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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9.28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2. 2016.05.18 이런 이야기
2016. 9. 28. 22:25 내 생각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애석하게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올라갈 때 시험을 본 마지막 세대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내가 살던 경남 마산지역에서는 2000년을 마지막으로 '연합고사'가 폐지되었고 그 이후에는 중학교 내신성적 만으로 고등학교에 배정받아 들어갔다. 나와 같은 시점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내신과 연합고사 모두가 반영되는, 걸쳐진- 다시 말하면 재수 없는 시절의 친구들이었다.


 

연합고사가 중학교 3학년 말에 있다 보니, 3의 시작은 고3만큼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비장한 느낌이 돌았다. 실질적으로 학교에서 배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다 배웠다. 그리고 중31년 간은 문제집을 교재로 하여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풀거나 한 달에 한 번 혹은 2주에 한 번씩 지속적으로 있는 사설 모의고사를 풀어나가는 압박의 연속이었다.


 

모의고사는 말 그대로 모의고사였다. 학교 성적에 반영되지도 또 고등학교를 들어가는 연합고사에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당시만 해도 체벌이 너무도 당연했으므로 모의고사 '점수 하락'은 곧 '매 타작'을 의미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교육에 대한 철학도 있으시고 합리적인 분이셨지만, 성적에 있어서는 엄격했다. 그래서인지 교실의 밀대 자루는 수시로 교체되었고, 새로운 밀대자루를 사야하는 몫은 그 밀대 자루로 맞다가 부러뜨린(?) 친구의 몫이었다.

 


맞기 싫다는 이유로, 같은 반 친구 몇몇(혹은 많은)은 모의고사를 치르는 중에도 컨닝을 했다. 애초에 모의고사인 만큼 선생님께서는 문제지를 나눠주신 후 크게 감독에 신경을 쓰시지 않읫고, 교실을 나가셨기에 컨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양심 뿐이었다. 하지만 중3의 친구들은 그 양심의 참으로 얕았고 또 동시에 습자지처럼 얇아 언제나 바닥이 보였고 또 쉽게 훼손되었다.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교실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되었다. 서로 답을 훔쳐보기에 바빴고, 그러던 사이에서도 답을 너무 많이 맞히게 되면 의심을 살 수 있으니 일부러 몇 문제씩은 틀려(?) 가며 시험이 끝난 후 몇 대를 맞을 것인지를 스스로 조율했다.

 


나는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컨닝을 하지는 않았다. 맞기 싫어서 라기 보다 굳이하기 싫었던 것이 가장 컸다. 어차피 모의고사였고, 점수가 떨어져 맞는다면 그것 또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그 당시에는 생각했다. 또 나름 목표한 고등학교가 있었기에, 실전처럼 열심히 해보고자 했던 마음도 있었다. 물론 모의고사는 '너무' 자주 있었지만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모의고사가 끝나면, 우리 교실뿐만 아니라 전체 3학년 교실이 장례식장이 된 듯 했다. 적막한 즈음, 선생님께서 답안지를 들고 들어오셔서 그것을 나눠주셨다. 자기 시험지를 자신이 메기면 틀린 것도 맞다고 할 수 있기에 무작위로 친구의 시험지를 메기도록 했다. 모든 답을 메기고 난 뒤, 자신의 것을 찾아든 아이들의 표정은 한 명도 밝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회초리(라고 적기에는 두꺼웠지만.. 사실은 몽둥이)를 우선 교탁에 올려놓으시고, 자신의 직전 모의고사 점수와 이번 모의고사 점수를 함께 종이에 적어 교탁 위에 올려놓으라 하셨다. 아이들은 자신의 사망선고를 하는 유령 의사처럼 하나씩 그 종이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이후는 상상할 수 있는 그대로다. 몇몇은 울며 맞으며 빌었고, 몇몇은 부들거리면서도 참았고, 극히 소수 몇몇은 고개를 숙인 채 이번에는 맞지 않았음을 안도했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모의고사를 치르고 맞기 싫다는 그 욕망으로, 맞는 것을 피하고 싶어 노력했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누구든 몇 대는 맞기 마련이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완벽히 벗어났다고 할 사람도 또 다른 실수를 했다. 그때에도 생각했고, 2016년 지금도 생각하는 것이 있다.


 

잠시의 고통을 잊기 위해 진정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망각하고 현재에만 매몰되어 버리면, 전체가 무너져 버린다.

