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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7.01.23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2. 2016.04.11 따라하기
  3. 2016.03.30 100쪽
  4. 2015.01.15 현우의500자_36
  5. 2013.10.05 서술할 수 있음이..
  6. 2013.06.26 서점에 가자!
2017. 1. 23. 20:03 내 생각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2017.01.23.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가장 자신의 아이를 망치는 것이 무엇인가, 를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

 

?

 

아이는 부모의 저 말을 듣고, 기뻤을 것이다, 아마 처음에는. 왜냐하면 머리가 좋다는 말은 분명 칭찬이고 부모로부터 인정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노력을 안한다는 이 말. 노력이야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당장은 칭찬 받은 것에 좋은 감정만을 느끼기로 한다. 물론 아주 특수한 경우이지만,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노력을 시작할지도 모르지만, 주변에 잘 보이지는 않는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책이 한 때 유행한 적이 있다. 책 내용의 핵심이란, 수족관의 돌고래나 고래를 훈련을 시킬 때 곡예의 난이도를 높여가며 그것을 성공시킬 때 마다 먹이를 주면 돌고래나 고래가 좋아하더라, 하는 내용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맥락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내 생각은,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한다. 왜냐하면 돌고래나 고래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안타깝게도 몇 가지 곡예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만약, 잘생긴 연예인, 예를 들어 장동건이나 원빈이나 공유 등등 하도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든 잘생긴 남자연예인들에게 잘생겼어요!’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자신도 모르는 바 아니었을 것이고, 처음 듣는 내용 아닐 것이며, 앞으로도 들을 말이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고맙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칭찬은 분명 고마운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중에 사랑해, 좋아해, 월급 들어왔다만큼 잘했네!’라는 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고마운 일이 아닌 경우가 있다.

 

앞서 말한 이야기에서, 아이들에게 머리가 좋다라거나, 잘생긴 남자연예인에게 잘생겼다고 하거나, 마찬가지로 예쁜 여자연예인에게 예뻐요라는 말들, 마냥 고맙기만 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연예인을 예로 들긴 했지만, 우리 일상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한테, ‘수학을 참 잘하는구나라는 첫 칭찬은 분명 그 학생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칭찬을 평소에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학생들이 수두룩할 터인데, 한 번의 칭찬은 분명 그 학생의 운명을 바꿀 만큼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할 것이다. 근데, 만약, 수학을 잘하는 학생에게 계속 수학을 잘한다는 칭찬을 해도 그 학생은 자신이 처음 느꼈던 어떤 보람이나 기쁜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칭찬에도 면역이 생기거나 점점 더 강한 자극적인 칭찬을 바라지 않을까?

 

칭찬은 고맙지만, 다른 칭찬을 해줘요.

 

가능하다면, 칭찬을 할 때 새로운 분야를 칭찬해주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분야란, 같은 수학이라도 내용이나 진도에 따라 다르게 칭찬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수학이 아닌 새로운 과목에 대한 칭찬을 해줄 수도 있다. 학생의 예를 들어 유치해 보일 수 있으니 어른의 이야기로 옮겨보자.

 

뭐 별 다른 거 있겠나. 성인이라고.

 

어른이든 청소년이든 아이든, 다만, 한 가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지 않을까 하고. 칭찬을 받았다고 머무르지 말자. 칭찬은 기쁜 것이지만, 칭찬에도 단계가 있고 발전이 있고 또 성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서 칭찬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분명 비판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칭찬 받으며 또 동시에 비판 받으며 성장한다.

 

새로운이라는 말에, 기존의 것들을 모두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더욱 잘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노력으로 단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새롭지 아니할까.

 

추신 같지 않은 추신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칭찬을 하려거든, 이보세요, 칭찬하시려는 분들. 칭찬을 하시려거든 말입니다. 관심을 깊게 그리고 오래 가지셔야 되요. 순간순간의 칭찬은 순간순간 소비되고 맙니다. 하지만 칭찬을 해줄 대상이나, 마찬가지로 비판을 할 대상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켜보세요. 쉽게 칭찬해준 사람은 쉽게 비난 하더라구요. 비판 말고, 비난이요.

