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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18 이런 이야기
  2. 2016.04.01 내 걱정
2016. 5. 18. 09:06 내 생각

이런 이야기가 떠오른 적 있다.


한 아이가 어머니가 자기 전에 몰래 먹는 하얀 통에 든 것을 몰래 빼오는데 성공했다. 어머니가 그것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기 까지는 하루라는 시간이 생겼고, 아이는 그것을 어머니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기 1시간 전에 몽땅 입에 털어넣을 것이라 다짐했다. 평소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불만도 없고, 자신이 자신을 둘러보아도 굳이 힘든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더욱 힘든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지나치게 사춘기스러운 고민을 맞딱뜨리게 되었고, 그 해답으로 찾은 것이 '의미 없다'라는 극단에 머무르게 되었다. 
아이는 하루라는 시간을 평소와는 다르게 쓰기로 한다. 다르게 쓴다고 해서 학교를 빠지거나 일탈을 즐기지는 않는다. 자신이 만약 무엇인가 특이한 일을하게 되면 그것은 자신의 삶에서 의미가 생기는 것이므로, 평소를 더욱 평소답게 보내고자 했다. 그날이 달라질 때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 뒤, 어머니의 퇴근 한 시간 전 뿐이어야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자기 전 일기장을 편다고 해도 적을 것라고는 날씨 정도에 지나지 않을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7시, 그럼 자신의 행동은 6시 정도에 실행하면 된다. 뒹굴거리다 빈둥거리다 보니 어느새 6시가 되어 있었다. 배는 고팠지만, 이 아이는 의미가 더욱 고팠다. 하얀 약통을 숨겨둔 곳에서 꺼내 와 물 한 잔과 함께 든다. 뚜껑을 열고 하얀 약을 한웅큼 꺼내서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입에 털어넣고 물을 벌컥벌컥 한 잔 가득 마신다. 자신의 방에 들어가 이불을 펴고, 조용히 누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졸립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무의미로부터 탈출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빠져 든 아이는 오히려 정신이 반짝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최초로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찾아서 한 어떤 결정적 행위인 탓이리라. 아이는 묘한 흥분과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께서 퇴근하고 돌아오신 것이다. 일찍 오신 걸까. 아니다. 시간은 7시를 가리키고 있고, 자신은 어떤 의미도 구하지 못했다. 잠시 설핏 들어다 싶다가도 깨기를 반복하며 생각만 한 시간을 열심히 했고,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나름 돌아볼 수 있었다는 의미만을 얻었을 뿐이다. 어머니께서 방문을 살짝 열어보시곤 '아들, 자니?'라고 나지막히 묻는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잠들어보려 노력했고, 어느샌가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8시. 잠이 깼다. 아이는 소변이 마려웠다. 참을 수 없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진한 노란색의 소변이었다. 거울을 보니 안그래도 어린 피부가 더 생기가 넘쳐보였다. 왜지? 왜 잠들지 않은거지? 거실로 나오니, 어머니가 저녁 먹으라며, 자는 거 같아서 깨우지 않았다 하신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하시는데. 
밤마다 먹는 비타민제가 든 통이 사라졌네.


아이는 활짝 웃었다. 저녁이 맛있어보였는지, 아니면 한 시간 잠든 동안 좋은 꿈을 꾸었는지, 그 사이 삶의 의미라도 찾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하루가 너무도 어이 없었지만 두고두고 떠올리면 재밌을 것 같아서인지.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이는, 활짝 웃었다. 다음에 돈을 벌면 어머니께 비타민이나 한 통 사드려야겠다며, 숟가락을 들고 잘먹겠습니다를 말하며 생각했다.

뭐 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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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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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 17:00 내 생각
"내 걱정"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아무런 미사여구도 없는 저 문장은 읽는 순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닮아있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것은, 어떤 불행을 말하는 것일까.

다시 읽어보면 설핏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요즘과 같이 행복한 가정이나 불행한 가정 모두 자신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또는 불행한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여러 도구들이 있는 시대에는 말이다.

행복한 가정의 닮은 모습이란 아래와 같지 않을까.

자녀와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자하기까지 한 부모. 각자의 공간이 있는 충분한 넓이의 집. 여름과 겨울에 떠나는 휴가. 건강하고 자신의 삶을 관조할 줄 아는 할아버지, 할머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꿈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는 자녀 혹은 꿈을 찾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활기차게 하고 있는 자녀. 끊어지지 않는 가족 간의 웃음과 대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그리기란 참으로 쉽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의 마음 속에 어떤 이상처럼 그 모습이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한 가정이란, 결코.

상상하기 조차 싫다.

하지만 그 상상 속의 어떤 일이나 사건들은 각자의 의지와 다르게 일어난다. 또 누군가는 지금도 그 불행 속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모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아니, 확실히 살고 있다.

행복한 가정에서도 불행한 사건들은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이 끼치는 영향이 각 가정에는 다르게 나타난다.

아마도.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의 차이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이나 경제력의 상실, 삶에의 의지 박약 등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함에도 그것을 가족이 같이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그러지 못한 것이 아닐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이 아닌 한 개인이라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접하고 해결함에 있어 그것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을 감히 '행복'한 상황이라 불러도 될 듯 하다.

고등학교 시절.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이 있었다.

"너희는 그냥 너희 앞날을 위해서 공부만 하면 되는데, 왜 공부를 하지 않니?"

선생님들의 이런 말들을 듣다보면, 한편으로 참 다행이다 싶고 또 한 편으로는 어른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다행이다' 싶은 것은, 나에게 저런 말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 어릴 적 자기 걱정만 할 수 있었던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소위 말하는' 안정감 있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에 다행이라 느꼈다. 또 한 편 느끼는 것, 어른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질문이 드는 이유는, 나보다 최소 10년 이상을 더 산 사람들이 그 사이에 타인의 -그것이 비록 학생일지라도- 고민이나 고통에 대해서 저다지도 공감을 할 수 없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어른이면 누구나 다양한 경험과 식견을 통해 이해심이 넓을 것이라 여겼던 내가 '어렸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네 걱정만 해라.'

라는 말에는, 결국 부모의 배려와 학교를 포함한 사회의 노력이 필요한 듯 하다. 한 사람이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고민하고 걱정할 수 있다는 것은 어릴 적에는 부모의 배려가 필요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사회가 갖추고 있는 제도나 시스템이 필요하다.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으나, 뉴스 한 꼭지나 신문 한 장만 들추어보아도 불운한 사건을 당한 사람이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말문이 막힌다.

부모의 배려가 무엇인지, 사회의 제도나 시스템이 어떤 구조인지는 모르겠다.

부모가 된 사람도-부모가 될 사람도- 제대로 알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각자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과 가치가 부딪히는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을 위한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가 그리 중요할까 싶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는 결국 '배 부르고 등 따뜻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조건만을 제시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내 걱정만 하고 싶다. 길게 적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내 걱정만 하고 싶다. 내 행복을 위한 걱정과 고민과 탐색과 시도를 하고 싶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 역시도 행복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 내가 되고 싶다.

그런 사회를 바란다는 것 만으로도, 톨스토이의 저 위대한 한 문장.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문장에 대해 "톨스토이 할아버지, 틀렸습니다. 훗!" 하고 콧방귀를 뀌어볼 수 있지 않을까.

내 걱정만 하고 싶다. 나만 내 걱정을 하는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걱정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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