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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1.30 명예
  2. 2013.07.18 정치의 세대
2016. 11. 30. 01:13 내 생각

명예”   20161130

 

두 명의 이름이 등장했었다.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중국의 옛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은 친구였다. 한 명의 친구가 다른 한 친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마치며 말하길,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달라.” 부탁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친구는, 자살했다. 왜 자살했을까.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친구의 비밀을 영원히 지켜주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이야기. 대단한 우정이지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친구의 마지막 부탁, 즉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그 말에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생각해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명예? 친구에게 자신이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자신은 명예를 더렵혀졌다 여겼던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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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광복 이후 우리 역사에 몇 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그 대통령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통령은 단 한 명이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서거 당시 나는 일본의 사이타마현의 한 맨션 안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교환학생 중이었고, 어머니로부터의 인터넷 전화에 잠이 깼고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누워있던 내 몸은 일으켜세워졌다. 누군가 일으켜 세운 듯 했다. 티비를 틀었고, 일본 뉴스에서도 그 사람의 서거 소식이 특종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 후 몇 일 간, 애먼 줄담배만 태웠다. 왜 그런 선택을 하였을까. 친인척 비리가 있다는 검찰의 발표. 그리고 검찰 소환.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 검찰 소환일 뿐이었다. 민주화운동을 거쳐 국회의원 그리고 대통령까지. 독재 시대를 끝내려는 노력과 다음 시대를 새롭게 만들려는 노력을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해왔던 인물. 아마 그는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통감(痛感)했을 것이다. 자신의 집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 바위에 서서 죽음으로써 더럽혀진 명예를 회복하고 살아남아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명예가 무엇인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명예가 무엇인지를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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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6년 지금. ‘명예로운 퇴진이라는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혼란을 막고 안정적인 방법을 찾는다는 그 사람의 사전에는 분명 두 글자가 없다. 나폴레옹의 사전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으로 유명하듯 그 사람에게는 제목으로 적은 이 두 글자, “명예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명예란 무엇일까. 지키고자 한다면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누구의 명예와 누구의 명예가 대립한다면 무엇을 지켜야할까. 국가의 명예와 개인의 명예가 충돌한다면 무엇을 지켜야 할까. 그 사람에게는 지킬 것이 없으니 충돌할 것도 없는 것일까. 하지만 누군가의 명예는 분명 훼손당하고 있다. 다름 아닌 국민이다. 국민의 명예, 국가의 명예 그리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명예는 난자(亂刺)당하고 조리돌림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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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요.”라고 말했다는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와네트. 하지만 사료에서는 그녀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 한다. 오스트리아 출생.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일한 여제이자 전쟁을 통해 자신의 왕위를 지켜낸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외로웠을 것이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했었던 적이었던 프랑스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시집을 가야했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자신의 남편과 함께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성공을 거둔다. 시민들의 명예를 위해, 시민들의 빵을 위해, 시민들의 권리를 위해 두 사람은 명예를 빼앗겼고 그것은 역사로 남았다. 시민혁명의 성공의 역사로, 시민들의 명예가 지켜졌던 첫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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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 어떤 명예가 남아있을까. 남아 있다면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그것을 갖지 못한 단 한 사람에게 어떤 책임을 지도록 할 수 있을까. 세대가 변하고 시대가 흘러도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 그동안 살아있는 우리는, 고통스럽더라도 지켜내야 한다. 한 명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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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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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8. 02:20 카테고리 없음

정치의 세대 2013.7.18. 


지금의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세대를 나는, '정치의 세대'라고 부르고 싶다. 한 세대를 결정 짓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향유했던 문화의 코드나 기술의 발전 등으로 상징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세대는, 감히 '정치'가 그 핵심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 이들은 '정치의 세대'인가. 


그 시작을 따지고 들자면, 2003년의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이 그 시작이라 하겠다.