 

타인을 깊이 있게 칭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도 성장하는 계기를 얻기도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감화(感化)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칭찬은 고맙지만,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그때 칭찬해 주세요. 그리고 혹시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거나,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불성실하다면 따끔히 비판해주세요. 여러분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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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1. 17:01 내 생각

“따라하기”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학교 근처에 라면집이 있었다. 그 가게 이름이 토라(虎). 호랑이라는 이름의 라면집에는 호랑이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저녁을 먹기 위해 꼭 이 라면집을 들렀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학생은 곱빼기를 무료로 드립니다.’라는 아름다운 문구에 홀린 탓이다.


라면 가게는 작았다. ‘일본 라면 가게’라고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좁고 기다란 가게였다. 가게 안에는 부부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셨지만 추억은 미화되는 법이니-가 계셨다. 라면과 볶음밥 세트를 주문하며, ‘오오모리데(곱배기로)’라 말하며 누가 봐도 학생인 듯 보이도록 가방을 벗어보였다.


라면을 기다리는 동안 하는 일이란, 주인아저씨가 라면의 면을 삶다가 한 가닥 끄집어내어 제대로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후루룩 먹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손님들이 어떻게 먹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일본 생활에 익숙해졌을 때는 가게의 손님들을 보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라면을 먹는지 꼭 확인해야 했다.


따라 하는 것.


우리나라와 일본은 사는 방식이 닮은 듯하지만 달랐다. 일본 사람들의 관습과 습관이 있었고, 그것은 외국인인 내가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었지만 지킬 수 있다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라면을 먹는 방법도 다른 사람들을 보며 배웠다. 사실 라면 뿐만 아니었다.


일본어도 그랬다. 다른 것도 그랬지만.


처음 한 학기, 4개월 내도록 따라만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귀로는 유심이 듣고 눈으로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입술을 보았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부모의 말과 입술을 보는 것과 같았다. 일본어뿐만 아니었다. 그릇을 세 손가락으로만 드는 법, 인사를 일본식 예의에 맞게 하는 법, 수업시간에 공부를 하는 척 하며 딴 짓을 하는 법 등을 배웠다. 그리고 나아가 일본 문화로 사고하는 법까지 배웠다. 사고하는 법이라 거창하게 적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생활을 하는 것 정도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따라 하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가는 곳이나 겪는 것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따라한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탓에 따라 했다. 하지만 따라 하기에는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 다름 아닌 ‘제대로 따라 하기’다. 누군가를 따라하려 하면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다 따라 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구를 따라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따라하는 사람을 따라하면 된다. 예를 들어,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이나 전통 문화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따라하면 된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사회 내에서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갑자기 따라 하기?


다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가는 곳이나 겪는 것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따라 한다. 앞서 적은 문장과 같은 문장이다. 하지만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다.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럴 때는 무엇을 하면 될까.


책을 읽으면 된다. (지겨운 결론이지만, 언제나 참인 결론인 듯 싶다.) 고전을 인간 문명의 정수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이상하게 생긴 할아버지, 할머니, 형, 누나, 오빠, 언니들이 우리보다 과거에 살면서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해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걸 또 이렇게 해보니까 해결되더라 – 하는 것을 친절히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살았고 또 죽어간 뛰어난 혹은 이상한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그 중에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적어 남긴 사람들의 책이 고전이다. 이런 고전에는 따라할 것들이 가득 차 있다.


