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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5.23 "잘가"
  2. 2016.04.17 어리석은 질문
  3. 2013.07.01 목소리도 늙을까
2016. 5. 23. 02:51 카테고리 없음
"잘가"

어제 들어온 친구와 간신히 하루를 보냈을 뿐이다. 어느 바다에서 왔는지, 차에 실려 오는 동안 어지럽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어머니가 그립지는 않은지. 몇 가지의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것을 기록이라도 하듯 내 짧은 기억력 속에 담아두려했다. 하지만 이내 곧 잊어버리고 다시 몇 가지 질문을 반복했다. 내 반복된 질문이 귀찮아질만도 했는데 새로운 친구는,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히 대답해준다. 내가 질문을 잊은 것 같으면 내게 다시 질문을 하라며 다그치기 까지 한다. 그 친구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넓은 몸이 횟감이 되기 전까지 자신이 살아있음을 내 질문을 통해서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 아저씨가 뜰채를 들고 와 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 새로운 친구를 잡으려 하면, 이리저리 피하면서 "나는 남해에서 왔어!! 내 이름은 광어야!!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의 삶이 부러워!!" 외치며 뜰채에 실려 나간다. 파닥파닥. 몇 번 파닥이다 횟칼에 목이 잘리고는, 부끄러운 속살이 사람들이 먹기 좋게 잘려 내 머리 위 창가로 보이는 사람들의 테이블에 놓였다. 핏기 하나 없는 하얀 몸은 이름 한 글자 적혀 있지 않았고, 고작 '자연산'이나 '양식' 정도의 분류만 허락되었다. 내 헤어짐에 눈물을 흘려도 물 속에 있는 탓에 보이지도 않았다. 매번 잊지만 또 매번 헤어질 때 생각하지만, 다음에는 수조를 떠나가는 친구들에게 꼭 외쳐주고 싶다. "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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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골목으로 돌아들어오려 하면 횟집이 하나 있다. 그 횟집은 특이하게도 수조들 중 한 칸에 금붕어를 키우고 있다. 오며 가며 보는 길에 횟감 생선들은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채워지기도 하지만 금붕어는 여전한 모습이다. 먹지 못하는 금붕어를 먹을 수 있는 광어나 멍게 등 해산물 사이에 키우는 주인의 생각은 알지 못하지만, 금붕어와 (대표적인 횟감인) 광어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갈까 궁금해졌다. 그걸 글로 표현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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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속에 태어나, 사랑 속에 살다, 사랑 속에 죽는다. 나는 이 표현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힘들면서도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태도이자 노력이라 믿는다. 최근 우리 사회는 그 무엇보다 '사랑 속에 죽는다'라는 것이 너무 힘든 것이 되었다. 높은 자살률 뿐만 아니라 빈곤사 그리고 타인에 의한 살인까지. 죽음을 맞이하기 전의 사랑이 불가능했다면, 죽음 이후의 사랑이 담긴 애도와 재발 방지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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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수조 속의 금붕어와 광어는, 분리되어 있기에 서로의 죽음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람은 다르다. 같은 나라에 살고, 같은 시기에 산다. 자신이 사랑 속에 살고 죽고자 한다면 타인의 삶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고 개선시키려 해야 한다. 그게 사람다운 일이다. 사랑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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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인근에서 돌아가신 분의 애도와 사랑 속에 삶을 마감짓지 못한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 잘가. 잘가세요.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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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7. 20:13 내 생각

어리석은 질문


운전면허를 갓 따고 운전에 재미를 붙여나가고 있던 20살이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아버지로부터 운전을 하나씩 배웠기에, 말 그대도 실용적인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운전 면허 시험장 코스는, 떨어져가며 한 코스씩 한 코스씩 익혀 나갔다. 몇 번의 낙방 결과 운전면허를 손에 쥐게 되었으니 그 재미와 기쁨은 크디 컸다.


택시를 탈 일이 있었다.


운전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시기였던 만큼 매일 운전을 하시는 택시기사님은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하다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택시 기사님께, 20살의 천진난만함을 담아 물었다. 기사님께서는 이렇게 재미난 운전을 매일 하시니 참 좋으시겠어요. 기사님께서 나를 슬쩍 보시고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뭐든 처음에는 재밌는데, 그게 먹고 살 일이 되면 재밌지 않아요.


그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재미가 없어지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다들 힘들게 운전면허를 딴 만큼 이렇게 운전을 하는 것 자체가 재미가 없을리 없다는 일종의 근거 없는 확신도 들었다.


그러고 시간이 꽤 지나,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할 때 였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점심과 저녁 시간을 포함해 약 10시간을 운전을 해야하는 업무가 이어졌다. 졸음을 이기기 위해 아메리카노와 담배를 물고 살았던 당시였다. 서울의 구석구석과 경기도라는 것만 알고 있던 평택 등을 직접 왕복하며 이틀에 기름 한 통을 비우며 운전을 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운전이 재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해야했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내 생활비와 조금씩 모으는 저축을 위해 필요했다. 다른 재미난 일을 하는 것을 찾을 시간도, 여유도 없었고 밤만 되면 피곤해서 쓰러지기 일쑤였다. 운전은 재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고, 생계라는 항목 속에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다.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20살의 내가 택시기사님께 했던 질문은, 살면서 경험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지를 모르는 내가 던진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쉽게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때로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론 매우 쉬워보이기도 한다. 힘들어 보이는 일들도 많은 것은 당연하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에 사람들은,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길 원한다. 간접경험도 경험일 수 있지만, 실제로 겪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많은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 뿐이다.


