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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4.21 길어도 괜찮아
  2. 2015.03.11 2015년 3월 11일
  3. 2014.06.01 두 가지 단상.
2016. 4. 21. 00:14 내 생각

길어도 괜찮아.”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은, 2009년 일본에 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페이스북이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꽤 많은 친구들이 가입을 했고, 서로의 일상과 가벼운 인사를 담벼락에 남기는 도구로서 좋은 도구라 여겨졌다. 당시의 페이스북은 지금의 페이스북과는 상당히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면은 훨씬 조잡했고 채팅 기능은 있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이렇게 광고가 많지 않았다.

 

벌써 7년 째 페이스북을 하고 있다.

 

뭔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한 서비스를 사용한다는게 놀랍기도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나에게 있어 약 1년 반 전부터 페이스북 사용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특별한 변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페이스북에 어머니께서 가입을 하신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몇 해 전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셨으면서도 페이스북은 하시지 않으셨다. 아마 하시는 방법을 모르셨을 것이다. 1년 반 전 고향에 내려간 김에 어머니의 스마트폰에 페이스북을 깔아드렸다. 집에 노트북도 한 대 내려보내드렸는데, 노트북보다는 폰이 쓰시기 편하실 듯 했다.

 

그리고 나는 페이스북에서 더욱착한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께서 가입하시기 전에는, 술을 마신 뒤 다소 우울한 내용이나 특정한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정치적으로 날카로운 글을 마구 싸적어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가입 이후, 나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불편해졌을까? 답답해졌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물리적 거리가 먼 어머니와 더욱 심리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적을 때에도 읽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며 적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어머니께서는 페이스북을 하시면서, 작은 아들이 서울에서 어떻게 하며 살고 있는지를 직접 보실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아실 수 있게 되었다. 또 작은 아들의 글을 꼭 읽으시며 응원의 한 마디나 농담 한 마디까지 던져주시게 되었다.

 

그리고 또 나는, 내 글의 팬을 얻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적은 글은 꼭 읽으신다 하셨다.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으시곤 나에게 어머니의 생각을 말씀해주신다. ‘정말 좋은 글이다.’ ‘이번 글은 좀 이해가 잘 안된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시며 내게 조언해주신다. 어머니는 내 글의 팬이다.

 

얼마 전, A4 용지 두 장 분량의 글을 페이스북에 적었다. 어머니께서 그 글을 다 읽으셨다며, 이야기를 이으셨다. “매일 올라오는 너의 글이 갑자기 올라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게 된다.”하신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글을 매일 적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 기다리지 마세요. 어머니께서 말씀 이으시며, “글이 길어서 읽기 힘들지만, 끝까지 다 읽을테니 계속 글 적어줘.” 내가 되묻는다. 글이 길어요? 그럼 좀 짧게 적을까요? 어머니 대답하시길,

 

길어도 괜찮아.”

 

되도록 길게 적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 길어지면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 글 역시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머니께서는 괜찮다 하신다. 길어도 읽어주시는 마음이 고맙고 또 한편으로 미안하다.

 

페이스북을 한 지 7. 지금은 단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훔쳐볼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꽤 멀리 살고 있는 나의 가족에게 혹은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누군가 나의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지금, 2016, 32살의 권현우라는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목소리가 되었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기쁘다. 읽어주셔서 고맙다. 누구보다 어머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들은 오늘도 하루 열심히 살았고, 내일도 오늘 보다 나은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할겁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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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1. 22:32 내 생각

2015년 3월 11일 - 2014.03.11. 


