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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1.23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2. 2013.07.01 난 당신의 후배가 아니에요.
2017. 1. 23. 20:03 내 생각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2017.01.23.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가장 자신의 아이를 망치는 것이 무엇인가, 를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

 

?

 

아이는 부모의 저 말을 듣고, 기뻤을 것이다, 아마 처음에는. 왜냐하면 머리가 좋다는 말은 분명 칭찬이고 부모로부터 인정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노력을 안한다는 이 말. 노력이야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당장은 칭찬 받은 것에 좋은 감정만을 느끼기로 한다. 물론 아주 특수한 경우이지만,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노력을 시작할지도 모르지만, 주변에 잘 보이지는 않는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책이 한 때 유행한 적이 있다. 책 내용의 핵심이란, 수족관의 돌고래나 고래를 훈련을 시킬 때 곡예의 난이도를 높여가며 그것을 성공시킬 때 마다 먹이를 주면 돌고래나 고래가 좋아하더라, 하는 내용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맥락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내 생각은,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한다. 왜냐하면 돌고래나 고래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안타깝게도 몇 가지 곡예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만약, 잘생긴 연예인, 예를 들어 장동건이나 원빈이나 공유 등등 하도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든 잘생긴 남자연예인들에게 잘생겼어요!’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자신도 모르는 바 아니었을 것이고, 처음 듣는 내용 아닐 것이며, 앞으로도 들을 말이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고맙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칭찬은 분명 고마운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중에 사랑해, 좋아해, 월급 들어왔다만큼 잘했네!’라는 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고마운 일이 아닌 경우가 있다.

 

앞서 말한 이야기에서, 아이들에게 머리가 좋다라거나, 잘생긴 남자연예인에게 잘생겼다고 하거나, 마찬가지로 예쁜 여자연예인에게 예뻐요라는 말들, 마냥 고맙기만 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연예인을 예로 들긴 했지만, 우리 일상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한테, ‘수학을 참 잘하는구나라는 첫 칭찬은 분명 그 학생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칭찬을 평소에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학생들이 수두룩할 터인데, 한 번의 칭찬은 분명 그 학생의 운명을 바꿀 만큼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할 것이다. 근데, 만약, 수학을 잘하는 학생에게 계속 수학을 잘한다는 칭찬을 해도 그 학생은 자신이 처음 느꼈던 어떤 보람이나 기쁜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칭찬에도 면역이 생기거나 점점 더 강한 자극적인 칭찬을 바라지 않을까?

 

칭찬은 고맙지만, 다른 칭찬을 해줘요.

 

가능하다면, 칭찬을 할 때 새로운 분야를 칭찬해주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분야란, 같은 수학이라도 내용이나 진도에 따라 다르게 칭찬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수학이 아닌 새로운 과목에 대한 칭찬을 해줄 수도 있다. 학생의 예를 들어 유치해 보일 수 있으니 어른의 이야기로 옮겨보자.

 

뭐 별 다른 거 있겠나. 성인이라고.

 

어른이든 청소년이든 아이든, 다만, 한 가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지 않을까 하고. 칭찬을 받았다고 머무르지 말자. 칭찬은 기쁜 것이지만, 칭찬에도 단계가 있고 발전이 있고 또 성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서 칭찬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분명 비판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칭찬 받으며 또 동시에 비판 받으며 성장한다.

 

새로운이라는 말에, 기존의 것들을 모두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더욱 잘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노력으로 단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새롭지 아니할까.

 

추신 같지 않은 추신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칭찬을 하려거든, 이보세요, 칭찬하시려는 분들. 칭찬을 하시려거든 말입니다. 관심을 깊게 그리고 오래 가지셔야 되요. 순간순간의 칭찬은 순간순간 소비되고 맙니다. 하지만 칭찬을 해줄 대상이나, 마찬가지로 비판을 할 대상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켜보세요. 쉽게 칭찬해준 사람은 쉽게 비난 하더라구요. 비판 말고, 비난이요.

 

타인을 깊이 있게 칭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도 성장하는 계기를 얻기도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감화(感化)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칭찬은 고맙지만,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그때 칭찬해 주세요. 그리고 혹시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거나,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불성실하다면 따끔히 비판해주세요. 여러분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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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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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 04:46 카테고리 없음

난 당신의 후배가 아니에요 2013.7.1


사람들의 관계 속에는 많은 호칭들이 존재한다. 직장에서는 부장, 차장, 과장이 있고, 가정 내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형,오빠 등 다양한 호칭으로 상호간의 관계를 규정짓곤 한다. 이런 호칭들은 동의를 통해서 이뤄지기도 하고,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부르거나 불려지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동의'는, 상호간의 동의를 포함하고 나아가 사회적 동의의 개념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동의는 왜 필요한 것일까. 


