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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1.04 우리 모두, 수수하지만 굉장해
  2. 2014.06.01 두 가지 단상.
2017. 1. 4. 21:25 내 생각

독서는 취미랄 것도 없으니, 굳이 최근에 내가 가진 취미를 말한다면 “일본 드라마 시청” 정도다. 드라마 시청이 취미라니 참 별 것 아닌 취미다 싶기도 하지만, ‘영화 감상’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취미에 속하는 것이 드라마 시청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왜 영화는 감상이고, 드라마는 시청이라 부르는 것일까. 이왕 취미라고 적을 거, 멋드러지게 일본 드라마 감상. 이게 내 취미 되시겠다.


최근이라 해도 작년(2016년)의 일인데, 취미의 일환으로 보았던 두 편의 일본 드라마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 편은 2016년 2분기 드라마 “중쇄를 찍자 (원제 : 重版出来)”이고 또 다른 드라마는 2016년 4분기의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원제 : 地味にスゴイ、校閲ガール河野悦子)”이다. 일본은 1년을 4분기로 나누어 드라마를 제작하고, 큰 변동이 없는 이상 한 편의 드라마는 10화 안팎으로 제작된다. 거의 모든 드라마는 사전제작의 형태로 제작되기에 중간에 스토리를 바꾼다거나 또는 불필요한 설정이 없는 것으로 일본드라마는 유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 드라마가 유명한 점은, 다양한 직업에 대한 소개와 그 직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게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것이 작년의 앞서 소개한 두 편의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두 편의 드라마 모두 출판과 관련이 있다.


우선 “중쇄를 찍자”라는 드라마는, 출판업계 중에서도 만화잡지를 만드는 편집하는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을 배경으로 한다. 유도선수로서 체육대학을 나왔지만 부상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된 신입직원(주인공)이 만화잡지를 만들어 나가고 편집자로서의 역량을 쌓아가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주된 내용은 아니지만 기성 만화가 및 신입 만화가가 느끼는 고충, 잡지를 통해 내어야만 하는 이익과 그와 동시에 담아야만 하는 독창성 간의 미묘한 갈등 그리고 영업사원이 느낄 수 있는 보람 등에 대한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다. 글로 적으니 드라마의 내용이 중구난방인 듯 보이지만, 드라마를 본다면 앞선 내용들이 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 드라마는 교훈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만화가와 만화잡지를 편집하는 편집자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만화가보다는 ‘만화잡지 편집자’라는 직업이 가진 어려운 점과 그런 어려운 점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만화잡지의 편집자는 결코 우리가 직접 만나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역시 출판업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는 드라마지만, 여기에서는 편집부서가 아닌 ‘교열’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로 다룬다는 것이 앞선 드라마와는 차이가 있다. 제목에서 이름이 드러나 있는 주인공, 코노 에츠코는 패션잡지의 편집자가 되기를 원해 ‘케이본샤’라는 출판사에 입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입사 후 알게 된 그녀의 부서는 책의 오탈자나 내용 상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는 ‘교열부’. 패션잡지라면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보는 그녀이지만, 책을 내기 전에 교열을 한다는 사실 조차 몰랐던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책을 교열해 나가며 교열부의 다른 직원들 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책상에 앉아 모든 교열을 했던 직원들이 사실관계 확인이나 지명 확인들을 위해 현장조사를 나가기도 하고,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담당하며 팬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교열까지 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단순히 작가가 적은 글을 수동적으로 교열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교열의 범위 내에서 교열자로의 의견을 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이끌어 냈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의 범위는 자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데 까지가 그 범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교열부 혹은 교열담당 직원들은 일반 독자들은 앞선 만화잡지 편집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그 존재를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취미’로써 갖고 있는 일본 드라마 ‘감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과 몇 일 전 새해가 되어 내게 들려온 한 가지 뉴스 때문이다. 그 뉴스란 국회에서 일을 하시는 청소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협력업체 직원의 지위에서 정규직인 국회 직원으로 전환되었다는 뉴스였다. 몇 해 전부터 국회 청소노동자의 지위와 대우에 대하여 국회 안팎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쉽게 사람들의 기억이나 관심에서 잊혀졌고, 그렇게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2016년 작년의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의 여야 구성이 변경되었고, (역시 나는 모르는 사이) 청소노동자의 지위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듯 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나는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딜 가나 쉽게 청소노동자를 만날 수 있다. 그곳이 도서관일 수도 있고, 빌딩의 로비나 공항 등 어디든지 청소를 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잘 찾으면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이나 업무를 보느라 혹은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때는 청소노동자의 모습은 쉽게 눈 앞에서 사라진다. 분명 존재하는 사람들이지만, 당연히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그들의 존재나 처우는 망각되고 만다. 그리고 깨끗해진 화장실 거울과 비워진 쓰레기통,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건물의 로비를 걸으며 누군가 이곳을 청소를 하고 있겠거니- 정도의 판단만 한다.


