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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산중턱이었다. "산중턱이었다." 산중턱이었다. 어린 시절이었으므로 오르긴 힘들었지만, 한 번 오르고 나면 높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탁트임과 그로 인한 청량감이 들었다. 할머니의 집(할아버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으므로, 주말마다 방문하는 곳은 자연스레 할머니의 집이 되었다, 그리고 정식명칭은 할매집이다.)은 산을 뒤로 세워진 단독주택이었다. 넓다거나 크다고는 하지 못했지만, 형과 내가 뛰어 놀 만큼의 공간은 충분했다. 그리고 결코 한 번도 빠져보진 못하겠지만 마산의 명치 깊숙이 들어와 있는 합포만은 또 그만큼의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다. 할머니집에서 가까운 곳에는 우물이 있었다. 할머니의 집 바로 앞 아래쪽에는 200평 남짓 되는 밭이 있었고 그 밭과 아랫집 사이에 흙길이 있었다. 그 흙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더보기
시멘트 핫도그 ‘시멘트 핫도그’ 20161203 2009년 1월,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위앙짠)의 근교, 어느 한 초등학교에서 2주간의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 유스클립(Youth CLIP)이라는 대학생국제교류단체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였고, 보건복지부의 후원으로 진행하게 된 봉사활동이었다. 2주간 내가 맡았던 업무는 다름 아닌 도서관 짓기였다. 그곳의 초등학교는 교사(校舍)와 화장실 건물만이 있는 곳이었기에 도서관을 세울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당시 현지에서 활동중이던 시민단체로부터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라오스에 가기 이전까지 내가 손에 벽돌을 잡아본 적은, 2006년 아동양육시설에서 공익근무를 할당시 식당을 증축할 때 뿐이었으므로 완전 초짜였다. 현지의 인부-라고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지역 주민들이었다–와 협.. 더보기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벗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걸.’ 2016.12.02. 대부분의 친구들은, 졸업을 할 초등학교 인근의 중학교를 갔다. 하지만 나는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체학급에서 단 10명 만이 진학을 했던 마산중학교에 지원했고 어렵지 않게 입학이 결정되었다. 굳이 형이 다니고 있다는 이유가 아니었어도, 유일하게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는 것도 큰 결정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중학교 진학이 결정되고 난 뒤, 내가 처음 한 일은 머리카락을 짧은 스포츠로 깎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두발자유화는 꿈 같은 소리였다.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나는 스포츠 머리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되려 어색한 머리가 되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앨범에는 정말 이상한 모습으로 찍힌 사진이 떡 하니 남았다. .. 더보기
거칠 혹은 까칠 "거칠 혹은 까칠" 20대 이후가 되어 나를 만난 사람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어릴 적에 꽤나 재밌는 사람이었다. (재밌는 사람이라 표현할 수도 있고, 남을 잘 웃기는 사람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 때는 흔히 말하는 '오락부장'으로서의 복무를 충실히 했지 말입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에는 항상 웃는 얼굴로 다닌다고 별명이 '씨산이' 였을 정도였다. (씨산이는 사투리로, 바보 같이 실실 웃고 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던 어린이가 20살이 넘고 머리에 뭔가가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남을 웃기는 일에 주저함이 많아지게 되었다. 투철한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 내가 웃기는 것을 즐겨 하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방이 웃을 상황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편하게.. 더보기
샤프를 쓰지 못한 이유 "샤프를 쓰지 못한 이유" 지금도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초등학생은 샤프를 쓸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 샤프를 쓰지 말라 하시기도 했고, 부모님께서도 연필을 쓰라 하셨다. 왜 샤프를 쓰지 못하게 했을까. 연필은 매번 깎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었고, 또 연필심이 쉽게 부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샤프를 사용하지 말라는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특별한 이유라기 보다, 샤프를 사서 쓸 수 없는 친구들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연필은 저렴했고, 샤프는 초등학생이 사기에는 고가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혹은 지역만 하더라도, 지금의 기준으로 금수저와 흙수저가 편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편한 친구가 될 수 있었지만 또 그와 동시에 부모의 재산.. 더보기
현우의500자_107 ‪#‎현우의500자‬ _107 권해누 앞으로 나온나. 점심시간이 지나고 5교시가 시작되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문을 벌컥 여시며 나를 부르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선생님 옆으로 가 섰다. 이어 나를 추궁하시는 선생님. 니 점심 시간에 갑순이 얼굴 때렸제? 예? 예. 물론 갑순이는 본명이 아니다.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로 가던 중 갑순이가 나를 보며 메롱을 하기에 얼굴을 때린 것이 기억났다. 다시 선생님. 니는 니 놀리는 사람 얼굴 다 때리나? 아니요. 갑순이 나온나. 사과해라. 미안하다. 선생님께서 이제는 학생들을 향해 돌아서셨다. 지금까지 권해누한테 놀림받은 적 있는 사람 다 나온나. 15명 정도의 친구들이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이미 내 얼굴은 맞은 것보다 더 붉어져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보며 일.. 더보기
현우의500자_102 ‪#‎현우의500자‬ _102 한참 아침잠이 많을 초등학교 시절, 반쯤 감은 눈으로 아버지의 차에 올라탄다. 당시 아버지는 스킨스쿠바 강사를 하셨다. 강사 뿐 아니라 스쿠바 용품 판매 및 대여를 하셨다. 새벽에는 연습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가게에 모였다. 모두가 모이면 새벽 찬 기운을 품은 바다로 향했다. 바닷물을 양손 가득 품어 팔과 다리, 가슴에 뿌리고 나서야 잠이 깬 나는 수트를 낑낑거리며 입는다. 산소통을 맬 정도의 체격은 되지 않았다. 스노클링을 하며 꽤 먼 바다에 나가, 새벽의 모습을 담아내는 넓깊은 바다 속을 보는 것은 우주에 빠져든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면 아버지께서는 물 밖에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셨다 한다. 교육을 하실 동안 자유롭게 바다를 날아다닌다. 다시 육지에 착.. 더보기
현우의500자_79 #현우의500자 _79 할머니를 모시러 갔다 오는 길이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는 길,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내가 익숙하다고 해서 그가 나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나지막이 형, 안녕이라 외쳤다. 차의 창문은 닫힌 채였고 속도 또한 늦지 않았기에 그에게 내 목소리가 닿았을 리 없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형이다. 그는 항상 우리에게 침을 뱉었다. 왜 침을 뱉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누군가 먼저 바보라고 놀리고 나서야 형이 침을 뱉기 위해 입을 오물거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바보라고 놀리지 않고 형에게 다가가면 오물거리던 입을 멈추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어 준다. 친구들에게도 바보라 놀리지 않으면 침을 맞지 않는다고 알려주었지만, 친구들은 꾸준히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