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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7.01.18 일상에 산다
  2. 2017.01.18 산중턱이었다.
  3. 2016.05.18 이런 이야기
  4. 2016.05.17 옷을 파는 노파
  5. 2015.04.12 나에게 바란다_5 (1)
2017. 1. 18. 11:24 내 생각

일상에 산다

 

사당의 한 술집에서 시비가 붙은 일이 있었고, 몇 일이 지났다. 시비 자체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것은 없다. 그저 어리고 안타까운 영혼들이 술이라는 악마의 피를 마시고, 괜한 사람에게 자신의 더러움을 퍼부은 것. 그 정도의 술회를 갖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억울할 일도, 화날 일도 없다. 어이가 없을 뿐. 그러나 몇 가지 느낀 바 있다.

 

더러움은 묻지 않았다. 내가 티 없이 깨끗하였다면 더러움 묻었을 것이나 그렇게 깨끗하지 않아 술집에서의 시비정도, 묻어도 묻은 티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양아치들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 아니다. 살면서 몇 가지 잘못을 했고 그것을 반성하며 살고 있다. 누구, 잘못하지 않은 자 돌을 던져라. 순수하지 않기에 더욱 더러워지지 않고, 더더욱 상처받지 않는다.

 

그리고 일상.

 

더러운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복귀할 일상이 있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건 더러운 일 뿐 만은 아니다. 슬픈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일상이 있다는 건 소중한 일이다. 화나는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일상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나아가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쁜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일상이 있다는 건 필요한 일이다. 순간의 감정 변화가 삶 전체를 바꾸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감정의 충동은 일시적이라도 삶의, 일상의 주인은 나여야 한다는 것. 나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참는 것이 아니다. 이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삶 전체에 티끌 하나, 그것이 그림 전체를 망치게 두지 않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가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새 그림을 그릴 수는 없고, 포기할 수도 없으나 뭐, 아직 그릴 공간이 남았고 그 그림 그리는 일상. 그것이 소중하다는 것.

 

언젠가 적었지만.

 

비가 내려도 바다는 여전히 짜다. 파도가 쳐도 바다는 여전히 짜다. 시련은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 시련이지도 않은 것들은 하물며. 헛헛, 웃으며 일상에 있다. 일상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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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8. 11:19 내 생각


"산중턱이었다."


산중턱이었다. 어린 시절이었으므로 오르긴 힘들었지만, 한 번 오르고 나면 높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탁트임과 그로 인한 청량감이 들었다. 할머니의 집(할아버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으므로, 주말마다 방문하는 곳은 자연스레 할머니의 집이 되었다, 그리고 정식명칭은 할매집이다.)은 산을 뒤로 세워진 단독주택이었다. 넓다거나 크다고는 하지 못했지만, 형과 내가 뛰어 놀 만큼의 공간은 충분했다. 그리고 결코 한 번도 빠져보진 못하겠지만 마산의 명치 깊숙이 들어와 있는 합포만은 또 그만큼의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다.

 

할머니집에서 가까운 곳에는 우물이 있었다. 할머니의 집 바로 앞 아래쪽에는 200평 남짓 되는 밭이 있었고 그 밭과 아랫집 사이에 흙길이 있었다. 그 흙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바로 그 우물이 있었다. 생각하는 그런 우물은 아니다. 물을 길어 쓰는 우물이 아니라 물이 넘쳐 흐르는 우물이었다. 무학산 줄기에서 흐른 물이 지하로 타고 흘러 마침 그곳에서 솟아 올랐고 그 물을 사용하기 위해 누군가 만들어 놓은 시멘트로 만든 우물이었다. 우물 주위에는 이끼나 고사리 같은 것이 푸르름을 더하고 있었고, 가끔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보라색 조그만 꽃들도 보였다. 그리고 아주머니들.

 

빨랫감을 들고 나와 빨래를 하는 아주머니들. 그들의 손에도 조그마한 꽃들이 피었다. 보라색은 아닌, 붉은 꽃. 그 꽃은 사람 손과 꼭 같았다. 붉게도 피었지만 손목에 붙어 부지런히 빨래에 묻은 삶의 때와 먼지들을 털어내고 있었다. 크지 않은 동네였으므로, 내가 그 옆을 지나갈 참이면 그 꽃들은 내 손을 잡고 내 볼을 꼬집었다. ‘해누, 왔나~.’ 인사를 꾸벅, 하긴 하지만 누군지 알지 못하는 아주머니들이다. 그저 매주 얼굴을 보고, 성씨를 붙이거나 출신지역을 붙인 ‘~으로만 불리는 아주머니들이다. (참고로 우리 할머니는 뒷길댁으로 불렸다. 길 뒷편에 살았기 때문이리라.) 꽃과 같은 손, 손과 같은 꽃들이 빨래를 하고 있는 그곳은 매주 할머지집에 갈 때마다 꼭 한 번씩 들렀다. 여름이면 거기서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웃통을 벗고 등목을 하기도 했고, 어머니를 따라 빨래를 하러 가선 이끼나 풀잎들을 뜯어다가 흘러가는 물에 슬며시 올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우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내가 성장하지 않을 것처럼.

