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가고파라가고파

Notic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92,141total
  • 2today
  • 0yesterday

'장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4.19 여드름 자국
  2. 2013.11.08 아름답지 않은 아이는 없다.
2016. 4. 19. 00:31 내 생각

여드름 자국

 

중학교 시절까지 단 하나도 나지 않던 여드름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내 얼굴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춘기가 되면 누구나 나는 것이라 생각해 내버려두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선 배 밑에 베개를 깔고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양손을 얼굴에 대고 여드름을 상처로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드름을 무던히도 열심히 짰던 기억이 선명한 것은, 그 사소한 실수가 지금까지도 내 얼굴에 남아 있다는 것을 매일 거울을 보며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하얀 고름이나 유분기가 ’-이 소리는 실제로 난 소리는 아니고, 마음 속에서만 들렸던 소리다-소리를 내며 거울에 튀겼고, 나는 더욱 힘껏 여드름을 손으로 꾹꾹 눌러 피가 나도록 했다. 몇 번의 반복된 동작 끝에 내 얼굴에는 여드름의 기미는 사라졌지만 불긋한 상처와 딱지들이 남았다. 상처가 나으면 예전의 피부도 돌아가겠지- 하는 착각. 이 있었다. 그때는 그 사소한 행동들이 이후의 내 얼굴의 한 특징이 될 줄 알았을리 없다.

 

나에게는 익숙해졌지만.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익숙해지지 않는 듯 했다. 대놓고 내 피부를 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내 피부 상태를 보고, 나 자신을 관리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기는 듯 했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것은, 내 눈을 보지 않고 묘하게 피부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적어졌지만 과거에는 꽤- 많았다.

 

상처가 남았다.

 

여드름 흉터로 인해 상처가 남은 것은 내 피부였지만,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나 사소한 놀림-예를 들어 달의 표면 사진을 보는데, 네 피부가 생각났다.’ 라던지, ‘좀 씻고 다녀라라던지- 에 의해서 마음에도 상처가 남았다. 피부의 치료를 위해 피부과를 다녀보기도 했지만,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내가 익숙해진 만큼 크게 신경쓰지 않는 시간들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예전의 중학교 친구가 생각났다. 오른손이 있을 자리에 항상 붕대를 감고 다녔던 친구. 그 친구는 혈관기형으로 손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했다. 자신과 같이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기 위해 한의사가 되고자 했었는데,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친구는 손이 없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불편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는데, 그 시선탓에 굳이 감지 않아도 될 붕대를 감아야만 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혐오스럽다며 언짢은 표정을 자주 지었다고 했고 자신도 그런 피해를 남에게 주고 싶지 않다 했다.

 

손과 피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용도와 이질감이 덜 드는 쪽은 피부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다르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그 결과는 같을 수도 있다.

 

이질감.

 

티비를 틀어보면 피부 미끈한 사람과 손 두 개인 사람들이 나온다. 심지어 예쁘고 잘생기기까지 했다. 굳이 티비를 틀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도 관리 잘된 피부를 갖춘 사람을 꿀피부나 피부 미녀/미남이라 칭송하기도 하고 매력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손이 없거나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저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편하게 만들어내어 관리복지의 대상으로까지 만들어 버린다. 그 원인에는 이질감이 있다. 누가 만들어낸 기준이고 평균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은 피부가 미끈해야 하고 손은 두 개, 발도 두 개, 눈도 두 개 등등 다양한 평균적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이질적인사람이 되어버리고,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복지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다르다는 것의 아름다움.

 

나는 비록 내 실수로 인해 그리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여드름 흉터가 생겼지만,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를 가진 사람은 대부분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내 실수로 지금의 피부가 되었지만, 나는 내 피부가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저 내 피부는 남과 다를 뿐이다. 장애 역시 그렇다. 그저 그 한 사람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안될까. 개성이면서 일상 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부족한 사람에게 부족하다 비난할 것이 아니라, 부족하니 사회에서 조금씩 채워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러게 된다면 다름은 개성으로 굳혀지고, 그 개성은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하나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든 드러나지 않는 것이든, 다시 말해 신체적인 것이든 정신적(혹은 심리적)인 것이든 불편함과 다름을 안고 산다. 마치 현재 모든 인류의 공통점이라 할만한 불편함과 다름을 이질적이라거나 비정상이라고 낙인찍는다면 이 세상 누구도 정상은 없다. ‘정상평균이라는 것의 틀을 벗어나야만 모든 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지 않을까.

 

피부 나쁜 것도 장애가 있는 것도, 마음이 아픈 것도, 몸이 아픈 것도 또 그 어느 한 곳 아프지 않은 것도 그저 그 사람이 가진 개성이고 다름이 되기를. 불편하더라도 스스로가 변하길 원치 않으면 마음 깊이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나만의 욕심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함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0) 2016.04.22
길어도 괜찮아  (0) 2016.04.21
여드름 자국  (0) 2016.04.19
티 없는 순수함  (0) 2016.04.18
어리석은 질문  (0) 2016.04.17
아끼는 법  (0) 2016.04.12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3. 11. 8. 14:16 카테고리 없음

아름답지 않은 아이는 없다. 2013.11.8.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어린 아이였던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더 어린 시절, 아기였던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 긍정문으로 다시 바꿔 적더라도, 우리는 모두 아기였다. 


