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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11.28 절대값 취하기 (1)
  2. 2016.04.17 어리석은 질문
  3. 2016.03.28 "좋은 경험으로 끝내서는 안돼."
  4. 2015.04.12 나에게 바란다_4
2016. 11. 28. 12:21 내 생각

절대값 취하기”  20161128

 

언제 처음 배웠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학시간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당연히 그렇겠지. 수학에서 밖에 쓰지 않는 말이니까. , 아니구나. 대학에 들어와서 경제학을 배웠을 때도 사용하긴 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숫자와 관련된 것에 절대값을 쓰는 것이겠구나. 절대값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세로로 두 줄을 긋는 것인데, 두 세로줄 사이에 +(양수, 플러스)가 들어가든 –(음수, 마이너스)가 들어가든 관계없이 그 결과가 양수로 나오게 하는 것을 두고 절대값을 취한다라고 한다. 예를 들어, 예를 들어보려 했는데 절대값 부호를 컴퓨터로 어떻게 찾지? 근의 공식은 찾았다, 이게 필요한 게 아니지. 이거?││ 이게 맞는 듯 하군. 다시 예를 들면, │-3│이라고 하면, 이것은 +3과 같게 된다. │+3│도 결과는 양수 3이긴 마찬가지인데, 어차피 양수(+)인 것에 절대값을 취할 필요는 없겠지? 하여튼 절대값을 취하게 되면 그 안에 있는 숫자가 음수라도 양수가 된다는 게 중요하다! 중고등학생 여러분, 이것만 기억하면 수학 시험에서 한 문제는 맞출 수 있습니다!

 

갑자기 왜 절대값 이야기를 하는걸까?

 

우리 삶에도 절대값이 필요하다. 각자의 삶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좋지 않은 일도 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좋은 일이라면, 헤어짐은 슬픈 일이다. 목표로 했던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면,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등등등. 더욱 많은 예들을 들 수 있겠지만 일일이 예를 드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정말 많은 예나 사건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예를 들기보다 전체적으로 좋은 일을 양수(+, 플러스)라고 하고, 좋지 않은 일을 음수(-, 마이너스)라고 해볼 수 있다면 삶에 왜 절대값을 취할 필요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 전체 삶을 보면, 좋지 않았던 일도 좋은 일이 된다. 다만 그 좋지 않은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 지금 당장 힘들어죽겠는데,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과연 좋은 일이나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마구 샘솟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러한 하나하나의 좋지 않았던 일들이 결코 음수(-, 마이너스)로만 남아있는 일은 없다. 생각해보자. 1년 전에 나를 슬프게 한 일이 뭐였지? 2년 전에 나를 괴롭힌 일이 뭐였지? 시간이 지난 뒤에까지도 자신을 괴롭혔던 고통이나 슬픔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시간이 흘렀기에 잊은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있지만, 좋은 경험이든 좋지 않은 경험이든 그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2014 4 16일의 세월호 사건과 같은 국가적 재난의 경우에는, 국민들이 잊지 않기로 함으로써 +(양수, 플러스)가 되었다. 국가적 재난을 떠나 개인적인 슬픔 혹은 뼈아픈 경험만을 본다면, 자신도 모르게 절대값을 취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삶에도 절대값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수학과 경제학에서만 절대값을 배우고 적용한다는 건 아무래도 좀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학 공부나 경제학 공부가 차지하는 시간의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하지만 삶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랬듯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 많은 경험을 하고, 감정을 갖는다.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 중 잊고 싶은 기억,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에 ││(절대값)을 씌어보자. 당장 절대값을 취하는 것이 어렵다면,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절대값을 취해 양수(+, 플러스)로 만들어보자.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관계 없이, 자신이 유발했든 유발하지 않았든 관계없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과 경험들에 대해 한 번 멋드러지게, “좋았어! 절대값을 취해보자!”라고 하는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누구나 알다시피 좋은 일과 경험은 적다. 좋지 않은 일과 경험은 징그럽게도 많다. 우리 삶에도 절대값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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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17.06.04 12:43  Addr  Edit/Del  Reply

