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가고파라가고파

Notic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92,141total
  • 2today
  • 0yesterday

'손가락'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2.30 "관심"
  2. 2014.08.12 손가락을 깨물음
2016. 12. 30. 18:18 내 생각

“관심”  20161223


고속버스 안, 창가에 앉으신 어머니와 복도에 앉은 작은 아들. 오론도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울을 향해 가고 있는 모자를 쓰지 않은 모자. 시내를 빠져나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창 밖에 산과 들이 보인다. 한국은 참 산도 많다 싶다는 생각이 또 다시 스쳤다. 그때, 어머니께서 내가 모르는 나무의 이름을 나지막이 외치시며 창 밖의 언덕에 손가락을 가리키신다. 내가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차리기도 전에 언덕은 버스 뒤로 사라져갔다. 그 나무가 무슨 나무였는지 묻자, 그건 어떤 나무이며 이 계절에 꽃을 피운다고 설명해주신다. 그리고 또 이어 무슨 꽃인지를 가리키시는데 이번에는 제법 먼 산에 핀 꽃들이다. 산이 멀어 나도 그 꽃이 어떤 꽃인지 드디어 알아보곤 어머니의 설명을 듣는다. 이어 또 다른 나무, 꽃, 잎의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 나는 어머니가 신기해졌다. 어떻게 저 많은 꽃들과 나무들을 알고 계실까. 묻지는 않았다. 아마도 어머니께서는 어릴 적부터 꽃과 나무를 보며 자라오셨을 것이다. 그것을 애써 외우려는 노력을 하기 보다, 그저 그것들에 관심을 갖고 이름이 무얼까 궁금해하시며 외삼촌이나 이모들에게 물어 알게 되셨으리라. 나에겐 그저 많고 많은 산이었던 것이 어머니께는 꽃나무가 있고, 열매를 선물해주는 고마운 나무가 모인 학교였다. 


그렇게 관심은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한다. 사소한 관심이란 없다. 거대한 관심도 없듯이.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소중히 생각하고 관심을 가진다면 어느 하나 허투루 보이는 법이란 없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나하나 알게 되고, 그 안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간다. 관심이란, 큰 힘을 갖고 있지는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한 명의 사람에게 또는 하나의 사물에게 그 사람/그것 만의 이야기를 심어주고, 또 그것으로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다시 우리에게 선물해주는 듯 하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문구가 담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 틀린 말은 아니나, 사랑보다 먼저 갖게 되는 것은 관심이 아닐까. 그것이 비록 사랑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하여도. 뭐, 현대인들은 관심 가진 게 너무 많아 탈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른으로 태어나다"  (0) 2016.12.30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0) 2016.12.30
"관심"  (0) 2016.12.30
“알바 시각표”  (0) 2016.12.21
“2005년 산 포도주”  (0) 2016.12.16
겨울이 되면  (0) 2016.12.12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4. 8. 12. 02:21 카테고리 없음

손가락을 깨물음    2014.8.12. 


내일을 예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잠들기 전 내일을 가끔 생각해보기도 한다. 몇 시에 일어나서 언제 집을 나설 것인지, 또 어떤 교통수단으로 내가 원하는 곳에 갈 것인지 등을 생각한다. 또는 내일 만나게 되는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때로는 가슴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괜한 꾸중을 들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계획한 대로 혹은 예상한 대로 내일이 이뤄지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끊임없이 밀려오는 졸음은 내가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침대 위에 마냥 누워만 있고 싶지만 그렇게 해서는 어제 세운 계획이 몽땅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껴 몸을 일으키지만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출근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사람으로 가득차고 그만큼의 다양한 화장품 냄새로 가득찬 대중교통을 타거나,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이렇게 많은데 아직도 자동차를 갖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함을 느낄 정도로 많은 차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교통체증이란 변비보다 해결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침의 기상과 출근 시간만을 적어도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왜냐하면 산뜻하지 못한 기상과 전쟁과 같은 출근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않았던 것이라 하는 편이 옳다. 사람들은 예상을 자신이 느끼기에 편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한다. 편하게 느낀다는 것은 그 계획을 세울 때 모든 기준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강인한 의지력을 비록 어제는 갖지 못했을지라도 내일 아침에는 그 능력이 생겼을 것이라 믿고, 또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는 다른 사람들은 아마 다들 약해진 의지 탓에 침대 위나 이불 속에서 늦잠에 빠져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계획인 만큼 그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간다. 빗나가는 것이 당연할 정도다. 


