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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6.12.21 “알바 시각표”
  2. 2016.11.28 절대값 취하기 (1)
  3. 2016.04.21 길어도 괜찮아
  4. 2014.02.15 좋은 책이나 영화란 (1)
  5. 2013.06.25 어떻게 적어야 하지?
2016. 12. 21. 00:50 내 생각

“알바 시각표” 


‘이러다가 분명, 또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받지 못 할거야. 어떻게 하지? 내가 얼마만큼 일을 했는지, 시각표를 적어놔야겠다.’ 


2004년 겨울, 아직 11월임에도 더 이상 추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추위가 이어졌다. 내가 일했던 주유소는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에 세워져 있어 바다와 상당히 가까웠다. 바다는 다른 건물들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바다의 비린 냄새와 함께 차가운 겨울 바람은 주유소 곳곳을 파고 들었다. 나는 몇 번이고 주유소 소장님께 아르바이트를 위한 대피장소, 그러니까 주유소에 들어가면 흔히 보이는 조그마한 부스를 하나 사서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벌벌 떨며 손님을 기다려야만 했다.


10월에 시작한 주유소 주유원 아르바이트도 이제 손에 익을 무렵, 10월 달의 급여를 처음 받았을 때 생각했다. ‘내가 일한 시간보다 적은 금액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시간을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라고 정해두긴 했지만, 매번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손님들의 차에 기름을 넣는 일이 많았고, 추가 근무에 대한 것은 으레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추가 근무에 대한 급여를 달라고 해도 소장님은 가끔 저녁을 사주는 것으로 몇 일 간의 추가근무에 대한 급여를 지불하는 것이라 여기시는 듯 했다. 


11월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집에 있던 A4 용지 한 장에 11월의 달력을 한 장 그려갔다. 토, 일요일도 없이 일을 했으므로 11월 한 달의 달력은 딱 내가 일을 할 날을 의미했다. 그리고 달력 위에 내 이름을 적어 소장님께 매우 친절한 목소리로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하며 드렸다. 


“소장님, 제가 이런 걸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이번 달 말에 알바비 계산하실 때 편하게 하시라구요.” 


소장님은 그 종이를 받아 드시더니, ‘이게 뭘까?’ 하는 눈빛으로 내가 내민 종이와 내 얼굴을 몇 번 번갈아 보셨다. 그리고 이윽고 “그래, 내가 일일이 못 챙길 수도 있으니까 월말에 다 적으면 나한테 다시 보여줘.”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소장님께서 화를 내시거나 혹은 내게 지난 달 급료가 적었냐고 따져 물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내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아마도 지난 한 달 간 내 근무 중, 주유 실수도 없고 또 청소나 단골 관리 등을 솔선하여 하는 모습들을 보시며 칭찬을 하셨던 것을 떠올리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날부터 퇴근하기 전 내가 몇 시에 출근을 했고 또 퇴근을 했는지를 정확히 계산해 표에 적어 넣기 시작했다. 월말이 되면, 총 몇 시간을 근무했는지를 모두 더한 값을 적어서 소장님께 드렸고 그렇게 나는 내가 일한 정확한 시간에 맞는 시급을 받았다. 그 당시 내가 한 달을 꼬박 일하고 받은 돈은 약 80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표는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왔을 때도, 같은 표를 만들어 올 것을 소장님께서 요구했고 그것을 적어 채워줄 것을 요구했다.) 


최근 대기업의 한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생의 시간을 쪼개고 뭉개는 형식으로 약 4만 명이 넘는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84억에 달하는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것이 뉴스가 되었다. 깊은 화가 났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이 더러운 옛말을 아직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기업이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몇몇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식으로 어딘가에 취업하기 전, 아르바이트는 간접적으로 사회를 배우고 또 자신의 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이지 않냐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지금 현재의 한국에서는 아르바이트는 결코 젊은 사람만이 하는 것도 아닐 뿐 더러, 젊은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그것은 더욱 보호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찬란한 시절의 가치인 ‘젊음’이라는 시간을 써서 최저시급을 받아가며 일을 하는 것은 그것이 경험이 되기 때문도 아니고, 사회를 배우기 위해서도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위해 단기적으로 나마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 따위가 아니다. 삶의 유지에 필요한 것은 경험이 아니라, 돈이다. 


