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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3.31 37점
  2. 2013.07.05 효리와 상순
2016. 3. 31. 18:53 내 생각

“37점”


이제부터 여러분이 읽게 될 이야기는,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나 중에서 자신이 어디까지 나아질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나 그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본어를 내 나이 또래가 흔히 접하던 계기로 접한 것은 아니었다. 내 또래가 ‘흔히 접하던 계기’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통해 일본어에 흥미를 갖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게 된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을 ‘오타쿠’라고 불렀는데, 최근에는 ‘덕후’라 부르는 듯 하다.


나는 ‘러브레터’라는 영화를 보고, 일본어에 흥미를 갖게 된 후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만’이라는 뜻의 ‘케도’라는 발음이 재밌었다. 그렇게 배운 일본어를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꾸준히 배웠다.


어떤 목적이 있어 배운 것이 아니었기에, 일본어능력시험을 치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저 일본어를 배워 일본인과 말이 통한다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낀 것이 다였다. 일본어능력시험을 처음으로 치게 된 시기는 일본 교환학생이 끝날 무렵이었으니, 일본어를 접하고 거의 10년이 흐른 다음이었다.


일본어를 재미로 배우고 말하고 있던 대학교 1학년 2학기의 어느 날 일본 교환학생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다시 들어온 대학이었고 열정과 의지가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교환학생 모집 공고에는 ‘일본어능력시험 2급 이상 소지자와 그에 준하는 일본어회화실력을 가진 자’라고 되어 있었다. 자신만만하게도 회화실력 하나만을 믿고 지원을 했고, 덜컥 합격을 해버렸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일본 사이타마현의 한 대학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외국인 학생을 위한 일본어교실이 있었고, 그것은 교환학생이라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었다. 수업을 듣기 전 반편성 고사를 치렀다. 그때 받은 점수가


37점.


기억에도 어렴풋이 남아있는 ‘매우 낮은’ 점수였다. 물론 100점 만점이다. 나는 내가 최하위반에 가겠구나- 생각을 했고, 일본어교실을 담당하고 계시던 교수님과의 면담에 들어갔다. 여자 교수님이셨는데, 보랏빛이 도는 여성용 정장을 깔끔히 입고 계셨다. 나는 자리에 앉았고, 교수님께서 내게 한 가지 질문을 하셨다.


‘시험지에 나온 글을 읽었지요?’


시험지에 나온 글을 읽었냐니.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그 뉘앙스가 묘했다. 읽다 읽지 않다의 ‘읽다’가 아니라, ‘읽어내다’의 읽다 였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음 날 나는 내가 일본어교실 중 가장 높은 반에 편성이 된 것을 알았다. 그 반에는 일본어능력시험 자격은 물론, 일본어한자시험인지 뭔지 나는 알지도 못하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쉽게 말해, 나보다 모두 일본어능력이 뛰어났다.


정말 힘들었다. 교환학생이라도, 아니 교환학생이므로 일반 일본인 학생들이 듣는 대학 수업도 들어야 했고 또 일본어 수업도 들어야했다. 오전에는 일본어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일반 수업을 듣었는데 내가 느끼는 난이도는 일본어 수업이 더 힘들었다.


말이 좋아 일본어교실이지, 일본의 역사나 일본 뇌사의 역사, 일본의 여러 이야기 등을 읽고 적고 쓰고 또 매주 시험을 치르기까지..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일주일일주일이 빠르게 흘러갔다.


역시나 점수는 꼴등.


한 단계 아래의 반으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한 단계 아래로 가면 다음 학기에도 다시 최상급 반의 일본어수업을 들어야했고 그럼 이 고생을 다시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개겨 보기로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나갈 즈음. 그러니까 한 학기가 한 달이 남은 즈음 점수가 갑자기 올랐다.


90점 대를 받기도 하고, 또 때론 두 개 이상 틀리지 않기도 했다. 놀란 것은 나 만이 아니었다. 우리를 가르치시던 일본인 선생님들께서도 놀라셨다. 하루는, 중년의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권 군의 실력이 급격하게 오른 게 화제입니다.


그만큼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멍청하게 보이는 것도 싫었고, 또 내가 어느 정도까지 나아질 수 있는지 궁금했기에 그 좋다는 교환학생, 그렇게 놀거 다 논다는 교환학생의 1학기를 일본어 공부와 학과 공부를 하며 보냈다. 물론 공부 밖에 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저녁에 피곤한 상태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자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일본어 단어와 문장을 외우기도 했고, 학과 수업은 내용 이해를 위해 매 시간 녹음을 해서 들었다.


