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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어른으로 태어나다" “어른으로 태어나다” 우리가 모르던 세상이 있어. 그곳에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데, 별다르지 않은 듯 하지만 한 가지가 달라. 그곳에는 아기가 태어나지 않아. 그렇다고 단 한 명도 아기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야. 오직 아기를 낳아 기를 수 있을 정도의 여유와 경제력을 가진 가족만 아기를 낳지. 하지만 그 수는 적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서 결혼을 하고, 또 아기를 낳아. 근데 그 아기, 태어나자 마자 어른이야. 남자 아이라면, 17살 정도로 태어나고 여자 아이라면 한 두 살 정도 더 이른 15살 정도에 태어나. 지금의 기준이라면 어린 나이로 보이겠지만, 이들이 이 나이로 태어나는 이유는 태어나자 마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야. 여자가 남자보다 더 어린 나이에 태어난다고 해서 기쁜 건 없어.. 더보기
겨울이 되면 “겨울이 되면” 20161212 날씨가 추워졌다. 무더웠던 여름은 사진과 추억으로만 남았다. 추워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덜 춥다는 생각도 든다. 더 추워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여름의 장마와 가을의 낙엽이 남긴 나쁜 박테리아나 세균들이 추위에 죽기를 바라는 어흥~ 마음이 있다. 또 지금보다 더 추워야 보리밭에 보리뿌리가 들뜨지 않아 내년 보리 농사가 잘될텐데 하는 으휴~ 마음도 있다. 도시 사는 사람이 별걱정을 다한다. 이런 걱정들과 별개로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친형은 집 밖에 나가서 노는 걸 참 좋아했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을 시절부터 나가 놀기 버릇한 형은,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가면 놀다가 누군가의 집에서 저녁밥까지 먹고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나는 날씨가 따뜻하면 형과 같이 가.. 더보기
현우의500자_71 #현우의500자 _71 어디로 가실 건가요? 크로아티아요. 등기 서류를 붙이러 늦은 오후 우체국을 다녀왔다. 우체국 안은 그날 보내야 하는 서류나 소포를 잔뜩 안고 있는 앳된 여자들이 몇몇 있었고 거의 매일 만나지만 내 눈을 보는 일은 드문 직원분들이 창구 안에 앉아 계셨다. 내 차례가 되어 서류를 하나씩 올려놓고 있는데, 내 옆 창구에서 한 남자가 흰 소포를 전자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슬쩍 곁눈질을 하여 배송 주소를 읽었다. 소포는 내가 읽을 수 있는 방향과 반대로 올려져 있어 영어로 적힌 주소를 쉽게 읽어내려 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로 보내실 건가요? 크로아티아요. 하루 동안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느라 몸과 마음 모두 기진맥진해 있는 내가 한 순간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을.. 더보기
현우의500자 _44 #현우의500자 _44 얼마 전 시내 버스를 탔다. 10시간이 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기에 만사가 귀찮았다. 버스 안의 승객들도 추위가 피부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며,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열정이 흘러나가는 것을 막으며 기댈 곳을 찾고 있었다. 뒷문 앞에 서 있는 나는 멍하니 서서, '내 장갑의 색깔이 왜 이렇게 파랗지?' 따위를 생각하며 주억거리고 있었다. 동교동 삼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렸고, 이윽고 신호가 바뀌었다. 그때 서서히 출발하는 버스의 운전석 쪽에서 여자의 앳된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네. 정말요? 고맙습니다. 진짜 고맙습니다. 야, 나 합격했어. 진짜 포기하고 있었는데 합격했어. 어디에 합격한 것일까. 대학일까. 직장일까. 그곳이 어떤 곳이든 그의 목소리는 버스 안에 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