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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잘가" "잘가" 어제 들어온 친구와 간신히 하루를 보냈을 뿐이다. 어느 바다에서 왔는지, 차에 실려 오는 동안 어지럽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어머니가 그립지는 않은지. 몇 가지의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것을 기록이라도 하듯 내 짧은 기억력 속에 담아두려했다. 하지만 이내 곧 잊어버리고 다시 몇 가지 질문을 반복했다. 내 반복된 질문이 귀찮아질만도 했는데 새로운 친구는,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히 대답해준다. 내가 질문을 잊은 것 같으면 내게 다시 질문을 하라며 다그치기 까지 한다. 그 친구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넓은 몸이 횟감이 되기 전까지 자신이 살아있음을 내 질문을 통해서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 아저씨가 뜰채를 들고 와 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 새로운 친구를 잡으려 하면, 이리저리 피하면서 "나는 남해에서.. 더보기
내 걱정 "내 걱정"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아무런 미사여구도 없는 저 문장은 읽는 순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닮아있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것은, 어떤 불행을 말하는 것일까. 다시 읽어보면 설핏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요즘과 같이 행복한 가정이나 불행한 가정 모두 자신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또는 불행한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여러 도구들이 있는 시대에는 말이다. 행복한 가정의 닮은 모습이란 아래와 같지 않을까. 자녀와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자하기까지 한 부모. 각자의 공간이 있는 충분한 넓이의 집. 여름과 겨울에 떠나는 휴.. 더보기
똥오줌을 싸지 않는 아이 2015.02.14. 소설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아이 한 명이 응급실로 실려왔다. 마침 오늘 당직인 나는, 수많은 응급환자들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었다. 오늘 따라 시내에서는 교통사고가 3건이나 났고, 다행히도 삶을 내 눈 앞에서 마감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삶을 끝내도록 하지 않겠다는 내 의지가 더 강했던 것은, 나름의 뿌듯함으로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아이가 실려오다니? 무슨 일이야?" 간호사에게 물으니, 한 아이가 아랫배를 움켜쥐고 사색이 되어 울며불며 있는 걸 발견한 아이의 친척이 상황이 위급하다고 생각해 응급실로 보냈다고 나에게 설명한다. 아이가 떼를 쓰는가 보다 하고,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가 누워 있는 침대로 갔다. 커튼을 젖히니, 울고는 있지만 간호사가 설명했던.. 더보기
현우의500자_104 #‎현우의500자‬ _104 트럭이 나뒹굴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은 좋은 경험이 아니다. 아버지와 함께 배를 납품하러 가는 길이었다. 바닷길로 이어지는 지루한 길이 이어졌고 언덕 하나만이 남았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안도했다. 언덕을 올라가던 도중, 아버지께서 이상한 징후를 느끼신 것을 알아차렸다. 브레이크가 들지 않았던 것이다. 백 미러를 통해 보이는 것은, 한 가족이 차에서 내려 한가로이 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판단에 따라 한 가족의 목숨과 아버지, 나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왼쪽은 바다로 이어지는 낭떠러지였고 오른쪽은 높게 솟아 있는 논두렁이었다. 맑은 날을 즐기고 있던 가족의 차는 논두렁 쪽에 주차되어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순발력을 발휘해 가족의 차를 지나 논두렁 제방에 배가 실린 트럭의 .. 더보기
현우의500자_62 #현우의500자 _62 고모들은 울고 계셨다. 한번도 그런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낮게 깔린 슬픔과 그것을 헤쳐 나가고자 하는 큰 울음소리 사이로 빗소리가 들렸다. 비가 내려 슬픈걸까. 할아버지의 얼굴은 무언가가 덮혀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앉은 자리 앞에 할아버지의 오른쪽 다리가 이불 밖으로 나와 있었다. 일부러 내어 놓은 것은 아니었을테다. 가까이 다가가 할아버지 다리를 매만져 본다. 차가웠다. 불룩 튀어나온 정강이 뼈를 손가락으로 통통 두드려 본다. 할아버지의 고함소리도,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온 가족이 울고 있었지만, 나는 혈기왕성하셨던 할아버지가 가만히 계신 것이 더 신경이 쓰였다. 두드려도 대답이 없는 그것이 죽음이라 생각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