그럼 예상을 하거나 계획을 세우는 것에 있어 자신을 중심에 두는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 설마 그럴리가 있겠는가. 나쁘기는 커녕 여전히 매력적인 사람이고 사람들이다. 예상이나 계획 수립이 진정으로 가능해지고, 오늘과 내일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조각할 수 있다면 어떨까. 다시 말해 만약 오늘과 내일이 같으면 어떨까. 예를 들어 오늘 아주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해보자. 연봉 협상에서 내가 원하는 정도의 인상율을 얻어 내었거나 자신에게 평소 관심이 있어 보이던 이성으로부터 고백을 받았거나, 또는 지난 몇 달 혹은 몇 년간의 시간을 들여 준비한 시험에서 합격을 했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던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면, 내일이 오늘과 같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반대의 예도 많으니 긴장을 풀지 마시라. 오늘 지난 몇 년간 자신이 충성을 다했고 주말에도 빠짐없이 나와 마치 내가 사장인 듯한 인상마저 줄 정도로 혼신의 힘들 다했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거나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주고 싶었고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마치 '그대'를 만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연인으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거나 또는 길을 가다 불운하게도 사고를 당하여 자신의 현재 모습을 잃어버린 일이 오늘 일어났다면, 내일은 오늘과 결코 같아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오늘과 내일이 같으면 어떨까?  


오늘과 내일이 같지 않은 이유는 수없이 많겠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지금은 오늘이고 지금이 아닌 것은 내일이라는 점이다. 내일이 되면 지금이 오늘이 되고, 다시 내일은 지금이 아닌 것이 된다. 당연한 말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지금을 살고 오늘을 산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니들은 내일을 위해 살지만 나는 오늘을 위해 산다.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멋진 말이다. 원빈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내일을 사는 사람은 오늘만 사는 사람에게 언제나 패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진리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 오지 않은 내일을 사는 사람은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 혹은 오늘보다는 더 못할 내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결국 현실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설마 '현실에 충실하라' 따위가 이 글의 주제일리는 없다. 이런 천박한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갓사온 따끈따끈한 전등을 켜고 선풍기의 수고를 느끼면서 이런 글을 적을 이유는 없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묻고 싶다. 좀 더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도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지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내일은 예상하거나 계획하는 것이라 길~게 적었다. 오늘 기분 좋았던 일이 있었다고 해도 혹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만큼, 혹시 이 세상에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어제로 돌아가 오늘을 어떻게든 바꿔보고 싶을 정도의 기분 나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었다고 해도 내일은 또 다시 온다. 내일을 예상하는 것은 오늘의 연속이지만,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내일은 기억할 수 없다. 예상하거나 계획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기억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억을 하려해도 할 수 없는 숙명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내일에게 조의를 표할 수 밖에 없지만, 내일은 오늘이 되는 순간을 기다리며 흐르는 눈물을 콧물이라 속이며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질문을 해보자. 오늘이 되어버린 내일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잊지 못할 추억" 이라는 표현을 많이들 쓴다. 잊고 싶지 않을 만큼 좋았던 기억이 있다면 이 표현을 한 번쯤은 사용해 보았을 터이다. 또는 '결코 잊지 않겠다!'라며 이를 갈거나 붉은 펜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휘갈겨 쓰거나 몸에 문신을 새기거나 하는 방법을 통해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던 경험 역시도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결국은... 잊혀진다. 


사람이 가진 장점이자 단점은 기억할 수 있는 용량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간혹 천재의 등장이 인류 미래의 희망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천재 역시도 내일은 기억할 수 없으니 '너도 어차피 같은 인간이야.'라고 말하며 피식 웃어주는 것 밖에 나같은 평범한 사람은 할 일이 없기도 하다. 결국 사람은 누구든 기억을 한 것 중 일부는 잊게 되고, 또 잊은 만큼 다시 새로운 것을 기억하게 된다. 끊임없이 기억하려는 노력은 되려 집착을 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과거의 추억에 빠져 살고 있는 듯한 부정적인 인상을 주기까지 한다. 어디까지 기억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기억량을 보유하여야만 좋은지에 대한 기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냥'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기억하면 되는 것, 혹은 기억하기 싫은 것은 자연스레 잊혀지도록 기다려보는 것 이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묻고 싶어진다. 


