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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산중턱이었다. "산중턱이었다." 산중턱이었다. 어린 시절이었으므로 오르긴 힘들었지만, 한 번 오르고 나면 높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탁트임과 그로 인한 청량감이 들었다. 할머니의 집(할아버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으므로, 주말마다 방문하는 곳은 자연스레 할머니의 집이 되었다, 그리고 정식명칭은 할매집이다.)은 산을 뒤로 세워진 단독주택이었다. 넓다거나 크다고는 하지 못했지만, 형과 내가 뛰어 놀 만큼의 공간은 충분했다. 그리고 결코 한 번도 빠져보진 못하겠지만 마산의 명치 깊숙이 들어와 있는 합포만은 또 그만큼의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다. 할머니집에서 가까운 곳에는 우물이 있었다. 할머니의 집 바로 앞 아래쪽에는 200평 남짓 되는 밭이 있었고 그 밭과 아랫집 사이에 흙길이 있었다. 그 흙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더보기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애석하게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올라갈 때 시험을 본 마지막 세대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내가 살던 경남 마산지역에서는 2000년을 마지막으로 '연합고사'가 폐지되었고 그 이후에는 중학교 내신성적 만으로 고등학교에 배정받아 들어갔다. 나와 같은 시점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내신과 연합고사 모두가 반영되는, 걸쳐진- 다시 말하면 재수 없는 시절의 친구들이었다. 연합고사가 중학교 3학년 말에 있다 보니, 중3의 시작은 고3만큼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비장한 느낌이 돌았다. 실질적으로 학교에서 배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다 배웠다. 그리고 중3의 1년 간은 문제집을 교재로 하여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풀거나 한 달에 한 번 혹은 2주에 한 번씩 .. 더보기
59초 "59초" 할머니 생신이었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할머니께서는 깨어있으실 것이 분명해 전화를 드렸다. 여보-세요.(할머니께서는 '보'를 길게 발음하신다.) 할매, 해눕니다. 아이고. 해누가? 예. 오데고? 서울입니다. '아이고. 서울에서 전화했나?' 예. 할머이, 생신 축하드립니더. 그래. 서울 먼데서 전화를 다 했나. 할머니께서는 아직 옛날 시외전화 시절의 기억이 있으신가 보다. 매년 생신이 되면 전화를 하는데, 서울에서 전화를 걸었으니 빨리 전화를 끊어야 한다는 투의 말씀이시다. 아침 식사는 하셨는지, 편찮은 데는 없으신지 물어도 보고 해도 끊고 난 전화에는 59초라는 짧은 통화 시간이 무심하게 반짝이고 있다. 작은 손자, 해드릴 건 전화 한 통 밖에 없어 죄송한 마음 뿐이다. 명절 마다 내려가서 찾.. 더보기
현우의500자_122 ‪#‎현우의500자‬ _122 비를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 서울에 오게 된 것은, 아버지의 출장을 따라 나선 것이 계기였다. 고향인 경남 마산에서 서울까지는 지금도 4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거리다. 이도 차가 막히지 않았을 경우다. 조수석에 타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 가는 설렘도 갖기 전 비가 억수 같이 내렸다. 비가 온 탓인지, 왜인지 모르게 고속도로는 막힐대로 막혔다. 시간을 계산하는 것도 포기할 무렵, 잠이 든 채 나는 서울에 왔다. 고속도로 위에서 화물차를 운전하는 아저씨께서 창문 너머로 건네주신 과자는 이미 남아있지 않았다. 서울에 대한 설렘을 깨끗이 씻어 내렸던 비가, 참 싫었다. 지금은, 비가 좋다. 특히 지금 글을 적고 있는 오늘 같이 봄비가 많이 내리면 올해 모내기는 잘되겠구나, 하는 농부.. 더보기
현우의500자_76 #현우의500자 _76 넌 오동동 똥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오동동 아케이드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특히 월급날이면 닭을 통째로 튀겨 내는 기름 냄새와 탁주에서 올라오는 거품들이 푝푝거리며 터지는 소리가 작업복을 입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의 얼굴을 상기시켰다. 몇 만 명은 족히 될 만한 젊은이들의 검은 머리는 파도보다 검게, 파도보다 무섭게 밀려들어왔다. 무엇을 위해 아침을 나서고, 다시 무엇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지 따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부진 어깨와 조그마한 손 위에 가족의 미래가 중력처럼 올려져 있었다. 너는 그런 오동동 똥다리 밑에서 태어났고, 내가 너를 주워왔다. 지금도 너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다. 얼굴은 다소 흉측하게 생겼을지 모르지만,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답보를 참아내는 젊은 사람들의.. 더보기
현우의500자_66 #현우의500자 _66 시간이 지난 뒤에 알았다. 그것이 일본식 오무라이스인 줄을. 토요일 저녁이 되면 형과 나는 할머니집으로 갔다. 그리고 하룻밤을 보냇다. 디낄댁이라고 불리우던 할머니께서는 일본에서 태어나셨다. 광복이 되던 해 한국으로 돌아오시곤 마산에 터를 잡으신 할머니께서는, 내가 기억하는 고향과는 다른 마산을 기억하고 계셨다. 일본인이 많이 살았다던 동네가 지금은 벚꽃만이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몇몇 집은 그 모습 그대로, 지금을 잊은 채 과거를 살고 있다. 그런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오무라이스는 정말 맛있었다. 햄이 가득 들어가고, 얇게 편 달걀 지단 위 케첩을 뿌린 오무라이스는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일주일이 마치 그것을 통해 마감되는 느낌이었다. 베개를 말처럼 타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