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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1.04 우리 모두, 수수하지만 굉장해
  2. 2013.11.28 청소년에게 '재미'를 허락하라.
2017. 1. 4. 21:25 내 생각

독서는 취미랄 것도 없으니, 굳이 최근에 내가 가진 취미를 말한다면 “일본 드라마 시청” 정도다. 드라마 시청이 취미라니 참 별 것 아닌 취미다 싶기도 하지만, ‘영화 감상’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취미에 속하는 것이 드라마 시청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왜 영화는 감상이고, 드라마는 시청이라 부르는 것일까. 이왕 취미라고 적을 거, 멋드러지게 일본 드라마 감상. 이게 내 취미 되시겠다.


최근이라 해도 작년(2016년)의 일인데, 취미의 일환으로 보았던 두 편의 일본 드라마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 편은 2016년 2분기 드라마 “중쇄를 찍자 (원제 : 重版出来)”이고 또 다른 드라마는 2016년 4분기의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원제 : 地味にスゴイ、校閲ガール河野悦子)”이다. 일본은 1년을 4분기로 나누어 드라마를 제작하고, 큰 변동이 없는 이상 한 편의 드라마는 10화 안팎으로 제작된다. 거의 모든 드라마는 사전제작의 형태로 제작되기에 중간에 스토리를 바꾼다거나 또는 불필요한 설정이 없는 것으로 일본드라마는 유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 드라마가 유명한 점은, 다양한 직업에 대한 소개와 그 직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게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것이 작년의 앞서 소개한 두 편의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두 편의 드라마 모두 출판과 관련이 있다.


우선 “중쇄를 찍자”라는 드라마는, 출판업계 중에서도 만화잡지를 만드는 편집하는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을 배경으로 한다. 유도선수로서 체육대학을 나왔지만 부상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된 신입직원(주인공)이 만화잡지를 만들어 나가고 편집자로서의 역량을 쌓아가는 내용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주된 내용은 아니지만 기성 만화가 및 신입 만화가가 느끼는 고충, 잡지를 통해 내어야만 하는 이익과 그와 동시에 담아야만 하는 독창성 간의 미묘한 갈등 그리고 영업사원이 느낄 수 있는 보람 등에 대한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다. 글로 적으니 드라마의 내용이 중구난방인 듯 보이지만, 드라마를 본다면 앞선 내용들이 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 드라마는 교훈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만화가와 만화잡지를 편집하는 편집자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만화가보다는 ‘만화잡지 편집자’라는 직업이 가진 어려운 점과 그런 어려운 점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만화잡지의 편집자는 결코 우리가 직접 만나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역시 출판업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는 드라마지만, 여기에서는 편집부서가 아닌 ‘교열’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로 다룬다는 것이 앞선 드라마와는 차이가 있다. 제목에서 이름이 드러나 있는 주인공, 코노 에츠코는 패션잡지의 편집자가 되기를 원해 ‘케이본샤’라는 출판사에 입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입사 후 알게 된 그녀의 부서는 책의 오탈자나 내용 상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는 ‘교열부’. 패션잡지라면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보는 그녀이지만, 책을 내기 전에 교열을 한다는 사실 조차 몰랐던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책을 교열해 나가며 교열부의 다른 직원들 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책상에 앉아 모든 교열을 했던 직원들이 사실관계 확인이나 지명 확인들을 위해 현장조사를 나가기도 하고,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담당하며 팬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교열까지 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단순히 작가가 적은 글을 수동적으로 교열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교열의 범위 내에서 교열자로의 의견을 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이끌어 냈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의 범위는 자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데 까지가 그 범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교열부 혹은 교열담당 직원들은 일반 독자들은 앞선 만화잡지 편집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그 존재를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취미’로써 갖고 있는 일본 드라마 ‘감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과 몇 일 전 새해가 되어 내게 들려온 한 가지 뉴스 때문이다. 그 뉴스란 국회에서 일을 하시는 청소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협력업체 직원의 지위에서 정규직인 국회 직원으로 전환되었다는 뉴스였다. 몇 해 전부터 국회 청소노동자의 지위와 대우에 대하여 국회 안팎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쉽게 사람들의 기억이나 관심에서 잊혀졌고, 그렇게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2016년 작년의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의 여야 구성이 변경되었고, (역시 나는 모르는 사이) 청소노동자의 지위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듯 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나는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딜 가나 쉽게 청소노동자를 만날 수 있다. 그곳이 도서관일 수도 있고, 빌딩의 로비나 공항 등 어디든지 청소를 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잘 찾으면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이나 업무를 보느라 혹은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때는 청소노동자의 모습은 쉽게 눈 앞에서 사라진다. 분명 존재하는 사람들이지만, 당연히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그들의 존재나 처우는 망각되고 만다. 그리고 깨끗해진 화장실 거울과 비워진 쓰레기통,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건물의 로비를 걸으며 누군가 이곳을 청소를 하고 있겠거니- 정도의 판단만 한다.


