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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산중턱이었다. "산중턱이었다." 산중턱이었다. 어린 시절이었으므로 오르긴 힘들었지만, 한 번 오르고 나면 높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탁트임과 그로 인한 청량감이 들었다. 할머니의 집(할아버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으므로, 주말마다 방문하는 곳은 자연스레 할머니의 집이 되었다, 그리고 정식명칭은 할매집이다.)은 산을 뒤로 세워진 단독주택이었다. 넓다거나 크다고는 하지 못했지만, 형과 내가 뛰어 놀 만큼의 공간은 충분했다. 그리고 결코 한 번도 빠져보진 못하겠지만 마산의 명치 깊숙이 들어와 있는 합포만은 또 그만큼의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다. 할머니집에서 가까운 곳에는 우물이 있었다. 할머니의 집 바로 앞 아래쪽에는 200평 남짓 되는 밭이 있었고 그 밭과 아랫집 사이에 흙길이 있었다. 그 흙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더보기
현우의500자_62 #현우의500자 _62 고모들은 울고 계셨다. 한번도 그런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낮게 깔린 슬픔과 그것을 헤쳐 나가고자 하는 큰 울음소리 사이로 빗소리가 들렸다. 비가 내려 슬픈걸까. 할아버지의 얼굴은 무언가가 덮혀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앉은 자리 앞에 할아버지의 오른쪽 다리가 이불 밖으로 나와 있었다. 일부러 내어 놓은 것은 아니었을테다. 가까이 다가가 할아버지 다리를 매만져 본다. 차가웠다. 불룩 튀어나온 정강이 뼈를 손가락으로 통통 두드려 본다. 할아버지의 고함소리도,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온 가족이 울고 있었지만, 나는 혈기왕성하셨던 할아버지가 가만히 계신 것이 더 신경이 쓰였다. 두드려도 대답이 없는 그것이 죽음이라 생각했.. 더보기
기술의 이야기 어느 기술의 이야기 2014.5.13. 어제 오후 연구실에 앉아 내일 강연에 쓸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근데 노트북의 디스플레이와 키보드 부분이 접합되는 부분에 균열이 보였다. '헐'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한번 나온 헐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 헐헐 대면서 학교 주위의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이대역 근처에 하나가 있길래 예약을 하고 부랴부랴 학교를 나왔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을 해서 접수를 했고 손님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시원한 차를 마시며 대기좌석에 앉아있었다. 그러고 멀뚱멀뚱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눈에 띤다. 할아버지는 연신 웃고 계신다. 웃고 계시는 할아버지의 왼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그리고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자세히 보니 화면에는 영상 통화 창이 켜져 있.. 더보기