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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7.01.23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2. 2016.04.18 티 없는 순수함
  3. 2016.03.28 마음 둘 곳
  4. 2015.04.12 나에게 바란다_5 (1)
  5. 2014.06.03 몇 가지 단상들
  6. 2013.12.11 의자를 기다리며
2017. 1. 23. 20:03 내 생각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2017.01.23.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가장 자신의 아이를 망치는 것이 무엇인가, 를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

 

?

 

아이는 부모의 저 말을 듣고, 기뻤을 것이다, 아마 처음에는. 왜냐하면 머리가 좋다는 말은 분명 칭찬이고 부모로부터 인정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노력을 안한다는 이 말. 노력이야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당장은 칭찬 받은 것에 좋은 감정만을 느끼기로 한다. 물론 아주 특수한 경우이지만,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노력을 시작할지도 모르지만, 주변에 잘 보이지는 않는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책이 한 때 유행한 적이 있다. 책 내용의 핵심이란, 수족관의 돌고래나 고래를 훈련을 시킬 때 곡예의 난이도를 높여가며 그것을 성공시킬 때 마다 먹이를 주면 돌고래나 고래가 좋아하더라, 하는 내용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맥락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내 생각은,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한다. 왜냐하면 돌고래나 고래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안타깝게도 몇 가지 곡예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만약, 잘생긴 연예인, 예를 들어 장동건이나 원빈이나 공유 등등 하도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든 잘생긴 남자연예인들에게 잘생겼어요!’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자신도 모르는 바 아니었을 것이고, 처음 듣는 내용 아닐 것이며, 앞으로도 들을 말이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고맙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칭찬은 분명 고마운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중에 사랑해, 좋아해, 월급 들어왔다만큼 잘했네!’라는 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고마운 일이 아닌 경우가 있다.

 

앞서 말한 이야기에서, 아이들에게 머리가 좋다라거나, 잘생긴 남자연예인에게 잘생겼다고 하거나, 마찬가지로 예쁜 여자연예인에게 예뻐요라는 말들, 마냥 고맙기만 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연예인을 예로 들긴 했지만, 우리 일상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한테, ‘수학을 참 잘하는구나라는 첫 칭찬은 분명 그 학생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칭찬을 평소에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학생들이 수두룩할 터인데, 한 번의 칭찬은 분명 그 학생의 운명을 바꿀 만큼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할 것이다. 근데, 만약, 수학을 잘하는 학생에게 계속 수학을 잘한다는 칭찬을 해도 그 학생은 자신이 처음 느꼈던 어떤 보람이나 기쁜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칭찬에도 면역이 생기거나 점점 더 강한 자극적인 칭찬을 바라지 않을까?

 

칭찬은 고맙지만, 다른 칭찬을 해줘요.

 

가능하다면, 칭찬을 할 때 새로운 분야를 칭찬해주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분야란, 같은 수학이라도 내용이나 진도에 따라 다르게 칭찬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수학이 아닌 새로운 과목에 대한 칭찬을 해줄 수도 있다. 학생의 예를 들어 유치해 보일 수 있으니 어른의 이야기로 옮겨보자.

 

뭐 별 다른 거 있겠나. 성인이라고.

 

어른이든 청소년이든 아이든, 다만, 한 가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지 않을까 하고. 칭찬을 받았다고 머무르지 말자. 칭찬은 기쁜 것이지만, 칭찬에도 단계가 있고 발전이 있고 또 성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서 칭찬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분명 비판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칭찬 받으며 또 동시에 비판 받으며 성장한다.

 

새로운이라는 말에, 기존의 것들을 모두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더욱 잘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노력으로 단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새롭지 아니할까.

 

추신 같지 않은 추신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칭찬을 하려거든, 이보세요, 칭찬하시려는 분들. 칭찬을 하시려거든 말입니다. 관심을 깊게 그리고 오래 가지셔야 되요. 순간순간의 칭찬은 순간순간 소비되고 맙니다. 하지만 칭찬을 해줄 대상이나, 마찬가지로 비판을 할 대상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켜보세요. 쉽게 칭찬해준 사람은 쉽게 비난 하더라구요. 비판 말고, 비난이요.