경험을 직접적으로 하든, 간접적으로 하든 그 경험을 통해서 얻어야 할 것은 경험 뿐이면 안되지만, 결국 경험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험을 통해 타인의 경험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려해야 한다. 타인의 경험을 읽거나 들으며 나의 경험이 될 수도 있었을, 혹은 운 좋게 피할 수 있었던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20살 때, 운전에 재미를 느꼈던 나는, 택시 기사님의 삶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하지 못했다. 이후 운전을 하지 않다가 운전이 삶의 큰 부분으로 들어왔을 때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내가 바보 같고 어리석은 탓일 수 있겠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내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단지 경험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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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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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 00:50 카테고리 없음

목소리도 늙을까 2013.7.1


날짜를 적으려고 보니 벌써 7월이다. 2013년을 시작하는 마음가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고, 추운 겨울을 잊은 채 더운 여름의 한복판에서 '덥다'를 연신 주억거리고 있다. 계절의 변화만큼 사람이 변한다면, 사람은 그 형체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2013년의 반을 보낸 지금으로서 앞으로 남은 반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 스스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글 주제와 상관 없는 이야기를 몇 줄 적었다. 하지만 전혀 상관이 없지는 않다.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 즉 우리가 나이가 듦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배경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라는 표현을 누가 처음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오묘한 표현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책임져야하는 부분들이 많아지므로 '나이를 짊어진다'라거나, 이 생에서 쓸 수 있는 시간들이 점점 줄어드니 '나이를 흘려보냈다'가 아니라 나이를 먹는다라. 아마도 처음 이 말을 사용한 사람은 나이가 듦에 있어서, 또 사람이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 '먹음'에 관해서 강조를 했을 것이다.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욕을 먹기도 하고, 사랑을 먹기도 한다. 사람은 먹음으로서 혹은 마심으로서 사람의 존재를 형성하고 있기에 나이 역시 먹는 것으로 표현했지 않았나 싶다. 


나이가 드는 이유가, 세포의 노화 때문이라는 것은 생물학의 설명이다. 사실 사람의 세포는 일정 기간을 주기로 새롭게 태어나고 또 죽어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지속적으로 모습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눈에는 보지이 않지만 수많은 세포들이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탄생과 죽음 사이에 노화가 간섭을 한다. 태어나자 마자 세포는 자신이 몇 번 정도 태어나고 죽으면 더이상 다시 태어날 수 없는지를 알고 있다. 정확한 기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또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세포는 새롭게 태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자멸한다. 이런 원리로 우리는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세포가 늙어가는 것이면, 사람의 목소리는 세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에도 늙는 것일까? 


목소리가 늙었다는 말은 어폐가 있긴 하다. 목소리는 나이를 메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소리는 분명 늙는다. 어린이의 목소리와 변성기 즈음의 목소리는 다르고, 또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면 또 목소리가 달라진다. 미묘한 차이겠지만 어제의 목소리와 오늘의 목소리는 다르다. 목소리가 바뀌는 것은 성대의 세포가 늙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성대가 노화되니, 목소리가 늙는다' 라는 결론을 내리기는 싫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목소리가 늙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 늙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 늙기 시작하면 목소리가 늙는다. 어떤 사람은 젊은 시절의 목소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목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연령을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리고 목소리만을 듣고도 사람의 성격이나 살아온 과정을 알 수 있기도 하다. 그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하여 어떤 이야기를 했고,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척도이다. 생각이 늙는다는 것은, 지식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과 관계된 주변 상황에 대한 애정, 관심 혹은 배려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변 사람이나 사회에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가족에게도 애정이 없는 사람의 목소리는, 딱 그 정도로 매말라 있다. 목소리를 들려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목소리에서 관심이 생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주위 사람이나 가족, 사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고, 또 잘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좋은 목소리가 유지될 수 밖에 없다.


목소리가 좋다 나쁘다의 기준은, 사람들이 듣기 좋은 목소리라는 것이 기준이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목소리일 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기준은 존재한다. 그리고 아무리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매일 욕설이나 타인에 대한 비방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좋은 기술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에게 그 가치를 인정해 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좋은 목소리는 결국, 자신이 사람 혹은 사회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그 사람이 목소리를 가지고 주위 사람에 좋은 영향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의 증거이다. 


나는 목소리가 좋은가. 좋지 않다. 저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나는 내 목소리를 가지고 사람들에게나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기에 좋은 목소리라고는 할 수 없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에게 좋은 목소리라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들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에 그들에게 내 목소리로 하는 이야기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목소리도 늙을까. 


늙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의 목소리는 이미 늙었거나 늙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늙음'은 나이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밝혀두고자 한다. 10대 청소년도, 20대 청년들 사이에도 목소리가 늙은 사람이 있다. 분명히 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반대로 목소리가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다. 몇몇 아이돌 출신 가수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린 아이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목소리가 어린 이유는, 자신의 생활 반경 내에서 변화가 없이 주위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고도 살 수 있기에, 딱 어린 시절 그때 그대로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가 늙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린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도 자신의 주위에 대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신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리는지를 잘 생각해보자. 목소리가 좋다는 것이, 자신의 도구가 좋다는 이야기가 아닌 여러분이 하는 이야기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판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생물학적인 나이를 떠나, 배려-공감-애정을 기준으로 하는 목소리를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목소리에 대해서 내 생각을 적은 것이다. 선천적으로 특이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을 논외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특이하기에 또 소수이기에 무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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