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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16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1.30 명예
  2. 2014.12.20 조현아와 마리 앙투와네트
2016. 11. 30. 01:13 내 생각

명예”   20161130

 

두 명의 이름이 등장했었다.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중국의 옛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은 친구였다. 한 명의 친구가 다른 한 친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마치며 말하길,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달라.” 부탁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친구는, 자살했다. 왜 자살했을까.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친구의 비밀을 영원히 지켜주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이야기. 대단한 우정이지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친구의 마지막 부탁, 즉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그 말에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생각해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명예? 친구에게 자신이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자신은 명예를 더렵혀졌다 여겼던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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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광복 이후 우리 역사에 몇 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그 대통령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통령은 단 한 명이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서거 당시 나는 일본의 사이타마현의 한 맨션 안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교환학생 중이었고, 어머니로부터의 인터넷 전화에 잠이 깼고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누워있던 내 몸은 일으켜세워졌다. 누군가 일으켜 세운 듯 했다. 티비를 틀었고, 일본 뉴스에서도 그 사람의 서거 소식이 특종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그 후 몇 일 간, 애먼 줄담배만 태웠다. 왜 그런 선택을 하였을까. 친인척 비리가 있다는 검찰의 발표. 그리고 검찰 소환.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바로 그 검찰 소환일 뿐이었다. 민주화운동을 거쳐 국회의원 그리고 대통령까지. 독재 시대를 끝내려는 노력과 다음 시대를 새롭게 만들려는 노력을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해왔던 인물. 아마 그는 자신의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통감(痛感)했을 것이다. 자신의 집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 바위에 서서 죽음으로써 더럽혀진 명예를 회복하고 살아남아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명예가 무엇인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명예가 무엇인지를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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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6년 지금. ‘명예로운 퇴진이라는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혼란을 막고 안정적인 방법을 찾는다는 그 사람의 사전에는 분명 두 글자가 없다. 나폴레옹의 사전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으로 유명하듯 그 사람에게는 제목으로 적은 이 두 글자, “명예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명예란 무엇일까. 지키고자 한다면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누구의 명예와 누구의 명예가 대립한다면 무엇을 지켜야할까. 국가의 명예와 개인의 명예가 충돌한다면 무엇을 지켜야 할까. 그 사람에게는 지킬 것이 없으니 충돌할 것도 없는 것일까. 하지만 누군가의 명예는 분명 훼손당하고 있다. 다름 아닌 국민이다. 국민의 명예, 국가의 명예 그리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명예는 난자(亂刺)당하고 조리돌림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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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요.”라고 말했다는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와네트. 하지만 사료에서는 그녀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 한다. 오스트리아 출생.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일한 여제이자 전쟁을 통해 자신의 왕위를 지켜낸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외로웠을 것이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했었던 적이었던 프랑스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시집을 가야했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자신의 남편과 함께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성공을 거둔다. 시민들의 명예를 위해, 시민들의 빵을 위해, 시민들의 권리를 위해 두 사람은 명예를 빼앗겼고 그것은 역사로 남았다. 시민혁명의 성공의 역사로, 시민들의 명예가 지켜졌던 첫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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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 어떤 명예가 남아있을까. 남아 있다면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그것을 갖지 못한 단 한 사람에게 어떤 책임을 지도록 할 수 있을까. 세대가 변하고 시대가 흘러도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 그동안 살아있는 우리는, 고통스럽더라도 지켜내야 한다. 한 명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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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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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0. 02:03 내 생각

조현아와 마리 앙투와네트 2014.12.20.


한항공 前 부사장 조현아의 '마카다미아' 사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프랑스 루이 16세의 부인인 마리 앙투와네트가 떠오른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즈음 프랑스 백성들이 찾아와 "빵을 달라"고 시위를 하자,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어라"라는 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 마리 앙투와네트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마리 앙투와네트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일부 호사가들이 만든 이야기이긴 하지만 당시 민중의 삶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마리 앙투와네트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데에는 참으로 기막힌 일화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번에는 호사가의 재담이 아닌 실제로 일어났던 조현아의 '마카다미아 회항' 역시 조현아 전 부사장이 갖고 있었던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에 대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상속녀이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후였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인 마리 앙투와네트는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시집을 간다. 마리 앙투와네트의 남편인 루이 16세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이뤄 놓은 프랑스를 친애왕 루이 15세가 거덜낸 뒤의 위태로운 프랑스를 이어 받은 부르봉 왕가의 왕이다. 

조현아는 대한항공 회장이자, 한진해운과 한진그룹의 회장인 조양호의 장녀로서 26살의 나이에 대한항공에 입사한다. 그리고 7년 뒤 대한항공 기내식사업본부 본부장 상무가 된다.


공주이면서 왕비였던 마리 앙투와네트와 역시 자신의 회사 안에서 왕과 같은 지위를 누리는 오너의 딸이면서 대한항공의 부사장이었던 조현아.


이 두 사람이 몰락하게 된 원인은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은 특권을 유지하려 했기 때문이 아니다. 진짜 원인은 단 한 순간도 지금 자신의 앞에서 낫을 들고 곡갱이를 들고 빵을 달라고 외치는 배고픈 여인들을 한 명 한 명의 사람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고,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마카다미아 넛을 드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는 대한항공 승무원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마리 앙투와네트와 조현아가 도덕적으로 몰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에게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들이 그녀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데 측은함 마저 느낀다. 공주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공주의 삶을 모르고, 재벌 회장의 딸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의 삶을 모른다. 모르기에 기대하는 바가 더욱 큰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을 가지고 살면서,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도덕성이 갖추어져 있기를,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갖출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해주기를. 그것도 아니면 제발 '가만히라도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조현아는 공주가 아니다. 공주와 같은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또 앞으로의 직위 변화에 관계 없이 남은 여생동안 평범한 삶의 방식보다는, 누구나 꿈꾸는 윤택한 삶을 산다 할지라도 그녀는 영원한 공주가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사건을 보면서, 조현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재벌 2세, 3세들은 자기가 이번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것에 대해서 안도하지 말고 자신에게 지워진 삶의 책임감을 느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마리 앙투와네트는 많은 프랑스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그 목에서도 붉은 피가 흘렀을 것이다. 백성들의 몸 속에도 마리 앙투와네트와 똑같은 색깔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다 같은 사람이었다.


조현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향후 운신의 폭이 많이 좁아질 지언정 '단두대'라는 무서운 용어가 결코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계기로 자신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 역시도 한 가정의 아들이며 딸이라는 사실,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면 깨닫는 기회가 될 것이고 알았더라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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