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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시멘트 핫도그 ‘시멘트 핫도그’ 20161203 2009년 1월,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위앙짠)의 근교, 어느 한 초등학교에서 2주간의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 유스클립(Youth CLIP)이라는 대학생국제교류단체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였고, 보건복지부의 후원으로 진행하게 된 봉사활동이었다. 2주간 내가 맡았던 업무는 다름 아닌 도서관 짓기였다. 그곳의 초등학교는 교사(校舍)와 화장실 건물만이 있는 곳이었기에 도서관을 세울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당시 현지에서 활동중이던 시민단체로부터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라오스에 가기 이전까지 내가 손에 벽돌을 잡아본 적은, 2006년 아동양육시설에서 공익근무를 할당시 식당을 증축할 때 뿐이었으므로 완전 초짜였다. 현지의 인부-라고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지역 주민들이었다–와 협.. 더보기
2015년 3월 11일 2015년 3월 11일 - 2014.03.11. 오늘은 일본에서 쓰나미가 일어난 지 4년이 되는 날이다. 그와 더불어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 날이기도 하다. 형의 큰 아들, 즉 나의 조카의 생일이다. 불교적 전통을 가진 우리 가족은 음력 생일을 쇠지만, 나는 큰 조카의 생일을 양력으로 기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이 일으킨 천재지변으로 죽은 날, 우리집은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날이다. 4년 전에 일본 열도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죄를 지은 것이 없다. 죽은 이들 중에 범죄자나 살인자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그런 죽음을 당해야만 하는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죄를 짓지 않았지만 죽음을 받아들여.. 더보기
2014년 정리 2014년 정리. 2014.12.24. # 1 세월호가 가라 앉았고, 유병언이 떠올랐다. 한 명 한 명, 기억해야 하는 사람은 수 백 명인데, 단 한 명의 이름이 뉴스에 등장했다. 종교가 등장했다. 거대악이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이단을 싫어했고, 자기 가족이 죽지 않은 사람은 탓할 사람이 필요했다. 정부를 욕하자니 카톡을 뒤질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에 떨었다. 유병언은 죽어 가라 앉았지만 세월호의 기억도 같이 가라 앉았다. 유병언을 떠올린 사람은 알고 있었으리라. 세월호를 가라 앉힐 수 있음을.# 2 군대에서 폭행을 당해 몇 명의 청년들이 죽었다. 병영혁신위원회인가 이름도 외우기 힘든 뭔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군 가산점제를 부활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낸다. 문제가 군대 내부의 문제에서 남녀 문제로 비화.. 더보기
유병언 단상 유병언 단상 2014.7.27. (간만의 정치글, 적고 보니 정치글도 아니구먼) 전 세모그룹 회장이었던 (故) 유병언의 시신이 발견되어 온 한국이 떠들썩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결론으로는 유병언 전 회장의 시신이 확실하다고 하니 의학 분야나 해부학에 관련해서는 지식이 없는 나는 믿을 수 밖에. 유병언 전 회장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다투어 볼 일이라 생각했으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 법률도 책임도 사실관계 확인도 어렵게 된 이상 유병언 전 회장이 세월호 참사의 (마치) 주범으로 언론에 회자되는 시점부터 생각한 점을 한 번 적어볼까 한다. 1. 구원파는 조직폭력배 조직인가? 신문이나 방송에서 '구원파'라는 명칭으로 '복음침례회' 소속의 신도들을 마치 '조직폭.. 더보기
스킨스쿠바 스킨스쿠바 IMF가 오기 직전까지 우리집은 '스킨스쿠바' 용품점을 했다. 아버지께서는 국제 자격증을 가진 민간잠수사이시면서 스킨스쿠바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셨다. 당시 나도 아버지를 따라 새벽이나 주말에 바다에 나가 잠수를 즐기곤 했다. 내 이름이 적힌 전용 수트도 있었으니 당시에는 꽤 열심히 했었다. IMF의 타격으로, 레저의 한 종류로 인식되던 스킨스쿠버를 많은 사람들이 그만두게 되면서 우리 가게도 업종을 바꾸어야만 했다. 나 역시도 더 이상은 스킨스쿠버를 배울 수 없었다. 그때는 제대로 자격증을 따지 못한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아쉽다. 여름 방학이 되면 다시 스킨스쿠바를 배워야겠다. 다시 스킨스쿠바를 배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더보기
자력구제(self-help) 수원에서 일어난 오원춘 사건 때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다. 진도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건 때 해경은 출동하지 않았다. 자력구제(self-help)가 필요한 시기가 이미 왔다고 본다. 경찰을 믿지 못하니 민간 보안업체들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마 해양경찰을 대신하는 해양보호 민간업체들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또 다른 의미의 자력구제. 상조회사가 성업을 이루고 있다. 월 몇만원의 돈을 보험처럼 내면 자신의 가족이 생을 달리하였을 때 자신이 담당해야 할 것은 '슬픔' 뿐이다. 나머지 일들은 상조회사가 다 해준다. 가족들이 담당할 슬픔또한 '가족처럼' 담당해준다고들 광고한다. 장례식장에서 음식을 나르는 사람은 아들의 친구가 아니라, 아들의 친구처럼 보이는 상조회사 직원이다. 결혼정보업체가 '성혼율'을 자랑..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