    개인적으로 좋았던 일을 +/ 좋지 않았던 일을-로 생각 하셨네요.
    수학 에서 절댓값 은 단지 -를 +로 바꿔 주는게 아닙니다. 수의 절대적인 양,거리를 보여주는거죠.
    삶에서 절댓값 을 씌운다면 좋지않았던 일이 좋은 일이 되는게 아니라. 그냥 본질 그자체. 감정을 뺀 상태가 되야 할것 같아요.
    그냥 벌어진 이벤트. 선형적 시간 개념에서 발생한 그 상태의 이벤트.
    절댓값 은 그런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 4. 17. 20:13 내 생각

어리석은 질문


운전면허를 갓 따고 운전에 재미를 붙여나가고 있던 20살이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아버지로부터 운전을 하나씩 배웠기에, 말 그대도 실용적인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운전 면허 시험장 코스는, 떨어져가며 한 코스씩 한 코스씩 익혀 나갔다. 몇 번의 낙방 결과 운전면허를 손에 쥐게 되었으니 그 재미와 기쁨은 크디 컸다.


택시를 탈 일이 있었다.


운전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시기였던 만큼 매일 운전을 하시는 택시기사님은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하다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택시 기사님께, 20살의 천진난만함을 담아 물었다. 기사님께서는 이렇게 재미난 운전을 매일 하시니 참 좋으시겠어요. 기사님께서 나를 슬쩍 보시고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뭐든 처음에는 재밌는데, 그게 먹고 살 일이 되면 재밌지 않아요.


그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재미가 없어지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다들 힘들게 운전면허를 딴 만큼 이렇게 운전을 하는 것 자체가 재미가 없을리 없다는 일종의 근거 없는 확신도 들었다.


그러고 시간이 꽤 지나,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할 때 였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점심과 저녁 시간을 포함해 약 10시간을 운전을 해야하는 업무가 이어졌다. 졸음을 이기기 위해 아메리카노와 담배를 물고 살았던 당시였다. 서울의 구석구석과 경기도라는 것만 알고 있던 평택 등을 직접 왕복하며 이틀에 기름 한 통을 비우며 운전을 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운전이 재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해야했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내 생활비와 조금씩 모으는 저축을 위해 필요했다. 다른 재미난 일을 하는 것을 찾을 시간도, 여유도 없었고 밤만 되면 피곤해서 쓰러지기 일쑤였다. 운전은 재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고, 생계라는 항목 속에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다.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20살의 내가 택시기사님께 했던 질문은, 살면서 경험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지를 모르는 내가 던진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쉽게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때로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론 매우 쉬워보이기도 한다. 힘들어 보이는 일들도 많은 것은 당연하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에 사람들은,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길 원한다. 간접경험도 경험일 수 있지만, 실제로 겪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많은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 뿐이다.


경험을 직접적으로 하든, 간접적으로 하든 그 경험을 통해서 얻어야 할 것은 경험 뿐이면 안되지만, 결국 경험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험을 통해 타인의 경험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려해야 한다. 타인의 경험을 읽거나 들으며 나의 경험이 될 수도 있었을, 혹은 운 좋게 피할 수 있었던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20살 때, 운전에 재미를 느꼈던 나는, 택시 기사님의 삶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하지 못했다. 이후 운전을 하지 않다가 운전이 삶의 큰 부분으로 들어왔을 때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내가 바보 같고 어리석은 탓일 수 있겠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내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단지 경험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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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8. 18:04 내 생각

"좋은 경험으로 끝내서는 안돼."

얼마 전부터 '4월 13일 총선' 관련 몇 가지 행사나 글에 내 이름을 올릴 기회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이기는 했지만, 딱히 할 일도 없었고 또 '정치'라는 분야가 20살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12년 간 내 공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기에 그 기회를 잡았다.