나는 이번 국회의 청소노동자들의 정규직 국회직원으로서의 전환에 대하여 찬성의 입장이다. 하지만 국회가 끝은 아니다. 그리고 시작도 아니다. 당연한 것을 그 시작과 끝을 나눌 수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에는 남들이 하지 않으려 하거나,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중 정확히 몇 퍼센트가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뉘어져 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갖고 그 보람에 상응하는 직업적 안정성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그 성과나 결과물에 대해 직접 자신의 이름을 내걸거나 표시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란, 사실 많지 않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일 속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있다. 굳이 티를 내어야 할 필요성도 또 그것이 그들의 삶에,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안정성과 삶에의 필요성을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하게 되는 또 하나의 필요충분조건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 수수하지만 굉장한 일을 하고 살고 있다. 어떠한 직업이든 자신이 언제 그 굉장한 일을 그만두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나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면, 그것은 목적으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고 직업이 아니라) 수단으로서의 존재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일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든 각자의 생계와 삶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직업을 통해 행복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글을 마무리 한다. 우리 모두, 별 볼일을 하는 듯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라며. (아, 그리고 소개한 두 편의 드라마는 꽤 재미난 드라마이니 한 번 나와 같은 ‘일본 드라마 감상’을 취미로 가진 분이라면 감상해보시길.)


이미지 출처 : http://channel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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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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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28. 04:09 카테고리 없음

청소년에게 '재미'를 허락하라. 2013.11.28. 


국가가 '게임'을 사람들에게 정신적-신체적 영향을 심대하게 미칠 수 있는 중독으로 규정하여 철저히 관리한다고 한다.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중독은, 자신이 그것이 문제인지 문제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없고 오로지 그것만이 자신의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에 발생한다. 또한 그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 할지라도 모든 감정적 변화의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삼기 때문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게임'은 분명 중독의 가능성을 가진 매체임에는 틀림이 없다. 게임을 중독의 수준으로 하는 청소년들은 게임을 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지를 판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업에의 스트레스 혹은 가정 내의 불화 등을 게임으로 해소한다. 


하지만 아무리 게임이 중독으로 규정되고, 국가가 관리한다고 하더라도, '게임을 하는 것'을 법으로 막고 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자금을 게임 회사에게 부과한다 하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게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청소년기를 지난 성인이라고 가정해 보도록 하자. 여러분들의 청소년기, 즉 초중고등학교를 지내오면서 여러분이 가졌던 취미나 특별히 여러분이 시간을 쏟으면서 즐거웠던 활동들이 무엇이 있는가.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떠올린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초중고 시절을 보내면서 우리가 가져야만 했던 취미나 흥미로운 활동들이라는 것은 대부분 학교 내의 활동에 국한되어 있었고, 그것 또한 과목으로 개설되지 않았다면 접해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원해서 '즐겁게' 보냈던 시간이 거의 없다. 


상대적으로 초등학교 학생들은 자신의 시간이 많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유희라는 것은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거나 또는 어른들이 가지말라고 하는 PC방에 가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중학교에 올라가서 해야하는 공부를 좀 더 수월하게 익히기 위해 '중학교 선행학습'까지 진행한다고 하니, 초등학교 학생이라 해서 사교육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사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도 사실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부모가 초등학생 때부터 사교육비의 지출이 자유로운 가정이나, 교육에 일정부분 관심이 있는 부모를 두지 않고서야 초등학생은 거의 '방치'되기 쉽다. 그런 초등학생들이 적은 돈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오락실이나 피씨방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을 것이다. 


이런 추세는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가정에 여유가 있는 친구들은 자신이 원하는 악기 하나를 배우거나, 언어 하나를 배울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 역시도 그들이 진정으로 원해서 배웠다기보다 앞으로의 '대학 진학'에 어느 정도 필요에 응답하기 위한 장기적 투자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투자조차 하지 못하는 부모를 둔 학생이나 스스로가 그런 '지적' 활동에 관심을 두지 못하는 학생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때론 나쁜 친구들의 속임에 빠지거나 스스로가 나쁜 친구가 되곤 했다. 이들 역시도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쾌락과 스트레스 해소를 제공하는 공간은 피씨방이나 오락실이 전부이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은 중독이라고 하니, 스스로 원해서 중독이 되었다고 할 수 없는 수많은 청소년들 그리고 그런 청소년기를 지내고 자신이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도 모르고 살아가야만 하는 수많은 성인들에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밀어 그들을 마치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본인은 여기서, 한국의 교육제도의 문제나 사교육 비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주제는, 단순히 사교육을 철폐하자고 주장하거나 교육 제도의 변화만이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이상주의적 발상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또 그 책임을 져야할 것이기에, 쉽게 건들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기에 교육제도와 사교육은 각자가 느끼는 인식대로 어느 정도의 문제가 있는지를 판단하기를 바란다. 


다만, 청소년의 게임 중독 경향이나 성인들의 사행성 게임 중독 등에 대해서 반드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 글을 남긴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자신의 감성과 이성의 틀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에 한 가지 감정을 인위적으로 말살시킨다. 그것은 바로 '재미'이다. 재미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추상적인 개념인 재미를 청소년에게 허락하는 것은, 얼핏 잘못 생각하면 '마냥 아이들을 놀게 내버려 둬라' 라는 식으로 들리곤 한다. 막상 그렇게 놀게 내버려 두지도 못할 사람들이 '재미'가 성적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재고해 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 한국 사회는 그 정도의 포용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판단할 수 없다. 