오늘은 일본에서 쓰나미가 일어난 지 4년이 되는 날이다. 그와 더불어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 날이기도 하다. 형의 큰 아들, 즉 나의 조카의 생일이다. 불교적 전통을 가진 우리 가족은 음력 생일을 쇠지만, 나는 큰 조카의 생일을 양력으로 기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이 일으킨 천재지변으로 죽은 날, 우리집은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날이다. 4년 전에 일본 열도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죄를 지은 것이 없다. 죽은 이들 중에 범죄자나 살인자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그런 죽음을 당해야만 하는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죄를 짓지 않았지만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부모의 사랑 덕에 태어난 조카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삶이란 죽음을 담보하는 과정 중 하나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사는 그 순간부터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선택할 수 있도록 삶을 운영할 뿐이다. 자살을 꿈꾸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자신의 목숨을 내맡긴 곳에서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을 기대하고 있지 않는다.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태어나 사랑하는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평화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죽기를 바라는 것, 이것은 문명이 이룩해낸 성과이다. 불과 물을 다룰 수 없었던 시기, 많은 인류의 원조들은 야생 동물들의 먹이감이 되는 불상사를 당했거나 치수(治水)에 실패한 탓에 여름이면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야만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랑이라는 가치가, 일반화되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최소의 단위가 가족(최근에는 개인이 되고 있긴 하지만)이다. 삶과 죽음이란 결국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우리 인류는, 가족과 괴리된-사랑과 괴리된 탄생과 죽음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2011311일은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진 날이다. 그들이 그런 상황에 빠졌던 것은, 단지 자연재해가 일어날 곳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 뿐이다. 그리고 우리 조카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그것 뿐이다. 삶과 죽음이란 어찌 보면 운, 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누구의 아들딸로 태어날 것인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운의 한 측면을 갖고 있다면, 죽음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 관리나 인생을 통해 운영되어온 삶의 원리가 타락이 아니라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더이상 현대는 죽음조차도 운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할 듯하다. 어떤 죽음을 구할 것인지에 대해서 선택의 권리는 박탈되었다. 박탈된 선택권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그 권리를 찾아오겠다 의지를 불지르게 만들었다. 자살이 그 하나의 방법이며, 안락사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되짚어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의 진실이, 지구가 자신을 지키는 원리라 하여도, 이미 생겨버린 측은지심, 가족의 사랑 속에서의 탄생과 죽음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사례가 아니라 한국의 사례만 하여도 무수한 사례를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 죽음에 대한 측은지심이 정치에 의해 훼손되고 정치화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훼손된 측은성은, 그것을 없애고자 하는 정치세력에 의해 더욱 강한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사랑이라는 가치에 눈을 떠 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든, 국가가 해야할 일은 국민 개개인이 그 가족의 사랑 속에서 태어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호막을 쳐 주어야 할 것이며, 또한 그 개개개인이 고통 속이 아니라 사랑 속에서 얼굴에 흰 천을 덮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데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데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일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나, 객사하는 사람을 두고 앞뒤없이 너의 책임이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충생신고와 사망신고를 받는 행정의 원칙과 젊은이들의 젊음을 담보로 내맡겨진 안보의 원리 역시 '가족의 사랑 안에서의 탄생과 죽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만나지 못하는 이를 위한 보호이며, 단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당할 수 있는 이의 수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2011311일 일본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 날 나의 조카가 태어났다.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은 416일의 세월호 사건 당일 어딘가의 나라, 어딘가의 가족 안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차가운 철제 배 안에서 많은,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누구나 사람을 죽는다. 그러니 죽음을 인정하라 따위의 말은 더이상 이 지구 상 위의 많은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311일의 일본을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416일을 기억해야 하고, 그 유가족들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죽지만 그 죽음이 예상하지 못했던 죽음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할 수 있었던 불상사에 대해서 국민이 권력을 이양해 가며 많은 돈과 힘을 싣어준 국가라는, 추상적 존재에 대한 역할을 다시 한 번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 사랑 안에서의 탄생과 죽음은 인권 진보의 산물이 아니라, 선사 시대에는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삶의 운영 원리 중 하나이며, 그것을 최근에 들어서야 이룩해낸 성과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빌어, 선택한 죽음이 아닌 '뒤집어 씌어진 죽음'을 맞이한 모든 이에 대한 애도와 함께, 그런 와중에도 가족의 일원이 된 우리 조카를 비롯한 모든 새로운 존재들에 대한 환영과 함께, 각자가 살고 있는 정부에 대해서 과연 요구하는 것들이 무리한 것들인지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 생각을 알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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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1. 16:27 카테고리 없음

두 가지 단상. 2014.06.01


(아래 글은 어제 새벽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폰으로 적은 뒤 '게시'를 눌렀건만 사라져 버린 글을 다시 정리하여 적는 글입니다ㅠㅠ 아닌 새벽에 멘붕..ㅎㅎ)