그 기준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으로 잡는 이유는, 김 전 대통령 시기에는 '정치'보다는 '경제 회복'이라는 가치가 더욱 더 목전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1997년 IMF 금융 위기 이후 1998년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IMF 총재였던 깡드쉬의 국가적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다. 깡드쉬가 인정하였듯이, 아르헨티나에 적용되었던 조정 절차를 경제적 토질이 전혀 다른 한국에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한국은 '고용 유연화'와 '공공부문의 축소'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시험장이 되었다. 1997년을 기준으로 전국의 교육대학 입학 컷은 하늘을 찌를 듯이 오르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청년들의 열망은 커졌다. 그리고 기업들은  자기 자본의 비율을 줄이고, 해외의 자본 유치나 투자를 받아 성장의 계기로 삼게 된다. 그때 수많은 은행들이 외국 자본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론스타' 사건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5년은 '국민경제의 재건'이라는 목표 아래, 수많은 국민들의 다시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게 된 기간이었기에 '정치'가 그 중심에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으로 '정치의 세대'는 정치가 자신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관계 없이, 경남 김해 출신이자, 상고 출신의 변호사가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것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던 순간에는, 기존과는 다른 정치력을 보이는 그에게 '놀람'과 '기대'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가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 기대는, 탄핵 의결로 인해서 무너지게 된다. 이때부터 정치의 세대는 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정치'라는 키워드에 맞추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반대 집회는, 당시 국회 내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선거 개입'이라는 명분으로 탄핵을 주도하기는 햇지만 국민들의 여론이, 이토록 강하게 반발을 하게 될지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면 헌번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있어 나름의 자신감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국민 일반의 인식과 여론에 다르지 않았다. 그 결과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자리에 앉게 된다.


2004년 탄핵반대 집회에 직접 참여해보았거나, 고등학생 혹은 중학생이었던 수많은 정치의 세대들은, 교과서에만 나오던 '탄핵'이라는 말이 실제 정치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에 우선 놀라움을 느꼈다. 대통령이라는 존재를, 국회라는 또 다른 헌법기관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탄핵반대 집회 등을 통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에 시민의 주도적 발언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기존의 민주화 운동이나 학생 운동과는 다른 양상을 가진,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정치에 대해서 요구하는 것이 간명했다. 민주화 운동 역시 대한민국의 민주화라는 거국적 가치를 열망했을 것이나 그 세력과 범위가 너무나 넓었고 그에 대응하는 국가의 공권력이 '악'으로 상정되었기에 '선'과 '악'의 싸움이었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반대 집회는,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그 자리에 돌려놓으라' 라는 간단명료한 요구를 정치권에 했던 것이다. 이 요구는 헌법을 해석하는 헌법재판소에서 의해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정치의 세대는, 정치에 대해서 '요구'와 '대답'으로 그 인식의 틀을 형성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동안, 정치의 세대들은 그가 했던 여러 정책들에 대해서 자신의 목소리와 입장들을 정리하게 된다. 예를 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한-미 FTA에 대해서 자신이 이 협정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결정해야만 했고,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파병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자신의 입장을 정하는 것을 넘어서, 한-미 FTA 이후,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이어져야만 했고,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서는 한국이 국제 사회 속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비판을 넘어서, 끊임없이 자신의 삶 속으로 파도처럼 밀려오는 여러 이슈들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판단하기를 정치가 바랬던 것이다. 그것이 정치의 세대가 형성되는 뿌리가 되었다. 


