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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1.28 절대값 취하기 (1)
  2. 2014.10.01 양분 사회
2016. 11. 28. 12:21 내 생각

절대값 취하기”  20161128

 

언제 처음 배웠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학시간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당연히 그렇겠지. 수학에서 밖에 쓰지 않는 말이니까. , 아니구나. 대학에 들어와서 경제학을 배웠을 때도 사용하긴 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숫자와 관련된 것에 절대값을 쓰는 것이겠구나. 절대값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세로로 두 줄을 긋는 것인데, 두 세로줄 사이에 +(양수, 플러스)가 들어가든 –(음수, 마이너스)가 들어가든 관계없이 그 결과가 양수로 나오게 하는 것을 두고 절대값을 취한다라고 한다. 예를 들어, 예를 들어보려 했는데 절대값 부호를 컴퓨터로 어떻게 찾지? 근의 공식은 찾았다, 이게 필요한 게 아니지. 이거?││ 이게 맞는 듯 하군. 다시 예를 들면, │-3│이라고 하면, 이것은 +3과 같게 된다. │+3│도 결과는 양수 3이긴 마찬가지인데, 어차피 양수(+)인 것에 절대값을 취할 필요는 없겠지? 하여튼 절대값을 취하게 되면 그 안에 있는 숫자가 음수라도 양수가 된다는 게 중요하다! 중고등학생 여러분, 이것만 기억하면 수학 시험에서 한 문제는 맞출 수 있습니다!

 

갑자기 왜 절대값 이야기를 하는걸까?

 

우리 삶에도 절대값이 필요하다. 각자의 삶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좋지 않은 일도 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좋은 일이라면, 헤어짐은 슬픈 일이다. 목표로 했던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면,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등등등. 더욱 많은 예들을 들 수 있겠지만 일일이 예를 드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정말 많은 예나 사건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예를 들기보다 전체적으로 좋은 일을 양수(+, 플러스)라고 하고, 좋지 않은 일을 음수(-, 마이너스)라고 해볼 수 있다면 삶에 왜 절대값을 취할 필요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 전체 삶을 보면, 좋지 않았던 일도 좋은 일이 된다. 다만 그 좋지 않은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 지금 당장 힘들어죽겠는데,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과연 좋은 일이나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마구 샘솟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러한 하나하나의 좋지 않았던 일들이 결코 음수(-, 마이너스)로만 남아있는 일은 없다. 생각해보자. 1년 전에 나를 슬프게 한 일이 뭐였지? 2년 전에 나를 괴롭힌 일이 뭐였지? 시간이 지난 뒤에까지도 자신을 괴롭혔던 고통이나 슬픔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시간이 흘렀기에 잊은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있지만, 좋은 경험이든 좋지 않은 경험이든 그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2014 4 16일의 세월호 사건과 같은 국가적 재난의 경우에는, 국민들이 잊지 않기로 함으로써 +(양수, 플러스)가 되었다. 국가적 재난을 떠나 개인적인 슬픔 혹은 뼈아픈 경험만을 본다면, 자신도 모르게 절대값을 취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삶에도 절대값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수학과 경제학에서만 절대값을 배우고 적용한다는 건 아무래도 좀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학 공부나 경제학 공부가 차지하는 시간의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하지만 삶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랬듯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 많은 경험을 하고, 감정을 갖는다.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 중 잊고 싶은 기억,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에 ││(절대값)을 씌어보자. 당장 절대값을 취하는 것이 어렵다면,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절대값을 취해 양수(+, 플러스)로 만들어보자.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관계 없이, 자신이 유발했든 유발하지 않았든 관계없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과 경험들에 대해 한 번 멋드러지게, “좋았어! 절대값을 취해보자!”라고 하는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누구나 알다시피 좋은 일과 경험은 적다. 좋지 않은 일과 경험은 징그럽게도 많다. 우리 삶에도 절대값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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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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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17.06.04 12:43  Addr  Edit/Del  Reply

    개인적으로 좋았던 일을 +/ 좋지 않았던 일을-로 생각 하셨네요.
    수학 에서 절댓값 은 단지 -를 +로 바꿔 주는게 아닙니다. 수의 절대적인 양,거리를 보여주는거죠.
    삶에서 절댓값 을 씌운다면 좋지않았던 일이 좋은 일이 되는게 아니라. 그냥 본질 그자체. 감정을 뺀 상태가 되야 할것 같아요.
    그냥 벌어진 이벤트. 선형적 시간 개념에서 발생한 그 상태의 이벤트.
    절댓값 은 그런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2014. 10. 1. 21:48 카테고리 없음

"양분(兩分) 사회"  2014.10.01.