나는 이번 국회의 청소노동자들의 정규직 국회직원으로서의 전환에 대하여 찬성의 입장이다. 하지만 국회가 끝은 아니다. 그리고 시작도 아니다. 당연한 것을 그 시작과 끝을 나눌 수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에는 남들이 하지 않으려 하거나,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중 정확히 몇 퍼센트가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뉘어져 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갖고 그 보람에 상응하는 직업적 안정성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그 성과나 결과물에 대해 직접 자신의 이름을 내걸거나 표시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란, 사실 많지 않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일 속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있다. 굳이 티를 내어야 할 필요성도 또 그것이 그들의 삶에,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안정성과 삶에의 필요성을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하게 되는 또 하나의 필요충분조건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 수수하지만 굉장한 일을 하고 살고 있다. 어떠한 직업이든 자신이 언제 그 굉장한 일을 그만두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나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면, 그것은 목적으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고 직업이 아니라) 수단으로서의 존재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일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든 각자의 생계와 삶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직업을 통해 행복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글을 마무리 한다. 우리 모두, 별 볼일을 하는 듯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라며. (아, 그리고 소개한 두 편의 드라마는 꽤 재미난 드라마이니 한 번 나와 같은 ‘일본 드라마 감상’을 취미로 가진 분이라면 감상해보시길.)


이미지 출처 : http://channel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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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1. 16:27 카테고리 없음

두 가지 단상. 2014.06.01


(아래 글은 어제 새벽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폰으로 적은 뒤 '게시'를 눌렀건만 사라져 버린 글을 다시 정리하여 적는 글입니다ㅠㅠ 아닌 새벽에 멘붕..ㅎㅎ)

