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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4.21 길어도 괜찮아
  2. 2015.03.29 현우의500자_98
  3. 2013.07.05 효리와 상순
2016. 4. 21. 00:14 내 생각

길어도 괜찮아.”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은, 2009년 일본에 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페이스북이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꽤 많은 친구들이 가입을 했고, 서로의 일상과 가벼운 인사를 담벼락에 남기는 도구로서 좋은 도구라 여겨졌다. 당시의 페이스북은 지금의 페이스북과는 상당히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면은 훨씬 조잡했고 채팅 기능은 있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이렇게 광고가 많지 않았다.

 

벌써 7년 째 페이스북을 하고 있다.

 

뭔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한 서비스를 사용한다는게 놀랍기도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나에게 있어 약 1년 반 전부터 페이스북 사용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특별한 변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페이스북에 어머니께서 가입을 하신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몇 해 전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셨으면서도 페이스북은 하시지 않으셨다. 아마 하시는 방법을 모르셨을 것이다. 1년 반 전 고향에 내려간 김에 어머니의 스마트폰에 페이스북을 깔아드렸다. 집에 노트북도 한 대 내려보내드렸는데, 노트북보다는 폰이 쓰시기 편하실 듯 했다.

 

그리고 나는 페이스북에서 더욱착한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께서 가입하시기 전에는, 술을 마신 뒤 다소 우울한 내용이나 특정한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정치적으로 날카로운 글을 마구 싸적어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가입 이후, 나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불편해졌을까? 답답해졌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물리적 거리가 먼 어머니와 더욱 심리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적을 때에도 읽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며 적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어머니께서는 페이스북을 하시면서, 작은 아들이 서울에서 어떻게 하며 살고 있는지를 직접 보실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아실 수 있게 되었다. 또 작은 아들의 글을 꼭 읽으시며 응원의 한 마디나 농담 한 마디까지 던져주시게 되었다.

 

그리고 또 나는, 내 글의 팬을 얻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적은 글은 꼭 읽으신다 하셨다.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으시곤 나에게 어머니의 생각을 말씀해주신다. ‘정말 좋은 글이다.’ ‘이번 글은 좀 이해가 잘 안된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시며 내게 조언해주신다. 어머니는 내 글의 팬이다.

 

얼마 전, A4 용지 두 장 분량의 글을 페이스북에 적었다. 어머니께서 그 글을 다 읽으셨다며, 이야기를 이으셨다. “매일 올라오는 너의 글이 갑자기 올라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게 된다.”하신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글을 매일 적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 기다리지 마세요. 어머니께서 말씀 이으시며, “글이 길어서 읽기 힘들지만, 끝까지 다 읽을테니 계속 글 적어줘.” 내가 되묻는다. 글이 길어요? 그럼 좀 짧게 적을까요? 어머니 대답하시길,

 

길어도 괜찮아.”

 

되도록 길게 적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 길어지면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 글 역시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머니께서는 괜찮다 하신다. 길어도 읽어주시는 마음이 고맙고 또 한편으로 미안하다.

 

페이스북을 한 지 7. 지금은 단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훔쳐볼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꽤 멀리 살고 있는 나의 가족에게 혹은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누군가 나의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지금, 2016, 32살의 권현우라는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목소리가 되었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기쁘다. 읽어주셔서 고맙다. 누구보다 어머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들은 오늘도 하루 열심히 살았고, 내일도 오늘 보다 나은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할겁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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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9. 22:16 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98


중학교 2학년 1학기까지 공부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하루는 놀기도 짧았다. 하지만 공부를 완전히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전교 100등 안팎의 성적은 유지했다. 이런 나에게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친구들이 있었다. 반 1,2,3등이면서 동시에 전교 10등 안에 드는 세 명이었다. 나는 이 친구들이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공부를 하고 있으면 방해했다. 책을 빼앗아 가거나 책상을 넘어뜨리는 등, 악의는 없었지만 괴롭힘은 괴롭힘이었다. 이 친구들은 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다시 책을 찾아 공부했다. 1학기가 지난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이 친구들은 왜 공부를 하는 것일까. 친구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공부하면 재밌나? 나도 해볼까? 친구들이 반색하며 반긴다. 그때부터 제대로 시작한 공부 덕에 전교 100등대의 내가 8등이 되었다. 이때가 내가 공부를 하고 싶다 마음먹은 시점이다. 고마운 계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변화는 시간의 바람을 타고 산등성이를 넘어 지금까지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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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5. 18:34 카테고리 없음

효리와 상순 2013.7.7

가수 이효리와 역시 가수인 이상순이 9월 중 결혼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축하할 일이다. 두 명 모두 일면식도 없지만 누군가의 결혼은 또 다른 행복을 담보하는 행위라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기에, 우선 축하를 하고자 한다.


효리와 상순의 결혼을 주제로 무엇을 쓸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이미 효리가 방송에서 밝힌 내용들을 내 글에 담아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결혼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청첩장까지 찍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다시 한번 글로 옮기고 싶은 내용이 있어 이렇게 손가락을 바지런히 움직인다.


가수 이효리가 SBS의 토크 프로그램인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상순과의 만남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정확한 워딩을 옮기고 싶지만, 방송을 본지 오래된 것과는 별도로 다시 방송을 볼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되지 않기에 기억에 의존하여 적고자 한다.