담배값이 인상된다는 소식을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원하지 않은 정보라도 내 귀와 내 눈에 들어오는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그 출처를 구한다는 것은 호수에 빠진 도끼를 구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쨋든 담배값이 내년부터 오른단다.


담배를 피고 있는 본인은 담배값 인상에 매우 민감하지 않게 받아들였다. '오르라면 오르라지.'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일본에 있을 때 담배값은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약 한 값을 4500원에 사보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2009년 당시의 나의 경제생활을 비교하면 하나도 나아진 것은 없었지만 담배는 여전히 피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꽤나 나의 편한 친구가 된 듯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담배값 인상'에 대해서 한 가지 거부감이 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앞서 적었다 시피 나는 담배를 몸에는 별로 좋지 않지만 정신 건강에는 꽤나 좋은 영향을 주는 '친구'로 생각한다. 실제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도 '돈이 든다'는 것은 담배와 유사하다. 밥을 한 끼를 먹든, 커피를 한 잔을 마시든 아니면 그냥 시간을 보내든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돈이 든다. 맨큐의 경제학에 나오지 않던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쨌든 친구와의 우정을 유지하는 목적으로 담배를 피는 나에게 '담배값 인상'을 통해 흡연율을 줄이겠다 라는 이야기는 '그 친구와 헤어져'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질이 나쁜 친구이니 사귀지 말라는 이야기는 여전히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유행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본인이 어릴 때 하던 이야기와는 다른게 지금은 친구의 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질이 중요해졌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사귀지 말아야 할 친구'는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사귀지 말아야 할 친구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담배값 인상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그 의견을 직접 물어보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여러 연구 조사 결과와 용역 결과를 통해 담배가 얼마나 나쁜 기호식품이며 담배값 인상을 하게 되면 몇 퍼센트의 사람이 담배를 끊을 것인가 하는 것이 정부의 '주된' 발표였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시켜버렸다.


나는 내가 사귀고 싶은 친구를 계속 사귈 것이다. 그것에 비용이 얼마나 들든 말이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내가 사귀고 싶은 친구를 누군가, 단지 내게 나쁠 수 있다, 아니 실제로 나쁘다고 해서 헤어질 것을 종용한다면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절교 아니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다. 담배 역시 그렇다. 담배를 끊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사실 '증세'의 수단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그 목적을 뻔뻔히도 숨기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증세야 어떻든.


나는 정부 관계자라는 사람이 담배를 피는 사람을 마치 '어린 아이'를 대하듯, 또는 '미성숙자'를 대하듯 하는 태도 자체가 싫다. 너희는 담배 끊을 의지가 없어보이니, 내가 가격을 높여 너희들을 담배로부터 해방시켜주겠다니.. 담배를 피든 피지 않든 이것은 엄연히 개인의 자유에 포함된다. 자유의 범위에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도 담배값 인상을 통한 흡연자의 금연 유도 이것은 '어른(꼰대)-아이(미성숙자)'의 프레임에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듯 하다.


'양분의 사회'라고 제목을 적은 것은, 담배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자기와 다른 사람은 '틀린' 것이라 생각하게 만들고 훈육해야 하고, 또 '선동' 당했기에 교화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분의 사회. 끊임없이 양분하다 보면 마치 마술사가 신체 분리 마술을 시전하는 것처럼 자기 중심을 잡지 못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자신의 몸이 흩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리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자유가 죽어가는 사회에서 양분의 사회는 자유에게 비웃음을 짓겠지.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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