몇 해 전 한국사회에서는 ‘힐링’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힘들어하는 수많은 ‘아프니까’ 청춘남녀 뿐만 아니라 몇 번을 흔들렸는지도’ 모를 어른들 모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위로는 받았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해답이나 시도해 볼만한 도전들을 찾지는 못했다. 다들 처음 겪는 일이었을 고민들과 어려움에 대해서, ‘괜찮다’라는 말 한 마디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괜찮다’ 한 마디 해주면 된다는 걸 알았으니 ‘따라한’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결론이 이상하다. 나도 안다.


일본 라면 먹다가 따라하라고 하다가 고전 읽으라니. 결국 나도 이 글을 적으면서, 누군가 나를 따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거나 힘들 때, 순간의 감정이 언짢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위로를 받기보다 나 이전의 살았던 사람들이 남겨둔 뼈아픈 충고나 그 속에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것이니 한 번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그런 마음. 따라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방법을 찾고 있을 것이고 그 방법을 또 누군가 따라할 것이다. 그렇게 고전은 이어지고 삶은 새로워진다. 행복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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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30. 12:28 내 생각

"100쪽"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고전이라는 이름 말고 또 다르게 불리기도 한다. '누구나 제목은 들어보았지만,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드문 책'. 맞는 말인 듯 하면서도 또 누군가 지속적으로 사서 읽으니까 출판되는 것일테니 반쯤 맞는 말이라고 해두어도 될 것 같다.


나 역시도 제목을 들어본 고전을 사서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세 번 이상 어떤 책의 제목을 듣게 되면 그 책은 꼭 읽는 편인데,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세 번은 훌쩍 넘게 들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고전들을 죽 읽다보니, 한 가지 법칙이 자연스레 생겼다. 그것은 바로 '100쪽 까지만 읽자' 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100쪽 까지만 읽고 읽기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고전은 시간적으로 오래된 책들이기도 하고, 또 다양한 국가에서 적힌 책들인 만큼 시대나 배경을 이해하기 힘든 측면들이 많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정말 어려운 책들을 만나도 우선 '100쪽' 까지만 읽자고 마음 먹는다.


보통 책이 300쪽 전후라고 한다면 100쪽은 3분의 1은 읽은 셈이다. 500쪽의 책이라 할지라도 100쪽은 5분의 1.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다.


왜 꼭 100쪽 까지 일까?


100쪽을 지나서야 고전들은 이제 진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100쪽이 되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어떤 배경인지, 어떤 인물들이 나오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이러한 설명이 100쪽 정도가 되면 거의 마치게 되고, 내가 그때까지 책을 다시 책장에 꽂지 않는다면 이제 재미가 생긴다. 또 100쪽까지 읽었는데 억울해서라도 더 읽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고전에서(고전 소설이라 한정지어도 되겠다) 이 법칙은 지켜졌다. 100쪽을 넘게 읽은 책들은 그 결말까지 읽었고, 또 한 권의 책이 나의 책이 될 수 있었다.


책이 이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20년이 된 책도 있고, 50년 된 책도 있다. 이런 책과 같은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역시도 고전과 같이 100쪽의 법칙이 적용되는 듯 하다.


처음 만났는데, 뿅! 하고 마음이 가거나 '이 사람과는 무조건 친해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친구는,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이라고 영화 '친구'에서는 설명해주고 있듯이 친구는 고전의 전형이라 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 나아가 그 사람의 진실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100쪽이 필요하다. 시간적으로 몇 년이라던지 물리적으로 몇 번 만난다는 것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 있는 태도가 최근에 들어서는 더욱 필요해진 듯 하다.


