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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01.23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2. 2016.03.29 샤프를 쓰지 못한 이유
  3. 2015.12.31 "행복하세요?"
2017. 1. 23. 20:03 내 생각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2017.01.23.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가장 자신의 아이를 망치는 것이 무엇인가, 를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

 

?

 

아이는 부모의 저 말을 듣고, 기뻤을 것이다, 아마 처음에는. 왜냐하면 머리가 좋다는 말은 분명 칭찬이고 부모로부터 인정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노력을 안한다는 이 말. 노력이야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당장은 칭찬 받은 것에 좋은 감정만을 느끼기로 한다. 물론 아주 특수한 경우이지만,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노력을 시작할지도 모르지만, 주변에 잘 보이지는 않는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책이 한 때 유행한 적이 있다. 책 내용의 핵심이란, 수족관의 돌고래나 고래를 훈련을 시킬 때 곡예의 난이도를 높여가며 그것을 성공시킬 때 마다 먹이를 주면 돌고래나 고래가 좋아하더라, 하는 내용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맥락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내 생각은,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한다. 왜냐하면 돌고래나 고래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안타깝게도 몇 가지 곡예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만약, 잘생긴 연예인, 예를 들어 장동건이나 원빈이나 공유 등등 하도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든 잘생긴 남자연예인들에게 잘생겼어요!’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자신도 모르는 바 아니었을 것이고, 처음 듣는 내용 아닐 것이며, 앞으로도 들을 말이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고맙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칭찬은 분명 고마운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중에 사랑해, 좋아해, 월급 들어왔다만큼 잘했네!’라는 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고마운 일이 아닌 경우가 있다.

 

앞서 말한 이야기에서, 아이들에게 머리가 좋다라거나, 잘생긴 남자연예인에게 잘생겼다고 하거나, 마찬가지로 예쁜 여자연예인에게 예뻐요라는 말들, 마냥 고맙기만 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연예인을 예로 들긴 했지만, 우리 일상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한테, ‘수학을 참 잘하는구나라는 첫 칭찬은 분명 그 학생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칭찬을 평소에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학생들이 수두룩할 터인데, 한 번의 칭찬은 분명 그 학생의 운명을 바꿀 만큼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할 것이다. 근데, 만약, 수학을 잘하는 학생에게 계속 수학을 잘한다는 칭찬을 해도 그 학생은 자신이 처음 느꼈던 어떤 보람이나 기쁜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칭찬에도 면역이 생기거나 점점 더 강한 자극적인 칭찬을 바라지 않을까?

 

칭찬은 고맙지만, 다른 칭찬을 해줘요.

 

가능하다면, 칭찬을 할 때 새로운 분야를 칭찬해주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분야란, 같은 수학이라도 내용이나 진도에 따라 다르게 칭찬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수학이 아닌 새로운 과목에 대한 칭찬을 해줄 수도 있다. 학생의 예를 들어 유치해 보일 수 있으니 어른의 이야기로 옮겨보자.

 

뭐 별 다른 거 있겠나. 성인이라고.

 

어른이든 청소년이든 아이든, 다만, 한 가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지 않을까 하고. 칭찬을 받았다고 머무르지 말자. 칭찬은 기쁜 것이지만, 칭찬에도 단계가 있고 발전이 있고 또 성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서 칭찬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분명 비판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칭찬 받으며 또 동시에 비판 받으며 성장한다.

 

새로운이라는 말에, 기존의 것들을 모두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더욱 잘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노력으로 단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새롭지 아니할까.

 

추신 같지 않은 추신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칭찬을 하려거든, 이보세요, 칭찬하시려는 분들. 칭찬을 하시려거든 말입니다. 관심을 깊게 그리고 오래 가지셔야 되요. 순간순간의 칭찬은 순간순간 소비되고 맙니다. 하지만 칭찬을 해줄 대상이나, 마찬가지로 비판을 할 대상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켜보세요. 쉽게 칭찬해준 사람은 쉽게 비난 하더라구요. 비판 말고, 비난이요.

 

타인을 깊이 있게 칭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도 성장하는 계기를 얻기도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감화(感化)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칭찬은 고맙지만,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그때 칭찬해 주세요. 그리고 혹시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거나,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불성실하다면 따끔히 비판해주세요. 여러분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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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9. 18:01 내 생각

"샤프를 쓰지 못한 이유"


지금도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초등학생은 샤프를 쓸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 샤프를 쓰지 말라 하시기도 했고, 부모님께서도 연필을 쓰라 하셨다.


