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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어리석은 질문 어리석은 질문 운전면허를 갓 따고 운전에 재미를 붙여나가고 있던 20살이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아버지로부터 운전을 하나씩 배웠기에, 말 그대도 실용적인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운전 면허 시험장 코스는, 떨어져가며 한 코스씩 한 코스씩 익혀 나갔다. 몇 번의 낙방 결과 운전면허를 손에 쥐게 되었으니 그 재미와 기쁨은 크디 컸다. 택시를 탈 일이 있었다. 운전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시기였던 만큼 매일 운전을 하시는 택시기사님은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하다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택시 기사님께, 20살의 천진난만함을 담아 물었다. 기사님께서는 이렇게 재미난 운전을 매일 하시니 참 좋으시겠어요. 기사님께서 나를 슬쩍 보시고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뭐든 처음에는 재밌는데, 그게 먹고 살 일이 되면 재밌지 않아요.. 더보기
아끼는 법 "아끼는 법." ---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하나. 명품 화장품, 백(bag)이나 고급 승용차 등 비싼 가격을 주고 산 것은 아끼고 저렴한 것들은 잘 아끼지 않는다. --- 몇 해 전, 아버지께서 해외에 나갔다 오시며 남성용 스킨 하나를 내게 선물로 주셨다. 향이 진했고, 병이 예뻤다. 나는 그것을 면도 후 피부결을 정리할 목적으로 상쾌하게 막 썼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유럽에 갈 일이 생긴 나는 비행기 안에 앉아, 내 손바닥에 흥건히 흐르던 그 스킨을 떠올리며 울적해졌다. 그 남성용 스킨이 비행기 내 면세 카탈로그에 비싼 가격으로 예쁜 사진과 함께 떡! 하니 실려 있는 것이었다. 몇 십 만원이 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스킨의 가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목욕탕 안의 '쾌남' 정도로 밖에.. 더보기
거칠 혹은 까칠 "거칠 혹은 까칠" 20대 이후가 되어 나를 만난 사람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어릴 적에 꽤나 재밌는 사람이었다. (재밌는 사람이라 표현할 수도 있고, 남을 잘 웃기는 사람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 때는 흔히 말하는 '오락부장'으로서의 복무를 충실히 했지 말입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에는 항상 웃는 얼굴로 다닌다고 별명이 '씨산이' 였을 정도였다. (씨산이는 사투리로, 바보 같이 실실 웃고 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던 어린이가 20살이 넘고 머리에 뭔가가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남을 웃기는 일에 주저함이 많아지게 되었다. 투철한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 내가 웃기는 것을 즐겨 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방이 웃을 상황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편하게.. 더보기
기타와 휘발유 "기타와 휘발유" 고등학교 1학년, 기타를 배웠다. 버스정류장 앞 조그만 기타 학원에서 성함이 '박진영'이라는 선생님으로부터 기타를 잡는 법부터 코드를 쥐는 법 등 하나씩 기타 현이 내는 소리를 만들어가는 법을 배웠다. 몇 개월 동안 배운 실력이지만, 코드의 운용이나 멜로디 잡는 법을 열심히 배운 덕에 그해 학교 축제에서 '비오는 거리'라는 노래를 무대 위에서 부르기도 했다. '인기' 처녀 선생님이었던 담임선생님과 반장인 나, 부반장, 총무 이렇게 4명이서 무대를 꾸몄다. 기타를 배우니 다른 노래를 들으면 기타 소리에 관심이 갔다. 드럼이나 베이스, 보컬의 소리 사이에서 기타의 음에만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이렇게들 잘 칠 수 있는지 흥분하며 악보를 찾아 연습을 해보기도 했고, 기타 연주곡을 찾아듣거나 .. 더보기
100쪽 "100쪽"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고전이라는 이름 말고 또 다르게 불리기도 한다. '누구나 제목은 들어보았지만,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드문 책'. 맞는 말인 듯 하면서도 또 누군가 지속적으로 사서 읽으니까 출판되는 것일테니 반쯤 맞는 말이라고 해두어도 될 것 같다. 나 역시도 제목을 들어본 고전을 사서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세 번 이상 어떤 책의 제목을 듣게 되면 그 책은 꼭 읽는 편인데,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세 번은 훌쩍 넘게 들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고전들을 죽 읽다보니, 한 가지 법칙이 자연스레 생겼다. 그것은 바로 '100쪽 까지만 읽자' 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100쪽 까지만 읽고 읽기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고전은 시간적으로 오래된 책들이기도 하고, 또 다양.. 더보기
샤프를 쓰지 못한 이유 "샤프를 쓰지 못한 이유" 지금도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초등학생은 샤프를 쓸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 샤프를 쓰지 말라 하시기도 했고, 부모님께서도 연필을 쓰라 하셨다. 왜 샤프를 쓰지 못하게 했을까. 연필은 매번 깎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었고, 또 연필심이 쉽게 부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샤프를 사용하지 말라는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특별한 이유라기 보다, 샤프를 사서 쓸 수 없는 친구들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연필은 저렴했고, 샤프는 초등학생이 사기에는 고가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혹은 지역만 하더라도, 지금의 기준으로 금수저와 흙수저가 편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편한 친구가 될 수 있었지만 또 그와 동시에 부모의 재산.. 더보기
현우의500자_92 ‪#‎현우의500자‬ _92 손이 하나 없는 친구가 있었다. 왼손 하나 뿐이었다. 혈관기형으로 오른손에 피가 많이 쏠려 잘라 냈다며, 친절히도 샤프심과 볼펜으로 예를 들며 자신의 기형을 설명해주던 친구였다. 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이 친구는 오른손에는 항상 붕대를 감고 있었다. 수술 흉터가 남아 있다고는 했지만, 붕대를 꼭 감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 붕대는 항상 깨끗했다. 언젠가 한 번 물었다. 너는 왜 붕대를 감고 있냐고. 굳이 필요없는 붕대를 왜 하고 있느냐고. 친구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내 없는 손을 보고 언짢아 할까봐. 같은 중학생이었음에도 친구의 배려는 깊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배려심에서 한 일이었다. 한의사가 되고 싶다고 .. 더보기
목소리도 늙을까 목소리도 늙을까 2013.7.1 날짜를 적으려고 보니 벌써 7월이다. 2013년을 시작하는 마음가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고, 추운 겨울을 잊은 채 더운 여름의 한복판에서 '덥다'를 연신 주억거리고 있다. 계절의 변화만큼 사람이 변한다면, 사람은 그 형체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2013년의 반을 보낸 지금으로서 앞으로 남은 반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 스스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글 주제와 상관 없는 이야기를 몇 줄 적었다. 하지만 전혀 상관이 없지는 않다.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 즉 우리가 나이가 듦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배경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