 

타인을 깊이 있게 칭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도 성장하는 계기를 얻기도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감화(感化)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칭찬은 고맙지만,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그때 칭찬해 주세요. 그리고 혹시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거나,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불성실하다면 따끔히 비판해주세요. 여러분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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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8. 00:47 내 생각

"티 없는 순수함"

 

20대 초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고백했다. 단 한 번 만난 사람에게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고, 몇 해를 걸쳐 만난 사람에게도 그랬다.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기보다 그렇지 않으면 가슴 속 어딘가가 아팠다. 마음은 결코 물질이 아니라는 말이 거짓이라 확신했던 순간들이 이어졌다.

 

어찌 보면 고백을 남발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단 한 번의 고백에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적은 없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진심의 순간을 빨리 느낀 것 뿐이었다. 확신에 찼던 내 감정과 진심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버렸지만, '고백하지 말걸' 이라는 후회는 결코 들지 않았다.

 

30대가 되어, 사랑 고백에 대한 달콤한 이야기로 회상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10 여 년 전 감정들에 섞인 이물질을- 당시에는 보지 못한- 지금에서야 확실히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물질.

 

그 이물질은, 내가 고백했던 대상들에 대한 무한한 이상화였다. 이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은 적이 없기를 바랬고 슬픈 영화를 보아도 그 슬픔이 마음에 남아있지 않기를 바랬다. 힘든 일을 마주함에 있어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굳건한 마음이 언제나 있길 바랬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이물질이었다. 그리고 앞선 잘못된 생각과 함께 가장 내 마음에 큰 이물질로 남았던 것은 "내가 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더럽힐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아무리 깨끗한 옷을 입고 있어도, 손을 깨끗이 씻어도 나와의 관계나 감정으로 인해 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고, 그 사람의 마음을 더럽힐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생각은 흔한 말인 자괴감과는 달랐다. ‘상처받기 싫어라는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과 동시에 나의 단점을 이 사람이 알게 되면 안되는데.’ 하는 불안함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그래서 차일 때, 안도감이 들었다.

 

누군가 또 한 명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되었다는 생각과 나 역시 상처로부터 지켜졌다는 생각이었다. 틀린 생각이었고, 이물질이었다. 이 세상 누구도 티 없는 순수함을 갖고 있거나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도 순수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살아오면서 겪어야했던 어려움과 느껴야했던 상처들을 품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 당연한 사실들을 품어내고 보살피고 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에게 상처 받은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그 상처를 그대로 두면서도 더욱 넓은 마음으로 상처를 작은 것으로 여길 수 있었다. 실수를 저질렀던 이들은 실수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지 않으려는 고난한 노력을 해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라는 큰 틀 속에 고이 담아두었던 것이다.

 

사람을 만나 그림자를 보았다. 그 그림자의 색깔은 검지 않고 어두웠다. 새까만 것이 아니라 회색과 하얀색도 섞여보였다. 다양한 색을 띠고 있는 얼굴과 옷, 신발에 이어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지만 그림자에도 밝음은 보였고, 그림자는 있다가도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은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티 없이 순수한 사람은 없다.

 

내 결론이다. 자신의 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이왕 때가 묻었으니 더욱 때를 묻히며 살자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상처를 가졌음에도 혹은 자신의 마음이나 성격, 태도 등에 부정적인 것이 있음에도 그것 또한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싫어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어두운 면을 보이고 싶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보이게 된 어두운 면을 미안해 하지만,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에 자신이 결코 하찮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마냥 좋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있다. ‘티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티 없이 사람이 되려하기 보다 티 있어도 그 티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 상대방의 티를 품어내는 사람, 더욱 많은 티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좋아하거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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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8. 19:21 내 생각

"마음 둘 곳"


사람은 살면서 두 가지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듯 하다. 하나는, 마음 둘 곳을 찾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


마음 둘 곳을 찾는 것이란 별거 아닌 듯 하지만 꽤 어렵다. 가족이 있어도 그 안에서 편한 마음이란 생각보다 많은 조건이 필요하고, 또 서로 배려를 하지 않으면 너무 가깝기에 쉽게 불편한 곳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연애란,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만나 '내 마음 둘 사람'을 만나는 과정인 듯 하다. 그 결론이 가족이 됐든 그저 스처지나가는 인연이 되었든 연애를 하는 중에는 다행히 마음 둘 곳을 찾은 셈이다. 하지만 역시, 배려는 필요하다.


마음 둘 곳이 꼭 가족이나 연인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내 마음이 편한 어딘가는 있다. 그 대상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공간이 될 수도 있고 또 때에 따라 혼자 있을 때도 있는 법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은 뭘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굳이 철학적인 어떤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도 사람은 사람 속에 산다. 주변 사람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하는 걱정은, 태어나자 마자 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이것은 결과보다 항상 과정이 중요한 노력이다.