 

시간이 흘러 할머니께서 이사를 하셨다. 혼자 사시기엔 큰 집이기도 했고 또 그만큼 융통할 수 있는 돈이 궁색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또 다른 할머니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다 몇 해 전, 우연히 그 우물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바짝 마른 우물, 그리고 더 이상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그 공간. 꽃 한 송이 피어 있지 않았고 누가 보아도 그저 둔덕이었다. 빨래를 하는 손 빨간 아주머니도 없었고, 나를 불러 세우는 이도 없었다. 나는 그 사이, 그곳을 오르는 데 힘을 들이지 않았고, 가능하면 차를 타고 가거나 할머니집 바로 뒤에 생긴 산복도로에서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그저 그랬다.

 

10여 년이 지나며 많은 것이 변했다. 할머니집이 있던 동네에는 소방도로가 생겼고, 그 소방도로로라는 주차공간이 생기자 사람들은 차를 타고 동네를 드나들었다. 그 동네에 살던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또 그렇게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 채워지는 새로운 동네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나는 청소년을 지나 성인이 되어 있었고, 메마른 우물 하나 보다 더욱 메말라 있을지도 모를 감성, 감정을 갖게 되었다. 살면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어릴 적의 추억이라기 보다 하루하루, 강하게 내리쬐는 감정 없는 논평과 시선과 그리고 생계, 그런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만약.

 

변하지 않고 만약, 그 우물이 그대로 예전처럼 흐르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푸른 이끼가 묘한 징그러움을 선사하고 보라색 조그만 꽃과 붉은 손꽃이 나를 반겼다면, 나 역시도 그 당시의 순수한 모습이 다시금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느낌으로 내가 다시 감정이 흘러넘치는 우물이 되어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길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랑은 모텔에서의 2시간으로만 상징되는 이곳에 한 방울 한 방울 감정을, 떨어트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우물이 하나쯤,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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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8. 09:06 내 생각

이런 이야기가 떠오른 적 있다.


한 아이가 어머니가 자기 전에 몰래 먹는 하얀 통에 든 것을 몰래 빼오는데 성공했다. 어머니가 그것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기 까지는 하루라는 시간이 생겼고, 아이는 그것을 어머니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기 1시간 전에 몽땅 입에 털어넣을 것이라 다짐했다. 평소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불만도 없고, 자신이 자신을 둘러보아도 굳이 힘든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더욱 힘든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지나치게 사춘기스러운 고민을 맞딱뜨리게 되었고, 그 해답으로 찾은 것이 '의미 없다'라는 극단에 머무르게 되었다. 
아이는 하루라는 시간을 평소와는 다르게 쓰기로 한다. 다르게 쓴다고 해서 학교를 빠지거나 일탈을 즐기지는 않는다. 자신이 만약 무엇인가 특이한 일을하게 되면 그것은 자신의 삶에서 의미가 생기는 것이므로, 평소를 더욱 평소답게 보내고자 했다. 그날이 달라질 때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 뒤, 어머니의 퇴근 한 시간 전 뿐이어야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자기 전 일기장을 편다고 해도 적을 것라고는 날씨 정도에 지나지 않을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7시, 그럼 자신의 행동은 6시 정도에 실행하면 된다. 뒹굴거리다 빈둥거리다 보니 어느새 6시가 되어 있었다. 배는 고팠지만, 이 아이는 의미가 더욱 고팠다. 하얀 약통을 숨겨둔 곳에서 꺼내 와 물 한 잔과 함께 든다. 뚜껑을 열고 하얀 약을 한웅큼 꺼내서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입에 털어넣고 물을 벌컥벌컥 한 잔 가득 마신다. 자신의 방에 들어가 이불을 펴고, 조용히 누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졸립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무의미로부터 탈출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빠져 든 아이는 오히려 정신이 반짝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최초로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찾아서 한 어떤 결정적 행위인 탓이리라. 아이는 묘한 흥분과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께서 퇴근하고 돌아오신 것이다. 일찍 오신 걸까. 아니다. 시간은 7시를 가리키고 있고, 자신은 어떤 의미도 구하지 못했다. 잠시 설핏 들어다 싶다가도 깨기를 반복하며 생각만 한 시간을 열심히 했고,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나름 돌아볼 수 있었다는 의미만을 얻었을 뿐이다. 어머니께서 방문을 살짝 열어보시곤 '아들, 자니?'라고 나지막히 묻는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잠들어보려 노력했고, 어느샌가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8시. 잠이 깼다. 아이는 소변이 마려웠다. 참을 수 없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진한 노란색의 소변이었다. 거울을 보니 안그래도 어린 피부가 더 생기가 넘쳐보였다. 왜지? 왜 잠들지 않은거지? 거실로 나오니, 어머니가 저녁 먹으라며, 자는 거 같아서 깨우지 않았다 하신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하시는데. 
밤마다 먹는 비타민제가 든 통이 사라졌네.