 

효리가 상순을, 가수 정재형이라는 사람을 통해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은 시쳇말로 '탑스타'의 반열에 있었다고 했다. 성공적으로 솔로 데뷔 후 한국 가요계 시장에서 '이효리'의 대체제는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공가도에 있었던 효리에게 상순은 인디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독한 기타리스트'에 지나지 않았다. 상순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나, 그 당시 이효리는 자신의 삶에 만족해 있었고, 또 인기를 실감하고 있던터라 상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던 효리가, 표절 문제와 함께 약 2년 간의 공백기에 들어가게 된다. 그 기간 동안 효리는 자신을 '암흑'에 두지 않고,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자신이 누리고 있었던 '인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고, 또 바쁜 와중에 신경쓰지 못했던 반려동물에 관련된 내용이나 환경 문제 등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글을 적는 본인이 효리가 아닌 관계로, 효리가 이전부터 반려동물이나 환경에 관해서 관심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약 2년 동안의 기간 이후, 일반 대중의 한명으로서 본인이 느끼는 효리의 이미지는, 마치 다른 사람인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외연이 넓어져 있었다. 언론을 통해 접촉하는 것이 전부라 할지라도, 그가 쓰는 어휘나 표현, 그리고 공감은 새로운 분야로 접어든 듯 했다.


이런 시간을 보낸 그가, 다시 상순을 만나게 되었다. 효리의 표현대로 한다면, 그 2년 동안에도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했고, 이상순 역시 다른 여자를 만났다고는 했지만, 지금 이 글을 적는 시점에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상순은 2년 동안, 아니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무엇을 하면서 지내는지 본인은 모른다. 상순이라는 이름을 효리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처음 알았던 본인은, 본의아니게도 이렇게 효리를 위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효리가 다시 상순을 만나고, 그와 결혼을 하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에는, 효리의 변화가 크게 다가온다. 


상순의 과거, 현재를 모른다는 것은, 변명이 아니다. 그리고 변명을 떠나서 상순이라는 사람이 효리가 보기에는, 변함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에 그의 과거와 현재는 큰 의미가 있는 시점은 아니다. 상순이라는 사람은, 소나무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효리가 화장을 진하게 하고 오든, 화장을 하지 않고 오든, 인기가 많은 사람이든, 인기가 없는 사람이든 상순은 효리를 효리로서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효리는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도 지켜봐 줄 수 있는 상순이라는 사람을 반려동물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반려자로서 택한 것이 아닐까. 


효리가 2년 동안의 방황과 성장을 겪고 난 뒤, 자신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했다. 젊고 예쁜 시절에, 또 인기 많던 시절의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자신으로 볼 수 있는 관점, 그리고 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외양이나 돈, 능력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효리는 그 2년 동안의 시간을 통해서 배운게 아닐까. 


효리와 상순의 이야기는, 사실 여기서 끝이다. 이 둘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새롭게 쓰여질 것이고 효리와 상순, 상순과 효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라기만 하면, 일종의 팬으로서 나의 역할은 끝난다. 


하지만 이 글을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효리와 같은 사람이 참 많다. 지금의 효리가 아닌, 자신의 최고라고 믿고 있고 자신에 맞추어서 세상이 돌아가기를 바라고,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생각했던 효리와 같은 사람 말이다. 그 수가 적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허황된 해석을 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이룬 것인양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이가 자신을 향해 하는 쓴소리들은, 자신을 시기질투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 자신이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처절히도 이어나간다.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이런 사람의 주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진정한 모습을 보지 않고 이미지만을 본다. 이미지 역시도 자신이 원했던 이미지가 아닌, 보는 사람이 편한 이미지로 자신을 평가한다. 그렇기에 자신은 그 이미지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효리가 겪었던 2년간의 시간을 겪는다면 어떻게 될까. 효리처럼 자신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까. 그렇지 않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답은 긍정적이지 않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보면 파도에 휩쓸려서이든, 몸에 힘이 빠져서이든 물 속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 허우적대거나 발버둥을 친다면 더욱 힘이 빠지거나 주위의 수풀이나 해초에 자신의 몸이 엉켜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몸에 힘을 빼고, 손에 들고 있고 있던 것이나 몸에 차고 있던 것을 버리고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것이다. 너무 깊지 않은 바다라면 그 바닥은 생각보다 금방 닿을 것이고, 그 바닥에 자신의 발이 닿는 순간 자신의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잠시 힘을 모아 바닥을 자신의 다리로 힘차게 차면 다시 물 위로 떠올라 자신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당황하여 허우적대면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지만, 사라진 줄 알았던 사람이 다시 멀쩡히 물에서 나오는 일 또한  흔하지 않은 일은 아니다. 


그와 같다. 


살다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떤 계기로 인해, 자신이 헤어나올 수 없을 듯한 고난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는 주위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것 같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만 같은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놓고,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한번 푹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살아가기' 위한 목적 하나만 생각한다면 필요한 것은, 입고 있는 옷이 아니라, 차고 있는 시계가 아니라 오롯이 자기 자신, 그 존재 한 단위만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그 의지가 아닐까. 아무리 힘이 없어도 살아가기 위한 '발 구르기'는 어디서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효리와 상순. 이효리는 자신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그로 인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이상순이라는 남자를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고 한 가정을 이루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이효리의 화장이나 옷이 아니라, 이효리 그 자체를 보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우리 자체를 보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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