읽다가 포기하는 책도 있고, 다 읽고 나서 혹평을 남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책에 대한,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의 자세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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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5. 02:11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36


여간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도 아니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탓도 아니다. 단지 손에 잡히는 어떤 것을 들고 조용히 그것과 대면을 하는 것일 뿐임에도 여간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필요하다면 말을 해도 된다. 눈에 들어오는 것을 읽어내려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어색하고 그 시도 자체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러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지겹고도 또 지겨운 독서다. 과거에는 시간을 보낼 일이 없어 책을 읽거나 썼다고 하는 낯 뜨거운 이야기는, 사랑방의 할아버지 담배 곰방대처럼 낡았다. 눈을 뜨면 우리를 부르는 0과 1의 합창 속에서, 그 사이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두꺼운 책 한 권은 마음의 불편함을 준다. 죄책감을 준다. 하지만 괜찮다. 기다려준다. 이천 년 동안 기다린 친구도 있다. 우정이 기다림을 뜻한다면 책은 좋은 친구임에는 틀림이 없다. 찾아주기만 하면 된다. 같이 이야기 나누어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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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5. 04:47 카테고리 없음

서술할 수 있음이.. 2013.10.5. 


최근 글이 뜸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 개인의 사정 변화가 있엇던 것은 아니지만, 심경의 변화가 다소 있었다고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변명일 듯하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매일 똑같을 순 없듯이 원하는 것만 이루면서 살 수도 없는 것이란 것을, 하루 하루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런 중에도, 한 가지 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독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어느샌가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알량한 지식인 짓거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본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사정이지, 독서를 하는 내 사정은 아니다. 책을 읽는 것이 '꼴보기' 싫은 행동이라면, 그 행동은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더욱 꼴보기 싫게 만드는 나름의 복수일지도 모르겠다. 

독서를 하는 것이 취미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취미란에 독서를 적는 것이란, 취미란에 '밥 먹기' 또는 '숨 쉬기'라고 적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 이것이 내 개인적인 지론이다. 지론이랄꺼 까지 없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책을 읽고 더 깊은 생각을 하며 자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기를 바라는 사소하고도 소심한 바람이지만, 항상 그 효과는 봄바람에 민들레요, 가을날의 오리떼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해야하는 일이 쌓여있고, 적어야 하는 글들이 쌓여 있음에도, 또 치뤄야 하는 시험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나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우선, 나는 글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쓸 만큼의 글 실력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읽기를 지속할 뿐이다. 마치 소가 여물이 몇 번째 위에 들어있는지도 모른채 끊임없이 우선 씹어 삼키는 것처럼 나는 글을, 책을 그렇게 꾸역꾸역 내 머리 속과 가슴 속에 쟁여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고기가 될지 우유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두 번째로, 도피다. 책을 읽으면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다. 책 속의 상황이 주는 여러가지 우여곡절이나 반전 등에 내 스스로를 이입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유희는 없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수는 있으나, 영화는 우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없이 거의 모든 것이 시각과 청각으로 주어져 있으므로 나의 역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천만 관객을 넘기도 하는가 보다. 음악은, 개인적으로 문외한인지라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감정을 가져야하는지 정확한 판단이나 감정의 기준이 생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음악은 도둑이 담장 넘듯이 훌쩍훌쩍 지나다니고만 있다. 반면 책은 그렇지 않다. 책은, 주인공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작가가 묘사하는 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떤 음악이 흐를 것이고 주인공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를 상상해보면 그것은 오감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 내 꿈까지 지배해버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보다 더 좋은 도피처는 없다. 

하지만 영원한 도피처는 없다. 도피할 수 있었던 것이면, 그것은 해결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해결할 수 없는 막연함에 가끔 홀로 눈물짓기도 하고, 또 혼자 마시는 술에 취해보기도 한다. 결국 책은 도피의 시간을 주었지만 도피처를 제공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내야 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나는 나의 글을 쓰고 싶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하나의 권리를 얻은 것이다. 내가 내 이야기를 적거나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적거나 내가 상상한 이야기를 적는 권리는 나는 글을 읽음으로써 얻게 되었다. 그 이전의 한글을 깨우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 권리에 대해서 나는 만끽하려한다. 그렇기에 나는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읽어야만 한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서술할 수 있음에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죽더라도 남는 것은, 내 이름이 아니라 내 글이고 내 생각일 것이다. 나는 내 글을 통해서 사람들이 이 시대를 읽고, 이 사회를 이해하고 그리고 미래를 예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내가 글을 쓰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하고 또 영원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누구도 나에게 시킨 적 없는 이 일을 나는 꾸준히 해나가야만 한다. 