봉사는, ‘돈을 벌지 않는 일’이 아니다. 돈이 아닌 또 다른 가치를 벌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봉사다. 그렇기에 결코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을 소비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마치 ‘봉사’나 ‘의무’와 같이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아르바이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자신의 시간을 들이는 모든 경제관계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스스로가 원하지 않은 것을 해달라며 요청하곤 그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결코 서로에게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자신이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임에도,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설명하진 못해도 느낄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글을 정리하며, 일본에서 유학했을 때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한다. 당시 여자친구가 없었던 나는 일본인 친구들 중 한 명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녀에게 호감을 표시하기 전, 한국과 일본에 연애에는 다른 점이 있을까 해서 일본인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일본인 여자친구와 가까워질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우선 밥을 같이 먹어라. 그리고 밥을 같이 먹을 정도의 사이가 되면, 술을 함께 마셔라. 그러면 그 여자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고백을 해도 된다’ 따위의 어이 없는 대답을 내게 해주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나는, 왜 그런 순서로 이어지냐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는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밥을 함께 먹자고 한 이야기를 듣고 같이 밥을 먹고, 또 술을 마실 정도라면 그 여자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들일 만큼.’ 


나는 시간이 소중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것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소중하기에 그 사람이 가진 시간 역시 소중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사람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두고 있을까? 한 명의 아르바이트가 어떤 일에서 그만둔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언제나 대체가 가능한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아니면 그 한 명이 소중하고 또 관계에 있어서도 유지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궁금해진다. 궁금해지기도 전에 우리 사회는 그 답을 이미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틀린 답을 정답이라고 우기며. 


한 명의 아르바이트라 할지라도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시간은 결코 스스로가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지켜 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 모두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람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지켜주기 위하여 발전해 온 역사가 우리 인류의 역사이자 자유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아, 너무 멀리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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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8. 12:21 내 생각

절대값 취하기”  20161128

 

언제 처음 배웠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학시간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당연히 그렇겠지. 수학에서 밖에 쓰지 않는 말이니까. , 아니구나. 대학에 들어와서 경제학을 배웠을 때도 사용하긴 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숫자와 관련된 것에 절대값을 쓰는 것이겠구나. 절대값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세로로 두 줄을 긋는 것인데, 두 세로줄 사이에 +(양수, 플러스)가 들어가든 –(음수, 마이너스)가 들어가든 관계없이 그 결과가 양수로 나오게 하는 것을 두고 절대값을 취한다라고 한다. 예를 들어, 예를 들어보려 했는데 절대값 부호를 컴퓨터로 어떻게 찾지? 근의 공식은 찾았다, 이게 필요한 게 아니지. 이거?││ 이게 맞는 듯 하군. 다시 예를 들면, │-3│이라고 하면, 이것은 +3과 같게 된다. │+3│도 결과는 양수 3이긴 마찬가지인데, 어차피 양수(+)인 것에 절대값을 취할 필요는 없겠지? 하여튼 절대값을 취하게 되면 그 안에 있는 숫자가 음수라도 양수가 된다는 게 중요하다! 중고등학생 여러분, 이것만 기억하면 수학 시험에서 한 문제는 맞출 수 있습니다!

 

갑자기 왜 절대값 이야기를 하는걸까?

 

우리 삶에도 절대값이 필요하다. 각자의 삶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좋지 않은 일도 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좋은 일이라면, 헤어짐은 슬픈 일이다. 목표로 했던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면,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등등등. 더욱 많은 예들을 들 수 있겠지만 일일이 예를 드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정말 많은 예나 사건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예를 들기보다 전체적으로 좋은 일을 양수(+, 플러스)라고 하고, 좋지 않은 일을 음수(-, 마이너스)라고 해볼 수 있다면 삶에 왜 절대값을 취할 필요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 전체 삶을 보면, 좋지 않았던 일도 좋은 일이 된다. 다만 그 좋지 않은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 지금 당장 힘들어죽겠는데,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과연 좋은 일이나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마구 샘솟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러한 하나하나의 좋지 않았던 일들이 결코 음수(-, 마이너스)로만 남아있는 일은 없다. 생각해보자. 1년 전에 나를 슬프게 한 일이 뭐였지? 2년 전에 나를 괴롭힌 일이 뭐였지? 시간이 지난 뒤에까지도 자신을 괴롭혔던 고통이나 슬픔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시간이 흘렀기에 잊은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있지만, 좋은 경험이든 좋지 않은 경험이든 그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2014 4 16일의 세월호 사건과 같은 국가적 재난의 경우에는, 국민들이 잊지 않기로 함으로써 +(양수, 플러스)가 되었다. 국가적 재난을 떠나 개인적인 슬픔 혹은 뼈아픈 경험만을 본다면, 자신도 모르게 절대값을 취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삶에도 절대값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수학과 경제학에서만 절대값을 배우고 적용한다는 건 아무래도 좀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학 공부나 경제학 공부가 차지하는 시간의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하지만 삶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랬듯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 많은 경험을 하고, 감정을 갖는다.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 중 잊고 싶은 기억,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에 ││(절대값)을 씌어보자. 당장 절대값을 취하는 것이 어렵다면,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절대값을 취해 양수(+, 플러스)로 만들어보자.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관계 없이, 자신이 유발했든 유발하지 않았든 관계없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과 경험들에 대해 한 번 멋드러지게, “좋았어! 절대값을 취해보자!”라고 하는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누구나 알다시피 좋은 일과 경험은 적다. 좋지 않은 일과 경험은 징그럽게도 많다. 우리 삶에도 절대값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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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17.06.04 12:43  Addr  Edit/Del  Reply

