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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의500자

현우의500자 _28 #현우의500자 _28 중학교 1학년이었음에도 몸무게는 70kg을 육박하고 있었다. 내가 등나무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동시에 올라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졌다. 혼자 하기 힘들 듯 하여 몸무게가 가벼운 친구 한 명을 꼬셨다. 서로 의지하며 등나무에 올라갔고, 발 밑에서 우둑투둑 등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무서웠다. 하지만 종이비행기는 등나무 곳곳에 있었기에 등나무 위를 걸으며 종이비행기를 줍기 시작했다. 교실 창문에서 친구들은 비행기들의 위치를 친절히도 알려준다. 한참을 줍던 중 잠시 고개를 들어 등나무 중간에 섰다. 이때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 푸른 구름이었고 종이비행기가 날았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리는 푸른 구름 위에 서서 친구와 선생님과 시간과 나를 잊었다... 더보기
현우의500자 _27 #현우의500자 _27 학교 전체 방송으로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등나무 위는 하얀 종이비행기에게 점령당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본관을 쓰던 2,3학년 선배들이 창문에 새로운 수복지를 관찰하는 척후병처럼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나는 내가 그런 것이 아닌 것처럼 멀뚱히 서서 내심 뿌듯해 하며 있었다. 교실 앞문이 열리고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오늘 처음으로 종이비행기 던진 놈 누구고?" 처음에 누가 던졌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있을 수 없었다. 우리반 아이들 뿐만 아니라 다른 반 아이들까지 가세했던 지라 어느 반에서 시작했는지 선생님들도 모를 수 밖에. 그러니 담임선생님들이 각자의 반에 가서 주범을 색출(?)해 내야만 했다. 우리반 친구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나를 지목했다. "현우가 처음에 했는데요." 그.. 더보기
현우의500자 _26 #현우의500자 _26 중학교 1학년 때다. 당시 학교의 정문에서는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연습장을 나누어 주었다. 학교 인근의 학원이나 교복점의 광고가 앞뒤로 꽉 채워져 있는 꽤나 쓸만한 연습장이었다. 많이 받아올 때는 몇 권씩 받아왔으니 당시 영어 단어는 그 연습장들 속에서 '빽빽이'가 되어 선생님의 손에 넘겨졌다. 빽빽이도 지겨워질 즈음, 창가의 자리에 앉았던 나는 연습장을 한 장 씩 찢어 종이 비행기를 만들었다. 교실 밖으로 고이 접은 종이 비행기를 날리니 멀리 날아갔다. 한 두 장 던지던 것이 한 권을 넘길 정도로 날리고 있을 즈음, 다른 친구들도 가세했다. 오전에 시작한 종이 비행기 날리기가 점심시간과 오후가 되자 후관을 사용하던 1학년들 전부가 창 밖을 향해 종이 비행기를 날렸다. 쉬는 시간만 .. 더보기
현우의500자 _14 ‪#‎현우의500자‬ _14 손톱발톱은 빨리 자란다. 매번 귀찮아 하루이틀 미루다 보면 어느덧 꽤 자라 일상에 불편함을 주거나 때론 불필요한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이럴 때는 왜 빨리 손톱을 자르지 않았지 하며 손톱깎이를 찾아 자르려 하면 손톱은 나를 빼꼼히 흰 자만 내어놓고 보고 있다. 비겁하게 손가락에 눈동자를 가린 채 흰 자만 보이다니. 나를 째려보고 있는 것일까. 내 몸의 일부이면서 나를 유일하게 째려보고 있는 손톱발톱을 보고 있노라면 난 나쁜 마음이 든다. 손톱깎이로 짧고 강한 고통을 주기보다 치아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통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물어 뜯다보면 어느 샌가 만족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손톱은 검은 눈동자를 보이지 않는다. 붉은 눈시울을 열 손가락 치켜뜨고 나를 노려볼.. 더보기
현우의500자_7 ‪#‎현우의500자‬ _7 늦은 새벽이다. 나는 나와 체결한 약속을 지켜야한다. 500자를 채우지 못할 지언정 내 스스로와의 약속은 지켜야한다. 술을 마셨다. 술을 왜 마시는가에 대한 변명과 핑계는 기득하지만 나는 그런 핑계를 대지 않는다. 내일 후회할 글을 오늘 적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살펴보니 할 이야기가 많다.하지만 오히려 할 이야기가 많을수록 적을 이야기는 적어진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생각하는 이야기와 적을 수 있는 이야기가 다르듯이 말이다. 익숙해진 시간들에 익숙해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다만 나는 술에 취했고 글을 한 눈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약속은 지키기 어려운 만큼 그 어려움을 다음으로 넘기고자 하니 내일에게 그 .. 더보기
현우의500자_1 ‪#‎현우의500자‬ _1 2014.12.05. 앞으로 매일 500자의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긴 글을 쓰는 것보다 짧은 글을 쓰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한 문장, 한 문장에 깊은 생각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의 형식이라기 보다 하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을 풀어보려고 한다.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 갔다. 탑승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입은 두 명의 여자가 계단을 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둘의 손에 들려 있는 노트북 상자. 탑승장에 도착해 계단을 올려다보니 그 상자에는 ‘애니카손해사정’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취업을 한 것일까. 그들에게 정장이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그들의 젊음 때문은 아니었다. 여성용 정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