# 1
어제의 공연은 몇 가지 생각을 저에게 남겼습니다. 그 중 한 가지를 글로 옮기고자 합니다. 
공연의 시작 시간은 저녁 6시였습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된 만큼 해는 길어질 만큼 길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오후 6시라 하여도 하늘은 밝았습니다. 일찍이 제 자리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고 또 이미 자리에 착석해 있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그들이 어떤 얼굴을 갖고 있고 어떤 옷을 입었고 무엇을 읽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수의 사람이 있었지만 한 명 한 명의 특징을 알아보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공연은 약 6시 반 정도에 시작했습니다. 공연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는 저물었고 어둠은 밀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학교 측에서 나눠준 형광봉을 하나 둘씩 꺼내어 들었습니다. 밤이 완연히 깊었고 사람들이 들고 있는 형광봉의 물결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는 개별 사람의 특징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굴과 옷 그리고 누구와 왔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가 지자 얼굴과 옷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흔들리는 형광봉만이 보였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사람'만이 보였습니다. 모여 있는 '사람들'. 
어두워지자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리에 앉은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서 있었다고 해도 사람이었습니다. 어두움은 개별성을 매몰시켜 버렸습니다. 대신 보편성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낮은 우리에게 각자의 차이를 드러내 주었지만 밤은 그 차이를 무시하고 단지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인권이나 '인류의 진보' 등은 개별 주체의 노력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이는 어떤 거대한 흐름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듯 합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인류에게 가져다 준 죄로 지금도 어디선가 간을 독수리들에게 쪼아 먹히고 있습니다. 불이 가져다 준 것은 낮과 같은 밤입니다. 밤이 되어도 사람들은 낮에 보는 것과 같이 개별적 주체로 다른 사람을 인식합니다. 오히려 더욱 밝게, 더욱 선명하게 다른 사람과 자신을 차별하고 구별하고 구분짓습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우리에게 문명을 가져다 주었지만 가끔은 그 불을 숨겨둘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종교와 인종, 외모와 장애 등은 낮이 우리에게 준 기준들입니다. 밤이 되면 고고히 흐르는 인류의 파도 속에 들어갑니다. 개별적 주체가 강조되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인간이라는, 사람이라는 동질성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인권과 인류 그리고 그것을 신장하기 위한 노력들은 밤에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시 아침이 되고 낮이 밝겠지만 밤은 우리에게 어둠을 선물해 '인류 보편의 평등'을 일깨워주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합니다. 
저는 가수의 노래를 듣는 것도 좋았지만, 어둠 속의 사람을 보는 것 그리고 그들이 흔드는 형광봉의 흐름을 보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잊고 지냈던 사람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 2 
대학원에 들어오고 난 뒤 신기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내용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생각을 같은 시간에 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종종 일어나기도 합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좋은 점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그 대안 제시나 수단 확보 등에 다른 측면이 있을 때 방향을 잡기 쉽습니다.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갖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쁜 점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경우 창의성이 다소 떨어집니다. 기존의 형식을 깨는 신(新) 사고의 등장을 막을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쁜 점 역시도 공통으로 흐르는 생각의 기준이 있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기도 합니다. 
바야흐르 선거의 계절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하는 사람들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가끔 우려되는 것은 너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만이 진실이라며, 그것을 생각의 기준으로 세울 때가 있습니다. 가령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인 '자유민주주의'가 그렇습니다. '자유'가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의 공유, 기준의 설정이 명확히 이뤄지지 않으면 대안은 제시되기 어렵습니다. 민주주의 제도 내에서 그 기준에 대한 토론을 하기에는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여러 가지 공약들을 많은 사람들이 쏟아냅니다. 가끔 상반된 내용들의 공약들이 한 후보의 공약집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또 어느 일방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사람인 양 몰아세우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문제의 원인이 '서로 공유하는 생각의 기준'이나 '가치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그 기준은 '시민의 행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막연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시민의 행복'이라는 기준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형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전에 많은 정치적 실험들을 통해 어떤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검증 역시 어느 정도 완료되어 있다고도 봅니다. '시민의 행복'이라는 기준을 각 후보가 잘 인식하고 있다면 어느 후보가 되든 큰 상관은 없어보입니다. 행복을 '지금 당장' 실현할 것인지 '몇 년 뒤에' 실현할 것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만 그 기준이 형성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같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떤 기준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그로부터 대안을 찾고자 하는 행위는 선호되지 않습니다. 시민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기준과 정치인이 갖고 있는 기준이 다를 경우 정치는 삶과 괴리됩니다. 같은 생각의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수단과 대안을 제시할 때 좋은 사회가 형성되고 그 방향성도 가질 수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생각은 같더라도 구체적인 방안과 실행 방법은 무수히 다를 수 있습니다. 최근의 한국 정치를 보면 그 생각 자체가 달라 무의미한 것들로 논쟁하고 비난하는 듯한 모습들을 봅니다. 지켜야 할 가치, 즉 '시민의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사회적 토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p.s 여기서 '시민'이라는 표현은 '서울시'의 시민이 아닌 자발적이며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을 말합니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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