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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23. 20:03 내 생각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2017.01.23.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가장 자신의 아이를 망치는 것이 무엇인가, 를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

 

?

 

아이는 부모의 저 말을 듣고, 기뻤을 것이다, 아마 처음에는. 왜냐하면 머리가 좋다는 말은 분명 칭찬이고 부모로부터 인정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노력을 안한다는 이 말. 노력이야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당장은 칭찬 받은 것에 좋은 감정만을 느끼기로 한다. 물론 아주 특수한 경우이지만,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노력을 시작할지도 모르지만, 주변에 잘 보이지는 않는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책이 한 때 유행한 적이 있다. 책 내용의 핵심이란, 수족관의 돌고래나 고래를 훈련을 시킬 때 곡예의 난이도를 높여가며 그것을 성공시킬 때 마다 먹이를 주면 돌고래나 고래가 좋아하더라, 하는 내용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맥락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내 생각은, 칭찬은 고래만 춤추게 한다. 왜냐하면 돌고래나 고래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안타깝게도 몇 가지 곡예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만약, 잘생긴 연예인, 예를 들어 장동건이나 원빈이나 공유 등등 하도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든 잘생긴 남자연예인들에게 잘생겼어요!’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자신도 모르는 바 아니었을 것이고, 처음 듣는 내용 아닐 것이며, 앞으로도 들을 말이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고맙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칭찬은 고맙지만, 고맙지 않네요.

 

칭찬은 분명 고마운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중에 사랑해, 좋아해, 월급 들어왔다만큼 잘했네!’라는 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고마운 일이 아닌 경우가 있다.

 

앞서 말한 이야기에서, 아이들에게 머리가 좋다라거나, 잘생긴 남자연예인에게 잘생겼다고 하거나, 마찬가지로 예쁜 여자연예인에게 예뻐요라는 말들, 마냥 고맙기만 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연예인을 예로 들긴 했지만, 우리 일상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한테, ‘수학을 참 잘하는구나라는 첫 칭찬은 분명 그 학생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칭찬을 평소에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학생들이 수두룩할 터인데, 한 번의 칭찬은 분명 그 학생의 운명을 바꿀 만큼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할 것이다. 근데, 만약, 수학을 잘하는 학생에게 계속 수학을 잘한다는 칭찬을 해도 그 학생은 자신이 처음 느꼈던 어떤 보람이나 기쁜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칭찬에도 면역이 생기거나 점점 더 강한 자극적인 칭찬을 바라지 않을까?

 

칭찬은 고맙지만, 다른 칭찬을 해줘요.

 

가능하다면, 칭찬을 할 때 새로운 분야를 칭찬해주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분야란, 같은 수학이라도 내용이나 진도에 따라 다르게 칭찬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수학이 아닌 새로운 과목에 대한 칭찬을 해줄 수도 있다. 학생의 예를 들어 유치해 보일 수 있으니 어른의 이야기로 옮겨보자.

 

뭐 별 다른 거 있겠나. 성인이라고.

 

어른이든 청소년이든 아이든, 다만, 한 가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지 않을까 하고. 칭찬을 받았다고 머무르지 말자. 칭찬은 기쁜 것이지만, 칭찬에도 단계가 있고 발전이 있고 또 성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서 칭찬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분명 비판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칭찬 받으며 또 동시에 비판 받으며 성장한다.

 

새로운이라는 말에, 기존의 것들을 모두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더욱 잘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노력으로 단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새롭지 아니할까.

 

추신 같지 않은 추신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칭찬을 하려거든, 이보세요, 칭찬하시려는 분들. 칭찬을 하시려거든 말입니다. 관심을 깊게 그리고 오래 가지셔야 되요. 순간순간의 칭찬은 순간순간 소비되고 맙니다. 하지만 칭찬을 해줄 대상이나, 마찬가지로 비판을 할 대상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켜보세요. 쉽게 칭찬해준 사람은 쉽게 비난 하더라구요. 비판 말고, 비난이요.

