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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2.02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2. 2016.11.27 씨발
2016. 12. 2. 20:55 내 생각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2016.12.02.

 

대부분의 친구들은, 졸업을 할 초등학교 인근의 중학교를 갔다. 하지만 나는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체학급에서 단 10명 만이 진학을 했던 마산중학교에 지원했고 어렵지 않게 입학이 결정되었다. 굳이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가 아니었어도, 유일하게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는 것도 큰 결정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중학교 진학이 결정되고 난 뒤, 내가 처음 한 일은 머리카락을 짧은 스포츠로 깎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두발자유화는 꿈 같은 소리였다.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나는 스포츠 머리에 익숙해져야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되려 어색한 머리가 되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앨범에는 정말 이상한 모습으로 찍힌 사진이 떡 하니 남았다. 졸업앨범 사진을 정식으로 촬영하였지만,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며 복도에서 찍힌 스포츠 머리의 내 모습은 지금 봐도 우스꽝스럽다. 거기다가 그날 입고 있던 옷이 하늘색 면 셔츠였다. , 하늘색이라니. 가능하다면 같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동기들의 앨범을 모두 몰수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그리고 이어 두 번째로 내가 중학교 진학을 위해 한 일은 교복을 맞추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특이한 선택을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교복 브랜드는, 스마트와 엘리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교복판매점에서 중학교 교복을 맞추게 되었다. 이것도 형이 그곳에서 맞추었기 때문이었고, 브랜드가 없는 대신 그만큼 저렴했다는 것이 이유일 수 있겠다.

 

처음 교복을 받아 온 날이었다. 마산중학교 교복은 정말 특징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교복이었다. 남색 상의에 같은 색깔의 하의. 단추에는 한자로 적힌 중학교를 뜻하는 중()글자가 금색으로 반짝였고, 상의소매에도 같은 형태이지만 크기가 작은 단추들이 3개씩 붙어 있었다. 흰 셔츠는 분명 면이라고 했지만, 이상하게 삼베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칠었다기 보다 삼베처럼 실 한 올 한 올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징도 없고, 고급 교복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 교복을 나는 매일, 입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한참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중학생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질 듯 보였고, 정장 형태로 된 교복을 입으면 마치 내가 어른이 된 듯해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하교 한 뒤 교복을 집안에서 입고 다니는 이런 나를 보며, 내가 곧 들어가게 될 마산중학교 교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온 형이 나에게 한 마디 툭 던졌다.

 

그거, 입기 싫어도 입어야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지금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의미였고, 이렇게 교복을 입고 있으면 번듯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척들은 나의 중학교 입학을 축하해주었고, 내게 기대하는 것들을 이전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중학교 교복을 입을 때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며 멋진 중학생이 되어야지, 하며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형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게 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1년이 지나는 것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선배들은 무서웠고, 선생님들은 더욱 무서웠다. 체벌이 당연했던 시절이라 사소한 잘못에도 선생님들은 가볍게 매를 들었지만, 그 매는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할 시점이 되어서는 체벌은, 마치 경주마를 다그치듯 너희를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양 뺨에서부터 발바닥까지 이어졌다. 교복을 입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중학생이라는 신분 뿐이었지만, 그에 따르는 의무는 자질구레한 것부터 때론 억울하다 느껴질 정도로 큰 것까지 많고 많았다. 그 결과 교복은, 매주 주말 다시 입고 싶지 않은 것이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교복을 입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었다. 하늘색(난 하늘색을 좋아하는 것인가...) 운동복을 입고 졸업식을 보내며, 고등학교 교복에 대한 환상 따위는 이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고등학교에 또 올라가는 것.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히 가야한다는 분위기에 취해 대학을 가는 것. 물론 당연하지 않았던 뭇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내가 살았던 당시에는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오며, 그 의미를 만끽했던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군대에 들어가고자 했지만 시력 탓에 공익을 가게 되며 겪게 되었던 차별 혹은 비판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고, 30살이 넘으며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사회적 의무들은 나도 모르게 나를 옥죄었다. 그리고 의무에 허덕인 탓에 권리는 간신히 그리고 어렵게 하나씩 얻어갔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중고등학교 입학이 그럴 것이고, 대학 입학이 그럴 것이고 취직, 결혼, 출산 등이 그럴 것이다. 이런 다양한 능선들이 눈 앞에 있을 때 그것을 정복하든 우회하든 그것을 선택함에 있어 책임은 다양하게 삶을 파고든다.