사회적 동의, 이 다섯글자에 이 글의 주제의식이 담겨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돌이나 연기자 그리고 개그맨 등 수많은 연예계 종사자들이 이렇게 말하곤 한다. 'OOO 선배님의 노래를 들으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어요', '### 선배님의 연기는 정말 최고라고 생각해요', '&&& 선배님이 저희한테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등. 앞서 적은 문장들에서 아무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고 해서 여러분의 호칭에 대한 민감성이 낮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호칭들에 대해서 잘못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가수들이나 연기자 혹은 개그맨들이 자신들의 업계, 즉 연예계라는 틀 내에서는 앞서 데뷔한 가수나 연기자가 선배일 수 있겠으나, 나에게는 그들이 선배가 아니다. 그들이 선배라고 불릴 수 있는 공간은 텔레비전 속의 공간이 아니라 그들 상호간의 개인적 관계 속에서만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텔레비전이라는 불특정 다수가 보는 사회적 공간에서까지 쓰는 것은 문제이다. 데뷔년도가 빠른 가수나 연기자가 그들에게 선배라고 불리는 것은 일면 당연한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쉽게 이야기해서 그들에게나 선배이지 내게는 선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종의 이런 선후배라는 호칭을 공중파 방송이든 케이블 방송인들을 가리지 않고 편하게 사용함은 그들의 관계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서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약 1년간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텔레비전을보아도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는 시점이 지나고 난 뒤부터 방송들을 즐겨 보기 시작했다. 그때에도 느꼈던 것이, 일본의 방송에서는 가수든 연기자든 심지어 노령의 진행자에게도 '선배'라는 호칭을 부르지 않고, '아무개 씨'라는 호칭으로 부른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일본 방송 내의 특징도 아니고, 일본 문화의 특징도 아닌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대중들에게는 그들의 선배가 대중의 선배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방송계 내부에서 존재하고 있는 권력 관계를 대중들에게는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전 한국 사회에, '갑을' 관계라는 것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부와 민간단체 등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갑을' 관계에 대해서 집중하였겠지만, 방송에서 데뷔년도가 느린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선배들을 '선배'라고 부르는 호칭에서도 그 그림자가 보였다. 결국 선배라면 그의 말에 복종까지는 아니라도 토를 달지 않아야 하고, 방송국에서 만나면 인사를 90도로 해야하고, 또 방송에서 선배에 대한 칭찬 혹은 미담을 이야기해야하는 것에서도 갑을 관계가 숨어 있다고 보였다. 


난 당신의 후배가 아니다. 


연예계라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업계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연예계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일부는 우연한 기회에 연예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했던 노력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라는, 방송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대중성, 다시 말해 연예인만이 보는 것이 아닌 모든 국민들이 다같이 보고, 심지어 최근에는 외국인들까지도 한국 방송이나 드라마를 찾아보는 상황에서 그들이 말하는 '선배'는, 연예계의 선배이지 우리의 선배가 아님을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몇 년동안 연습생 시절을 보내는 중에, 기존의 데뷔한 연예인들에 대한 동경이나 존경은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고, 또 데뷔 이후에도 '인기'라는 것이 '삶'의 척도가 되는 연예계에서 선후배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들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의 호칭에서 보여지는 집단 이기주의적 속성이 사회에 만연해질 때, 결국 우리 사회에서 흔히 일컫어지는 '선후배' 문화는 더욱 고착화될 것이다. 예를 들면, 검찰 내부의 일체주의, 법원의 전관예우, 경찰 내부의 경찰대 선호주의, 각 사관학교 출신들이 펼치는 친목을 가장한 선배 모시기 및 후배 챙기기를 비롯하여, 학벌주의나 지역주의 등의 문제가 더욱 공공연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잘못된 관계 맺음과 호칭들이 '후배'들이 가지고 있는 창의력이나 기발한 생각, 더욱 나은 방향으로의 발전 등을 가로 막는 원인 중 하나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호칭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우리가 '어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버이연합' 등 소위 말하는 애국보수단체들이 보여주는 갈등 증폭의 요소들이 어떻게 생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어버이', '선배', '형님', '오빠' 등 권력이 스며들기 쉬운 호칭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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