 

타인을 깊이 있게 칭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도 성장하는 계기를 얻기도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감화(感化)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칭찬은 고맙지만,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그때 칭찬해 주세요. 그리고 혹시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거나,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불성실하다면 따끔히 비판해주세요. 여러분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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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30. 18:25 내 생각

“어른으로 태어나다”


우리가 모르던 세상이 있어. 그곳에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데, 별다르지 않은 듯 하지만 한 가지가 달라. 그곳에는 아기가 태어나지 않아. 그렇다고 단 한 명도 아기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야. 오직 아기를 낳아 기를 수 있을 정도의 여유와 경제력을 가진 가족만 아기를 낳지. 하지만 그 수는 적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서 결혼을 하고, 또 아기를 낳아. 근데 그 아기, 태어나자 마자 어른이야. 남자 아이라면, 17살 정도로 태어나고 여자 아이라면 한 두 살 정도 더 이른 15살 정도에 태어나. 지금의 기준이라면 어린 나이로 보이겠지만, 이들이 이 나이로 태어나는 이유는 태어나자 마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야. 여자가 남자보다 더 어린 나이에 태어난다고 해서 기쁜 건 없어. 그저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남자보다 빨리 되기 때문이고, 또 그렇게 태어난 여자들은 태어나자 마자 결혼을 강제로 하게 되고 또 아기를 낳지. 그렇게 어른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하루 정도를 세상의 공기와 시간에 익숙해진 뒤 다음날부터 일을 하기 시작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를 듯 해 보이지만, 어디서든 사람은 필요하고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는 일은 차고 넘쳐. 태어나자 마자 시작한 일을 죽을 때까지 하게 되는거야. 

이 곳에는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일까. 살아가다 보면 필요한 건 추억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거의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이 첫 번째 이유야. 예를 들어 보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어린이들은 자신이 올해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 기대를 하겠지. 하지만 어느 순간, 산타 할아버지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 누구나 한 번쯤 산타 할아버지에 환상을 가진 적이 있었고, 또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들이 있어. 근데, 근데 말이야. 산타 할아버지가 실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는 게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지? 그저 어릴 적 추억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걸 우린 알잖아.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고, 결국 어린 시절의 추억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 결과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욕심은 많고 또 추위나 더위에 약하고 배울 것도 많은 어린 시절을 겪지 않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진화해 온 거지. 그러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산능력’을 갖춘 17살이나 15살 정도에서 삶을 시작하게 된 거야.

근데, 처음에 잠시 말했지만 그래도 아기를 아기의 모습으로 낳는 사람들이 있어. 이 사람들은 자신만의 유전자를 진화의 과정 속에서도 지켜온 사람들인데 그 수가 적어. 이 부류의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어. 한 부류는 번거롭고 귀찮고 비용도 많이 드는 육아의 과정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야. 쉽게 말하면 여유와 경제력이 있다는 것이지. 이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가진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이 사회에서 큰 권력과 유전적 우월성을 지닌다는 것을 알고 있어. 진화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는, 이 사람들은 ‘대기업’이라는 회사의 경영자 집단이었거나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갖는 권력 속에서 살았었어. 이들의 조상들은 그때에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어. 그들만의 어떤 공간을 만들고 살아왔다는 것도 여전해. 이런 사람들의 후손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유전자로 남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이들은 예전부터도 자신들이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항상 주장해왔었거든. 이들이 아기를 낳았다고 해도 이들이 아기를 기르는 건 아니야. 아까 말해두었지만, 아기를 기르는 일을 할 사람들은 차고 넘쳐. 아마 자신의 아기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가 자신의 어른을 낳은 뒤, 부풀어오른 젖가슴을 싸게 팔 여자는 많아. 그렇게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리고 산타는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들을 즐기며 살아. 