 

평범한 사람이 이럴진대 다른 이들보다 특별한 지위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책임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작게는 카페나 구멍가게의 사장에서부터 크게는 한 나라의 대표라고 부를 수 있는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쉽게 얻은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과는 별도로 그것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많은 책임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카페 사장은 손님들을 위해 맛있는 커피를 준비해야 하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공정하게 국민들의 요구를 잘 받아들이고, 정의롭게 국가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원한 지위에 해당하는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복은, 단지 교복일 뿐이었다. 그것을 입고 있다고 중학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벗었다고 중학생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중학생이면 중학생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고등학생이면 또 그 나름의 의무와 권리가 생기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가지로 가족 안에서, 지역 안에서, 국가 안에서 그런 의무와 권리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해 교복을 벗고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그것이 주는 지위와 권리, 권한을 버리고자 한다면 자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한 손실이나 권리의 상실은 자신의 책임 범위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은 원하지 않았어도, 큰 잘못이나 학교나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사람은 퇴학을 당하기도 한다. 그 교복을 입기 위해서 아무리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해도 또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해도, 그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 또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수치심을 준다면 벗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이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군인, 어머니, 아버지, 국회의원, 총리, 대통령 등 다양한 사회적지위와 직업들이 존재한다. 되고 싶어 된 것이든 되고 싶지 않았음에도 된 것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벗고 싶어질 때가 있듯이, 마찬가지로 벗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우선 어울리지 않고, 그것을 입고 있음으로 인해 사회의 구성원들이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낄 때는 더욱 그렇다.

 

중학교를 입학하기 전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중학교 교복을 입어가며 설레고 있었을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을 입을 수 있는 것과는 별도로, 입게 되었으면 최선을 다하길. 최소한 그것을 입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또 친구들에게는 부끄럽지 않게 하길,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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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7. 20:23 내 생각

"씨발" 20161124


어머니. 제목을 보시고 놀라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적고 싶은 글은 제목과 관련된 글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누군가를 비난하지도 해코지도 하지 않는 글입니다.


당분간 내년의 시험 준비 때문에 글을 적는 것을 멈추려했던 저에게, 아들의 글을 읽는 재미가 있으셨다는 말씀에 다시 하얀 화면을 마주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의 겨울이었습니다. 연도로 따지면 2000년이겠네요.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전, 저는 학교에서 꽤나 싸움을 많이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싸움의 이유는 별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이 저에게 '개새끼'라고 부르면 저는 무조건 싸움을 했습니다. 개새끼라는 것이 저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욕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새끼'라는 욕을 들으면, 저는 으레 '우리 엄마아빠가 개가?'라 하며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곤 했습니다. 제가 개새끼라는 말에 이런 반응을 한다는 것을 안 친구들은, 저에게 부러 시비를 걸기도 했습니다.


매번 이런 식이어서는,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어머니께 여쭈어보았습니다. "엄마, 학교에서 친구들이 내한테 개새끼라고 한다. 우쨰야 되노?" 어머니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그런 욕은 듣는 사람 잘못이 아니고, 하는 사람이 잘못이다. 니가 잘못한 게 없으면, 그런 욕 들어도 신경쓰지마라. 니가 나쁜게 아니니까." 저는 어머니의 그 말씀에 마음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선 당부하셨습니다. "니가 욕을 안하면 된다." 그랬습니다. 저 스스로 나쁜 말을 입에 담을 필요는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쉽게 풀리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개새끼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제목의 '씨발'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욕에 대한 문제들이 지나고, 중학교 3학년의 겨울이었습니다. 개새끼라 부르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나름의 논리를 가졌으나, 씨발은 아무리 찾아봐도 논리나 의미나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의 친구들은, 씨발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저 강해보이려 하거나 또는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썼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습관과 환경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도, 그렇다고 실질적인 효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만 거의 모든 친구들이 쓰는 씨발이라는 욕을 쓰지 않는 것이 어색해져갔습니다.


저는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씨발이라는 욕을 해도 될지, 하지 말아야 할지 말입니다. 고민의 과정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기간을 정해 씨발이라는 욕을 마음껏 써보기도 하고, 또 어떤 기간에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지내보기도 하였습니다. 욕을 하지 않는 기간에도 습관적으로 내뱉어지는 욕을 듣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욕을 하는 기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욕을 하는 순간의 마음을 잘 살폈습니다. 그때 저는 제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이건, 강해보이기 위해서이건 욕을 내뱉으면 그 누구보다 먼저 내가 먼저 듣게 되는 것이었고 그것은 제 마음에 울적함과 미안함을 안겼습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을 것이 분명했을 친구들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친구들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을테지만 말입니다.)


저는 이런저런의 고민의 결과로, 욕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너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욕을 안하네." 무슨 말인지, 순간 못알아들었다가도 '아, 내가 욕을 잘하게 생긴 얼굴이구나.' 하는 사실을 가끔 거울을 보다 깨닫곤 합니다. 농담입니다. 그래도 평소 욕을 잘 하지 않습니다. 욕이 정말 목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화가 나거나 울분에 차거나 묘한 쾌감을 느끼고 싶을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외치곤 하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해결이 되었구나, 싶으시겠지만 아직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욕을 하지 않아도, 친구들은 끊임없이 욕을 했습니다. 정말 끊임이 없었습니다. '아, 밥 잘먹었다. 씨발.', '날씨 드럽게 춥네, 씨발.' 등등이었습니다. 듣는 제 마음도 불편해지고 또 친구들 역시도 딱히 그렇게 기분 좋아 하며 욕을 하지는 않아보였습니다. 이런 친구들이야 웃으며 넘기거나 '욕하지 마라' 핀잔을 주고 넘기면 될 일이었지만, 또 다른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란, 바로 정말 저에게 진심을 담아 욕을 하는 경우였습니다. 감정이 맞지 않거나 서로의 인신공격 끝에 하는 그런 욕 말입니다. 이럴 때의 씨발은, 정말 씨발 같았습니다.