누구에게나 마음 둘 곳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없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면 좋겠지만 사람은 다들 좋아하는 것이 다르니 이 역시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 가지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될 듯 하다. 좋은 사람이 되어 마음 둘 곳에서 편암함을 느끼는 것, 이것이 어찌 보면 행복의 가장 쉬운 공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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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12. 01:32 내 생각

"오늘도 한 걸음을 열심히 걸었다."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이면 자신이 하는 공부나 향후 합격 이후의 삶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나누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진 못했지만, 신림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험 공부를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자신은 그 시험에 합격한 사람인 양 행동하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험 합격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상상하고 기대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자기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좋은 태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합격이라는 지상명제를 얻기 이전까지 고시생은 고시생에 불과합니다. 고시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곧 구성원이 될 것이라 믿는 정부나 법조계에 대한 우호적인 인식은 오히려 공부할 때에 가져야 하는 비판의식이나 문제의식을 쉽게 잠식해 버리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위험성 뿐만 아니라, 만약 자신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을 경우 가질 수 밖에 없는 박탈감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주변 고시생들의 합격 소식을 듣기라도 한다면 축하의 마음보다, 자책과 후회의 마음이 더욱 크게 들기 마련입니다.

과연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만 그럴까요?

최근에는 취업을 준비하거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역시 그렇습니다. 대기업에 들어가야겠다, 마음 먹은 순간부터 자신은 이미 대기업에 속한 사람이 된 양 행동합니다. 예비창업자들 역시도 창업을 위한 준비도 채 하기도 전에 창업 이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를 낙관적으로 예상합니다.

취업 준비생, 예비창업자 역시 취업과 창업 전 가장 필요한 생각들(예를 들면, 이 직업과 자신의 가치관이 부합하는지, 이 사업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은 쉽게 무시하게 됩니다.

고시든, 취업이든, 창업이든 무엇 하나 쉽지 않다 보니 준비하는 시점에서 요구되는 생각들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나친 몰입은 합격을 한 이우에는 오히려 가질 수 없는, 자신만의 색깔이나 생각 정립의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있으니 경계해주길 바라는 마음만은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 글을 통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기대감과 실망감의 간극에서 느낄 수 있는 자기 훼손입니다. 준비를 하는 순간부터 이미 된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실패를 하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원하는 것은 남도 원합니다. 고시든, 취업-창업이든 다른 모든 분야에서든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 준비한다는 것 만으로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보장은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과도한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다는 것입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언제나 실망은 기대보다 더욱 크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실망 이후에 찾아오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자기 훼손입니다.

실패의 원인이 자기 자신의 노력 부족이나 어제의 휴식으로 인한 나태함, 또 때론 신이 자신에게 준 시련과 고난이라며 자기 자신을 한 없이 낮고 부끄러운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 훼손은 오히려 나을지 모릅니다. 앞서 말한 자기 훼손은 협의(狹意)의 자기 훼손입니다. 광의(廣意)의 자기 훼손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가족의 경제 상황이나 주변 친구들의 방황, 연인의 존재 등)까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가시키게 됩니다.

협의든, 광의든 자기 훼손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결국 자신이 가졌던 과도한 기대 심리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시나 취업-창업 뿐만 아니라 연인 관계의 파탄의 주요 원인이 되는 '네가 그런 사람일지 몰랐어'라는 표현 역시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기 훼손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기대감을 낮추면 됩니다. 기대감을 낮춘다는 것은, 시험 합격 이후나 취업 이후, 창업 대박 이후에 대한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낙관적인 기대를 유지하되 당장 그 기대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루 아침에 삶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은, 사고나 생사(生死) 밖에 없습니다.

