 2005년 산의 포도주를 마시며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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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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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1. 17:07 내 생각

"아픈 이유"


어릴적부터 생일이 있는 4월이 되면 이유 없이 아픈 날이 있었다. 고열과 기침 그리고 어지럼을 동반한 아픔이었고, 그런 날이면 밤새 어머니는 내 옆에 앉으신 채 내 이마에 찬 수건을 올려주셨다. 아침이 되어 병원을 가면 의사선생님은 감기 몸살이라며 몇 일 분의 약을 처방해주셨고, 나는 그것을 생애 마지막 약인양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몇 일이 지나면 씻은 듯 나았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오늘(2016년 4월 10일) 시점, 이제 3일 동안 지속된 4월의 아픔에서 슬며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먹은 약에 수면제 성분이 있는지 지금 사실 좀 헤롱헤롱하기도 하고 멍하기도 하다. 하지만 무언가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이렇게 앉았다.


4월의 아픔에는, 이유가 있을까.


몇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환절기의 감기일수도 있고 한국의 학제상 3월에 시작한 새로운 학기에서 느낀 긴장이 4월이 되어 풀린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4월에 있는 내 생일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태어나며 아팠다는 어머니의 말씀. 낳을 때도 역아여서 목숨을 한 번 놓칠 뻔 했고, 태어나고 나서도 황달을 지난 흑달의 병세 탓에 병원에 다시 입원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몸에 남아 있는 듯 하다.


'태어남을 기억하라.'


몇 해 전 적은 글에,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메멘토 모리'가 아닌, 태어남을 기억하라는 뜻의 '메멘토 세로'라는 말을 만든 적이 있다. 라틴어 타동사인 'sero'는 타의에 의해 태어나다 라는 뜻을 품고 있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결코 자동사가 될 수 없다. 누군가로부터 생명을 받아 태어난 존재. 그러니 태어남을 기억함으로써 우리가 누군가의 의지로부터 태어났다는 것과 가능하다면 그 태어남이 사랑으로 이뤄져 있기를 바랄는 마음을 기억하라는 뜻이었다.


아마도


내가 4월이 되면 아픈 이유는, 그런 탓이다. 4월의 봄꽃 피고 날 따뜻한 날, 나의 삶이 시작되었으니 그것을 기억하고 있기를 내 몸은 아픔으로써 그것을 나에게 일깨워주는 듯 하다. 태어남을 기억해야겠다. 그것도 두 번으로 나눠어서 말이다. 4월 11일은 음력 3월 5일. 가족이 챙기는 내 생일이고, 4월 24일은 가족을 제외한 사람이 챙기는 내 생일이다. 두 번의 생일. 축하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태어났다는 것,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누구나 태어났다. 태어남을 기억하라. 사랑 속에 태어났을 그 때를 기억하라. 죽음은 태어남 이후의 일이니 우선 태어남 부터 확실히 기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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