아기를 낳는 또 다른 분류의 사람들은, 앞선 부류의 사람보다 더욱 적어. 사실, 많을지도 모르지. 근데 이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아. 왜냐하면 자신이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들키면 앞선 부류의 사람들이 그 아기를 죽여버리고, 그 부모도 죽여버릴 것이 분명하거든. 누군가 자신이 가진 특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아. 그렇기에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깊은 산속이나 사람들이 잘 살지 않는 바다의 외딴 섬에서 살아. 도시도 가끔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방음처리가 잘 된 지하의 공간에서 그들의 아지트를 만들었지. 아기 울음 소리가 새어 나가면 안되니까 말이야. 아,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설명을 안했구나. 놀라지 말길.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 누구와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 그저 이 사람들의 평범함은 이 이상한 세상의 평범함이 아니라 그들의 선조이자,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살고 있던 시절의 평범함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아기를 낳아서 줄어든 잠을 이겨내기도 힘들지만 아기의 옹알이와 그 웃음 하나에 피로가 풀리곤 했던 예전 선조들의 평범함이지. 중학교 교복을 사주며 느꼈던 뭉클함과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느꼈던 묘한 상실감 등을 느꼈던 것들 말이지. 지금 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전에는 숨지 않았었어. 처음에 진화가 시작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어른을 낳는 것으로 진화했을 당시, 앞서 언급했던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그런 권력과 추억을 가진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할까봐 몇몇의 사람들이 진화를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권리를 인정해주었지. 하지만 그건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더 이상 권리를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았어. 진화를 거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어른을 낳는데, 왜 아무런 권력도 없는 일부의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만이 그런 특권을 유사하게 가지나며 반대했고, 폭행했고,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게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없애줄 것을 법으로 요청했지. 그게 시행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 두 번째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유전자를 몰래 이어오게 된 거야. 아무런 특징도 없는 평범했던 사람들이 비밀조직처럼 살아가게 된 거지.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평범해. 아니, 평범하지는 않은 듯 하기도 하다. 그들은 진화의 방향을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야. 다시,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기 위한 어른, 어른을 낳기 위한 여자를 낳을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결혼하고 또 지극히 평범하게 아기를 기르며 느끼는 고통을 느끼길 바라는 것 뿐이야. 그리고 아이들도 그들이 어릴 적 느꼈던 느낌과 추억들을 갖고 길고 긴. 힘들고 힘든 세월을 이겨내고 또 그런 추억들을 만들며 살아가길 바라는 것 뿐 인거지. 평범하지 않은 평범함을 이 사람들은 지켜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묻혀 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 중 한 부부가 있었어. 자신들이 낳은 갓난 아기를 안고, 이 부부는 지하실에서 걸어나갔어. 처음에 이 부부가 세상으로 나오자 모든 사람들이 저 부부가 안고 있는 이 조그마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했어. 웅성거림이 시작되었고, 아기는 엄마의 품임에도 주위의 웅성거림에 놀라 그만, 아앙앙 울어버리고 만거야. 그러자 일제히 사람들이 저 존재가 자신들은 겪어보지 못했던 아기라는 것을 깨닫고 멀리 도망을 쳐버려. 하지만 그 울음소리가 자신들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또 그 울음 소리가 주는 생동감과 가슴을 저미는 모성애에 이끌려 몇몇 여자들이 그 아기를 보기 위해 다가왔어. 그리고 남자들 중 몇몇도 그 아기가 우는 소리가 자신을 지켜달라는 소리로 들린 듯 해 가까이 다가왔어. 어느새 아기를 안고 있던 두 번째 부류의 평범한 부부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게 된거야. 그리고 그들은 하나 같이 모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지어보지 못한 따뜻한 표정을 짓고 아기를 바라보고 있었어. 탕! 멀리서 들린 소리인 듯 큰 소리가 났어. 그리고 더 이상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따뜻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어. 그 이유는 아기의 머리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야. 아기의 머리 대신 그곳에는 붉은 피와 살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어. 그리고 이윽고, 탕탕. 다시 두 발의 총소리가 났고 그 자리에서 두 번째 부류의 평범한 부부가 총에 맞아 죽었어. 어디서 쏜 것인지도 모를 총에 두 명이 아닌, 세 명의 사람이 죽었어.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던 듯 자리를 서둘러 피했어. 모두가 사라진 자리,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보낸 ‘일을 하는 어른’들이 시체를 치우고, 핏자국과 여러 흔적 그리고 아기 냄새를 없앴어. 이 부부의 죽음은,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의 역사에 평범하게 남아있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기. 죽다. 