모두가 아기였던 적이 있는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야, 우리가 아기였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가 그 때 얼마나 사랑받으면서 자랐고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지탱하는데 어느 정도 큰 힘을 발휘하는지 쉽게 예상하지 못한다. 


(위 문장을 적으면서, 과거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아동양육시설' 즉 고아원에서 일을 하면서 만났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아이들에게 부모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거나 자신을 양육할 수 없는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잠을 자고, 사회복지사의 관리 속에서 자라나도록 했던 사람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부모는 있었고 아마도 자신의 아이를 낳은 그 순간 그들의 부모는 그 아이들의 눈과 존재로서 그들의 미래를 보았을 것이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매번 예상했던 대로 되는 것은 아닐 뿐더러, 그 과정에서도 여러가지 고통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에게 직접적으로 양육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그 아이들에게 부모의 빈 자리를 완벽히 채우지는 못할지라도 따뜻한 관심과 그들이 받아야 마땅할 사랑을 간접적으로 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모두가 아기였던 우리는, 시간이 지나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기를 지나 자신의 생각을 형성한 뒤 사회가 요구하는 여러가지 기준들에 우리의 어린 시절을 끼워맞추곤 한다. 


여기서 항상 문제는 발생한다. 


가끔, 아기들의 사진을 보거나 혹은 길을 가다가 어린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다양하다고 적긴 하였지만 결코 옳은 생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뭇 반응들이 있어 이렇게 글을 남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꼭 한 번은 떠올려주기를 바랄 뿐이다.) 


옳은 생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반응 중 가장 본인의 심경을 거슬렀던 반응은 이것이다. 


"이 아이는 예쁘지 않네." 


이 반응은, 어린 아이나 아기가 외모적으로 예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반응이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마치 존재하고 있는 듯이, 사람들은 아이들을 보면서 '예쁘지 않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예쁘지 않구나' 라고 생각이라도 해주면 고마운 일이겠지만, 아마도 본인의 생각에는 '나는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 정도의 생각에서 머룰고 있을 듯 하다. 


아이들이나 아기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인식이나 기준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를 귀엽게 보고, 예쁘게 보아야만 한다는 의무나 당위 역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나 아기들은 자신이 그런 대접을 받아야만 하는 사회적 기준에 대해서 일말의 관심이 없다. 그들이 오직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내가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과 내가 꿈 꾸는 내 미래의 모습을 밝게 그려야 한다는 점, 이 정도 일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외모적으로 예쁘거나 귀엽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역시 아니다. 미추(美醜), 아름다움과 못남의 기준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해 왔다. 그것은 마치 높은 산이 있는 것에 비해 낮은 산이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우리는 낮은 산을 보고, 너는 왜 이렇게 낮니? 라고 묻지 않듯이 아이들에게 그런 질문이나 반응을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거나, 자신의 가지고 있는 기준에 의해 아이들을 제단해버리는 것에 불과하다. 


가끔 티비나 광고 등에 등장하는 아이들 혹은 아기들의 모습은, 동그란 눈에 적당히 긴 머리 그리고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더해 황인종의 아이라기 보다 백인의 아이라고 인식되는 눈동자와 얼굴형을 가지고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우리는 그런 아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는 예쁜 아이'라는 인식을 가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는 결국 아이인 것이고, 그 아이의 미래가 밝을지 어두울지 우리 어른들은 섯불리 판단할 수 없다. 덧붙여 본인은 아직 '흑인'의 아이가 광고에 나온 것을 29년의 삶 동안 본적이 없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오직 본인이 티비나 방송을 통해서 본 흑인 어린 아이는 유니세프의 기부 광고에 등장하는, 영양식을 먹고 있는 아이들에 불과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종적 차별의 결과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본 글의 주제인 '아름답지 않은 아이는 없다'를 왜곡하는 하나의 현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아이는 아름답고, 귀엽고, 예쁘다. 


이것은 하나의 명제이자, 우리가 마음 속 깊이 담아두어야 할 '올챙이' 시절의 추억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이다. 그들이 성장하여 어떤 사람이 될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아기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그 아이가 사랑받지 않아야 한다면, 그건 사랑이라는 것 역시도 조건이 달려야 한다는 3류 소설의 주제도 되지 않는 핑계일 뿐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이들이나 아기들을 보면서 그들의 가진 얼굴이나 외모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뽀뽀나 사랑, 혹은 무한한 칭찬으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관심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단지 관심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그 순수한 눈망울이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 있는 노력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아이는 없다. 그것은 미래를 말하는데 조건이 달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니, 혹시 주변에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의 외모를 보지 말고, 그 아이의 미래를 보고, 이것도 힘들다면 그 아이의 눈동자를 보자. 그리고 그 속에서 비치는 자신의 얼굴이 과연 웃고 있는지, 혹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지를 통해 지금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p.s 

장애를 가진 아이라면, 더욱 우리가 사랑을 쏟아야 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 거부감을 가지거나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은 내 주위에는 없었으면 한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