    개인적으로 좋았던 일을 +/ 좋지 않았던 일을-로 생각 하셨네요.
    수학 에서 절댓값 은 단지 -를 +로 바꿔 주는게 아닙니다. 수의 절대적인 양,거리를 보여주는거죠.
    삶에서 절댓값 을 씌운다면 좋지않았던 일이 좋은 일이 되는게 아니라. 그냥 본질 그자체. 감정을 뺀 상태가 되야 할것 같아요.
    그냥 벌어진 이벤트. 선형적 시간 개념에서 발생한 그 상태의 이벤트.
    절댓값 은 그런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 4. 21. 00:14 내 생각

길어도 괜찮아.”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은, 2009년 일본에 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페이스북이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꽤 많은 친구들이 가입을 했고, 서로의 일상과 가벼운 인사를 담벼락에 남기는 도구로서 좋은 도구라 여겨졌다. 당시의 페이스북은 지금의 페이스북과는 상당히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면은 훨씬 조잡했고 채팅 기능은 있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이렇게 광고가 많지 않았다.

 

벌써 7년 째 페이스북을 하고 있다.

 

뭔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한 서비스를 사용한다는게 놀랍기도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나에게 있어 약 1년 반 전부터 페이스북 사용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특별한 변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페이스북에 어머니께서 가입을 하신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몇 해 전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셨으면서도 페이스북은 하시지 않으셨다. 아마 하시는 방법을 모르셨을 것이다. 1년 반 전 고향에 내려간 김에 어머니의 스마트폰에 페이스북을 깔아드렸다. 집에 노트북도 한 대 내려보내드렸는데, 노트북보다는 폰이 쓰시기 편하실 듯 했다.

 

그리고 나는 페이스북에서 더욱착한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께서 가입하시기 전에는, 술을 마신 뒤 다소 우울한 내용이나 특정한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정치적으로 날카로운 글을 마구 싸적어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가입 이후, 나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불편해졌을까? 답답해졌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물리적 거리가 먼 어머니와 더욱 심리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적을 때에도 읽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며 적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어머니께서는 페이스북을 하시면서, 작은 아들이 서울에서 어떻게 하며 살고 있는지를 직접 보실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아실 수 있게 되었다. 또 작은 아들의 글을 꼭 읽으시며 응원의 한 마디나 농담 한 마디까지 던져주시게 되었다.

 

그리고 또 나는, 내 글의 팬을 얻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적은 글은 꼭 읽으신다 하셨다.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으시곤 나에게 어머니의 생각을 말씀해주신다. ‘정말 좋은 글이다.’ ‘이번 글은 좀 이해가 잘 안된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시며 내게 조언해주신다. 어머니는 내 글의 팬이다.

 

얼마 전, A4 용지 두 장 분량의 글을 페이스북에 적었다. 어머니께서 그 글을 다 읽으셨다며, 이야기를 이으셨다. “매일 올라오는 너의 글이 갑자기 올라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게 된다.”하신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글을 매일 적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 기다리지 마세요. 어머니께서 말씀 이으시며, “글이 길어서 읽기 힘들지만, 끝까지 다 읽을테니 계속 글 적어줘.” 내가 되묻는다. 글이 길어요? 그럼 좀 짧게 적을까요? 어머니 대답하시길,

 

길어도 괜찮아.”

 

되도록 길게 적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 길어지면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 글 역시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머니께서는 괜찮다 하신다. 길어도 읽어주시는 마음이 고맙고 또 한편으로 미안하다.

 

페이스북을 한 지 7. 지금은 단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훔쳐볼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꽤 멀리 살고 있는 나의 가족에게 혹은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누군가 나의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지금, 2016, 32살의 권현우라는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목소리가 되었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기쁘다. 읽어주셔서 고맙다. 누구보다 어머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들은 오늘도 하루 열심히 살았고, 내일도 오늘 보다 나은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할겁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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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15. 17:36 카테고리 없음

좋은 책이나 영화란. 2014.2.15 (글을 적은 날짜는 그 이전) 


좋은 책이나 영화란, 멋진 문장으로 적힌 책도 아니고 화려한 화면으로 가득 채워진 영화도 아니다. 나에게 있어 좋은 책이나 영화란, 내가 무엇인가를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표현에서 내가 글을 쓰고 싶어지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인가 대답하고 싶다. 이 문장 뒤에, 이 장면 속에 내가 이런 말을 이 사람들에게 해줬으면 좋겠다 라 생각이 나는 그런 느낌.