왜 샤프를 쓰지 못하게 했을까.


연필은 매번 깎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었고, 또 연필심이 쉽게 부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샤프를 사용하지 말라는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특별한 이유라기 보다, 샤프를 사서 쓸 수 없는 친구들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연필은 저렴했고, 샤프는 초등학생이 사기에는 고가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혹은 지역만 하더라도, 지금의 기준으로 금수저와 흙수저가 편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편한 친구가 될 수 있었지만 또 그와 동시에 부모의 재산이나 직업이 학생에 영향을 끼친 측면도 물론 있다. 옷차림만 보아도 알 수 있었고, 간혹 있는 생일 잔치에 초대받아 가면 그 친구의 환경을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부모의 재산이나 배경이 아이들을 주눅들게 하거나 자신의 현재를 비관하게 두지는 않았다. 아이들과 부모 각자가 서로를 배려하려 노력했다.


최근의 뉴스나 기사들을 보면 자신이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몇 평의 집에 사는지 등으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구분 짓기'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부모의 직업으로 불려지는 것보다 정도가 더 심하게, 'OOO동'으로 불려지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또 간혹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고급 아파트 단지 사이로 지나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바리게이트를 치고 철조망을 친다는 기사를 읽을 때면, 고개가 자연스레 저어진다.


사회적 차별이란 별 것 아닌 듯 싶으면서도 한 사람에게, 특히 그 사람이 어린 아이라면 크게 영향을 끼치는 듯 하다. 옛날이 그립다는 생각이 아니라, 차이를 차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예전의 태도가 지금은 많이 사라진 듯 하기 때문이다.


사회와 학교 그리고 부모가 배려하는 속에서, 연필을 사용하게 된 아이들은 샤프를 사용하지 못하는 불만이야 물론 있었겠지만 다른 친구와 자신을 부모의 직업이나 경제력에 의해 차별하지는 않았다.


헬조선이니, 금수저니 흙수저니 다양한 계급의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지금에서, 나는 연필 한 자루에 담긴 그 배려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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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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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31. 18:01 내 생각

행복하세요?”

 

나 뿐만 아니다. 내 옆사람 뿐만 아니라,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행복을 느끼고자 하는 것을 헌법에 명시해놓고 있을 정도다.

 

헌법 제10,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하지만, 때론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은 사뭇 불편하게 다가온다. ‘행복하다라 대답하기에는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들과 생계유지를 위한 돈벌이가 떠오르고, ‘행복하지 않다라고 대답하기에도 나를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과 여행을 가서 느꼈던 기분 좋았던 추억들이 입가의 미소와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묘답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 답이란 바로, 행복할 때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다, 가 그것이다. 너무 싱거운 대답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언제나 행복할 수도 없고, 또 쉬지 않고 불행할 수도 없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는 그날 따라 인력거를 타겠다는 사람이 많았기에 행복했던 김 첨지가, 집으로 돌아가자 죽어 있는 아내를 발견한 이후 불행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덤덤하기에 그지없는 문체에는 행복과 불행이 언제나 함께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문자 그대로의 행복추구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행복의 비중을 늘리고 불행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누구를 만날 때, 어떤 생각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지를 우선 명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이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가진 병폐의 한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쉽게 가지 못하는 곳을 가고, 쉽게 먹지 못하는 것을 먹는 행위가 되어 버린 탓이다.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비교하도록 강요당하는 이상, 자신의 행복은 상대적으로 불행한 것으로 쉽게 여겨진다. ‘행복의 절대성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이런 상황은, “내가 느끼는 기분 좋음은, 행복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저런 멋진 것들이 행복의 조건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절대적인행복을 전제해버린 탓에 자신의 소소하거나 일상적 행복을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비교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넓은 숲을 가진 사람과 조그마한 텃밭을 가진 사람을 비교하면 넓은 숲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듯 보이지만, 조그마한 텃밭에서 기르는 작물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숲 따위 어찌됐든 좋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행복의 비중을 늘리기 위한 첫단추로써, 타인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을 비교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감정이라 표현하기는 했지만, ‘기분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대부분의 사람은 앞서 언급했던 대로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 제대로 깨닫지도 못한 채 성인기를 맞이한다. 오로지 공부만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학창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었더라도 또 다시 설정된 외부의 목표에 의해, 행복 따위 느낄 겨를 없이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소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것을 방증하는데, 이런 것들을 통해서 자신이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용기에는 실패할 수도 있다는 위험이 뒤따른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자신이 무엇에 기분 좋음을 느끼는지를 성공한다면 하나의 행복을 찾은 것이겠지만, 실패할 수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다음 시도에 있서 첫 시도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에 임할 수 있다.