먼 미래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철저한 준비를 해야합니다.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의 기대란, 자신이 오늘 이룰 수 있는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 책을 하루 7 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오늘은 책을 10 페이지 읽겠다는 목표를 잡고 그것을 이루고 난 뒤의 기대를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이고, 취업, 창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고 그 단계는 꽤나 사소한 목표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큰 기대를 한 번에 잃었을 때 느끼는 실망감을 느끼기 보다, 작은 기대를 조금씩 쌓아가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는 사랑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투덜대고 잘 챙겨주지도 않던 사람이, 한 번의 큰 이벤트를 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과거의 모든 잘못이나 섭섭함이 일거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 연인에 대한 사소하지지만 소중한 기대들을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큰 기대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될 것입니다. 기나긴 다툼 끝의 다이아몬드 보다 오랫동안 주고 받은 따뜻한 편지 끝에 금 반지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기대는 자기도 모르게 커져만 갑니다. 겉잡을 수 없이 커진 기대감이 자신의 삶을 더욱 가치있게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근거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근거들은 이루어졌을 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실패의 가능성이 '0'이라 단언할 수 없는 상황들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실패를 예상해 기대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실패할래야 할 수 없는, 또는 실패를 하더라도 충분히 수긍가능한 기대를 조금씩 하며 쌓아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제의 밥 한 끼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처럼, 조금씩 꾸준히 기대를 채워나가야 합니다. 이런 태도는 자기 훼손을 막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태도입니다.

한 걸음입니다.

높은 산을 오르든, 고시를 공부하든, 취업이나 창업을 준비하든 그것을 향해 가는 발걸음은 한 걸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기대는 결과의 산물(産物)이 아니라 과정의 산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루하루를 기대에 대한 성취로 삼으세요.

기대를 버리지 말되 기대의 단계를 나누어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기대에 대한 노력을 다하길, 로마가 하루에 완성되지 않았듯 우리네 삶도, 꿈도, 사랑도 역시 그럴 것이기에 꾸준히 노력하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만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생각들을 너무 쉽게 '성취' 이후 자신의 모습에 몰입하여 놓치지 말기를, 자기 훼손을 야기할 수 있는 지나친 기대감을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으로 삼지 말길, ‪#‎나에게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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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망망 2016.03.07 23:06  Addr  Edit/Del  Reply

    좋은글잘읽었습니다~정말많이깨닫고갑니다.

2014. 6. 3. 03:45 카테고리 없음

몇 가지 단상들 2014.06.03


# 1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비난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쉽게 예를 들면 자기가 다이어트 한다고 해서 다이어트 하지 않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말. 각자 삶의 방식이 다르고 사정도 다르다. 

# 2
비싼 가죽끈으로 스스로 목을 매 죽는 사람이 있고, 값싼 나이롱 끈으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많이 배우고 양질의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적게 배우고 좋지 못한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남을 위해 지식을 쓰는 사람도 있다. 고학력자의 망언들을 읽으면서 생각함.

# 3
시간과 인연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 4
담배는 예비 자살자들의 예행연습 도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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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1. 23:16 카테고리 없음

의자를 기다리며 2013.12.11.


지하철이 개통된지가 10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최초의 지하철은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때 개통된 지하철 노선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그 당시의 지하철은 아마 매우 잘 만들어진 발명품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이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subway라고 부르니 어쨌든 땅 밑으로 다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정확히 '땅 밑으로 다니는 철도'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밑으로 다니는 길'이라고 부르는 미묘한 차이일 뿐일 것이다. 땅 밑으로 지나다니는 철도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밑으로 다니는 길'이라고 부르는게 사람들에게 다소 높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땅 밑에 길이 있다는 것은 과거에는 무엇인가 숨길 것이 있는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간첩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쨋든, 처음 지하철을 만들고자 한 사람은 사람에게 지하의 세계를 알려주는 것을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을 봐서 알다시피, 이 글은 지하철의 역사를 적고자 하는 글은 아니다. 