재미라는 감정이 말살되는 이유들 중에는, 학업에의 스트레스로부터 연유해 경쟁적 교우 관계, 가족 내의 불화 등이 있다. 더욱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 학업에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없는 것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1시간을 공부하면 다른 학생들은 3시간을 공부한다고 가르치는 학교에서, 학생이 느낄 수 있는 재미는 그 세 시간의 스트레스를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니, 더 자극적이고 더욱 많은 학생들과 함께 하면서 공유할 수 있는 '꺼리'를 찾게 된다. 그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게임일 수 밖에 없다. 


학업에의 스트레스는 그대로 유지되는 채, 게임에만 빠지는 학생들에게 다시 '재미'라는 것이 가지는 가치를 인식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게임 역시 재미가 있으니 많은 학생들이 하는 것이겠지만, 게임'만'이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사회나 교육 구조에도 반드시 문제는 있다고 본다. 게임이 아닌, 다른 학생들과의 활동들을 보장해주지 못한 채 단지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 학생들은 자신의 '재미'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러니, 청소년에게 재미를 허락하기 위해서는, 정규 교육 시간 내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스스로의 흥미와 취미를 찾을 수 있는 수업을 넣는 것이 중요하다. 성적에 관계 없이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이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활동들을 활발하게 함으로써 수업 시간이 끝나더라도 자신의 취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시간적-공간적-정신적 여유를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과정 내에 '취미' 수업이나 '재미' 수업을 넣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으나, '국-영-수'를 위해 한국사나 체육, 음악 교과 시간마저 줄어드는 지금 시점에서 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또 다른 대안은 없는가. 


또 다른 대안 중 하나는, 청소년의 취미 생활이나 운동, 독서, 영화 감상 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청소년 재미관'을 만드는 것이다. 학교 교내에 설치해도 좋지만 지역 사회의 여러 기업과 사회 단체, 공공기관 등과 연계해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취미를 찾아가고 또 그 취미를 통해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온전히 '청소년'을 위한 취미 공간이 있는지 한 번 둘러보기 바란다. 거리에는 술집이 넘쳐나고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라곤 피씨방이나 학원의 거의 전부다. '불량 학생'으로 인식되는 학생들만이 오히려 그들만의 공간에서 그들이 가장 즐기면서 하는 '흡연'이나 '음주'를 취미로 삼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여지 없이 '알콜 중독'이나 '흡연에의 의존성'을 내재시키게 된다. 그와는 상반되게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에는 언제나 학생들의 수는 부족하고 활동들은 넘쳐난다.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 진정으로 청소년을 위한 공간인지 생각해보면, 청소년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결국 성인의 스트레스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청소년 재미관'이라는 개념을 설정하긴 했지만, 이런 건물 또는 공간이 실제로 청소년에게 얼마나 많은 재미를 가져다 주고, 그들이 스스로 취미 생활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고, 음악을 배우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들여야 하고, 그림이나 여행 등의 취미를 가지려는 학생들에게는 '그런 것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라는 핀잔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에게 그런 활동들을 후원하고 조율하는 곳이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청소년은, 그 나라의 미래라고 했다. 지금의 한국 청소년들이 게임에 빠져서 어둡고 쾌쾌한 지하실이나 빛도 들지 않는 공간에 앉아서 게임 속 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을 통탄해 마지 않는다면, 그 감정을 고스란히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진정으로 하고 싶어서 게임을 하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청소년이 미래로서 그 나라의 횃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에게 재미를 허락하라. 그 재미는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나갈 수 있는 취미, 즐길거리 그리고 다른 학생들 혹은 사람들과 공정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얻을 수 있는 화합과 성취의 감정을 그들에게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이다. 


p.s '청소년 미래관'에서는 학생들이 어떤 활동을 원하는지 조사하는 것과 더불어 그 조사 결과에 따라 활동 보조금이나 강사 초빙 등을 담당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자기 봉사' 시간으로 인정함으로써 그 아이들에게 활동의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취미 박람회' 등을 개최하여 학생들이 다양한 취미들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하는 기회 역시 제공하는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운동 뿐만 아니라 악기, 성악, 여행 등의 다양한 취미에 대한 정보를 사회가 제공해준다면 자연스럽게 게임 중독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리라 본다. 


p.s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 제도가 '대학 입학'이 최종점인 양 학생들을 몰아세운다면, 이런 취미나 재미에 관한 노력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다.


p.s 3 성인들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제대로 된 취미 하나 없는 성인들은 음주나 흡연 혹은 선정적인 영상물의 유혹에 쉽게 빠지기 쉽고, 이런 좋지 않은 활동들이 결국은 사회 문제로 비화되는 것이다. 사회 문제 예방을 위한 '취미'생활을 가지도록 하는 계몽주의의 발상이 아닌,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고 즐겨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이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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