1월의 어느 날,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첫 번째 모임을 가졌다. 같은 기회를 잡은 사람들이 모였고, 나름대로 '정치'라는 범위 안팎에서 활동해오던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여성에 관해, 누군가는 NGO에 관해, 또 누군가는 진짜 정치에 뛰어들어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날 첫 모임에 우연히 참석한 사람도 있었다.

앞으로의 방향과 4월 13일이 되기 전에 해야할 일 등등을 정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기회를 잡은 사람들을 구경하러 온 한 명이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지금 이런 활동들이 다 좋은 경험이 되겠죠."

나는 그 말을 듣고, 정색했다. 원래도 인상이 좀 딱딱한 편이지만, 정색을 하면 더 험악해지는 탓에 내 정색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느껴진 모양이다. 나는 내가 정색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회를 잡아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있지만, 이 자리에 올 수도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하고 있는 만큼 단지 좋은 경험으로 남아서는 안됩니다."

사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는 정책이 필요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것을 표현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아무리 많은 젊은 정치인 지망생들이 나온다 한들 그 사람들은 일부, 아니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에 있어서는, '좋은 경험'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는 지금의 경험이 다음 경험과 성장을 위한 발판일 수 있겠지만, 기회를 잡은 사람이나 그것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해야 한다. 더욱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최대로 반영되게 해야 한다.

정치에서 뿐만 아니다. 해외봉사활동이나 국내봉사활동이 '스펙'의 중요한 한 꼭지가 되었다고들 한다. 언제가 '해외봉사활동, 아무나 가지마라' 라는 글에서 적은 적도 있지만 봉사활동은 나를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 봉사의 대상이 되는 이에게 있어 우리를 만나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생존이다. 우리는 생존 앞에 스펙을 이야기하고, 경험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봉사활동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행이나 대학원 진학 등 다양한 것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경험?

잘 모르겠다. 어떤 경험이 추억으로 남기에는 그 추억에 담아야 하는 의미가 너무 많은 시대다. 그런 시대를 살며, 경험을 쌓았다 자위하기 보다 '나를 통한 최선'이나 '기회를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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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12. 01:31 내 생각

"당신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청춘이라는 시기가 그 고유의 색을 잃어갈수록 그들을 위로하는 사람들의 수는 반대로 늘어납니다. 지금도 그 여풍이 남아 있는 '힐링'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힐링의 태풍이 지나간 뒤, 사람들은 자신의 고민과 걱정을 모두 해결하였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지나간 뒤 더욱 많은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신의 고민이 무엇인지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위로는 받았지만 해결되는 것이 없는 시기를 지나게 되면, 결국 자신에게 다시 질문이 돌아오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이런 측면에서 '힐링'은 나름 사회적 의미를 가졌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스스로를 '청춘'이라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민 중 가장 큰 고민은 '꿈이 없다'일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다' 이기도 하고 '내 삶을 바칠 무엇인가를 찾지 못했다' 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꿈이 없다'라는 표현. 이 표현 역시 힐링의 시대가 남긴 우리들의 진정한 고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청춘들은 왜 꿈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용기가 없어서'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용기란, 시간과 경험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시간으로서의 용기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꿈은 결코 대형 마트에 쌓여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즉, 꿈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꿈을 찾는 과정에서 더 좋은 꿈을 갖게 되기도 하고 처음 가졌던 꿈에 대한 허상을 깨치기도 합니다.

시간으로서의 용기란, 자신이 가진 희소한 재산인 시간을 들여서라도 자신의 꿈을 찾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자신을 꿈을 찾은 사람은 1년이라는 시간 만큼의 용기를 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은 몇 년 동안 꿈을 찾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찾지 못했다는 푸념을 듣습니다.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그 몇 년 간의 시간 동안 진정 꿈만을 찾았나요? 학교 다니랴, 연애 하랴, 타인이나 사회가 요구하는 여러 조건들을 쌓으랴,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보내지는 않았나요?