상황이 바뀌고, 내가 글을 쓸 수 없는 시대가 오더라도 나는 글을 써야만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이 아니라 할지라도 나는 글을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시점에는 글을 읽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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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6. 02:28 카테고리 없음

서점에 가자! 2013.6.26. 



다들, 책을 어디서 사시나요? 책을 사시긴 하시는거죠? 그리고 사신 책을 읽으시기는 하시는거죠? 물론 사시기도 하고, 읽으시기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보다 나은 부분이 없는 저도 읽는데요 뭘. 전 한글을 깨치고 책을 중학교 3학년 이전까지 거의 읽지 않다가 중3때 처음 읽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라는 책에 흠뻑 빠져서 책이라는 것의 재미를 알게 된 이후, 책을 조금씩이라고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는 서점 방문이었습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책을 사곤 합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하거니와 시중의 서점에서 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저는, 서점에 가서 책을 읽으실 것을 권유드립니다.



지금도 수도서울의 번화가에 가시면 서점이 꼭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서점들에 가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거나, 사곤 합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서점에 가는 것일까요? 서점에 가면 무엇이 좋길래 제가 서점을 가시라고 권유하는 것일까요?



서점에 가면, 우선 책이 많습니다. 책이 이렇게도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많은 책들이 책장에 가득가득 꽂혀있습니다. 당연한가요? 하핫. 그많은 책들을 죽 보면, 자신이 마음에 드는 제목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을 뽑아 듭니다. 그리고선 책을 잠시 읽기 시작하죠. 어떤 분들은 그 자리에 앉아서 책을 보시기도 합니다. 책이 많이 있으니까 내가 이 책을 이렇게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책은 아마 읽어주어서 고맙기까지 할지도 모릅니다. 그 수많은 책들 중에 자신이 눈길을 뜨는 제목이나, 익숙한 작가의 이름이나 그것도 아니면 표지가 예뻐서 라도 관심을 가지게 되면 책을 그 자리에서 뽑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손에 쥐어서 읽을 수 있는 새 책들이 많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서점에 가야하는 이유 두번째는, 자신이 관심있던 분야가 아니었던 책들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시면 보통 자신이 이미 사기로 마음 먹은 책을 검색을 해서 주문을 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독서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관심이 없던 분야에 대한 책에서 새로운 자신의 관심사를 찾을지도 모르고, 또 지금 딱 필요한 지식이나 영혼을 맑게 하는 한 줄의 글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담입니다만, 외교부 장관을 지내시고, 국회의원을 하신 한 분의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대학을 다닐 적에, 친구 한 명이 자기 방에 놀러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책장을 이렇게 보시면서 '너는 OO과를 다니는구나' 라는 이야기를 하시더랍니다. 친구는 아무런 의도없이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자신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독서력(歷)이 너무나 좁고 편향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강연을 듣는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만약에, 친구가 여러분들의 집에 놀러 와서 책장을 보게 되면, 여러분이 무슨 전공을 가진 학생인지 모를 수 있도록 해보세요." 