일본어가 늘었다.


원했던 결과였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이룰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힘든 일은 그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는 법이다.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간에.) 내 일본어 실력은 엄밀히 말하면, 나의 노력이 일부 들어가 있는 내 주변 환경의 영향이었다. 쉽게 말하면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과 경쟁하고 힘쓰는 환경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겸손’이라는 가치로 자신의 가능성을 쉽게 낮춘다. 하지만 무엇인가 배우려는 사람은 겸손하되 겸손하면 안된다. 겸손이 필요한 순간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아직 부족하구나’라는 것을 느낄 때이며 겸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은, '나도 저렇게 잘 할 수 있어' 라는 욕심을 가져야 하는 순간이다.


앞서 이야기를 했듯이, 여러분이 읽은 이야기는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을 할 수 없는 여건인 사람도 있고 또 지금의 상황도 충분히, 아주 충분히 힘든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지금 있는 곳 - 그곳이 학교여도 좋고, 직장이라도 좋고, 그 어디라도 좋다-에서 자신이 발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나고 싶다면 ‘다소 무리’라고 생각되는 범위나 ‘절대 무리’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여 보아도 될 듯 하다. 사람은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한다. 적응을 위한 초기에는 분명 힘들지만 어느 샌가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일본어교실을 담당하시던 교수님께서는, 문제는 틀렸지만 그것을 ‘읽어낸’ 나를 평가하셨다. 다시 말하면, 나아지길 원하는 나의-학생의 욕심을 알아차리신 셈이다. 이런 교수나 선생님 혹은 선배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좋은 선생님과 함께 있다. 바로 자기 자신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위의 이야기는 누구나에게나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중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고 그 배움을 통해서 더욱 나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글이, 하나의 방법이 되었으면 한다. 자신의 한계는 자신은 결코 모른다.


그러니 한 번 한계 너머로 자신을 던져보시길. 만약 너무 힘들어 다시 돌아오고 싶어도 한 번 더 참아보고, 그래도 정말 힘들면 그래도 한 번 더 참아보고 정말 죽을 듯이 힘들면 그때 돌아와도 된다. 그래도 당신은 그 전보다 성장해 있을 것이고, 그런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확신, 아니 예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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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5. 18:34 카테고리 없음

효리와 상순 2013.7.7

가수 이효리와 역시 가수인 이상순이 9월 중 결혼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축하할 일이다. 두 명 모두 일면식도 없지만 누군가의 결혼은 또 다른 행복을 담보하는 행위라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기에, 우선 축하를 하고자 한다.


효리와 상순의 결혼을 주제로 무엇을 쓸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이미 효리가 방송에서 밝힌 내용들을 내 글에 담아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결혼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청첩장까지 찍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다시 한번 글로 옮기고 싶은 내용이 있어 이렇게 손가락을 바지런히 움직인다.


가수 이효리가 SBS의 토크 프로그램인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상순과의 만남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정확한 워딩을 옮기고 싶지만, 방송을 본지 오래된 것과는 별도로 다시 방송을 볼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되지 않기에 기억에 의존하여 적고자 한다.

 

효리가 상순을, 가수 정재형이라는 사람을 통해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은 시쳇말로 '탑스타'의 반열에 있었다고 했다. 성공적으로 솔로 데뷔 후 한국 가요계 시장에서 '이효리'의 대체제는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공가도에 있었던 효리에게 상순은 인디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독한 기타리스트'에 지나지 않았다. 상순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나, 그 당시 이효리는 자신의 삶에 만족해 있었고, 또 인기를 실감하고 있던터라 상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던 효리가, 표절 문제와 함께 약 2년 간의 공백기에 들어가게 된다. 그 기간 동안 효리는 자신을 '암흑'에 두지 않고,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자신이 누리고 있었던 '인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고, 또 바쁜 와중에 신경쓰지 못했던 반려동물에 관련된 내용이나 환경 문제 등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글을 적는 본인이 효리가 아닌 관계로, 효리가 이전부터 반려동물이나 환경에 관해서 관심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약 2년 동안의 기간 이후, 일반 대중의 한명으로서 본인이 느끼는 효리의 이미지는, 마치 다른 사람인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외연이 넓어져 있었다. 언론을 통해 접촉하는 것이 전부라 할지라도, 그가 쓰는 어휘나 표현, 그리고 공감은 새로운 분야로 접어든 듯 했다.