진정 자신의 꿈을 찾는데 사용한 시간이란, 과거에 해보고 싶었지만 할 시간이 없었던 것에 온전히 그 시간을 쏟는 시간입니다.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그것을 해 보아야겠다, 그래야 내가 진짜 이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 있겠다, 생각한 그 시간이 꿈을 찾는데 필요한 시간의 용기입니다. 이런 시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각자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 경험으로서의 용기입니다. 이것은 '내 꿈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꼭 이것은 해보아야겠다' 생각하는 용기입니다. 대학에 가지 않고 전국을 여행하며 글을 쓰는 청년이 있다고 합시다. 이 청년은 대학에 가 얻을 수 있는 경험보다 전국을 누비며 얻는 경험이 자신에게 더 큰 성취감과 빠르게 꿈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가벼운 용기로는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이지요.

만약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한 청년이 있다고 합시다. 이 청년은 음대를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경영학과에 갔고, 졸업을 한 뒤 좋은 기업에 취업했습니다. 이 청년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남이 바라는대로만 살아가는데 익숙해졌습니다.

물론 이 청년이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고 해서 음악가가 반드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그 경험에 빠져들 용기 자체가 없었습니다. 실패한 이후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것이죠.

결국 꿈은 시간과 경험이 주는 실패 사이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꽃과 같습니다. 한정된 시간과 그 시간 동안 겪을 수 있는 경험들이, 한 명의 꿈을 찾는데 비료가 되느냐 혹은 썩기만 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오물이 되느냐는, 용기를 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드러납니다.

무조건 용기를 내고, 시간을 투자하고 경험을 쌓는다고 해서 그것이 꿈을 찾고 이루는 방법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라는 것을 온전히 인식한 사람은 단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고, 꿈을 위한 시간과 휴식을 위한 시간을 정확히 구분할 것입니다. 경험에 있어서도 나쁜 경험과 좋은 경험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깊은 통찰을 갖도록 노력하기도 할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직접적인 경험과 간접적인 경험인 책이나 사람 간의 만남을 통해 통찰은 쌓이겠죠.

저는 당신의 꿈을 응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실패할 두려움을 안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시간을 들여, 자신의 생각과 몸을 들여 맞부딪힐 용기를 가지기를 응원합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꿈이 없다는 볼멘 소리를 내는 청춘들에게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용기는 이식되는 것도 아니며, 가지겠다 생각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누구나 그 안에 잠재되어 있을 뿐 그것을 있다고 인식하느냐, 인식하지 않고 무시하며 사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시간을 들이고, 경험을 쌓은 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이 실패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그 실패는 시간의 손실과 뼈아픈 상처를 남기겠지만, 그것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자신이 행했던 노력들에 후회가 없다면 다시 새살은 돋아 날 것이고 그 살은 다른 어떤 부위보다 강한 곳이 될 것입니다.

또 꿈을 찾았다고 해서, 꿈을 이루었다고 해서 꿈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측은히 여기지도 말고 낮잡아 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꿈은 언제나 과정입니다. 이루는 순간 끝나는 꿈이란 죽음 뿐입니다.

자신의 꿈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꿈과 그 과정 역시 존중받아야 합니다. 자기가 2시간의 노력을 들여 꿈을 찾았고, 다른 사람은 1시간의 노력을 들였다고 해서 나의 꿈이 다른 사람의 꿈보다 나은 것은 아닙니다. 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꿈을 갖기 위한 용기를 갖기를, 꿈을 찾고 이루기 위하여 내 시간을 온전히 바칠 용기를 갖기를, 경험함에 있어 통찰을 갖도록 많은 직간접 경험을 해보기를, 나의 꿈과 타인의 꿈을 비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꿈의 계층을 나누지 않기를,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나에게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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