아이는 활짝 웃었다. 저녁이 맛있어보였는지, 아니면 한 시간 잠든 동안 좋은 꿈을 꾸었는지, 그 사이 삶의 의미라도 찾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하루가 너무도 어이 없었지만 두고두고 떠올리면 재밌을 것 같아서인지.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이는, 활짝 웃었다. 다음에 돈을 벌면 어머니께 비타민이나 한 통 사드려야겠다며, 숟가락을 들고 잘먹겠습니다를 말하며 생각했다.

뭐 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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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7. 02:17 내 생각


"옷을 파는 노파"


이대역과 신촌역 사이, 나무에 옷을 걸어놓고 옷을 파는 한 노파가 있다. 옷걸이에 걸린 옷을 연신 나풀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지나가는 여대생들이나 여자들에게 옷을 권유한다. 자주 마주쳐보았지만, 남자 옷은 팔지 않는다. 옷의 질은 낡았다. 보세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헌 옷 상자에 들어있을 법한 그런 옷들이다. 하지만 그런 옷들을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들이댈 때는 사뭇 진지하다. 저런 옷이 팔릴까 정말 궁금했다. 단 한 번도 누군가 옷을 사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러다 얼마 후, 집으로 가는 길에 그 노파가 보이지 않았다. 활기찬 모습으로 옷을 날개삼아 펄럭이고 있어야 할 곳에 아무도 없자 순간, 걱정이 스쳤다.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닐까. 환절기라 날씨가 아침저녁으로는 추웠고, 또 그 노파는 얇은 반팔티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새로 옷을 도매상에서 혹은 헌 옷 상자에서 사오거나 꺼내오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그 어떤 것도 답은 아닐지 모른다. 그저, 하루가 고단해 그날은 쉬고 싶었을지도.


나는 아마 다시 그 길을 지나겠지만, 그 노파가 파는 옷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옷을 팔고 있는 그 모습을 반가워는 하겠지만, 내가 입지도 않을 옷을 사 그 노파에게 동정심이 들었다는 것을 표현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정심이 든 마음이란, 그 노파가 가진 가난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아무도 옷을 사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데에 대한 동정이지, 다른 동정은 가진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노파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또 그것을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 삼는데 있어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함을 배웠다.


무엇보다 계절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서 꾸준하게 있는 그 모습이 멋져보이기도 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간혹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나, 편견에 대해서 쉽게 판정짓고 편한대로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삶의 방식이나 태도에는 답은 없다. 성공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꿈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이나 금전적 성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에게, 열정이 없다느니 젊은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느니 하는 말도 필요 없다. 꿈을 가지지 않아 되는대로 산다는 사람에게도 비난을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사는 방식이 다른 것 뿐이고 주어진 삶에 대한 태도가 다를 뿐이다.


이대-신촌 거리의 한 노파는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 살 것이다. 옷이 많이 팔리면 좋겠지만, 그러지는 않을 듯 하고, 노파가 그것을 깨달으면 자신이 스스로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찾을 것이다.


그러면 되지 않을까.


노파도, 삶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언젠가 깨달을 수도 있는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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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12. 01:32 내 생각

"오늘도 한 걸음을 열심히 걸었다."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이면 자신이 하는 공부나 향후 합격 이후의 삶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나누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진 못했지만, 신림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험 공부를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자신은 그 시험에 합격한 사람인 양 행동하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험 합격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상상하고 기대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자기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좋은 태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합격이라는 지상명제를 얻기 이전까지 고시생은 고시생에 불과합니다. 고시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곧 구성원이 될 것이라 믿는 정부나 법조계에 대한 우호적인 인식은 오히려 공부할 때에 가져야 하는 비판의식이나 문제의식을 쉽게 잠식해 버리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위험성 뿐만 아니라, 만약 자신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을 경우 가질 수 밖에 없는 박탈감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주변 고시생들의 합격 소식을 듣기라도 한다면 축하의 마음보다, 자책과 후회의 마음이 더욱 크게 들기 마련입니다.

과연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만 그럴까요?