이런 시간을 보낸 그가, 다시 상순을 만나게 되었다. 효리의 표현대로 한다면, 그 2년 동안에도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했고, 이상순 역시 다른 여자를 만났다고는 했지만, 지금 이 글을 적는 시점에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상순은 2년 동안, 아니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무엇을 하면서 지내는지 본인은 모른다. 상순이라는 이름을 효리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처음 알았던 본인은, 본의아니게도 이렇게 효리를 위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효리가 다시 상순을 만나고, 그와 결혼을 하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에는, 효리의 변화가 크게 다가온다. 


상순의 과거, 현재를 모른다는 것은, 변명이 아니다. 그리고 변명을 떠나서 상순이라는 사람이 효리가 보기에는, 변함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에 그의 과거와 현재는 큰 의미가 있는 시점은 아니다. 상순이라는 사람은, 소나무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효리가 화장을 진하게 하고 오든, 화장을 하지 않고 오든, 인기가 많은 사람이든, 인기가 없는 사람이든 상순은 효리를 효리로서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효리는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도 지켜봐 줄 수 있는 상순이라는 사람을 반려동물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반려자로서 택한 것이 아닐까. 


효리가 2년 동안의 방황과 성장을 겪고 난 뒤, 자신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했다. 젊고 예쁜 시절에, 또 인기 많던 시절의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자신으로 볼 수 있는 관점, 그리고 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외양이나 돈, 능력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효리는 그 2년 동안의 시간을 통해서 배운게 아닐까. 


효리와 상순의 이야기는, 사실 여기서 끝이다. 이 둘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새롭게 쓰여질 것이고 효리와 상순, 상순과 효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라기만 하면, 일종의 팬으로서 나의 역할은 끝난다. 


하지만 이 글을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효리와 같은 사람이 참 많다. 지금의 효리가 아닌, 자신의 최고라고 믿고 있고 자신에 맞추어서 세상이 돌아가기를 바라고,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생각했던 효리와 같은 사람 말이다. 그 수가 적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허황된 해석을 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이룬 것인양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이가 자신을 향해 하는 쓴소리들은, 자신을 시기질투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 자신이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처절히도 이어나간다.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이런 사람의 주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진정한 모습을 보지 않고 이미지만을 본다. 이미지 역시도 자신이 원했던 이미지가 아닌, 보는 사람이 편한 이미지로 자신을 평가한다. 그렇기에 자신은 그 이미지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효리가 겪었던 2년간의 시간을 겪는다면 어떻게 될까. 효리처럼 자신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까. 그렇지 않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답은 긍정적이지 않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보면 파도에 휩쓸려서이든, 몸에 힘이 빠져서이든 물 속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 허우적대거나 발버둥을 친다면 더욱 힘이 빠지거나 주위의 수풀이나 해초에 자신의 몸이 엉켜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몸에 힘을 빼고, 손에 들고 있고 있던 것이나 몸에 차고 있던 것을 버리고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것이다. 너무 깊지 않은 바다라면 그 바닥은 생각보다 금방 닿을 것이고, 그 바닥에 자신의 발이 닿는 순간 자신의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잠시 힘을 모아 바닥을 자신의 다리로 힘차게 차면 다시 물 위로 떠올라 자신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당황하여 허우적대면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지만, 사라진 줄 알았던 사람이 다시 멀쩡히 물에서 나오는 일 또한  흔하지 않은 일은 아니다. 


그와 같다. 


살다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떤 계기로 인해, 자신이 헤어나올 수 없을 듯한 고난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는 주위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것 같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만 같은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놓고,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한번 푹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살아가기' 위한 목적 하나만 생각한다면 필요한 것은, 입고 있는 옷이 아니라, 차고 있는 시계가 아니라 오롯이 자기 자신, 그 존재 한 단위만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그 의지가 아닐까. 아무리 힘이 없어도 살아가기 위한 '발 구르기'는 어디서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효리와 상순. 이효리는 자신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그로 인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이상순이라는 남자를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고 한 가정을 이루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이효리의 화장이나 옷이 아니라, 이효리 그 자체를 보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우리 자체를 보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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