 

이런 수많은 시도들을 통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나 익숙해진 습관이 형성된다면 그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으려고 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행복을 느낀다.

 

용기라고 적었다고, 지레 겁먹거나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지는 마시라.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도 느끼는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 나 이거 하니까 행복하네.’라고 느끼려는 시도와 노력으로도 용기는 생기기 마련이다. 용기란, 맹자에 따르면 누구나 갖고 있지만 발현하지 못한 그 어떤 성분에 지나지 않으니 한 번 속는 셈치고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행복을 느끼는 법에 대해 장황하게 적었지만, 정작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듯 보이는 불행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해답은 같다. 불행을 줄이는 방법 역시 같다고? 그렇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때에 불행을 느끼는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 우선이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불편하거나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꾸역꾸역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만남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만나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불행을 피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예를 들면 또라이상사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가족 등을 만나며 살고 있다. 아니, 살아야 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퇴사를 하거나 가출을 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퇴사를 하고 가족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당신이 그러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테니, 현실적인 불행의 비중을 줄이는 방법을 알려주려한다.

 




불행과 불편을 구분하는 것.

 

불행과 불편을 구분한다면 또라이직장상사와 나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확신하고 있는가족으로부터 불행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불편은, 존재를 부정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것 혹은 그 사람이 내 주변에 있기에 느끼는 짜증남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었을 때, 발이 아프다고 느낀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단지 불편함을 느낄 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불편함을 불행으로 느낀다. 직장상사의 잔소리와 감정적 대응을 듣는 것은 분명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것을 들었다고 해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행과 불편을 구분 짓는 것만으로,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이어질 수 있다. 가족의 잔소리와 상사의 핀잔은 불편하지만 그것이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내 삶의 근간을 흔든다면 그것은 결국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편과 불행을 구분지어야 하는 이유는, 불편함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주는 대상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사의 감정적 대응에 대해, ‘과장님, 그런 발언은 저를 불편하게 만듭니다.’라고 대응한다면 상사는 되려 화를 낼 것이지만, 어떤 것이 불편하지를 되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과장님, 그런 발언은 저를 불행하게 만듭니다.’라 대응하면 상사는 어떻게 대답할까? 모르긴 몰라도, ‘그래서 어쩌라고?’ 정도의 반응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행복과 불행은, 삶의 근간을 이루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권리로서 인정받는 것이고, 불행과 불편을 구분하며 불편을 해소하고 불행의 가능성 자체를 줄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불행을 줄이는 방법에는 또 다른 것이 있는데,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많은 것들과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것이다. 불행을 느끼는 바탕에는,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어.”라는 일종의 포기가 내포되어 있다. 자신의 노력이나 시도를 통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은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력의 정도를 높이더라도 그것이 바뀌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불행을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다. 앞서 언급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나 해외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슈에 대해서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등은 분명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발생하는 테러에 대해서 무관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픔에 공감하되 나도 저기서 죽을 수도 있었겠다하는 불필요한 감정이입이나 세상은 정의롭지 않아라고 단정지어버리는 등의 태도는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행복하세요?”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합니다. 다만 저는 행복을 늘리기 위해 살고 있고 불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장 적확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루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대답이라 생각한다. 또 대부분의 시간이란 행복도 불행도 아닌, 기억에도 남지 않는 일상들의 연속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행복의 절대성을 버리고, 자신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의 요소를 찾아야 한다. 또 불편을 불행으로 손쉽게 연결시키지 않으려는 의지와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과의 과감한 관계 끊기가 가능하다면, ‘추구할가치가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 나날들이었지만, 오늘은 행복을 많이 느꼈다며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지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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