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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4.04 거칠 혹은 까칠
  2. 2015.01.17 어떤 인문포럼 방문기 (1)
2016. 4. 4. 19:16 내 생각

"거칠 혹은 까칠"

 

20대 이후가 되어 나를 만난 사람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어릴 적에 꽤나 재밌는 사람이었다. (재밌는 사람이라 표현할 수도 있고, 남을 잘 웃기는 사람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 때는 흔히 말하는 '오락부장'으로서의 복무를 충실히 했지 말입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에는 항상 웃는 얼굴로 다닌다고 별명이 '씨산이' 였을 정도였다. (씨산이는 사투리로, 바보 같이 실실 웃고 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던 어린이가

 

20살이 넘고 머리에 뭔가가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남을 웃기는 일에 주저함이 많아지게 되었다. 투철한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 내가 웃기는 것을 즐겨 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방이 웃을 상황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편하게 하지 못하는 '장난' 이 대표적이다. 평상시에는 장난을 잘 받아주던 친구들이, 어느 날은 내 장난에 정색을 한 경우가 있었다. 그 원인은 친구가 '몸이 아파서' 일수도 있었고, 집에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되묻지 못했고, 어느 사이엔가 분위기를 살피고 친구를 배려하다 보니 진중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말 그대로 무엇인가를 배웠기 때문이다. 20살 때 처음 들어온 대학의 오티를 가는 버스 안, 학생회장 형님의 오티 관련 안내를 듣고 있었다. 당시에는 어색했던 '양성 평등'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오티에 가게 되면, 여장을 하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여장은 여성을 희화화하는 도구이며,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 중에는 여성을 포함한 많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멸시 혹은 조롱이 담겨 있다 했다.

 

몰랐다.

 

어릴 적 내가 웃기는 현우였을 수 있었던 것이, 다른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조롱해서 웃긴 것이 아님에도 '혹시 내가 그랬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없지는 않았을 테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으니, 그것을 알면서도 나쁜 일들을 저지른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몇 가지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뭔가 투박했다.

 

배운 것을 적용하고 써먹는데 있어서, (나의 표현이지만) 서울사람다워지지 않았다. '서울사람답다'라는 말은 뭔가 세련된 느낌이나 먼저 크게 배려하는 느낌의 어떤 것이지만, 나는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고집이 있었고, 배려를 너무 티나게 했다. 무언가 의도가 있는 듯 보였던 배려들은 오히려 많은 오해들을 낳았다.

 

언젠가 한 동생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 조금 더 매끈할 수 없어요? 형의 거칠거칠한 면이랑 잘 맞는 사람은 형과 친해지고 형을 더 잘 알 수 있겠지만, 형의 그 거친 면에 상처를 받는 사람도 많을 듯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 나름의 배려와 공부를 통해 얻은 어떤 것을 글이나 말로 표현할 때 그 거친 면이 드러났다. 그리고 나는 되려 그 거친 면이 나의 모습이라며, 세상 모든 것이 다 쉽고 편하고 별 일 없이 돌아갈 때 나 혼자라도 그렇게 거친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마치 김영랑의 시 '독을 차고'의 화자와 같은 심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외로워졌다.

 

몇몇의 편한 친구들은 나를 이해하고 인정했지만, 새롭게 사귄 친구나 나의 거친 면을 원하지 않게 확인한 친구들은 그 거침을 까칠함으로 인식한 듯 했고 그렇게 멀어져갔다. 결국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배려'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 이상의 배려는 없을 것이라 여겼던 나는, 사실 내 주관에 맞춰 배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타인의 몸과 마음 모두에게 어떤 '불편함'을 주고 있었다.