최근에는 취업을 준비하거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역시 그렇습니다. 대기업에 들어가야겠다, 마음 먹은 순간부터 자신은 이미 대기업에 속한 사람이 된 양 행동합니다. 예비창업자들 역시도 창업을 위한 준비도 채 하기도 전에 창업 이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를 낙관적으로 예상합니다.

취업 준비생, 예비창업자 역시 취업과 창업 전 가장 필요한 생각들(예를 들면, 이 직업과 자신의 가치관이 부합하는지, 이 사업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은 쉽게 무시하게 됩니다.

고시든, 취업이든, 창업이든 무엇 하나 쉽지 않다 보니 준비하는 시점에서 요구되는 생각들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나친 몰입은 합격을 한 이우에는 오히려 가질 수 없는, 자신만의 색깔이나 생각 정립의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있으니 경계해주길 바라는 마음만은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 글을 통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기대감과 실망감의 간극에서 느낄 수 있는 자기 훼손입니다. 준비를 하는 순간부터 이미 된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실패를 하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원하는 것은 남도 원합니다. 고시든, 취업-창업이든 다른 모든 분야에서든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 준비한다는 것 만으로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보장은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과도한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다는 것입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언제나 실망은 기대보다 더욱 크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실망 이후에 찾아오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자기 훼손입니다.

실패의 원인이 자기 자신의 노력 부족이나 어제의 휴식으로 인한 나태함, 또 때론 신이 자신에게 준 시련과 고난이라며 자기 자신을 한 없이 낮고 부끄러운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 훼손은 오히려 나을지 모릅니다. 앞서 말한 자기 훼손은 협의(狹意)의 자기 훼손입니다. 광의(廣意)의 자기 훼손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가족의 경제 상황이나 주변 친구들의 방황, 연인의 존재 등)까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가시키게 됩니다.

협의든, 광의든 자기 훼손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결국 자신이 가졌던 과도한 기대 심리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시나 취업-창업 뿐만 아니라 연인 관계의 파탄의 주요 원인이 되는 '네가 그런 사람일지 몰랐어'라는 표현 역시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기 훼손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기대감을 낮추면 됩니다. 기대감을 낮춘다는 것은, 시험 합격 이후나 취업 이후, 창업 대박 이후에 대한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낙관적인 기대를 유지하되 당장 그 기대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루 아침에 삶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은, 사고나 생사(生死) 밖에 없습니다.

먼 미래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철저한 준비를 해야합니다.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의 기대란, 자신이 오늘 이룰 수 있는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 책을 하루 7 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오늘은 책을 10 페이지 읽겠다는 목표를 잡고 그것을 이루고 난 뒤의 기대를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이고, 취업, 창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고 그 단계는 꽤나 사소한 목표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큰 기대를 한 번에 잃었을 때 느끼는 실망감을 느끼기 보다, 작은 기대를 조금씩 쌓아가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는 사랑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투덜대고 잘 챙겨주지도 않던 사람이, 한 번의 큰 이벤트를 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과거의 모든 잘못이나 섭섭함이 일거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 연인에 대한 사소하지지만 소중한 기대들을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큰 기대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될 것입니다. 기나긴 다툼 끝의 다이아몬드 보다 오랫동안 주고 받은 따뜻한 편지 끝에 금 반지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기대는 자기도 모르게 커져만 갑니다. 겉잡을 수 없이 커진 기대감이 자신의 삶을 더욱 가치있게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근거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근거들은 이루어졌을 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실패의 가능성이 '0'이라 단언할 수 없는 상황들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실패를 예상해 기대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실패할래야 할 수 없는, 또는 실패를 하더라도 충분히 수긍가능한 기대를 조금씩 하며 쌓아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제의 밥 한 끼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처럼, 조금씩 꾸준히 기대를 채워나가야 합니다. 이런 태도는 자기 훼손을 막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태도입니다.

한 걸음입니다.

높은 산을 오르든, 고시를 공부하든, 취업이나 창업을 준비하든 그것을 향해 가는 발걸음은 한 걸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기대는 결과의 산물(産物)이 아니라 과정의 산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루하루를 기대에 대한 성취로 삼으세요.

기대를 버리지 말되 기대의 단계를 나누어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기대에 대한 노력을 다하길, 로마가 하루에 완성되지 않았듯 우리네 삶도, 꿈도, 사랑도 역시 그럴 것이기에 꾸준히 노력하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만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생각들을 너무 쉽게 '성취' 이후 자신의 모습에 몰입하여 놓치지 말기를, 자기 훼손을 야기할 수 있는 지나친 기대감을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으로 삼지 말길, ‪#‎나에게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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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망망 2016.03.07 23:06  Addr  Edit/Del  Reply

    좋은글잘읽었습니다~정말많이깨닫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