특정할 수 없는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는 '철도'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문화로서 '철도', '기차' 혹은 '지하철'에 대해서 연구를 하거나 동호회를 만들기도 한다지만 우리나라에서 철도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공채 시험을 통과한 사람 뿐일지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을 한다. 동호회를 만들거나 하나의 취미로 철도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아마도 '의자'는 생소한 주제였을 것이다. 기차가 가지는 풍미는 그것이 가지는 직진성과 곡선성 그리고 그것이 뿜어내는 소리나 흐름이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 속에 사람들이 타서 앉아 있는 '의자'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아무래도 그것이 나에게 진정한 편안함을 주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침 저녁으로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니, 지하철 안에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부분의 시간은 내가 들고 다니는 책을 읽는 척 하거나 사람들을 구경한다. 책을 읽는 척 한다고 표현한 것은, 이동시간을 나름대로 의미있게 보내고자 하는 절박한 노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은 사실 눈에 쉽게 들어오지는 않고, 오히려 책 장 넘어 살아 숨쉬는 책, 즉 사람에게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람이 많은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거의 대부분의 자리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앉은 사람보다 서있는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서 있는 사람들은 앉은 사람들의 앞에 서거나 아예 자리를 포기하고 문쪽으로 비켜나 서있다. 문쪽으로 비켜 서 있는 사람은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한 셈이다. 누군가 앉은 자리 앞에 서서 있는 사람들은 으레히 그렇듯 자기 앞에 앉은 사람이 언제 내릴까를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지하철을 타자 마자 자신이 앞에 서 있으려고 했던 의자에 앉았던 사람이 일어나 준다면, 그때의 기쁨은 그 날 하루의 피로를 물리치거나 아침이라면 충분히 자지 못한 잠이 달아날 만큼 흥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 조그만 공간에 자신의 몸뚱아리를 구겨 넣으면서도 '앉아있음'이 얼마나 편한 일인지 매번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의자를 기다리며' 사람들은 자신의 앞에 앉은 사람이 언제 일어날까를 생각한다. 한 정거장 지나서 일어나주었으면.. 내가 빨리 저 자리에 앉았으면..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바로 옆사람이 서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 일어난다면, 아, 내가 저기 서있을 걸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나는 이 후회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잘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운이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운이 따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운을 만든 사람이 대부분이고 보통 사람들은 어떤 운이 주어졌을 때 그 운을 제대로 잡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 그리고 운이 지나쳐 버리면 자신은 그 운을 가지지 못했다고 후회하거나 남을 부러워하기 바쁘다. 


지하철 내에서도 그렇다. 


한참을 기다리고 서 있는데, 금방 막 지하철에 탄 사람이 누군가 비켜준 의자에 앉는 모습을 본다면, 앉게 되는 그 사람이 부러워진다. 그리고 나서 생각한다. 아, 나는 왜 운이 따르지 않지...


운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을 일어서게 만들 방법은 없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가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만큼 나이가 들었거나, 임신을 하였거나 서 있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는 장애를 가졌다면 '지하철에서 앉을 수 있는 운'은 언제나 느낄 수 있을 것이지만, 최소한 나는 아직 젊고 임신을 할 수도 없고 장애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나로 한정해서 말하자면, 내가 노력해서 얻는 운이라는 것은 지하철 내에서는 없다.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운이 아니니, 지하철에서나 일상 생활에서,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어떤 중대한 고비를 넘고 있을 때 그때마다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안타까할 필요는 없다. 나보다 늦게 어떤 일을 시작한 사람이 운을 잘 만나 성공할 수도 있고, 우리 역시도 그런 운은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우리 앞에 앉아 있는 그 사람도 그 전에 서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람도 앉으면서 운을 획득했고 또 그 운은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사라질지 모른다. 


우리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운과 정확히 똑같다. 


누군가 성공했다는 것을 보면서, 운이 좋다고 이야기를 듣는 그 사람도 그 전에는 운이 없었을지 모르고,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보다 더욱 성공하게 되면 그 자리를 비켜줘야 할 지도 모른다. 아니면 운이 따른 사람이든, 성공한 사람이든 스스로 운을 포기하고 성공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가끔 그런 사람을 우리는 존경하기도 한다. 


지하철을 타면서 내가 의자에 앉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화를 내거나 부러워하거나 내 운을 탓하거나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앞의 사람이 언제 내리는지 모르고 또 그 사람이 언제 그 자리에 앉았는지도 모른다. 내 앞의 사람이나 내 옆에 나보다 먼저 앉게 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특별히 운이 좋은 것도 아니고, 우리 역시도 그렇게 운이 나쁜 것도 아니다. 운은 우연히 찾아오기에 운인 것이지,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운명이 아닌 약속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지하철에서 있는 시간이 조금 되다보니, 의자를 보면서 생각한 것들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은 하나의 운일 수 있으나 우리가 그 운이 없다고 해서 기분 나빠할 것은 전혀 없다. 이것은 지하철 의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우리보다 먼저 성공했다고 해서 그 성공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의자에 앉지 않아도 그 시간이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성공하지 않고 또 남들보기에 편해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고 즐기면서 산다면 그 또한 또 다른 운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의자를 기다리며, 운을 탓하지 말고 앉아있든 서 있든 자신의 시간을 즐길 수 있기를...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잠이 덜 깬 모습과 피곤한 모습의 서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p.s  이 글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발행되는 책의 플롯을 따랐다. 처음에는 지식을 풀어놓다가 뒤로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에 교훈을 주려는 그 플롯 말이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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