# 1
어제의 공연은 몇 가지 생각을 저에게 남겼습니다. 그 중 한 가지를 글로 옮기고자 합니다. 
공연의 시작 시간은 저녁 6시였습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된 만큼 해는 길어질 만큼 길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오후 6시라 하여도 하늘은 밝았습니다. 일찍이 제 자리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고 또 이미 자리에 착석해 있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그들이 어떤 얼굴을 갖고 있고 어떤 옷을 입었고 무엇을 읽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수의 사람이 있었지만 한 명 한 명의 특징을 알아보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공연은 약 6시 반 정도에 시작했습니다. 공연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는 저물었고 어둠은 밀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학교 측에서 나눠준 형광봉을 하나 둘씩 꺼내어 들었습니다. 밤이 완연히 깊었고 사람들이 들고 있는 형광봉의 물결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는 개별 사람의 특징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굴과 옷 그리고 누구와 왔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가 지자 얼굴과 옷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흔들리는 형광봉만이 보였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사람'만이 보였습니다. 모여 있는 '사람들'. 
어두워지자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리에 앉은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서 있었다고 해도 사람이었습니다. 어두움은 개별성을 매몰시켜 버렸습니다. 대신 보편성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낮은 우리에게 각자의 차이를 드러내 주었지만 밤은 그 차이를 무시하고 단지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인권이나 '인류의 진보' 등은 개별 주체의 노력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이는 어떤 거대한 흐름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듯 합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인류에게 가져다 준 죄로 지금도 어디선가 간을 독수리들에게 쪼아 먹히고 있습니다. 불이 가져다 준 것은 낮과 같은 밤입니다. 밤이 되어도 사람들은 낮에 보는 것과 같이 개별적 주체로 다른 사람을 인식합니다. 오히려 더욱 밝게, 더욱 선명하게 다른 사람과 자신을 차별하고 구별하고 구분짓습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우리에게 문명을 가져다 주었지만 가끔은 그 불을 숨겨둘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종교와 인종, 외모와 장애 등은 낮이 우리에게 준 기준들입니다. 밤이 되면 고고히 흐르는 인류의 파도 속에 들어갑니다. 개별적 주체가 강조되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인간이라는, 사람이라는 동질성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인권과 인류 그리고 그것을 신장하기 위한 노력들은 밤에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시 아침이 되고 낮이 밝겠지만 밤은 우리에게 어둠을 선물해 '인류 보편의 평등'을 일깨워주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합니다. 
저는 가수의 노래를 듣는 것도 좋았지만, 어둠 속의 사람을 보는 것 그리고 그들이 흔드는 형광봉의 흐름을 보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잊고 지냈던 사람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 2 
대학원에 들어오고 난 뒤 신기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내용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생각을 같은 시간에 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종종 일어나기도 합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좋은 점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그 대안 제시나 수단 확보 등에 다른 측면이 있을 때 방향을 잡기 쉽습니다.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갖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쁜 점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경우 창의성이 다소 떨어집니다. 기존의 형식을 깨는 신(新) 사고의 등장을 막을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쁜 점 역시도 공통으로 흐르는 생각의 기준이 있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기도 합니다. 
바야흐르 선거의 계절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하는 사람들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가끔 우려되는 것은 너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만이 진실이라며, 그것을 생각의 기준으로 세울 때가 있습니다. 가령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인 '자유민주주의'가 그렇습니다. '자유'가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의 공유, 기준의 설정이 명확히 이뤄지지 않으면 대안은 제시되기 어렵습니다. 민주주의 제도 내에서 그 기준에 대한 토론을 하기에는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여러 가지 공약들을 많은 사람들이 쏟아냅니다. 가끔 상반된 내용들의 공약들이 한 후보의 공약집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또 어느 일방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사람인 양 몰아세우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문제의 원인이 '서로 공유하는 생각의 기준'이나 '가치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그 기준은 '시민의 행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막연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시민의 행복'이라는 기준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형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전에 많은 정치적 실험들을 통해 어떤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검증 역시 어느 정도 완료되어 있다고도 봅니다. '시민의 행복'이라는 기준을 각 후보가 잘 인식하고 있다면 어느 후보가 되든 큰 상관은 없어보입니다. 행복을 '지금 당장' 실현할 것인지 '몇 년 뒤에' 실현할 것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만 그 기준이 형성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같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떤 기준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그로부터 대안을 찾고자 하는 행위는 선호되지 않습니다. 시민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기준과 정치인이 갖고 있는 기준이 다를 경우 정치는 삶과 괴리됩니다. 같은 생각의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수단과 대안을 제시할 때 좋은 사회가 형성되고 그 방향성도 가질 수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생각은 같더라도 구체적인 방안과 실행 방법은 무수히 다를 수 있습니다. 최근의 한국 정치를 보면 그 생각 자체가 달라 무의미한 것들로 논쟁하고 비난하는 듯한 모습들을 봅니다. 지켜야 할 가치, 즉 '시민의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사회적 토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p.s 여기서 '시민'이라는 표현은 '서울시'의 시민이 아닌 자발적이며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을 말합니다.

posted by 맥스(Max)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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