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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5.23 "잘가"
  2. 2016.03.28 천안함 6주기
2016. 5. 23. 02:51 카테고리 없음
"잘가"

어제 들어온 친구와 간신히 하루를 보냈을 뿐이다. 어느 바다에서 왔는지, 차에 실려 오는 동안 어지럽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어머니가 그립지는 않은지. 몇 가지의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것을 기록이라도 하듯 내 짧은 기억력 속에 담아두려했다. 하지만 이내 곧 잊어버리고 다시 몇 가지 질문을 반복했다. 내 반복된 질문이 귀찮아질만도 했는데 새로운 친구는,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히 대답해준다. 내가 질문을 잊은 것 같으면 내게 다시 질문을 하라며 다그치기 까지 한다. 그 친구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넓은 몸이 횟감이 되기 전까지 자신이 살아있음을 내 질문을 통해서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 아저씨가 뜰채를 들고 와 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 새로운 친구를 잡으려 하면, 이리저리 피하면서 "나는 남해에서 왔어!! 내 이름은 광어야!!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의 삶이 부러워!!" 외치며 뜰채에 실려 나간다. 파닥파닥. 몇 번 파닥이다 횟칼에 목이 잘리고는, 부끄러운 속살이 사람들이 먹기 좋게 잘려 내 머리 위 창가로 보이는 사람들의 테이블에 놓였다. 핏기 하나 없는 하얀 몸은 이름 한 글자 적혀 있지 않았고, 고작 '자연산'이나 '양식' 정도의 분류만 허락되었다. 내 헤어짐에 눈물을 흘려도 물 속에 있는 탓에 보이지도 않았다. 매번 잊지만 또 매번 헤어질 때 생각하지만, 다음에는 수조를 떠나가는 친구들에게 꼭 외쳐주고 싶다. "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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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골목으로 돌아들어오려 하면 횟집이 하나 있다. 그 횟집은 특이하게도 수조들 중 한 칸에 금붕어를 키우고 있다. 오며 가며 보는 길에 횟감 생선들은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채워지기도 하지만 금붕어는 여전한 모습이다. 먹지 못하는 금붕어를 먹을 수 있는 광어나 멍게 등 해산물 사이에 키우는 주인의 생각은 알지 못하지만, 금붕어와 (대표적인 횟감인) 광어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갈까 궁금해졌다. 그걸 글로 표현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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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속에 태어나, 사랑 속에 살다, 사랑 속에 죽는다. 나는 이 표현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힘들면서도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태도이자 노력이라 믿는다. 최근 우리 사회는 그 무엇보다 '사랑 속에 죽는다'라는 것이 너무 힘든 것이 되었다. 높은 자살률 뿐만 아니라 빈곤사 그리고 타인에 의한 살인까지. 죽음을 맞이하기 전의 사랑이 불가능했다면, 죽음 이후의 사랑이 담긴 애도와 재발 방지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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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수조 속의 금붕어와 광어는, 분리되어 있기에 서로의 죽음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람은 다르다. 같은 나라에 살고, 같은 시기에 산다. 자신이 사랑 속에 살고 죽고자 한다면 타인의 삶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고 개선시키려 해야 한다. 그게 사람다운 일이다. 사랑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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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인근에서 돌아가신 분의 애도와 사랑 속에 삶을 마감짓지 못한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 잘가. 잘가세요.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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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8. 18:12 내 생각

“6주기”


천안함 폭침 6주기. 3월 26일은 6년 전 천안함이 두동강나고 바다로 침몰한 날이다. 나는 오늘 여기서,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천안함은 내 유년을 지키고자 했던 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2011년, 제10회 육군사관학교 안보토론대회에 참가했었다. 학부 시절의 마지막 대외활동으로서 선택했던 것이지만, 나는 우연히 아버지의 추억과 맞딱드리게 된다. 안보토론대회의 일정 중 해군2함대 평택기지에 전시되어 있는 천안함을 방문하는 일정이 그 계기였다.


천안함은 ‘정치’였다.


천안함과 관련된 논쟁에서 한 쪽의 이야기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그 믿음에 맞는 데이터를 찾았다. 근거가 된 데이터들은 상대방의 신념이 ‘비합리’나 ‘종북’이라고 매도하는데 활용되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 입장과 태도에 별 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고, 천안함을 방문하기 직전까지도 그랬다.


안보토론대회 둘째 날, 평택에 도착했다. 그리고 맨눈으로 처음 보는 천안함. 형체가 기괴했다. 철판이 저렇게 휘어질 수도 있구나 라는 놀라움과 함께 저 배 안에 타고 있었을 해군장병들에 대한 애도와 측은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코리아 타코마.


천안함 앞에 세워져 있던 철제 입간판에 천안함을 건조한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코리아 타코마. 익숙한 이름이었다. 아버지께서 다니시던 조선소의 이름이었고, 아버지의 작업복에 적혀 있던 이름이었다.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지금 저 천안함 전시되어 있는데 와 있습니다. 근데 건조회사가 코리아 타코마네요. 이거 아버지 계실 때 만드신겁니까? 응. 내가 만들었다. 천안함 진수식(처음으로 배를 바다에 띄우는 날)에 천안시장님도 오셨지. 그리고 자판기도 하나 놓아주시고 가셨다. 그날 참 사람들 많이 왔지.


87년에 건조되었다고 적힌 천안함. 내가 85년생이니 내 나이 3살 먹었을 당시 아버지께서는 조선소 노동자로서 천안함을 만들고 계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고, 국제정치를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두동강 난 천안함을 다시 만나고 있었다.


정치학을 공부하다 보면, 수많은 ‘결정적 시기’를 만나게 된다. 세계대전의 발발일이나 종전일 뿐만 아니라, 어떤 정치지도자가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큰 영향을 미친 시기 등, 다양한 시기들을 만난다. 한국정치사에서 결정적 시기라 할 수 있는 ‘천안함 폭침’이 내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경험. 새롭기도 했고, 일종의 감동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그럴 것 같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께서 각기 다른 곳에서 고생을 하셨던 것은, 나라의 경제 발전이라는 결정적 시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으셨을 것이다. 또 민주화 시대의 삼촌, 이모들은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결정적 시기를 만들어 내고자 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시대정신이랄까 시대의 대의는 사라져버린 지금,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결정적 시기를 지내며 그 시기에 대한 애정과 노력을 더하고 있는 듯하다.


20대 후반의 아버지께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땀 흘려 만드셨을 천안함을 역시 20대 후반의 아들이 정치학을 공부하며 마주하는 경험. 천안함 이 세 글자를 글이나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정치색이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나에게 있어서 천안함은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천안함 6주기. 이날 생을 달리하신 장병 여러분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 사랑 속에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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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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