노 전 대통령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은 '경제'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때의 경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제'와는 다르다. 김 전 대통령의 경제는 '다시 잘 먹고 살기'라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제는 '더 잘 먹고 살기'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국민들은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경제 침체, 그리고 미국으로의 수출 둔화와 유럽 통합 이후의 지역주의 형성의 위기에 대해서, 정확히는 몰랐더라도 무엇인가 지금의 한국은 경제적 위기일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그런 인식의 결과로, 유권자가 가진 한 표의 표를 이용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선출했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적이지 못했다. 한반도의 중간을 흐르는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공약은, 4대강의 홍수와 범람을 막는 치수 계획으로 바뀌었다. 4대강 정책을 위해 사용된 예산은 23조에 이르지만, 4대강을 통해서 한국의 경제 상황이 어느 정도 나아졌는지에 대한 체감 정도는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억울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로 인해, 미국의 주택시장의 몰락과 증권시장의 피폐로 인해 자금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고 한국 역시 그런 영향에서 충분히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경제 위기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핑계일 수 있겠으나, 필자는 아무리 계산을 해보아도 양적 완화 정책의 일부라고 하는 '4대강 정책'에 대해서는 그 돈을 거기에 썼어야 했나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런 경제 정책은, 다시 잘 살아보고 싶다는 국민들의 열망이었고 그 열망의 결과는 실망으로 돌아왔지만, 이때 정치의 세대는 자신의 삶을 결정 짓는 것이 정치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2008년 집권 이후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직면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역사에 남을 '명박산성'을 지음으로써 그 불씨가 청와대에까지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당시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는, 20대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30대 직장인을 포함해 중학생, 고등학생 심지어 아이를 둔 엄마들까지 전국 각지의 집회 장소에 모이게 만들었다. 그들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했던 이유는 한가지였다. '안전한 먹거리를 먹고 싶다'. 이런 요구 역시 간명했다. 마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 집회의 요구처럼 명료했다. 그럼에도 소고기는 수입이 되었고, 국민들은 그 책임의 일부를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물었고 그 나머지를 '더 잘살아보겠다'라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정치적 인식에 물었다. 


그리고 지금,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물러난 이후 박근혜 신 정부가 새롭게 성립된지 약 5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대선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는 이미 확보되어 있고, 그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은, '나는 모른다'로 끝을 맺었다. 언론은 국정원에 대한 보도를 하지 않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것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 보수 신문에서는 '국정원'이라는 용어보다 'NLL'이라는 용어가 더욱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본인은,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 글을 적은 것이 아니다. 본인의 정치적 성향을 굳이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서, 중도 우파 혹은 우파라고 해두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 '우파'는 한국 사회 속에서 일컫어지는 우파가 아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우파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수호'와 '정의의 확립' 그리고 '질서의 회복'이다. 이와 같은 우파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지만 이런 노력의 과정에서,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느낌을 받은 이후, 본인의 주위를 둘러보니 '정치의 세대'가 있었다. 정치의 세대는 자신들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정치에 깊게 개입해 있다. 심지어 지금 취업이 되지 않은 수많은 대졸 미취업자들이 양산되는 이유 역시, 정치에서 그 문제가 발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원인에 대해서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다. 


정치의 세대에 대한 명확한 개념 규정이나, 연령을 집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의 세대라고 명명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지금의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연령대에게 가장 절실하고 또 쉽게 감정적으로 될 수 있을 정도로 감수성을 지닌 문제는 '정치'라고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이상 젊은 사람은 진보적이다 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더욱 보장하고 확보하게 되었지만 그에 대응하는 정치적 세력의 확보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의 세대는, 회한과 공분 혹은 인정과 묵인 속에서 살아가겠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밟히긴 하지만 뽑히지는 않는 정치의 새싹이 커가고 있다. 그것의 색깔이 파란 색인가 빨간 색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세에 최연소 국회의원이 된 이후, 약 20년 동안 젊은 세대가 정치의 주도권을 잡았던 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정치의 세대가 꿈꾸는 미래의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을 놓쳐버리거나, 그 요구와 열망을 애써 무시한다면 감히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극우파시즘을 형성하는 '일간베스트'부터, 좌파 학생운동의 맥을 잇는 '다함께'가 공존하고 있는 시대에서, 우리 사회가 귀를 기울여야 할 세대는 '정치의 세대'가 아닐까 한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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