 


그 무너져 버린 어떤 것이란, 중학생 시절의 우리에겐 고등학교 입시가 될 수도 있고, 연인에게 하는 사소한 거짓말이 불러일으킨 이별일 수도 있고, 크게는 정치인이 자신의 당리당략에 빠져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국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의 한국은, 중학교 3학년 당시의 어린 친구들보다 못한 듯하다. 누구나 당장의 비난과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정의감은 시궁창에, 연대의식은 쓰레기통에, 공감은 변기에 처박아 둔 듯 하다. 지금 이 시점이든, 아니면 과거든 미래든 그 상태 자체가 결과인 것은 없다. 거의 모든 것은 과정이다. 결과 같은 과정이 있고 과정인 것이 분명하지만 결과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하지만 몇몇 정치인들 혹은 관료들은 지금이 자신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인 양, 과정이 아닌 결과로서의 향유될 어떤 것인양 마음껏 그것을 누리고 있다. 그 근저에는 권력에 대한 확신뿐만 아니라 국민을 무시하는 아주 더러운 태도도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비리나 부정의 그리고 각자도생을 보면서,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없고 특히 그 피하고 싶은 대상이 국민의 비난이나 정권의 획득 실패나 비리 탄로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작금의 이런 망발들이 놓치고 있거나 또는 놓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권력이나 영예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실망이요 국가의 전체적인 질서를 무너뜨리게 만드는 것들이다.

 


선생님의 몽둥이보다 무서운 것은, 국민의 판단이다. 판단일 것이라 믿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장의 고통이나 비난을 피하고 싶은 그 치사하고 옹졸한 마음들에 들려주고 싶어 글을 쓴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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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8. 09:06 내 생각

이런 이야기가 떠오른 적 있다.


한 아이가 어머니가 자기 전에 몰래 먹는 하얀 통에 든 것을 몰래 빼오는데 성공했다. 어머니가 그것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기 까지는 하루라는 시간이 생겼고, 아이는 그것을 어머니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기 1시간 전에 몽땅 입에 털어넣을 것이라 다짐했다. 평소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불만도 없고, 자신이 자신을 둘러보아도 굳이 힘든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더욱 힘든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지나치게 사춘기스러운 고민을 맞딱뜨리게 되었고, 그 해답으로 찾은 것이 '의미 없다'라는 극단에 머무르게 되었다. 
아이는 하루라는 시간을 평소와는 다르게 쓰기로 한다. 다르게 쓴다고 해서 학교를 빠지거나 일탈을 즐기지는 않는다. 자신이 만약 무엇인가 특이한 일을하게 되면 그것은 자신의 삶에서 의미가 생기는 것이므로, 평소를 더욱 평소답게 보내고자 했다. 그날이 달라질 때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 뒤, 어머니의 퇴근 한 시간 전 뿐이어야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자기 전 일기장을 편다고 해도 적을 것라고는 날씨 정도에 지나지 않을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7시, 그럼 자신의 행동은 6시 정도에 실행하면 된다. 뒹굴거리다 빈둥거리다 보니 어느새 6시가 되어 있었다. 배는 고팠지만, 이 아이는 의미가 더욱 고팠다. 하얀 약통을 숨겨둔 곳에서 꺼내 와 물 한 잔과 함께 든다. 뚜껑을 열고 하얀 약을 한웅큼 꺼내서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입에 털어넣고 물을 벌컥벌컥 한 잔 가득 마신다. 자신의 방에 들어가 이불을 펴고, 조용히 누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졸립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무의미로부터 탈출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빠져 든 아이는 오히려 정신이 반짝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최초로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찾아서 한 어떤 결정적 행위인 탓이리라. 아이는 묘한 흥분과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께서 퇴근하고 돌아오신 것이다. 일찍 오신 걸까. 아니다. 시간은 7시를 가리키고 있고, 자신은 어떤 의미도 구하지 못했다. 잠시 설핏 들어다 싶다가도 깨기를 반복하며 생각만 한 시간을 열심히 했고,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나름 돌아볼 수 있었다는 의미만을 얻었을 뿐이다. 어머니께서 방문을 살짝 열어보시곤 '아들, 자니?'라고 나지막히 묻는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잠들어보려 노력했고, 어느샌가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8시. 잠이 깼다. 아이는 소변이 마려웠다. 참을 수 없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진한 노란색의 소변이었다. 거울을 보니 안그래도 어린 피부가 더 생기가 넘쳐보였다. 왜지? 왜 잠들지 않은거지? 거실로 나오니, 어머니가 저녁 먹으라며, 자는 거 같아서 깨우지 않았다 하신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하시는데. 
밤마다 먹는 비타민제가 든 통이 사라졌네.


아이는 활짝 웃었다. 저녁이 맛있어보였는지, 아니면 한 시간 잠든 동안 좋은 꿈을 꾸었는지, 그 사이 삶의 의미라도 찾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하루가 너무도 어이 없었지만 두고두고 떠올리면 재밌을 것 같아서인지.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이는, 활짝 웃었다. 다음에 돈을 벌면 어머니께 비타민이나 한 통 사드려야겠다며, 숟가락을 들고 잘먹겠습니다를 말하며 생각했다.

뭐 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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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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