이상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우리가 모르던 세상이지. 진화가 일어나기 전이라, 이상할지 모르겠네. 하지만 이 진화, 곧 일어날 것 같아. 그때가 되면,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산타 할아버지를 기대하는 어린이는 없겠지. 선물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 연말인데, 감기 조심하고. 내년에는 더 행복하자. 우리 모두 어릴 적 가졌던 꿈 다시 한 번 떠올리면서 말이지. 미래에 진화하면 ‘어릴 적 꿈’ 같은 말도 사라질 수 있으니까 말이야. 모두들, 새해 복들 많이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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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8. 00:14 내 생각

행복하셨는지 물어볼 수 있다면”  20161208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건 미래의 거대한 기계보다 때론 지금의 한 장 사진이 더욱 그 효과가 클 때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갖고 있지도 않은 사진이지만, 한 장의 사진을 떠올리며 어머니와의 시간 여행을 떠나곤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의자에 앉으신 채 형과 나를 다리 위에 한 명씩 올려놓고 또 안고 계셨습니다. 사진 속에는 세 명 모두 웃는 얼굴입니다. 어머니와 형과 나. 가장 환하게 웃는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긴 파마 머리에 스웨터를 입고 계신 어머니. 날씨가 추운 탓인지 아니면 바깥의 추운 날씨와 집안의 따뜻한 기온 차이 탓인지 얼굴은 붉어져 있습니다. 저는 3살 남짓 되었을까요. 몇 개 있지도 않은 치아를 빼꼼 보이며 역시 붉은 양볼 사이 수줍게 웃고 있습니다. 형도 특유의 귀여움을 잔뜩 품고 웃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어머니의 웃음이 밝고 환했습니다. 장롱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계신 어머니. 사진은 누군가 앉아서 찍은 듯 아래에서 위로 찍힌 모습이지만, 웃음과 행복을 담기에 적절치 못한 각도란 없습니다. 그 어머니의 웃음이 지금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느 덧 저는 사진 속의 어머니와 비슷하거나 많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시간은 그렇게 흘렀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행복과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울에 오기 전이나 고향에 방문할 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어머니의 이야기라곤 했지만 특정한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결혼으로, 느끼게 된 다양한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 사이에는 분명 제가 기억하는 저 사진이 찍힌 당시도 포함될 것입니다.

 

저는 슬펐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제가 어머니의 행복을 빼앗아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건 아닌지 슬퍼졌습니다. 젊고 활력이 넘치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이나 추억 속에서만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서글퍼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저 역시도 이렇게 사진 속의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농담 삼아 말하곤 합니다.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가 없어져도 좋으니, 시간을 되돌려 결혼은 하지 말라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전 어머니가 저의 어머니여서 좋습니다. 살아가며 힘든 사이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어머니의 모습. 전 그 모습이 좋습니다. 그래서 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제 기억 속에 있는 저 사진 속의 어머니께 한 번 묻고 싶습니다.

 

행복하십니까?”

 

그럼 어머니는 대답하시겠지요. 힘들지만 행복합니다. 이 아이들이 성장을 하면서 사고를 치거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이 아이들의 아버지인 남편이 나를 힘들게 할 수 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일어나지 않은 일들입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수많은 힘든 일 사이에서도 저는 지금 웃을 수 있습니다. 일어날 수도 있는 불행이 있겠죠. 그렇지만 그때에도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은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에게는 제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긴다고 해도, 전 행복했던 기억으로 그리고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로 살 수 있습니다.

 

어머니. 어느덧 작은 아들도 나이 서른을 넘기고 이제 서른셋이 되기까지도 시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합니다. 행복을 기억합니다. 어머니와 행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행복을 기대합니다. 어머니와의 행복을 기대합니다. 어머니께서도 기억하고 계실지 모를 사진 한 장에, 작은 아들은 오늘 가볍게 시간 여행을 했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저와 친구가 될 법한 나이의 어머니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둘도 없을 웃음을 지으시며 저와 형을 안은 채 대답하셨습니다.

 

행복합니다.

 

제 글이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보내셨을 어머니께 잠시나마 기쁨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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