'당신은 당신의 오늘을, 지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잊지 못할 추억이든,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든 이런 일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을 '아, 정말 잊지못할 추억이야' 라고 생각는 사람은 없을 듯 하고, 친구가 나를 보며 놀린 한 마디에 대해서 '잊지 않겠다!'라며 버럭버럭거리는 순수해보이지만 꽤나 잔인한 어린 친구들도 없을 듯하다. (혹시 있다면 꼭 응징하길 바란다.)  우리의 삶을 고고히 흐르게 하는 것들은 잊지 못할 추억이나,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일부러 해야 하는 것들이 아니다. 사실은 아무일도 아닌 듯, 돌아봐도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않은 일들에 의해서 하루하루가 채워져 나가고 있다. 


오늘 아침 일어나면서, 알람 소리를 어찌 저리도 청명히 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의 휴대전화를 미워하다가도, 또는 출근의 지옥버스나 지옥철 그리고 교통체증을 느끼더라도 그것들은 잠자리에 드는 순간 거의 잊어 버린 기억이 되어 버린다. 적게는 몇 십분에서 많게는 몇 시간을 쓴 그 경험들이 결국은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이 당연해지는 이유는,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일상은 특별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당신의 삶을 채워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시간을 통해서 성장하고 또 배우고 관계를 맺곤 한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잠을 잠으로써 성장하듯이 우리는 일상 속에서 경험을 하고 성장해 간다. 


나는 가끔 손가락을 깨물고 있을 때가 있다. 대부분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혹은 멍하니 있을 때, 둘 중 하나의 상황에서 나는 왼손 검지 손가락을 여지 없이 가만히 깨물고 있다. 아프지는 않을 정도지만 내가 손가락을 물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쯤 되는 고통을 내 손가락에게 가하곤 한다. 두 가지 행동의 이유는 사실 같다고 해도 무방하다. 손가락을 깨무는 이유는,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생각을 하는 것을 사진으로 찍을 수도 없고 또 생각을 글로 옮길 여유가 없을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내 두뇌 속의 적혈구들의 순환을 막을 의지도 없을 떄 나는 지긋이 손가락을 깨문다. 아프지는 않지만 내가 손가락을 깨물면서 지금의 순간을 기억하고자 한다. 멍하게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할 때 멍하니 손가락을 깨물고 있으면 '내가 지금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있구나' 정도의 기억을 내게 남길 수 있다. 물론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해야할 무엇인가를 종종 바로 다시 찾기도 하지만, 가만히 멍하니 손가락만 깨문 채,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열심히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손가락을 다소 느슨히 깨물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을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깨무는 것은, 오늘을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깨물면 마치 스위치가 켜지는 것처럼 '지금'을 느낄 수 있다. 사소해 보이지만 나만의 행동을 통해서 오늘을 기억하는 방식이 내일은 또 어떤 기억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예상은 하지 못할지언정 기대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손가락을 깨물어, 오늘의 내가 얻은 행복이 사실인지 정말인지 진짜인지 확인해보기도 하고, 잊지 못할 슬픔에 빠지게 되었거나 눈물을 펑펑 흘리고 싶을 때는 손가락을 있는 힘껏 꽉 깨물어, 내가 지금 우는 것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이 아파 우는 것인양 행동하고 그리고 손가락이 다시 아프지 않게 되면 오늘 겪었던 힘든 일이나 좋지 않았던 일들도 다 잊혀질 것처럼... 


손가락을 깨물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현실에 충실하신가요?' 가 아니라, '당신은 당신의 지금을,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요?' 이 질문이다. '어떻게'라는 부분에서 나는 손가락을 깨물고 손가락을 입에서 빼고 얼얼할 즈음에 그 생각을 글로 옮기거나 하기도 하지만, 결국 손가락을 깨물음이라는 행위가 그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사람마다 다양하고 또 특이하거나 평범하거나 뭐 여튼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을, 오늘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방식을 오늘을, 지금을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굳이 알려주실 필요는 없다. 지금을 기억하고, 오늘을 기억하는 여러분들의 방식을 통해서 더욱 오늘이 될 내일을 의미있는 날로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기억할 가치도 없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하루를 보내는 누군가가 있다면 손가락을 꽉 깨무는 것을 추천해 드린다. 아프다고 느끼는 것을 두려워 하지말고 사라질 고통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가진다면, 가치나 의미는 굳이 찾지 않으려 해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어느 순간 아픔을 느끼지 않는 손가락들이 엄지 손가락에게 말해, 그 당당한 위용을 당신의 눈 앞에 딱하고 치켜 세울 수 있도록 해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내일의 예상보다는 오늘의 기억을, 지금의 기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결국 내일도 오늘이 된다는 것이 오늘만을 기억해도 되는 우리에게는 큰 축복이 아닐까.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