 

그럴수록 점점 더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쉽게 변할 수는 없었다. 지금 적고 있는 이런 글도 마찬가지였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글을 적자니 이전에 써 오던 '나의 스타일'의 글들이 가지는 관성이 있었고, 사람을 대할 때도 이전과는 다르게 갑자기 '너의 생각은 이런 부분이 잘못되었구나~‘ 라거나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고 차근차근 설명이나 해명을 할 수 있게 되기는 쉽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고집 센 사람이 무엇인가를 잘못 배우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은 가득 남아 있고 단지 그것을 배우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나은 사회를 위해 활용하고자 하는 나의 입장으로서는 여러모로 답답한 측면이 없지 않다. ‘고집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억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어쩌겠냐 싶으면서도 또 세상이라 부르던 사회라고 부르던 복잡다단하게 돌아가는 이 곳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강변해보아도 결국 외로운 사람은 나뿐이다 싶다.

 

가끔 혹은 자주 나도 매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몸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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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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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7. 01:33 일상다반사

어떤 인문포럼 방문기 2015.1.17. 


이번 주에 무슨 인문포럼이라는 곳을 갔다 왔다.

보험영업으로 성공하신 어떤 여사분이 젊은 스타트업 기업가들을 위해서 매주 인문학 강좌 등을 열었고 그러한 것들이 계기가 되어 처음으로 큰 규모의 인문포럼을 개최하게 되었다길래 어떤 곳인가 해서 가보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축사를 했고, 강연자 중에는 혜민 스님을 포함하여 국내외 교수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개회사를 할 때 레이져를 쏘며 북을 치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을 보고, 바로 그 자리를 떴어야 했는데 차마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

개회식을 마치고 거칠게 이야기를 하면, 돈을 내고 참석한 사람과 돈을 내지 않고 참석한 사람을 나누었다. 장소를 나뉘어 포럼을 진행했고, 개회식이 있었던 자리에 머물러도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사람들은 구분되엇다. 나는 돈을 내지 않고 갔으므로 다른 곳으로 몸을 옮겼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강연 콘텐츠와 연계해서 강연을 진행했다. 프랑스에서 온 심장의 한 분의 강연과 그 외 몇몇의 한국인 교수의 강연을 짧은 시간(15분 정도)을 이어 붙여가며 들었다. 오종철이라는 개그맨 출신 진행자가 진행을 한다. 그리고 별 시덥잖은 질문을 한다. '오늘은 손을 몇 번 씻으셨는지요?'나 '교수님은 사서나 오경 중 어떤 것이 자신과 맞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등. 오전의 강연을 듣고 점심으로 샌드위치와 커피를 나누어 주기에 먹고 오후에 강연이 계속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그것이 나에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왜?

참가한 사람들에게 질문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마치 강연 영상이라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관객 정도의 대우를 참가자에게 부여했다. 방송 촬영을 해야하니 질문은 사전에 종이로 받겠습니다 라던지, 마치고 한 번에 질문을 하겠습니다 라는 멘트가 한 번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글을 적을 필요도 없었을테지만, 그런 설명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명색이 '인문포럼'이다. 인문학의 핵심 정신은 질문이다. 그것이 옳은 질문이든 옳지 않은 질무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많은 사람이나 혹은 개인적으로 던져 보는 것 자체가 인문학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참가했던 인문포럼은 그런 기회 자체를 주지 않았다. 진행자는 진행을 하는 사람이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참가자는 관객이 아니라 질문자임에도 철저히 박수를 유도 당하는 관객으로 취급받았다.

돈을 내고, 샌드위치를 먹지 않고 호텔식 식사를 했던 사람들에게는 질문의 기회가 있었다면 나는 더욱 화를 내어야만 한다. 물론 호텔식 식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문의 기회 마저도 참가비의 유무에 따라 차별 받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문정신의 훼손이다.

다른 여러 가지 비판점이 있지만,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았음'을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고자 한다.

인문학이라는 말이 시정잡배의 '법대로 해라'라는 말에 나오는 '법' 정도의 지위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인문포럼이라고 하긴 했는데 영어로 Humanities Forum 이라고 영문 번역을 했던데. 휴머니티는 인문학이 아니라 '인간성'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인문학 포럼을 간 게 아니라, 인간성 포럼에 갔으니 질문은 없어도 될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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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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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03 10:08  Addr  Edit/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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