이 분이 하시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서, 넓게 지식을 습득하라는 이야기가 하시고 싶었던 것이라 전 이해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 책장을 보거나 책상 위를 보면, 그다지 다양한 분야의 책이 꽂혀있지는 않습니다. 간혹가다 생소한 분야의 책이 있긴 합니다만, 아직 제 손때는 많이 타있지 않습니다. 항상 반성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반성문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곳이 서점입니다. 서점에 가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관심 분야를 넓혀나가는데,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적은 책보다 좋은 시작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이유는, 책을 사서 보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사시는 것이 부담스러운 분들이 있으실 줄로 압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ㅠㅠ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책을 사서 보라'는 말은, 책을 읽으실 때, 작가와 대화를 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으시다보면 자신의 생각이 떠오르는 부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때 그 책의 빈 곳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 넣으시기 위해서는 책을 사서 보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 도서관이나 각 시군구의 공공도서관에 가보시면 모두가 다같이 보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낙서가 되어 있거나, 줄이 그어져 있거나, 또는 글씨로 내용에 집중하기 힘든 책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행위를 한 사람들의 도덕관념에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책에 줄을 그었던 그 생각을 놓치지 않기위해서라도 책을 사시는 건 어떨까요? 자신이 산 책에 자신의 생각을 남기고 난 뒤, 몇 해의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그 책을 읽게 된다면, 그때 자신의 생각과 지금 자신의 생각을 비교해 볼 수도 있고, 그 책이 다른 사람의 책이 아니라, 오로지 나만의 책이 되는 그런 느낌을 받으실 수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서점에 가셔야 합니다. 서점에 가셔서 책을 고르시고, 자신과의 뜨거운 첫 만남을 기억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여담 두번째 입니다만, 전 가끔 학부모님들을 만나게 되면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집 아이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책 읽으라고 하면 만화책이나 보고 있고, 엄마 볼 때만 책 보다가 금새 또 컴퓨터를 하거나 딴 짓을 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전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사라고 돈을 주신 적은 있습니까?" 



그럼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런 적은 없지만, 집에도 책이 많이 있는데 왜 굳이 다시 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가 오히려 저에게 반문합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초등학생이든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관계 없이, 자신의 눈에 재밌어 보이는 책은 읽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독서의 취미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집에 있는 책은, 자신이 원한 책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가 읽기를 원한 책이거나, 자신이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 책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가 해야하는 역할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살 수 있는 돈을 주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되, 그 책이 만화 등과 같이 재미로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 것만 요구하면 됩니다. 만화를 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만화가 어린 시절에 읽었을 경우 그 내용을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만화가는 어린이가 아니기에, 자신만의 생각을 만화로 표현한 것이고 그것을 아이들이 읽는다고 해서 그 모든 함의를 이해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만화를 읽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핑계고, 아이들은 만화를 '책'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놀이'라고 생각하기에 읽는 것에 일정 부분 제약을 가하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자녀와 함께 서점에 가서 서로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가족이 다같이 읽는 책을 사기도 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독서에 취미를 가지게 될 것이고, 스스로 사고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번에 산 책을 다 읽었다고 자녀가 말하면, 그 책을 주제로 가족이 대화를 해보거나 하면 더 좋겠지요. 그러니 학부모님들, 책을 무조건 읽으라고만 하시지 마시고 책을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십시오. 한달에 얼마 정도를 책을 사기 위한 돈으로 지정해서 주시면 아이는 그 돈으로 책을 사 볼 것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자녀분들도 책을 읽습니다. 단 한번도 엄마 아빠가 책 읽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나에게만 책 속에 답이 있고, 책을 읽으라고 한다면 아이들은 황당해 할 것입니다. 책을 읽는 부모가 먼저 되시고, 아이들에게 책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신다면 모두 책을 읽을 것입니다. 



어라? 여담이 꽤 길었습니다. 



여러분, 서점에 갑시다. 인터넷 서점의 영향으로 우리가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서점' 간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을 없애자는 말씀이 아니라, 시중 서점과 인터넷 서점이 우리에게 주는 효용과 기쁨 그리고 역할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점에 가셔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정말 얼마되지 않는구나 하는 겸손함도 느껴보시고, 또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분야에 대한 연구나 학문들이 있는지, 그리고 소설에도 이토록 많은 나라에서 소설을 쓰고 있구나, 또 이런 작가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시나 희곡 등에서도 그렇습니다. 또한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책을 우선 사셔서, 그 책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시간을 한 번 담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책은 오롯이 여러분만의 책이 될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서점에 갑시다! 야호!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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