욕을 들어가며 푸닥거리 같은 싸움을 한 판 하고 난 뒤가 사실 더 어색했습니다. 어색했던 이유는, 제게 욕을 했던 친구와 저는 서로 사과를 하고 다시 친구 사이로 돌아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반 친구이거나 같은 학교 친구이거나 때론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얼굴을 치고 박고, 욕지거리를 단전 끝에서부터 올려 서로에게 내뱉던 적과 같은 친구와 다시 친해질 수 있을까,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며 지나가던 시간 중에, 다시 친구로 남아 거친 우정을 나눈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학교 복도에서 지나치며 얼굴을 보면서도 모른 척하고 인사조차 하지 않는, 쉽게 말해 절교를 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욕을 듣고 하는 것보다 더욱 불편한 마음이 남았습니다.


2016년 지금, 저는 다시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51.6%의 이야기입니다. 51.6%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받았던 투표율입니다. 어머니께서도 아시다시피 투표자의 반 이상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은 우리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투표 당시에는 51.6%였고, 이후 고정지지층은 35%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은 고정지지층 마저도 사라진 5%의 지지율을 3주째 유지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51.6%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왜 할까 싶기도 하실 겁니다.


씨발, 이라고 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만, 전 욕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욕을 듣고 하던 어렸을 당시보다 저는 지금 더욱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때문은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정착해온 이후, 국민은 누구나 선거권을 가지고 만 19세 이상이 되면 투표권을 가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투표권은 재산의 정도와 사는 지역에 관계없이 단 한 표 씩 국민에게 주어집니다.


저와 어머니는, 그런 민주주의의 선물이자 권리인 투표권을 가지고 박근혜 대통령을 뽑았던 51.6%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되기 전에는 35%의 고정지지층과 함께 살아야 했고, 지금은 아직도 남은 5%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지지층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을 수 있도록 도운 여당과 그에 속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한 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는 그 사람들은, 과거 자신이 얼마나 박근혜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지를 과시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이 사람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 날리고, 싸움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으로서 절교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어져야 하고, 어머니와 제가 사랑하는 주혁이와 혜빈이가 우리나라에서 꿈을 꾸고 수학여행을 가고,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라의 상황을 지금의 상황으로 만든 사람들을,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일부는 정치인이라는 이름으로 티비에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지요. 저는 그저 그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조용히 살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만, 그것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


어머니, 저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중학교 3학년 당시, 씨발이라는 욕을 할까 말까라는 고민을 했던 것보다 더욱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저와 싸움을 하고 절교를 했던 친구를 다시 만날 일은 생길지도 모르지만,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만든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는 않더라도 그들이 다시 권력을 잡고, 국민들을 괴롭힐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용서해야만 할까요? 제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누군가의 투표에 그 책임을 묻고 용서를 할 수 있는 사람이긴 할까요? 51.6%의 국민들은 편향된 언론과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국정원 선거개입 등으로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이 지금의 상황이 될 때까지 방관했고 오히려 그것을 도왔던 사람들을 저는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번의 계기를 통해서, 반성할 사람은 반성을 하고 각성할 사람은 각성을 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야 한 걸음이라도, 아니 반걸음이라도 나아지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머니, 제가 소심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3일 때는, 친구들 누구나가 쓰는 욕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저는 욕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고민의 결과에 답은 있을까요? 가볍게 생각하고, 법이 알아서 하겠지 라거나 똑똑한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넘어가면 저와 같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고민을 떠넘기는 것이 아닐지 걱정도 됩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선거권,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고, 국가가 상처를 받는 일이란 참으로 어색하고 불필요한 일이라 생각도 듭니다만.


어머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욕은 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듣는 욕에 대한 불편함은 있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뒤부터 합리적 의견개진과 토론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합리성이나 정의 보다는 편가르기와 말 바꾸기 등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저는,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배 속의 똥처럼 품고 있다가 싸버려야 할 어떤 나쁜 것인지, 아니면 ‘암세포도 몸의 세포이니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어떤 미친 듯 보이는 드라마의 대사처럼 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욕과는 다르게, 이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해나가야 할 듯 합니다. 어머니께, 넋두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어머니께서 아프시면 제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픕니다.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에 제 웃는 얼굴 실어 보냅니다.

posted by 가고파라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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