 

무엇인가를 쓰고 싶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내가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해서 일수도 있고 음악으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림이나 음악에 재능이 없어서 가 아니라 단지 내가 글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무엇인가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으면서, 같이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읽은 책을 통해서는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언젠가 내 글만으로 이뤄진 책을 적게 된다면 사람들은 그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한 마음. 세상을 바꾼다거나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그런 거창한 이야기 말고 단지 누군가와 함께 생각을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딱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확신할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없는 세상이다. 자신의 상식이 세상의 상식과 맞지 않다면 과감히 자신의 상식을 선택해도 문제될 것이 없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상식이 다른 사람의 상식과 다르고,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궁금해 하는 것 또한 가능한 세상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삶에 연결되어 있고 또 그것을 확인해보고 싶어 한다. 그런 생각들은 지금 기술로 표현되거나 거리로 표현되거나 또는 새로운 만남을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해보고 또 이야기 나눠보고자 한 시대는 없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는 없었다고 확신한다.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것. 이것 역시도 누군가와의 연결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하지 못한 생각이면 그 생각을 받아들이고 싶고 또 반대로 내 생각은 어떤지 받아들일 의향이 있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 수단으로 나는 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큰 사건에 대한 사소한 농담일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감히, 전망을 해볼 수도 있고 가끔은 시크하게 가끔은 대담하게 누군가에게 비판을 가해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며 나는 그 생각을 글로 옮기려 한다.

 

자판 소리가 땅을 울릴 듯이 크게 나는 내 방 한구석에 앉아 담배 한 대를 꼬나 물고 글을 쓰면서도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글을 적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누군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 이렇게 길게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글이 공개되든 공개되지 않든 관계는 없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글이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해서 내 글을 그 사람들에게 읽히는 폭력을 행사하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누군가가 억지로 글을 읽게 만든다면 얼굴에 침을 탁, 뱉고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읽는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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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포 2014.02.19 06:32 신고  Addr  Edit/Del  Reply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3. 6. 25. 19:20 카테고리 없음

어떻게 적어야 하지?. 2013.6.25. 


하루에 한 번씩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로 마음을 먹고, 가끔 빼먹긴 하지만 꾸준히 글을 적는다. 매일 글 주제를 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부여잡고 한참을 앉아 있다보면 주제 하나는 나오는 법이다. 


글을 적다보니, 여러가지 요구사항이 들어온다. 글이 너무 길다느니, 글이 너무 딱딱하다느니, 극단적이라느니..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글의 길이가 길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읽는 사람을 염두해두고 글을 적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긴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은 내탓이 아니다. 글 자체를 못읽는 것을 난독증이라고 하던데, 그중에서도 요즘 사람들은 긴 글 자체를 혐호하는 난독증에 꽤 걸린 것 같다. 나는 일종의 치료사가 되고 싶다. 


글이 딱딱하다고 하니, 부드럽게 적어보려고 하지만, 더이상 부드러워질 수도 없다. 사실, 더 딱딱하게 적을수도 없기도 하다. 내가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논리학이나 철학의 내용을 적기에는 내공이 부족하고,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해서 글을 적는게 대부분인데 그런 글들에게 더이상 쉬워지기를 바라는 것은, 차라리 읽기를 쓰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극단적이라는 평가는, 달게 받아들이겠다. 내 생각의 편향이 가끔 심해질 때가 있는데 그때 내 머리 속에서 나의 균형을 잡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기에 내가 적는 글들을 공개하고 다른 이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내 생각이 극단적인 것을 그대로 두는 사람이다. 나에게 극단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라는 존재와 내 글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네가 어떻게 되든, 나는 니 글에 대해서 아무말하지 않겠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섭다. 그래서 최대한 내 생각의 극단은 표현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평론이나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분야를 선택해서 글을 쓸 때는, 이런 극단을 회피하려는 노력이 다소 방해가 되기도 한다. 마음껏 내지르고 싶은 순간에도, 읽는 사람들이 이 것을 소설이라고 생각해주지 않기에 나는 표현의 날개를 반쯤만 펼친다. 소설가로서의 지위가 그래서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fiction에 담을 수 있는 상상력의 무한함을 갖고 싶다. 


오늘의 결론은, 내 스타일을 정립해야 한다 정도로 끝날 수 있겠다. 내가 적은 글이니 내가 읽으면, 내 느낌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는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극단적이든, 딱딱하든, 길게 적든 내 글이 내 글다울 수 있도록 나는 더욱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보고 많이 써야할 것이다. 나는 내 글을 쓰고 싶다. 다른 사람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글이 아니라, 내가 내 이름을 걸고 쓴 글 말이다. 


그럼에도, 글로 표현하는게 생각하는 것의 반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메모장에게만 미안할 뿐이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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